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부활 6 주일-가해-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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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2-05-05 ㅣ No.357

부활 제 6 주일 (가해)

 

  사도행전 8,5-8.14-17     1베드로 3,15-18     요한 14,15-21

 2002. 5. 5.

 

오늘은 화창한 5월 ‘성모님 성월’의 첫 번째 주일입니다.  해마다 5월이면 늘 반복하는 이야기로 성모님 공경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성모님은 인간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가장 충실하고 완벽하게 따르신 분이기에 우리가 공경하는 것이고, 우리 역시도 그분이 보여주신 삶의 본보기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때가 우리가 지내는 화창한 계절입니다.

 

또한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는 여섯(6)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들으신 복음말씀도 지난 주일의 경우처럼, 예수님의 수난 사건이 있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사랑의 말씀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하겠습니다만, 다가올 미래를 아무런 걱정 없이 맞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그렇기는 합니다만, 우리가 걱정한다고 해서 그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방법도 많지 않습니다. 내게 다가올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지금 현실을 내가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하여 피하려고만 한다면 미래역시도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통이 제시하는 의문에 답하기 전에 고통을 제거한다면, 우리는 그 고통과 함께 있는 자아도 제거하는 것이다.” 이런 소리가 세상 안의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세상을 구원하려던 예수님의 뜻보다 나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과 하느님 아버지의 일치, 자신과 성령사이의 일치를 말씀하십니다. 수난이라는 목숨을 바쳐야 할  사건에서 도망치지 않고 기꺼운 마음과 자세로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자세에서 인류구원을 위한 모습은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피하고 도망치려고 하면 한없는 것이 인간의 약한 모습이고, 용기를 내어 부딪치면 능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어려움이요 고통입니다. 그래서 옛날의 어떤 성인은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 허락 하신다’고.

 

놀라운 기적을 보고, 그 기적의 힘에 눌려서 하느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도 신앙인이 되는 한 가지 방법일 수도 있지만, 권할 만한 방법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되는 신앙이라면 언제 어디서든지 또 도망칠 핑계와 이유를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삶의 자세를 바꾸는 것이 하느님의 힘을 내가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것이 하느님의 활기찬 능력인 성령이 나를 통하여 힘을 드러나도록 내가 허락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사람의 의지에 반대되는 일은 억지로 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의 힘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좋은 마음으로 드러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베드로 사도가 남기신 말씀처럼 ‘하느님을 전하기 위해 준비하고 사는 사람이며, 깨끗한 양심을 갖고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보다 앞서 모법을 보여준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고, 우리를 위하여 활동하려는 성령께 기꺼운 마음으로 자리를 내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삶은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도 그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것이 되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그것을 재빨리 알아듣고 하느님의 뜻이 나를 통해서도 이루어지기를 겸손하게 청하는 한 주간의 첫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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