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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에서 본 인간의 사회적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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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3 ㅣ No.475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에서 본 인간의 사회적 범위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립된 개체가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이 세상에 올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더욱이 스스로 성장되거나 교육되어질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인간은 그가 사는 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을 스스로 채울 수도 없을 뿐더러 게다가 살아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높은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존재도 되지 못한다. 인간은 단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한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인류 역사의 첫 순간에서부터 항상 어떤 사회적 집단과 연관되어 있다. 곧 처음에는 가정이라는 사회 단위에서 시작하여 서서히 씨족, 부족 등의 사회 단위와 관련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연결과 경향은 강한 자기 중심주의적 사고를 극복하는데서 가능하게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을 통해서 본 "인간의 사회성"이라는 개념은 인간이 자신의 선(善)을 위한 협력을 조건으로 하는 사회성이라는 지평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 우선적으로 우리 인간은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가정 안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구를 실현시킬 수 있다. 또한 인간은 협소하게는 문화의 공동체로서의 국가와 살아 움직이는 전통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이 주제를 통해 다루게 될 것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으며, 그러한 인간 사회성의 학교라고 할 수 있는 가정과 국가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에 대해서이다. 

 

 

1. 연대의 인간 

 

최근 몇 년간 사회적 협력은 눈에 띠게 사회 도처에서 여러 계층이나 정치 세력 등에 의해 제기되고 지지되고 있다. 비록 그러한 협력이 가끔은 제도적으로 변질되어 토론의 여지는 늘 남겨 놓고 있지만 과거와는 현저히 다른 양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협력이란 기본적으로 개인의 요구가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을 의미하며, 결국 공동선의 요구의 범위 안에 머물 수밖에 없다. 즉 각 개인이 다양하게 요구하는 모든 것을 다 수용하기란 불가능하다.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사회 생활 안에서의 인간과,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인간이다. 

 

1.1. 인간의 사회성 

 

1.1.1. 본성적 사회성 

 

하느님의 창조의지에 상응하는 본성적 사회성 안에서 인간은 한 사람의 자율적 주체이며, 동시에 지성적이며 자유로운 존재이다. 모든 개인은 각 가정의 살아있는 구성원이고, 개인과 사회의 목적에 따라서 여러 형태의 활동을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실현시키도록 불리움을 받은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성이란 개인성의 한 범주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없이는 생존할 수도, 자신의 특성을 찾아낼 수도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란 책임감 있고 능동적인 협력 관계를 통하여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 자신의 소명을 실현시키는 각 개인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인간의 본성적인 사회성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는 인간으로 하여금 공동선을 위하여 자신의 동료들과 서로 협력하고 손을 잡도록 이끄는 인간 본성 자체에 의한 내적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적 사회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이러한 움직임은 인간이 지상에서 추구하고 노력하는 객관적 상황을 고려할 때 쉽게 설명되어진다. 

 

인간에게는 여타의 동물들에게서는 찾아보지 못하거나 혹은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영적 능력, 곧 서로 친교를 이루고, 스스로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은 주목할 만 하다. 이러한 능력들은 인간 존재를 통해서 확인 가능한 것이며, 인간 내면 의식의 교류를 통해 상호 교환 가능하며, 공동선을 향한 인간 상호간의 공동 지향으로써 가능하다. 결국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능력들은 인간 자신의 노력과 자연의 협력을 통하여 집단이나 조직, 관계 등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참된 의미에서의 사회란 의식적인 내적 일치에 의해 기초된 올바른 이성 안에서 형성된다. 

