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레지오ㅣ성모신심

길 위의 사람들: 묵주기도로 걷는 하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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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10-06 ㅣ No.832

[길 위의 사람들] 묵주기도로 걷는 하늘 여정

 

 

10월은 성모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부드럽게 스치는 바람을 맞기 좋은 성월입니다. 루르드에서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소녀 벨라뎃다는 성모님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쳤고, 1917년 5월13일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성모님께서는 목격 증인 루치아, 히야친타, 프란치스코에게 개인의 구원과 세계 평화를 위해 묵주기도를 자주 바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동반자 성모님

레지오 마리애 회합에서도 묵주기도를 바칠 때는 성모님께서 그 자리에 계시면서 은총을 내려 주시는 듯 엄숙하고 존경하는 마음가짐으로 소리를 내어 묵주기도를 바치라고 권고합니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묵주기도를 바칠 때는 세상을 대표하여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말씀하셨듯이 묵주기도는 모든 사람의 기도가 단 한 번의 기도 안에 합쳐서 바쳐져 성모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묵주기도 안에는 성모님께서 함께하신 우리 주님의 일생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고, 또한, 기도하는 사람의 사연이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 고통의 신비, 그리고 영광의 신비를 바치면 예수님의 전 생애를 묵상하게 되고, 이는 곧바로 관상으로 이어집니다. 묵주기도에는 고유의 운율이 있어서 기도하면서 그 내용에 깊이 젖어 들어가다 보면, 예수님의 구원 역사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평화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성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는 묵주기도를 ‘관상기도’라고 하셨나 봅니다.

성 비오 10세 교황님께서는 묵주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기도 가운데 묵주기도는 가장 아름답고 은총이 풍부하며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성모님을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묵주기도를 사랑하고 날마다 열심히 바치기 바랍니다.”(레지오 마리애 공인 교본, 165쪽)


장애를 가진 조카 위해 12년간 동고동락 헌신

저는 어릴 때부터 묵주기도 바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묵주기도를 드릴 때면 언제나 눈을 감고 이렇게 상상했습니다. 성모송을 시작하면서 붉은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돌층계를 올라갑니다. 그리고 정상에 계신 성모님께 장미 송이를 바치고 돌아와서 다시 갖고 올라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 묵상법으로 하는 단순한 기도는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녀원에 입회해서는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저만의 묵주기도 방법이 떠올라 다시 그렇게 기도를 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성모님과 함께 있음을 느끼게 되고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삶을 관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도움이신 어머니이시며, 예수님의 성장 과정에서, 그리고 메시아의 어머니가 되시는 과정에서 해산의 고통을 겪으신 십자가 길 위의 성모님과 함께 하는 삶은 고통 중에서도 희망을 품게 해줍니다. 가족은 고통을 함께 견딜 때 그 의미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준형이 이모, 세실리아 선생님은 제가 명동 예비자학교에서 교리를 가르치게 되면서 교리 수업 파트너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박력 있고, 밝고 유쾌한 세실리아 선생님을 보고 있으면 없던 힘도 생깁니다. 똑 부러지게 말하는 것에서 느낄 수 있는 약간의 냉정함은 잠시 넉넉한 속마음을 금방 알게 되어 함께 있고 싶어집니다. 양지만 있을 것 같은 세실리아 선생님의 뜻밖의 속내는 저를 뭉클하게 했습니다.

가족 사랑이 남다른 세실리아 선생님의 가족 구성원은 언제나 희노애락을 함께 나눴습니다. 공학도로 논문을 쓰느라 혼인도 미루고 연구 중이던 세실리아 선생님에게 먼저 결혼한 여동생의 임신 소식은 매우 큰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설레면서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는 가족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아기가 출산일보다 한 달 앞서 태어났습니다. 가족들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인큐베이터도 준비하고 아기를 기다렸습니다. 아기는 정상적으로 가족들 앞에 선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아기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호흡곤란을 겪었습니다.

보통 호흡이 멈추면 사람들에게는 뇌의 손상이 와서 신체의 어느 부분에 문제가 생깁니다. 준형이에게는 모든 신체 감각에 아주 조금씩 장애가 생겼습니다. 걸음을 걷는 것은 12년이 지난 지금도 어렵습니다. 세실리아 선생님은 이 과정을 동생과 동고동락하면서 다 받아 안았습니다. 자신의 혼인 시점도 놓쳤습니다. 준형이의 나이가 벌써 12살이니 세실리아 선생님의 나이도 40이 되어갑니다.

세실리아 선생님의 바람은 준형이가 최소의 장애만 갖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준형이에게 도움이 되는 병원은 어디든 데리고 다니고,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연령이 되었을 때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준형이에게 해주었습니다. 언젠가는 필리핀에 있는 치료사 선생님을 찾아가 한 달을 체류하면서 동생과 함께 있어 주었습니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는 새, 세실리아 선생님은 준형이의 좋은 말벗이 되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시각장애인 학교에 다니는 준형이의 언어구사력은 우수합니다.


묵주기도 바치며 성모님의 섬세한 사랑 체험

산부인과에 오래 있는 동안 세실리아 선생님은 다양한 사례를 만났습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기의 부모들이 종종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는 일들을 선택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 때도 있었습니다. 태생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부모들 중에는 아기의 장애를 받아들일 수 없어 자신의 안정된 삶을 위해 아기를 포기하거나 이혼을 결정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에게 전적으로 자신을 헌신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사람을 돌보고 키우는 일인 듯합니다. 한 생명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그 생명이 온전히 꽃피우기까지 쏟아붓는 정성만큼 아이들은 온전해지니 말입니다.

세실리아 선생님은 신자가 아니었는데,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누가 부르는 듯해서 성당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예비자 교리를 신청해서 교리를 받았습니다. 세실리아 선생님이 세례받던 날 이런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수고했다. 너의 수고를 내가 다 안다. 이제 너도 좀 살아야 하지 않겠니.” 이 말씀에 위안을 받으면서 쏟아지는 눈물을 흠뻑 흘렸습니다. 그 후 세실리아 선생님은 예비자 교리학교 봉사자가 되었습니다.

성당에 오면 바쁘게 움직였던 몸과 마음이 이완되어 마음도 평화로웠습니다. 교리 시간에 배운 묵주기도를 정성껏 바치면서 예수님의 동반자 성모님의 섬세한 사랑을 체험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준형이의 시력, 준형이의 언어능력, 준형이의 손놀림 등 준형이의 모든 감각을 살려내기 위해 불철주야 돌보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성모님을 닮은 것은 아닐까요.

세실리아 선생님의 손에는 늘 묵주가 있습니다. 오늘도 아낌없이 아들을 돌보는 동생과 모든 것을 지원하는 제부에게 힘이 되고자 종종걸음으로 준형이를 향해 발걸음을 뗍니다. 묵주기도를 정성껏 바치면서….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10월호, 이은주 마리 헬렌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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