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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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성령칠은1: 너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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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9 ㅣ No.46

[성령칠은 제1강의] 너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9월 5일 토요일 오전)

 

 

성령이 임하시도록 빌며 성호경으로 기도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스며들도록 다음 말씀을 천천히 낭독해 주시기 바랍니다.

 

(요한 1:35-42) : (35) 다음 날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다시 그 곳에 서 있다가 (36) 마침 예수께서 걸어가시는 것을 보고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가신다.” 하고 말하였다.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 갔다. (38) 예수께서는 뒤돌아 서서 그들이 따라 오는 것을 보시고 “너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은 “라삐, 묵고 계시는 데가 어딘지 알고 싶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39) 예수께서 와서 보라고 하시자 그들은 따라 가서 예수께서 계시는 곳을 보고 그 날은 거기에서 예수와 함께 지냈다. 때는 네 시쯤이었다.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 간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41)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찾아 가 “우리가 찾던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그리스도라는 뜻이다.) (42) 그리고 시몬을 예수께 데리고 가자 예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시며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 아니냐? 앞으로 너를 게파라 부르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게파는 베드로 곧 바위라는 뜻이다.)

 

요한 복음사가는 이 성서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는 모습을 설명한다. 제자들은 요한과 안드레아였다. 요한 복음사가는 그 전에 어디에 있었을까요? 요한과 제자들은 자신들과 백성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성취할 것을 찾고 있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에게 오는 사람에게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라고 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택받은 메시아가 아니라고 했다. 메시아는 성령이 그분 위에 머무시는 분이라고 증언한다. 그들은 계속 찾았다. 이 찾은 자체가 성령의 활동이다. 우리가 찾을 때에 우리는 흐릿한 것을 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찾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찾으라고 영감을 주시는 것은 무엇인가 좋은 것을 주시려는 것이다.

 

어느 날 예수님은 한 무리의 제자들을 만난다. 사랑 받는 제자 요한과 안드레아이다. 이 만남은 요한과 안드레아의 삶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그것은 10시쯤이었다. 요한은 그 시간과 장소를 기억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만나 준 시간과 장소를 기억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을 만날 때에 예수님께 무언가를 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예수님께로 이끌리는 것을 느낀다. 성령이 활동하시는 것을 느낀다. 아버지께서 이끄시지 않으면 아무도 아버지께 이를 수 없다. 우리가 예수님께 이끌릴 때에 조금이라도 우리를 이끄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고 그분의 사랑하는 성자께로 이끌기 위해서 우리를 어루만져 주신다.

 

아버지는 성령을 통해서 당신의 사랑하시는 성자를 계시해 주기를 애타게 기다리신다. 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신비스럽게 그분께 이끌린다. 이렇게 이끌린 제자들을 향해서 예수님이 돌아서서 물으신다. “무엇을 바라십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에 들끓고 있다. 다른 많은 일들이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다. 좋은 일도 있지만 나쁜 일도 있개인적인 응답을 바라신다. 자유로운 투신을 바라신다. 주님은 우리를 강제하시지 않는다. 부드러운 사랑으로 빛을 비추어 주면서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 물으신다. 우리 마음의 원의(願意)가 무엇입니까? 우리 마음의 기대가 무엇입니까? 너무 많은 것들이 마음다. 우리는 우리 마음이 그런 많은 것 때문에 영향을 받아서 휘둘린다는 것을 안다.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심리적으로 많은 일들이 우리를 끌어당긴다. “무엇을 원합니까?”라는 질문을 놓고 자신을 식별해야 한다. 우리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처음에는 비참하기도 하고 갈라지기도 하고 분주하기도 하지만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때로 우리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고백하자. 때때로 우리는 우리 힘으로 하려다가 포기하기도 하고 자신을 속이기도 한다. 우리의 좋은 계획을 수행하다가 그것에 사로잡혀서 주님이 우리의 구원이시라는 것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마태20:32)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들(소경)을 부르신 다음,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셨다.]

 

사랑 받던 제자 요한은 성령의 영감으로 아름다운 응답을 한다. “라삐, 묵고 계시는 데가 어딘지 알고 싶습니다” “랍비”를 인도에서는 “구루”라고 한다. 인도에서 보면 하느님과의 만남을 원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구루 곁을 지나간다. 선생님 저는 배우고 싶습니다. 참된 제자는 배우기를 원한다.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게 하고 우리 마음을 하느님께 향하여 성별 하기를 원한다. 구원의 목표에 이르기를 원한다.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지를 알고 싶어한다. 우리가 먼저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어떻게 말씀을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어디에 머무십니까?”라는 질문은 체험을 하고 싶다는 말이다. 말씀에 따라 사는 삶을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선생님 어디에 어떻게 누구랑 살고 계십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고 체험하고 싶어하는 원의는 근본적인 것이다.

 

우리가 받지 않으면 줄 수 없습니다. 이런 피정 때에 주님으로부터 받길 원하고 성령으로부터 배우기를 원한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와서 보라”는 따스한 초대의 말씀을 듣는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를 초대하여 이런 체험을 하게 하신다. 이것은 주님의 초대이고 이 초대가 우리의 확신이다. “와서 보라.” 우리도 요한과 같이 응답해 볼 수 있다. 단순하고 자발적으로 주저하지 않고 확신 갖고 주님께 응답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응답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데, 이 순종은 맹목적인 굴종이 아니고 자발적인 원의를 말한다.

 

우리는 성령께 “주님으로부터 배우고 싶은 원의를 주시”라고 청할 수 있다. 그러려면 내적 침묵이 필요하고 내적인 침묵을 할 때에 성령이 우리 원의를 깊게 만들 수 있다. 사랑 어린 주의력을 갖고 확신에 찬 귀 기울임을 통해서 좋은 것이 나올 수 있다. 마리아를 보십시오. 마리아는 모든 것을 마음에 품으시고 성령께 귀를 기울일 준비되어 있었고 성령께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겸손하게 따르려는 열렬한 자세를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열어 놓고 반쯤 열어 놓지 말고 활짝 열고 바라자. 주님은 활짝 열고 우리를 반기신다.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주님께 활짝 열고 그분을 기다리자.

 

[(묵시3:20) 들어라. 내가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

 

[(마태11: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11: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

 

여러분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스트레스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음을 알고 계시다. “나에게 오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나와 함께 평화롭게 살수 있는 것을 가르치겠다. 와서 보라. 걸으면서 방에서 성당에서 이런 성서 구절을 묵상할 수 있다.

 

묵상 방법을 제시합니다.

 

1. 먼저 성령이 우리를 예수님께 끌어들이시도록 우리를 성령께 맡긴다.

 

주님이 이끄시는 끌림을 조금이라도 느끼면 더욱 성령께 맡겨서 주님께 이끌도록 하십시오. 그것은 은총으로서 당신의 성자께로 우리를 점점 이끄시는 것이다.

 

2. 영적 태도이다. 단순하게 앉아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시다. 주님께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 침묵하며 귀를 기울이는 자세로 머문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조건 없이 그냥 활짝 열고 계십시오.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편안하게 모시고 주님과 친밀한 시간을 갖는다. 단순함 유순함과 너그러움으로 주님을 모신다.

 

3. 예수님 안에 쉰다. 나를 위해서 좋은 것이 마련되어 있다. 나와 내가 맡은 백성들을 위해서 좋은 것을 마련하고 계시다. 와서 보시고 와서 쉬시고 와서 맛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스며들도록 성모송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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