 

인간은 문화 인류학과 민족학이 입증하듯이 자연적으로 시민 사회의 역사를 이끌어나가고 있으며, 또 이끌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 행위의 분석을 통해 이러한 사실은 여실히 드러나고 있으며, 곧 인간 존재는 본성적으로 타인과의 통합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진리와 사랑 안에서 자신을 내어주고 대화하며, 자신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1.2. 인간의 우위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79년 10월 국제연합 총회에서 행한 연설은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 활동들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지향하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 존재는 사실상 한 시민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이러한 관계 안에서 인간은 국내외적인 모든 정치 활동의 이유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는 '인간으로부터' 제기되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러한 활동은 '인간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또한 '인간을 위해서' 행해집니다. 만일 이러한 활동이 기본적인 관계와 본래적 목적과 유리되어 있다면, 또는 명백하게 그 활동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라면 그러한 활동 자체의 상당한 근거는 상실되고마는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언급에는 인간을 위한 확실한 신뢰와 열정이 담겨져 있다. 교황은 매우 철저하고도 귀중한 인본주의적 전망과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결정적인 인간학적 가르침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교황의 시각은 본질적으로 현실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전망을 더욱 예리하게 꿰뚫는다고 볼 수 있다. 

 

교황의 이 연설은 더 근원적으로는 인간 존엄성의 뿌리를 제공하고 인간의 자유와 침해당할 수 없는 권리들을 고무시키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적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 존재의 삶은 그가 살고 있는 사회를 위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제도나 사상들에서 보여지는 각각의 인간적 가치를 존중하면서 행동할 의무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렇듯이 요한 바오로 2세는 인격으로서의 인간을 사회의 정점이며 중심 주체로 보고 있다. 사회의 모든 제도나 조직, 기능들을 통해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좀 더 완전한 행복으로 이끌어주고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키도록 도와주는 경제적 및 문화적, 영성적 제 조건을 수용하면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그 목표로 삼는 존재인 것이다. 

 

1.1.3. 사회성 교육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들에 대한 인식은 사회 구성원의 측면에서는, 비록 적대적인 관계라고 하더라도, 상호 존경과 사랑의 의무를 포함하며, 더 나아가서는 사회 생활에의 능동적인 참여와 개인주의 성향의 극복까지도 요구한다. 이러한 목표 때문에 사회의 각 구성원에게 있어서 사회성에 대한 교육은 필수적이다. 

 

인간을 교육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생물학적인 존재를 교육한다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생물학적 본성과 사회적 밀착을 본성적으로 초월하는 인간 존재를 교육한다는 의미이다. "교육이 모든 인간적 의미를 상실시키지 않고 국가에 의해서 방해받지 않으면서 가치의 등급을 가르쳐주는 궁극적 실재 혹은 존재론적 차원과 관련될 때 인간은 지성적 존재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혼란스러움, 아니 그보다는 자연적 형태의 문화-과학적인 예외적인 분석에서 보여지는 비현실성을 극복하며 인간을 구체적인 현실에서 직시한다. 교황은 회칙 {인간의 구원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릇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자기 존재의 즉각적이고 부분적이며 때로는 피상적이고 심지어 가공적이기까지한 척도와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있는 그대로 철저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불안정과 불확실, 자신의 약함과 죄 많음, 자신의 삶과 죽음을 그대로 안고 그리스도께 다가가지 않으면 안된다. 말하자면 자신의 존재 전체로 그리스도께 몰입하여야 한다. 자기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강생과 구속의 실재 전부를 자기 것으로 삼고 거기에 동화하여야 한다." "그리스도는 유일무이하고 일회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신비 속으로 관통해 들어가셨고 인간의 '마음' 속에 들어가신 분이시다." 

 

