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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천주교회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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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11-12 ㅣ No.232

중국 천주교회의 미래는?



지난 일 년 동안 연재를 통해 우리는 중국 천주교회의 실상과 그와 연계된 대내외적인 관계를 살펴보았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 중국 천주교회의 미래를 전망해 보고자 한다. 앞으로 중국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 것이고 그 속에서 중국 천주교회의 앞날은 어떻게 전망될 것인가? 그 변화를 예측하면 보편 교회는 중국 천주교회를 위해 필요한 로드맵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중국 선교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보편 교회의 많은 선교회들과 수도회들은 중국 선교를 염두에 두고 설립되었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 파견되어 온 선교사들이 지금 과연 중국 땅에서 제대로 복음사업을 하고 있는가? 십여 년을 중국교회에 몸담고 살아온 나의 경험과 관찰에 비추어보면 대답은 부정적이다. 중국의 13억 인구 중에 복음을 받아들인 경우는 개신교를 포함한다 하더라도 아직 2%가 안 된다. 온 세상에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하신 주님의 명령을 생각해 볼 때 그리스도인들이 중국 땅에서 수행해야 할 사명은 아직도 많다.

그래서 중국 천주교회의 미래를 전망해 보고자 하지만 그리 밝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여러 가지 난제들이 앞을 가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애국교회와 지하교회의 대립과 갈등이 고착화를 넘어 새로운 양상으로 악화되어 가고 있고, 신학교는 정상화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성소 급감으로 존폐 문제가 달려 있다. 중국 사제들은 정치적, 사회적 차원에서 자신의 신원과 위상의 붕괴에 직면해 있고, 평신도들은 타성과 소극적 신앙의 자세로 전반적으로 선교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정부의 종교 통제는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교회는 대 사회적 봉사와 역할을 수행할 수 없어 현대 중국 사회에서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천주교회의 개혁 개방 2세대 지도자들이 지닌 사고방식과 행동은 보편 교회와의 관계에 경직성을 가중시키면서 교황청과 더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다. 일부 애국회 소속 교회 지도자들이 중국 천주교회의 미래를 성공회 모델에서 찾아보고자 하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어 열교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염려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중국 사제들은 보편 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신앙과 교회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 천주교회의 전망은 모호하고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염려와 희망이 교차한다.

중국 천주교회의 전망을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자. 우선, 교회의 구조적 상황을 인식해 보자. 중국의 놀라운 경제 발전은 이제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지금 중국의 모든 문제는 전 세계의 문제와 직결된다. 정치, 군사, 경제, 문화의 영역뿐 아니라 교회의 차원도 예외일 수 없다. 이 모든 성과와 힘은 개혁 개방에서 나온 것이라고 중국 통치자들은 말한다. 그런데 중국의 개혁 개방은 종교에도 공평하게 적용되고 있는가? 지금 중국의 체제와 정책을 대변하는 한 마디 말이 있다. 타좌등향우전(打左燈向右轉)! 곧, “좌회전 깜빡이를 켜놓고 차는 우회전을 한다.”는 말로 중국의 지도부를 빗대어 말한다. 중국은 겉으로는 사회주의를 표방한다고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자본주의 쪽으로 가고 있다는 표현이다. “경제개방은 예스, 정치개혁은 노.” 이것이 중국 지도부의 결심이다. 그 “노” 안에는 중국의 통전부가 굳게 지키는 종교와 민족에 대한 통제와 통할이 포함되어 있다. 중국의 종교적 상황과 선교 전망이 불투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금의 중국 천주교회의 상태를 진단하자면, 한마디로 교회와 구성원 모두가 과도기의 진통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개혁 개방 35년이 지난 시점에서 교회의 지도자 세대가 교체되자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중국 천주교회의 현 상황을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단대(?代), 곧 ‘세대의 결손’이고, 다른 하나는 개혁 개방 제2세대들의 의식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상호 연결되어 있는데, 현 중국 천주교회의 많은 문제들이 여기서 파생되고 있는 진행형이다.

먼저, 단대의 문제를 살펴보자. 지금 중국 천주교회 사제들 대부분의 연령은 30~40대인데 비해 50~60대는 거의 없다. 1950~1982년의 30여 년간 이 시기는 중국 종교의 암흑기로서 성소도 없었고 당연히 서품도 없었는데, 그것이 지금 교회 안에서 단대라는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중국 천주교회는 평균 연령으로 보면 전 세계에서 가장 젊은 사제단으로 구성된 장점이 있지만 이점이 또한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 바로 한 세대의 결손 때문이다. 이 세대의 결손이야말로 중국 천주교회의 가장 큰 공백이요, 교회 구성원 간의 구조적 결함으로서 교회 내 현실적 관계에 장애를 유발시키고 있다.

