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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아동학대의 실제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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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9-27 ㅣ No.1266

[경향 돋보기 - 인간에 대한 인간의 횡포, 아동학대] 아동학대의 실제와 교회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마라

나는 1988년에 종신서원을 한 뒤, 바로 서울시립 아동상담 치료센터(전에는 동부아동상담소)로 소임을 왔다.

치료센터의 문을 연 초창기에는 본드나 부탄가스를 흡입하는 청소년들과 가출하거나 폭력, 학교 부적응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비행 소년들을 센터에 입소시켜, 심리치료와 여러 가지 사회활동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의 아픔을 치료해 주고 새롭게 변화된 삶으로 이끌어주었다.

1994년 봄부터 2000년까지는 거리의 부랑아들을 직접 데려와 함께 살면서 상담치료도 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 당시 우리 센터에 오는 아이들 대부분은, 가출한 엄마와 알코올의존증이나 정신질환이 있는 아빠에게 맞아 집에서 나온 친구들이었다.

그러나 아동학대 문제가 제도적으로 정립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가출이나 일탈행동을 ‘학대’의 관점보다는 아동과 청소년 개인의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보았다.

2000년에 아동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우리 센터에도 아동학대 예방센터가 별도로 설치되었고, 내가 만난 ‘피학대’ 아동들을 통해 우리 가정이, 우리 사회가,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병적으로 심각해졌는지를 확인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학대받는 아이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사라진 엄마, 아빠의 자리를 하느님의 부성(父性)과 성모님의 모성(母性)으로 교회가 앞장서 채워주기를 간절히 호소한다.


우리 아이들의 슬픈 이야기

우리 센터에 아동학대 신고전화를 개설한 뒤, 처음으로 만난 아이는 아홉 살짜리 여자아이였다. 깡마른 그 아이의 왼 손바닥에는 동전 모양의 화상자국이 군데군데 있었는데 그 자국은 아빠가 담뱃불로 지진 자리였다.

그다음 날 들어온 어린 세 자매의 등은 아빠에게 죽도로 맞아 생긴 검은 보랏빛의 멍투성이였다. 그 아빠는 하루가 멀다 하고 센터로 찾아와 온갖 협박과 욕설을 내뱉으며 아이들을 데려가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가 아동학대 신고로 치료센터에 들어왔다. 그 아이의 몸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검은 멍투성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에 보이는 곳은 깨끗했다. 담임선생이 아이가 몸에 통증을 느끼는 모습을 보고 우연히 윗도리를 걷어보고는 곧바로 센터에 신고한 것이다.

“난 괜찮아요. 이거 아빠가 알면 안 돼요. 새엄마한테 말 안 한다고 약속했어요. 난 참을 수 있어요.” 이렇게 말하며 자기를 그냥 집으로 보내달라고 하였다.

아빠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아이의 몸을 직접 확인한 다음에는 오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미 그 아이는 어린이가 아닌 상처 받아 훌쩍 커버린 소년의 모습이었다. 그것이 더 슬펐다.

아이들을 데리고 강원도 진부로 여름 캠프를 떠났다. 모두가 물놀이에 한창인데 열두 살 지아(가명, 여)는 손바닥 화상으로 물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술주정뱅이 아빠가 어느 날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고 달군 프라이팬으로 손바닥을 지진 것이다.

캠프가 끝나기 전, 지아는 계곡에 앉아 작은 돌을 갈아서 하트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누구 줄 거야?” 하고 물으니 “아빠!”라고 했다. “아빠가 네 손을 그렇게 만들었는데…”라는 물음에는 “아빠는 그래도 나를 버리지 않았잖아요.”라고 대답했다.

6학년 영희(가명, 여)는 태어나면서부터 양육시설에서 자랐다. 그 시설에서 시시때때로 성질을 내는 영희가 감당이 안 되어 우리 센터에 오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살았던 시설을 떠나올 때, 아이는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화를 내며 저주를 퍼부었다.