인간의 마음과 신비 속으로 돌아가라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이러한 호소는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세속화, 이념화, 정치화 및 제도화된 수많은 젊은이들을 겨냥한다. 사실상 많은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삶 주변을 돌아보며 이상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러는 가운데 마음의 느낌과 양심을 형성해 나간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인간 존재는 자신 안에 위대함과 존엄성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가치들을 항상 지니는 존재이며, 이러한 인간 이해는 인간 자신의 전체성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렇지만 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가장 특성적인 가치는 결국 사랑이다. 왜냐하면 요한 바오로 2세가 언급하듯이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사실상 교육적 행위로서 평가해볼 때 가장 깊이 있고도 효과적인 행위이다. 그리스도의 모범적인 삶을 통해서 볼 때, 사랑이야말로 인간 존엄성의 조건으로서 인간의 참된 자유를 실현시킬 수 있는 전형적인 행위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진리에 기초를 둔 자유를 주시는 분, 인간의 영혼과 마음과 양심에서 이 자유를 빼앗고 위축시키고 뿌리째 뽑아버리는 사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리스도의 이러한 모범으로써 인간은 다시 한 번 집단적인 행위에 질질 끌려가는 이합집산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 곧 사회적 교육의 관점에서 인격적 양심으로써 추구하는 공동체의 가치 실현을 기초로 하여 주위와 관계를 갖는 존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안에서 인간은 자신을 꾸준히 성장시켜나갈 역할을 갖는다. 이러한 역할에 대해 각 개인의 영역은 자신의 인격적 가치가 침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동체의 영역보다는 하위이며, 따라서 공동체를 이루게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각 인격체가 갖는 특성으로서의 개인성은 참된 의미의 사회적 교육 안에서 그 가치를 갖게되며 하나의 덕으로 자리 잡는다: "개인적 품위, 협동 혹은 연대의 의미, 존중, 우애, 선, 사랑 등은 가정적 삶을 지탱시키는 교육의 관점에서 절대적이며, 따라서 이는 사회적 교육을 위해서도 절대적이다." 

 

"교육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적 가치들 - 물질적 재화뿐만 아니라 문화 유산까지도 포함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가치는 종교적 유산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 에 접근하기 용이하도록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모든이에게 모든 가치들을 실현시키도록 도와주는 조건들이 사회 안에서 충족되지 않는 한 사회의 평화라든가 사회의 미래는 그리 밝지 못할 것이다." 

 

1.2. 사회생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에 관련하여서 자주 사용되는 개인주의와 집산주의의 반대 개념들을 살펴 볼 때 사회생활을 지탱해주는 매우 중요한 세 가지 원리들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서 강조된다. 이 원리들은 자연적으로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며,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곧 이 원리들이란 1) 연대성의 원리, 2) 공동선의 원리, 3) 보조성의 원리이다. 

 

이 세 원리들은 사회 안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에게 해당되는 가르침으로서 요한 바오로 2세의 대 사회 가르침에 전반적으로 적용되고 있으며, 이미 지난 100여년 간의 가톨릭 사회교리의 핵심적 가르침이다. 

 

1.2.1. 연대성 

 

연대성의 원리는 사회질서를 위한 핵심적 원리이다. 사실상 사회생활에 참여하는 개인 및 집단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여러 가지 긴장과 반목이 있기 마련이며, 그러한 긴장이나 투쟁이 심화될 때에는 결국 함께 산다는 것이 불가능해지며, 사회적 퇴보를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사회생활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원리는 개인들 및 계층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투쟁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점과, 항상 사회 협력에 의한 공동선을 지향할 의무가 부과된다. 공동선이란 객관적 공동체성을 지향하는 자연적 본성에 예속되는 인간들의 기본적인 연대성을 그 기초로 한다. 

 