건강한 유기체는 신진대사가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인간 사회 역시 유기체적 특성을 지니기에 세대는 교체되고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30여 년간 신진대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중국 천주교회는 지금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억지로 신진대사를 조정하려다 보니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단대로 발생한 성직자들의 질서 의식의 결여, 인정받지 못하는 교회 장상의 권위와 정통성, 교회와 구성원의 다양한 카리스마가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고 올바른 위치를 찾지 못하면서 중국교회는 내부적으로 많은 갈등과 불화로 표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제들은 연령과 경험이 층을 이루면서 함께 모여 사제단을 형성하는데, 연소자는 연장자에게서 교회의 질서를 배우고 익히며 성숙되어 간다. 그러나 중국 천주교회의 현황을 보면 교회 내 어른이 부재하고, 교계 질서가 형성되지 않아 권위가 부재하고 무질서한 상태이다. 지금 중국은 그야말로 개혁 개방 이후 교회 내 자리와 이권 쟁탈을 위한 춘추전국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나 다 교회 안에서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동상이몽 격이다.

지난 2007년 4월 20일 북경교구의 푸티에샨 주교님의 서거 후 1회 1단(애국회와 주교단)은 리우빠이니엔 선생이 일인 주도 하에 애국회의 모든 업무를 처리하여 왔다. 교회 내 수백만 명의 카리스마가 한 사람의 머리에서 걸러져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일인지하에 통할되던 중국 천주교회에 지난 2010년 12월 7~9일 제8차 중국천주교회전국대표대회가 불법적으로 열렸고, 역시 불법적으로 새 지도자들이 뽑혔다. 개혁 개방의 제1세대들의 막을 내리고 제2세대들의 새로운 1회 1단이 출범하였다. 그러나 급조된 상황에서 경험 부재의 개혁 개방 제2세대의 출범은 더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들은 정통성도 없고 영성도 없다. 사제단이 신자들에게서 지지를 받지 못하고, 누구하나 순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들은 보편 교회의 분위기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상황 파악에도 미숙하다. 출범한지 일 년도 안 돼 교황청과의 마찰이 불거졌고, 그 때문에 8명의 주교들이 파문되었다. 이에 대해 제2세대 지도자들은 교황청을 향해 반박 성명으로 맞서면서 점차 보편 교회에서 멀어져 가는 양상이다. 최근 상해교구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 곧 마다친(馬達欽) 주교의 서임 취소와 신학교 폐쇄, 사제단에 대한 보복성 인사이동이 단행되었다. 진루시엔 주교님의 서거 후 통전부는 상해교구의 종교적 주도권을 더 강력히 제압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중국교회가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에 대한 보편 교회의 관심과 상황 인식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중국의 선교와 토착화에 관한 문제를 생각해 보자. 마태오 리치가 처음 중국 선교를 시작할 때 승복을 입고 다가갔지만, 곧이어 유교의 사대부를 상징하는 유학자의 옷으로 갈아입게 된다. 그것은 처음에는 백성, 민중에게 다가가는 하층 선교를 지향하고자 한 의도였고, 두 번째는 통치자와 관리계급인 상층 선교를 염두에 둔 행동이었다. 어느 나라나 문화마다 통치 계급이 사용하는 문화 코드가 있고,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는 문화 코드가 달리 존재한다. 전자를 대전통(大傳?)이라 하고, 후자를 소전통(小傳?)이라 말하기도 한다. 중국의 경우에는 그 구분이 다른 어떤 문화보다 확연히 드러난다. 그것은 유교가 지니는 독특한 위치 때문이다. 유교가 통치자의 정통성을 제공하는 통치 원리가 된 뒤에는 중국 문화의 위치에서 한 번도 대전통적 위치를 잃어버린 적이 없다. 유교는 중국 문화의 ‘따꺼(大哥)’, 곧 큰 형님이었다. 여기에서 정(正)과 사(邪)의 구분이 생기게 된다. 대전통은 언제나 정(正)의 위치에서 통치자의 보호를 받은 반면, 소전통은 통치자의 눈에 벗어나면 언제든지 사교(邪敎)로 폄하되어 박해를 받고 통제되었다. 그래서 마태오 리치가 중국의 대전통을 토착화와 복음화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지난 2010년은 마태오 리치 서거 40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다. 사백 년이 지난 이 시대에 마태오 리치가 다시 온다면 토착화와 복음화를 위해 그는 중국 문화의 어떤 코드를 선택하게 될까? 지금 중국의 상황에서 대전통이란 공산당이 사용하는 문화 코드이다. 공산주의는 무신론을 전제로 한 유물사관으로서 종교를 근본적으로 배척한다. 적그리스도이다. 통치자들은 필요에 따라서 문혁기간에 유교를 배척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다시 유교를 이용하려고 든다. 그러나 공산당이 주도하는 유학은 본질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복음화와 토착화 작업은 대전통을 어떠한 자세로 대해야 할 것인가? 또 대전통과 비교하여 교회는 소전통인 불교와 도교, 민간신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전반적으로 보면 신중국인들의 의식 속에 불교와 도교는 비현실적인 종교, 일종의 미신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많다. 중국교회는 아직까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이해하거나 흡수하지 못해서 타종교와의 대화나 타종교의 보편적 구원 가능성 등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태이다. 그래서 중국의 성직자들이나 신자들은 매우 호교론적이고 보수적인 경향이 강해,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이 신학 연구나 복음의 현장에서 강하게 표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토착화나 복음화의 문제를 다루면서 이 문제를 비켜갈 수는 없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 시대를 직시하자면 지금 중국에는 대전통과 소전통에 속하지 않는 신문화(신전통)라는 새로운 주류가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가고 있다. 대전통이나 소전통과는 관계없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가치관과 논리에 좌우되는 신중국인들이 현재 중국인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교회는 신중국인을, 신전통을 어떻게 끌어안을 수 있는가? 교회가 이 불순한(?) 주류를 복음화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면 중국 복음화의 미래는 없다고 본다.