지금은 애착 증세를 보이다가도 자기의 뜻대로 해주지 않으면 모두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울부짖으며 자해를 한다. 말리는 선생님 팔을 가위로 찌르고, 얼굴과 팔뚝을 깨물고, 시계를 박살내고, 옆의 친구들을 마구 때린다. 극도로 화가 나면 습관처럼 “나도 우리 엄마 있다구요.”라고 울며 소리친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갈라진 아이의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민혁(가명, 남)이는 밤낮으로 귀신이 무섭다며 화장실에도 혼자 가지 못한다. 하지만 겁쟁이 같은 그 아이는 급작스럽게 매우 공격적인 아이로 변한다. 욱하는 감정이 올라오면 웃통을 벗고, 이리저리 뛰면서 유리창이든 거울이든 닥치는 대로 박살낸다.

늑대소년처럼 으르렁대며 상처 난 자리를 계속 뜯어서 피를 보고야 만다. 어쩔 수 없이 신경정신과에 입원시켰다. 그렇지만 병원에서도 그런 행동은 계속되었다.

올해 여름 캠프가 시작되자 나는 병원에 입원한 민혁이가 마음에 걸렸다. 병원에서 일주일간 휴가를 받아 캠프에 데리고 갔다. 일주일이 지나서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이를 부둥켜 안고 한참을 울었다.

우리가 감당이 안 되어 병원에 보내 더 힘들게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자책감마저 들었다. 나는 일주일 뒤에 아이를 퇴원시키고 친구들이 있는 강원도 진부의 캠프장으로 데리고 왔다. 아이와 나는 더 이상 울고 싶지 않다.


학대받은 그다음, 그늘 이야기

학대를 당한 아이들은 후유증으로 말미암아 또 다른 어둠의 세계를 경험한다. 학대를 감당하기에는 그들의 마음이 너무 약하고 그 두려움은 병적인 문제로 튀어나오기 쉽다.

“엄마는 우울증이 심해져서 정신병원에 입원했고요. 아빠는 엄마를 때려서 지금 감옥에 있어요. 내가 어렸을 때 엄마가 사람들한테 ‘우리 아기가 배가 고파요.’ 하면서 돈을 달라고 했데요. 우리 엄마는 중국에서 아빠한테 시집을 온 거예요. 지금은 집이 없어요. 나는 돌아갈 곳이 없어요.”

끊임없이 말을 하는 아홉 살 강민이(가명, 남)와 걸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강민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춘기 아이처럼 반항을 한다. 그 모습은 마치 술을 잔뜩 마신 아저씨가 ‘될대로 되라.’고 주정을 부리는 것처럼 보인다.

아홉 살 은희(가명, 여)는 아빠한테 수없이 맞았다. 이제 더 이상 때리는 아빠가 없는데도 아이는 매우 위협적이다. 아무 때나 괴성을 지르며 직원들의 팔을 물거나, 악을 쓰며 차도로 뛰어들기도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낸 학교에서도 물건을 훔치고, 이를 막으려는 교사의 팔을 물어 등교가 금지되기도 하였다. 하루 종일 악을 쓰며 지내니 초저녁부터 아이는 잠에 빠져든다. 그때만큼은 천사 같은 예쁜 모습으로 말이다.

일곱 딸 가운데 여섯째인 샘이(가명, 여)는 늘 자살충동을 느낀다. 첫째가 자살했고, 둘째가 가출하자 부모는 샘이의 충동적인 행동을 언제나 매로 다스렸다. 무엇이 아이를 그렇게 화나게 만드는지 선생님의 머리채를 손에 쥐고 부르르 떨고 있는 모습을 보면 눈물로 가려져서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열여섯 살 진호(가명, 남)의 아빠는 진호를 때린 혐의로 수감 중이다. 진호의 엄마는 아이에게 아빠가 석방되도록 탄원서를 쓰라고 계속 요구한다. 체격이 좋은 진호는 센터 친구들을 때리고 협박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조금만 불리한 일이 생기면 민원을 넣겠다면서 상습적으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자신을 때린 아빠를 위해 탄원서를 쓰라는 엄마를 보면서 든 마음 때문일까? 그 아이는 자신이 아빠처럼 폭력적으로 변해간다는 사실을 상담을 통해 알게 되었고, 습관적으로 매서운 눈빛으로 변하는 모습을 인지하게 되었다.