인간 사회의 연대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조명은 사회의 이러한 요구들을 더 튼튼하게 지탱해주고 있다. 각 개인들, 가정들, 단체들 그리고 한 국가라는 범위나 민족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다수집단과 소수집단 사이의 연대성이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개념의 핵심 가치이며, 그리스도교 사회교리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연대야말로 공동체적 의무와 목표를 가지는 인간 공동체의 환경 안에서 모든이의 일치와 형제애를 원하신 하느님의 의도에 부합하는 인간적 본성 및 경향들의 심오한 실재를 재조명해주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 및 사회 질서의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이 원리는 전체 인류에게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해 줄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 바오로 6세가 회칙 {민족들의 발전}에서 부르짖는 "고뇌에 찬 절규"를 회칙 {사회적 관심}에서 다시 반복한다. 연대란 평화를 위해 필요한 길을 밝혀주지만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특별히 개발도상에 있는 많은 국가에서만이 아닌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의, 기아와 소외에 대한 사회적 극복과 발전을 도모하는 데 없어서는 안된다고 요한 바오로 2세는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노동하는 인간}에서도 노동자들 사이에서의, 그리고 노동자들이 함께 하는 연대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세계 도처에서, 여러 나라들 안에서,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 안에서 사회정의를 구현시키려면 '노동자들의,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항상 새로운 연대 운동'이 필요하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이러한 언급은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의 연대 운동이 그리스도교적 시각 안에서 국제적인 차원으로 언급되면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곧 한 국가 내에서, 또한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하여 더 올바른 사회정의의 구현을 위하여 노동의 조건들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 자체의 변화까지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황은 계속해서 강조한다: "노동의 주체에 대한 사회적 지위 격하,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 그리고 빈곤과 기아 지역의 증가는 이러한 연대가 현실적으로 마땅히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교회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태도를 분명히 한다. 교회는 이를 자신의 사명이며 봉사요 그리스도께 대한 충실성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1.2.2. 공동선 

 

사회생활의 목표 및 근거는 인간의 통합적 완성이라는 요구에 부응해야만 하고, 사회생활을 통해 발전시켜나가는 개인성의 모든 범위를 고려해야만 하는 공동선이다. 공동선의 내용과 범위는 인간의 존엄성, 인권 그리고 발전의 결과로부터 제공되는 가능성의 요구에 따라 나타나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조건들에 의해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렇지만 공동선은 각 개인과 집단들에게 봉사하되 사회의 역동적 움직임을 통하여 변화와 의식 개혁을 주도함으로 일정한 사회질서를 흐트리지 않으며 구체화되어 드러나는 경향을 지닌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인간들의 자연적 공동체와 그들 삶의 진리를 통해서 드러나는 일종의 정의 질서에 대해 언급한다. 곧 사회정의의 명령이 사회질서의 원리이며 사회활동의 원동력이 되며, 또한 이 명령은 "기본적인 요구는 사회가 정의로워야 한다"는 공동선의 내적 힘 위에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공동선은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의미를 갖는 것이어야 하며, 또한 공동선은 개인들의 공동체, 각 가정들 전체의 선을 지향해야 한다. 공동선의 내용 중에서 그 어떤 것도, 각 개인에서부터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통용되는 덕으로 사회정의의 질서를 벗어나서는 안된다. 공동선은 각각의 구성원이 전체의 삶에 참여하는 한 민족의 선을 지향하며, 그 힘은 순수하게 정의를 실천하는데서 드러나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렇게 말한다: "정의는 공동선의 이름이다." 

 

1.2.3. 보조성 

 

공동선의 시각에서 볼 때 사회는 보조성의 원리에 입각한 각 개인과 집단들의 공동적 협력을 통해 구성된다. 곧 사회가 지향하는 목표를 위해 상위 집단은 중간 집단들의 자율적인 활동을 존중하면서 상위 집단이 추구하는 공동선을 위해 봉사해야하는 것은 물론 중간 집단 혹은 하위 집단이 필요로하는 것을 위해 도움과 보호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 보조성의 원리의 요점이다. 

 

