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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신 김대건 · 최양업 전67: 조선 시대 성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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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10-24 ㅣ No.2145

[신 김대건 · 최양업 전] (67) 조선 시대 성물


“조선 교우들 위해 묵주나 묵주 만들 도구라도 보내주시면…”

 

 

- 최양업 신부는 교우촌을 방문할 때 교우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줄 묵주와 성물 등을 챙겨갔다. 사진 속 묵주는 기해박해 무명 순교자의 무덤에서 발굴한 묵주로 당시 조선 교회 신자들 가운데 꽤 많은 이들이 묵주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을 알려준다.

 

 

최양업 신부는 교우촌을 방문할 때 빈손으로 가지 않았다. 신자들에게 기쁨과 희망이 될 묵주와 성물을 형편이 되는 한 바리바리 싸들고 가 신자들에게 건넸다. 또 비신자에게 직접 전교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천주교에 관해 궁금해 찾아온 이에게 최 신부는 교리서와 기도서, 교리문답책을 선물했다. 비록 묵주를 제외한 성물은 그냥 주지 않고 구매를 원하는 신자들에 한해 비용을 받고 전달했지만, 교우들을 사랑하는 사제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정 깊은 행동이다.

 

 

성물 달라고 아우성치는 교우들

 

“한 가지 청을 드리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신부님께서 조선의 모든 교우에게 줄 만큼 묵주를 갖고 있지는 못하실 줄 잘 압니다. 신부님께서 주실 수 없는 것을 청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신부님께서 주실 마음이 있기만 하다면 주실 수 있는 것을 청합니다. 묵주를 견고하게 잘 만드는 도구를 뭐라고 부르는지 잘 모르지만, 하여간 묵주 만드는 집게를 구하실 수 있으면 하나나 여러 개를 보내주십시오. 그러면 신부님께서는 성모님께서 바치는 묵주를 조선 교우들에게 최대한으로 많이 선물하시는 셈이 되겠습니다. 또 할 수 있으면 묵주 만드는 금빛 나는 구리철사를 많이 보내주시면 매우 유용할 것입니다. 우리 조선 사람들은 붉은색 나는 구리철사를 만드는 것밖에 모릅니다.”(최양업 신부가 1857년 9월 15일 불무골에서 리브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이 청을 신부님께서 들어주신다면 우리 불쌍한 신자들에게 가장 큰 위안을 마련해 주시는 셈이 됩니다. 신자들은 성물을 갖고 싶어하는 욕망이 불같습니다. 상본이나 고상이나 성패를 장만하기 위해서는 아끼는 것이 없습니다. 성물을 장만하기 위해서는 생존에 꼭 필요한 전 재산을 파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선뜻 다 내놓습니다. 성물을 사기 위하여 신자들로부터 돈을 모으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그 돈을 보내드리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돈이 은화라면 쉽게 보내드릴 수 있겠지만, 조선에서는 은화라는 것이 별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만일 신부님께서 성물을 살 만한 여분의 돈이 있으시면, 신부님께서 얼마간의 크고 작은 십자고상과 성패와 상본 등을 사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상본은 예수님, 성모 마리아, 성 요셉, 성 요한 세례자, 사도들, 거룩한 학자들, 그 밖의 성인 호칭 기도에 나오는 성인 성녀들의 상본들이면 됩니다. 그 물건들은 튼튼하게 잘 만들어진 것이라야 합니다. 그 대금을 낼 수 있도록 금액을 알려주시면 나중에 기회가 닿는 대로 그 값을 보내드리겠습니다.”(최양업 신부가 1850년 10월 1일 도앙골에서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

 

“신부님께서 이제 제가 부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저에게 보내주신 많은 성물을 페롱 신부님이 갖고 오시다가 불행하게도 외인 거룻배에서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니 페롱 신부도 저도 가난뱅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성물들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교우들의 요구를 달랠 방도가 없습니다. 그런즉 신부님께서 우리 신자들의 아우성을 들어주시어 신부님의 마음에 드신다면 저에게 아래와 같은 성물들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 나라 교우들의 눈에 점잖게 보이며 될 수 있는 대로 얇은 종이에 색채 없이 잘 그린 조금 큰 상본을 보내주십시오. 성모님 상본을 많이 보내주시고 다른 성인들의 상본은 조금씩 보내주십시오. 요셉, 베드로, 바오로, 요한, 야고보, 프란치스코, 안나, 아가타, 막달레나, 바르바라, 루치아, 체칠리아, 아나스타시아 등의 상본을 약 100프랑어치 보내주십시오.… 성물 값은 베르뇌 주교님께 통지하십시오. 제가 주교님께 성물 값을 올리겠습니다.… 성해를 담은 함을 밀봉하기 위한 스페인 밀초 한 덩어리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최양업 신부가 1857년 9월 14일 불무골에서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