2012년 한 해 동안 중국의 여러 지역 교회와 신학교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최 50주년을 축하하는 행사를 열었지만 중국 천주교회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과 삶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특히 대도시 교회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트리엔트 공의회의 정신과 신앙적 표현이 지나칠 정도로 팽배한 것은 중국 천주교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제대로 수용하고 보급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아직도 라틴어 미사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옛 신앙 방식을 고집하는 노인 사제들이 적지 않고, 지하 교회의 실상은 가히 중세기적 교회관(배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방주교회)이 화석처럼 굳어져 있는 상태이다. 교회 구조에서도 중국교회는 세계의 그 어떤 지역 교회보다 더 심하게 ‘성직자 중심주의’를 표방하고 있어서 신자들의 역할과 활동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실정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제대로 배우고 익힐 기회가 거의 없었던 중국 사제들의 강론 내용도 교회의 긍정적 요소인 친교, 사랑, 대화, 민주, 인권 등의 요소보다도 부정적 요소인 천당과 지옥, 벌, 구마, 죄, 심판 등에 치중되고 있다. 이러한 교회의 태도와 위치는 날로 발전해 가는 현대 중국 사회의 문화성과 인문, 사상을 선도할 만한 역량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지금 중국 천주교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바로 신자들의 역할과 활동이 전개될 수 있는 신심 단체들이다. 사제들 스스로 교회 내의 풍부한 영적 활동과 신심 단체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없다 보니, 오로지 7성사 위주로 운영되는 교회 상황은 사목의 부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레지오마리애는 1930~40년대에 상해를 중심으로 급속히 일어난 교회의 활성화 운동이었지만 공산당에게 사교 조직으로 오인되어 심한 박해를 받았고, 그 후유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성모군(聖母軍)이라고 번역된 레지오마리애를, 군을 모방한 조직체로서 혁명적 요소가 있다고 판단하여 금지하고 있다.

그 이후로 보편 교회에서 진행되는 평신도들의 신심 활동, 성령 운동, 꾸르실료, 메리지 엔카운터 등등의 조직이 본당 내에서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교회에서 성직자들이 정치적 상황에 민감하게 노출되고 통제받는 상황에 비한다면 신자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다. 그러기에 중국 천주교회는 선교 방안의 구체적 방법으로 본당 공동체 내의 평신도 신심 단체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거기서 신자들의 신앙은 피동적인 미사 참석에서 벗어나 자발적이고 친교적이며 기쁨을 내포한 신앙을 체험할 수 있다. 복음 선교는 여기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보편 교회는 중국 천주교회의 존재와 전망에 대해 항상 주목하며, 시대적 상황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땅끝까지 제78호, 2013년 11+12월호, 김병수 대건 안드레아 신부(한국외방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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