사회적 균형은 바로 이러한 원리가 지켜질 때 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원리는 근원적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의지를 기초로 하는 인권 위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조성의 원리와 관련하여 요한 바오로 2세는 '사회애'를 언급하는 데 그 이유는 인류 역사는 "아무도 방관할 수 없는 대 극적 사건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서 최대의 이익을 올리려고 애쓰는 이들이나, 다른 편에서 손해를 보고 상해를 입으면서 그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이들이 늘 인간"이라는 것이다. 교황은 계속해서 이 원리의 근본 정신을 마태오 복음을 인용하면서 강조하며, 이 시대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인류의 책임에 대해 언급한다: "마태오 복음에 실린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거한 최후심판의 장면은 ... 인간의 역사에 언제나 적용되어야 한다. 인간 행위를 재는 척도로 삼아야 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양심을 성찰하는 데 근본 개요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독립 생활에 눈뜨기 시작한 신생 국가들과 민족들에게 빵과 문화적 원조를 베푸는 대신에 때로는 넘칠 정도로 무력 충돌과 전쟁에 쓰이는 현대 무기와 파괴 수단들을 제공하는 사실을 상기할 때에 위의 말씀은 더욱 강력한 경고를 띠게 된다." 

 

 

2. 가정 

 

가정이라는 주제는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들 중에서 가장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이 주제에 대한 가르침의 양도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교황의 사도적 권고인 {가정공동체}와 사회와 관련되어 나타나는 요한 바오로 2세의 가정에 대한 몇 가지 가르침에 제한하여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는 요한 바오로 2세가 가정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전반적인 기초에 대해서이며, 두 번째로는 사회적 범주로서의 가정의 몇 가지 기본적 개념을 분석하고, 마지막으로는 가정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이다. 

 

2.1. 가정의 개념과 성사성 

 

가정의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하기 전에 우선 가정의 신학적 관점과 성사적 기초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질문은 다음과 같이 아주 단순하게 던져질 수 있다: "가톨릭 사회교리의 내용 안에 왜 가정이라는 주제가 포함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가정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로 하여금 선포하고 보호하라고 맡기신 내용이다. 곧 그 내용은 인간을 당신의 모습에 따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생명과 사랑으로써 창조하셨으며,(창세 1,26-28; 2,18-24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구속 사업을 통하여 교회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었으며, 또한 사랑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위격적 관계를 드러내주는 것처럼 가정이 구성되며, 부부가 결합된다는 것이 교회가 가르치고 있는 '새로운 원리'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가정에 관해 매우 탁월한 신학적 시각을 갖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남자와 여자에게 이미 복음화의 사명을 맡기셨고, 이에 교회는 언제나 부부의 진실된 사랑과 선(善) - 특별히 가정의 선(善) - 그리고 충만한 인간 사랑으로써 부부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한다는 점을 확신한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권고 {가정공동체}의 서론 부분을 읽어보자: "역사의 이 시점에서 가정은 그것을 파괴하거나 혹은 어떤 모양으로 변태시키려는 다양한 세력의 표적이 되고 있으며, 교회는 사회와 교회의 안녕이 바로 건전한 가정과 밀접히 직결되어 있음을 의식하기 때문에, 결혼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할 사명을 절감하고 있다. 교회는 또한 결혼과 가정의 활력과 인간적이며 그리스도적인 발전을 확실하게 하고 사회와 하느님 백성의 쇄신에 기여하고자 한다." 

 

가정이 교회론적 기초를 공유한다는 신학적 해설은 교회의 모든 사회교리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성사적 기초를 이해함으로써 가능하기도 하지만 특별히 가정의 범위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고유한 적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 신자 가정의 고유한 성사적 기초는 {가정공동체}에서 명확하게 언급되고 있다: "가정 사목의 분야에서는, 결혼 부부와 그리스도인 가정이 혼인성사에서 받은 은혜로 인해서 가지게 된 사명의 고유한 위치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 사명은 교회의 건설에, 하느님의 나라를 역사 안에 설립하는 데에 봉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 그리스도께 대한 고분고분한 순종의 행위로서 요청된다. 그리스도가 바로 영세자들의 결혼을 성사의 지위로 끌어올리실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 결혼 부부에게 사도로서의 특별 사명을 부여하시고, 그들을 당신의 포도밭에서, 특히 가정 분야에서 일할 일꾼으로 보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신자 가정의 고유한 성사적 기초에 관해서는 다양한 신학적 시각을 가질 수 있는데 몇 가지만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1) 성사적 기초는 그리스도인 부모와 배우자들의 평신도 사도직의 필요성과 그 정당성에 대한 근거를 마련해 준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평신도 사도직이란 단순하게 외적으로 어떤 제도적 장치가 아니다. 그렇지만 혼인성사가 그들에게 내적 힘을 부여하고 있듯이 이 사도직은 그리스도인 부모와 배우자들 자신들과 내적으로 연결되어 결코 분리될 수 없다. 