 

 

신자들에게 묵주와 성물을 선물로 주다

 

최양업 신부가 신자들에게 묵주를 비롯한 성물을 적극 나눠주고 예비 신자뿐 아니라 교회를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위험을 감수하고 한글 교리책과 기도서를 기꺼이 전해준 이유는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주님 사랑에 기초한 선교 열정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신앙의 자유가 중국인들이 누리는 만큼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날마다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집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닫고 있으면서도 이 진리를 추구할 방법을 찾지 못하여 자기들의 가엾은 처지에서 한숨짓고 있는 지극히 가련한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최양업 신부가 1851년 10월 15일 절골에서 르그르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

 

기대와 달리 성물은 최 신부가 원한 만큼은 오지 않은 듯하다. 르그레즈와 신부는 최 신부의 요구대로 여러 성물을 장만해 장수 신부와 페롱 신부 등 조선 선교사들에게 전달했지만 오는 길에 분실해 정작 단 하나도 최 신부가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양업 신부가 여러 해 계속해서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성물을 청하는 것으로 보아 직접 선교사들이 들고 오는 것이 아닌 다른 방편으로는 전달받은 듯하다. 당시 선교사들은 여전히 북경으로 가는 사신 행차에 밀사를 보내 편지와 물품을 반출 반입했고, 서해안의 메린도로 가서 중국 배에 실려온 물건을 건네 주고받았다.

 

“지난번에 신부님께 청구한 것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도착하면 다른 물건들을 또 청구하겠습니다.”(최양업 신부가 1855년 10월 8일 베론에서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

 

“신부님께서는 저에게 아쉬운 것이 있으면 청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전에 아쉬워서 청했던 것과 같은 것들을 다시 청합니다. 아쉬운 것 투성이어서 어느 것을 먼저 청해야 할지 모를 지경입니다. 무엇이든지 보내만 주시면 저에게는 다 필요하고 소용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보다 더 하느님의 자비가 저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저와 저의 가련한 조선 신자들을 신부님의 사랑이 넘치는 기도에 다시 의탁합니다.”(최양업 신부가 1856년 9월 13일 소리웃에서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

 

최양업 신부는 박해가 잦아들어 비교적 평온한 시기인 1858년 프랑스에 있는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오르간을 청하기도 했다. “이번에 또 한 가지 청하겠습니다. 서양 음악을 여러 가지 음향으로 소리가 잘 나게 연주할 수 있는 견고하게 만들어진 악기를 하나 보내주십시오. 여러 개의 건반이 달려 있는 약 30프랑짜리의 것으로 보내주십시오.”(최양업 신부가 1858년 10월 3일 오두재에서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

 

성물뿐 아니라 서양 물건들은 교우들뿐 아니라 박해자들도 탐을 내던 것들이었다. 베르뇌 주교와 다블뤼 주교를 체포했던 한 포졸은 리델 주교 거처를 급습해 제일 먼저 미사주와 성작, 성합, 십자고상, 촛대, 시계 등을 챙겼다. 미사주는 동료들과 나눠 마시고 압수한 성물과 서양 물건들은 몰래 빼내다가 값비싸게 팔았다. 또 메린도에서 선교사를 태우고 밀입국을 시키던 외교인 뱃사람들이 선교사들의 물품을 훔치거나 강탈해 팔기도 했다.

 

최양업 신부는 파리에 있는 스승 르그레즈와 신부와 홍콩 대표부장 리브와 신부에게 단 한 번도 사적인 부탁을 한 적이 없다. 있다면 신학생 시절 그가 1842년 마카오를 떠나 파보리트호를 타고 상해로 떠날 때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성 십자가 조각이나 성인의 유해를 달라고 청한 것뿐이다. 이것 또한 최 신부 개인보다 조선 교회를 위해서 간청한 것일 것이다.

 

최양업 신부는 교우촌을 방문할 때마다 자신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보호 아래로 달려들고 하느님의 뜻에 모든 것을 온전히 맡겼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최 신부가 교우들에게 묵주와 성물을 선물하고 전해준 것도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신앙 안에서 살 것을 권고하기 위함일 것이다. 최 신부는 힘들고 희망을 잃을 만큼 낙담할 때 이런 기도를 했다. “주님, 보소서. 저희의 비탄을 보시고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소서. 저희의 죄악에서 얼굴을 돌리시고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성심에 눈길을 돌리시어, 당신을 향하여 부르짖는 성인들의 기도를 들어주소서.”(최양업 신부가 1847년 9월 20일 상해에서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10월 23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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