아동학대의 아픔에 함께해야 하는 교회

많은 병자를 고쳐주신 예수님, 죄인을 부르신 예수님, 안식일보다 인간생명을 우선시하신 예수님, 정신병자를 고쳐주신 예수님, 수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눈먼 이의 눈을 뜨게 해주신 예수님, 무엇보다 어린이처럼 되라고 하시며 어린이들을 쓰다듬으며 축복해주신 예수님.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성실히 실천하고 있는 교회는 아동학대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예수님께서 아파하고 계신다. 지금 이 순간 예수님께서 통탄하실 ‘성심의 아픈 자리’로 교회는 빨리 달려가야 한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아이들이 지금 울며 절규하고 있다. 교회는 이제 아파하는 아이들을 예수님처럼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예수님이시라면 매를 맞고 울고 있는 아이들을 그냥 보고만 계셨겠는가? 교회는 예수님처럼 해야 한다.

아동학대의 예방과 해결방안에 대하여 교회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도 가정 공동체의 구체적인 사목이 시급하다. 사목자들은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올바로 이끌어주는 일만이 아니라, 조언자와 상담자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교회의 사목자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관련자들이 아동학대에 대한 심각성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교회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사목자들의 인식 전환이다. 사목자는 아동학대나 가정폭력에 관한 것을 신앙적인 차원에서 인내하라고 권고해서는 안 된다. 사목자는 교회 안에서 또는 지역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나 가정폭력에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목자는 영적 지도자로서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을 예방하는 사목 활동이나 강의를 확대하고 아동학대 사례를 선별해 낼 수 있는 지표를 가져야 한다.

둘째로는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또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마음놓고 찾아올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일차적으로 교회 안에서 가난하고, 소외된(냉담) 교우나 외짝 교우, 특별히 결손가정이나 이혼한 가정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안아주는 개방적 사목을 해야 한다.

이를테면 치유 피정을 하거나 교회 안에 심리치료 센터를 설치한다. 24시간 생명의 전화상담을 하고, 가정폭력과 아동학대가 발생할 때 일시적으로 보호해 주는 긴급 사랑의 공동체를 운영하는 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냉담가정 중심으로 고위험군 가정을 발굴하여 복지관, 정신 보건센터, 아동보호 전문기관과 같은 외부 전문기관과 연계하는 등, 학대받는 아동과 가족들에게 진정한 벗이 되어야 한다.

셋째로는 전 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아동학대 예방교육이다. 지금도 우리 교회에서는 여러 가지 특강과 피정, 혼인교리, 약혼자주말, 부부일치운동(ME) 등 가정에 대한 많은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 안에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노인학대 등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현장 실무자들이나 전문가들을 초대하여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교육이 절실하다. 이런 불행한 일은 특별히 심리적으로 병든 가정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인식으로 교회 안팎의 가정을 살펴보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거나 분노조절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는 상담을 받도록 권하여야 한다. 이는 아동학대를 예방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위기의식을 체감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식에서 우리를 끝까지 위로해 주시고, 보호해 주실 분은 바로 예수님뿐이시다.

스위스 출신의 유명한 심리학자 융(1875-1961년)은 “인류의 재앙이 천재지변으로 죽는 수보다 인간 내부로부터 일어난 것이 더 크다.”고 했다. 인간의 마음을 보듬어주어야 한다.

핵폭탄은 무섭기 그지없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마음 속의 분노와 적개심의 폭탄이다. 지금 이 폭탄이 여린 아이들에게 떨어지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엄청난 핵폭탄의 치유자는 오직 예수님뿐이시다.

교회는 지금 바로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아동학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하느님 나라를 이 지상에서 펼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 김보애 안나 -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서울관구 수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임상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시립 아동상담 치료센터 소장과 한국 모래놀이 치료학회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9월호, 김보애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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