 

2)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는 혼인성사가 부부생활과 가정생활에 부여하고 있는 고유한 특은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가정공동체}는 이 점에 대해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교회가 행사하는 식별이란 결혼과 가정에 대한 진리 전체와 온전한 존엄성이 보존되고 실현되도록 하나의 정향(定向)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식별은 성령이 모든 신자에게 주는 선물인 신앙심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고로, 다양한 은혜와 특은에 따른 교회 전체의 활동이다. 각종 은혜와 특은들은 각자의 적절한 책임에 따라서 하느님 말씀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와 실현을 위하여 공동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3) 혼인성사가 하나의 선물이며 동시에 과제이며, 나아가 구원 사명이 이 혼인성사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이는 분명 은총이며, 동시에 책임이 따르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 신자 부모와 배우자들이 가지는 평신도 사도직을 위한 기본은 혼인성사의 은총이며, 부부 상호간의 협력과 노력은 혼인성사의 은총을 더욱 큰 결실을 맺게 해 준다. {가정공동체}는 이러한 측면을 잘 언급해준다 : "그리스도인 남편과 아내는, 혼인성사의 은혜가 성생활을 포함한 결혼생활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인식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성령의 은혜는, 남편과 아내들이 받아들이고 응답하기만 하면, 그들을 도와서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의 특유하고 결실 많은 사랑의 징표답게 인간의 성(性)을 살게 할 것이다." 

 

2.2. 가정의 기초적 내용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가르치는 그리스도교 인본주의 안에서 가정의 본성적 내용은 창조주의 의지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이에 대해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정이 자신의 됨됨이뿐 아니라 역사적 활동의 내재적 진리에 부합하게 자기 인식과 자기 실현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하느님의 창조 행위의 '시작'에로 돌아가야 한다. 가정은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부부생활과 부부애로 깊이 맺어진 공동체'로서 설립되었기 때문에, 본연의 됨됨이에 더욱 가까운 것, 즉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가 될 사명이 있으며, 창조되고 구원된 모든 것이 그러하듯, 하느님의 나라 안에서 완성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정의 본질과 역할은 결국에 가서 사랑으로 규정된다고 말해야 한다." 

 

곧 가정의 자연적 본성은 다음의 3가지 핵심적 내용을 포함한다: 사랑은 본질이며, 생명은 사랑의 열매이자 표지이며, 가정공동체는 이러한 사랑이 실현되는 장소이다. 

 

2.2.1. 사랑 

 

