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교의신학ㅣ교부학

[교부] 사도교부: 깊은 영성으로 사도들 가르침 증거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42

[교부들의 가르침] 사도교부


깊은 영성으로 사도들 가르침 증거

 

 

사도교부 이전의 시대

 

사도교부들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초대교회의 발전과 복음전파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은 사도들은 주님께서 남겨주신 사명, 즉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켜 예수님을 믿게 하였다. 이렇게 되어 예루살렘 모교회(母敎會)가 탄생하였다. 이 최초의 그리스도교 신앙공동체는 사도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한 마음 한 몸이 되어 날마다 성전에 모여 기도드리고 집집마다 돌아가며 음식을 나누며 서로 가진 것을 나누었고, 신자수가 증가함에 따라 사도들의 협력자로 스테파노를 비롯한 7명의 부제들을 선출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놀라운 성장에 놀란 유대교의 박해로 스테파노가 순교하였고 사도 야고보가 순교하고 베드로사도가 감옥에 갇히는 일이 발생하자, 신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타 지역으로 옮겨가기 시작하였다. 그 후 마침내 예루살렘교회의 주교였던 차(次)야고보 사도의 순교로 예루살렘 교회는 그 중요성을 잃고 말았다. 예루살렘을 떠난 신자들과 사도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파하였고, 그 결과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도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부터 로마교회와 안티오키아 교회는 초대교회 안에 두 기둥 역할을 하였다.

 

 

사도교부들의 시대

 

사도들의 순교내지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 후계자들에게 교회의 지도책임이 맡겨지게 되었다. 로마교회는 베드로 다음으로 리누스, 아나클레투스, 클레멘스 주교가 신자들의 목자가 되었다. 안티오키아 교회는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에 이어, 이냐시우스가 주교가 되었다. 스미르나교회는 요한 사도의 제자였던 폴리카르푸스가 주교가 되었는데, 이들을 일컬어서 사도교부라고 부른다. ’사도교부’라는 이름은 교부학 용어로서 이와 같이 사도들 또는 그 직제자들의 입에서 직접 복음을 전해들은 것으로 간주되는 한 무리의 주교들을 총괄하여 일컫는 대명사이다(다른 말로는 속(屬)사도교부들이라고 불린다).

 

사도교부 시대는 사도들로부터 세워진 교회들이 뿌리를 내리는 시대로서, 사도교부들의 범위는 넓게는 신약성서 이후부터 호교교부의 등장 사이의 모든 초대교회 인물들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좁게는 가장 핵심을 이루는 아래 교부들에게 적용된다.

 

클레멘스(92~101재직)는 베드로 사도로부터 직접 안수를 받았다고 전해지며, 베드로사도, 리누스, 아나클레투스에 이어 로마의 제4대 주교가 되었고, 도미시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에 순교하여 성인이 된 분이다. 그가 95년경에 써서 보낸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편지’는 최초의 교부문헌으로 인정받고 있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우스(70~107재직)는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가 세운 안티오키아 교회의 제2대(혹은 3대) 주교로서 110년에 로마에서 맹수형을 받아 순교한 성인이다. 그는 로마로 압송되어가는 도중에 7편의 서간들을 썼다. 6편은 로마교회와 소아시아교회 공동체들에 보내는 것이었고, 나머지 한편은 폴리카르푸스 주교에게 보낸 것이다. 이냐시우스 주교의 사랑을 많이 받던 후배 폴리카르푸스(69~155재직)는 사도 요한에게서 직접 배웠고 그로부터 주교 임명을 받았고, 155년 로마에서 화형으로 장렬히 순교하였다. 그는 필립피 교회에 보낸 유일한 서간을 남겼다.

 

 

저서

 

사도들의 직접 후계자들인 사도교부들의 가르침과 주장은 사도들 다음으로 중요한 의미와 권위를 지닌다. 왜냐하면 그들은 순교와 깊은 영성으로 그들의 가르침을 증거하였기 때문이다. 사도교부들의 저서의 형태와 내용은 모두 신약성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특히 사도 바오로의 서간의 형태와 내용을 닮았다. 사도교부들의 서간들은 모두 희랍어로 쓰여진 서간문들이다. 신약성서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문헌들인 이 서간들의 목적은 학문적, 신학적 저술이라기보다는, 오로지 신자들의 믿음을 돈독케 하고 그들의 생활에 교훈을 주는 것만을 추구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구두로 강론을 하는 말을 듣는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으며, 처음부터 많은 신자들이 돌려가며 읽고 큰 감명을 받게 하였으므로, 오랜 시간 동안 초대교회 공동체 안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서간들을 받은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교회공동체에게까지도 교훈과 교육에 이바지한 문헌들이었다.

 

사도교부들의 서간들의 특징은 이후 시대의 문헌들과 비교해 볼 때 지극히 단순하며, 신자들에게 쉬운 말로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구원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고 또한 주님 재림의 희망을 가지고 살도록 격려하는데 있으므로 신앙의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또한 교회의 목자들에 대하여 신자들에게 순명할 것을 가르치며, 이단과 열교의 위험을 경고하였다. 그리고 또 한가지 특징은 그리스 철학이나 수사학 등의 세속문학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와는 반대로 성서의 정신이 다스리는 글들이었다. 특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초대교회의 신심과 영성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서간들이다. 이냐시우스의 순교영성이 그 좋은 예이다.

 

사도교부들의 문헌들은 또한 신약성서 다음으로, 교회의 가르침이 어떻게 발전되었으며, 교회의 구조와 관습 등의 발전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유일하고 직접적인 증인이며 원천역할을 하기 때문에 많은 신학자들이 그 중요성을 인정하고 관심꺼리로 삼았다. 사도교부들의 서간들은 초대교회 신자들의 정신을 보여주는 기념비가 되고 신앙을 전수하는 작업의 증인역할을 하기에 엄청난 가치가 있는 문헌이고 그 의미가 매우 크다. 그리하여 초대교회 공동체들은 사도교부들의 이 서간들을 소중히 여겨 잘 보존하여 전수하였고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었다. 특히 전례 때에 낭독하였고, 지역교회에서는 일부 사도교부들의 서간들을 성서목록에 까지도 넣었을 정도로 성령의 감도를 받은 저서로 생각하였다.

 

[가톨릭신문, 2002년 11월 24일, 장인산 신부(대전가톨릭대 교수)]



1,36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