사랑은 가정의 본질 자체를 논하는데 있어서는 결코 빠질 수 없는 본질적인 요소이다. 계약은 부부 사이의 관계를 항상 유지시키도록 돕지만 사실상 부부 사이의 계약은 두 의지의 일치일 뿐만 아니라 '사랑'의 명령이라는 더 상위의 명령을 따르도록 하는 계약이다. 이 명령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며, 부부가 서로에 대한 의무를 지게되는 혼인성사를 통해서 하느님께 드리는 의무가 된다. 이것이 바로 부부 인연의 불가해소성의 원리를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조명해주고 더 높은 차원에로 끌어 올려주는 것이다. 이 원리는 단순한 인간적 사랑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혼인성사를 통해서 신적 사랑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인간적 사랑을 더욱 견고케 해주는 진리와도 같고, 배우자들 상호간의 성사적 의무는 그 자체로 그리스도께 대한 의무를 동반하는 것이다. 혼인성사로부터 발해진 계약은 곧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 사이의 계약 안에서 구체적인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계시의 빛만이 고유한 의미에서 가정의 자연적 본성을 비추어 주는데, 곧 가정을 이루게 하는 가장 기초적 본성이란 신적 사랑으로부터 드러나는 배우자 상호간의 사랑인 것이다. 이 사랑은 혼인 안에서 영육의 통합체로서의 인간의 이중적 범위를 잘 설명해준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인간은 육화된 영, 즉 육체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영혼이요 불멸의 영을 부여받은 육체이기에 통일된 전체로서 사랑할 소명을 받았다. 사랑은 인간의 육체를 포함하고 육체는 정신적 사랑의 참여자가 되었다." 교황의 이러한 시각은 부부의 성생활에 대한 교황 자신의 풍성한 가르침의 기초가 되고 있으며, {가정공동체}에서 잘 언급되고 있다: "사랑은 인간의 육체를 포함하고 육체는 정신적 사랑의 참여자가 되었다... 그 결과로, 남자와 여자가 부부에게만 국한된 정당한 행동을 통하여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성(性)은, 결코 순전히 생물학적인 것만은 아니고 인간의 가장 깊은 존재와 관련된다. 성은 남자와 여자가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사랑의 일부일 경우에만 진정으로 인간적이다." 

 

부부 사랑과 가정에서의 사랑을 통해 배우자 상호간의 관계와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다양한 관계까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공동체}는 이러한 측면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말해주고 있다: "일치와 나눔의 체험은 가정의 일상생활을 성격 지어야 하고 사회에 대한 가정의 일차적이고 기본적인 기여를 대표한다. 가정공동체의 성원들 사이의 관계는 '거저 줌'의 법칙을 따른다. 이 거저 줌(Free Giving)은 각자의 인간적 존엄성을 가치의 유일한 기반으로서 존중하고 육성할 뿐 아니라, 진심으로 받아들임, 만남과 대화, 이해를 따지지 않는 협조 자세, 관대한 봉사, 깊은 유대의 형태로 나타난다." 

 

계속해서 요한 바오로 2세는 가정이 지니고 있는 고유하고도 거대한 사회적 잠재력을 언급하는데, 곧 가정도 예외 없이 효율적인 측면에서나 기능적인 측면에서 관계를 만들어 가는 하나의 기본 사회이며, 사회 자체를 인간화시키는 중요한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가정은 사회를 인간화시키고 인격화하기 위한 가정 효과적인 수단이고 원초적인 장소이다. 가정은 특히 미덕과 가치를 보호하고 전수함으로써 인생을 진정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세계 건설에 창조적 기여를 하는 것이다...... 가정은 여러 세대가 모여 보다 깊은 예지를 얻고 개인의 권리를 사회생활의 다른 요청과 조화시키기 위하여 서로 협력하는 곳이다." 비록 오늘날의 현실에서 보여지는 가정의 모습이 "점점 더 비인격적이고 규격화되고 비인간적인 사회, 그리고 많은 부정적 형태의 도피주의 -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폭력주의 등 -를 산출함으로써 비인간화시키는 사회"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현실이지만 가정은 "아직도 인간을 비정상에서 이끌어내는 거대한 힘을 소유하며 방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의식하게 하고, 깊은 인간성으로써 인간을 풍요롭게 하며 독특한 방법으로 인간을 사회의 조직 안에 안치시키는"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가정 안에서의 부부의 사랑과 그 가정이 사회와 갖게되는 관계에 대해 말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말하고 있는 사랑이란 연인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곧 개인적 감정에 치우치는 감성적 사랑의 영역은 결코 아니다. 사랑은 부부 관계와 그들 자신의 가정 안에서의 소명을 떠받치고 있는 존재론적 진리 안에 자리 잡는다. 

 

2.2.2. 생명 

 

요한 바오로 2세는 "가정의 기본 임무는 생명에 봉사하는 것, 창조주의 첫 축복을 역사 안에서 실현하는 것, 즉 출산을 통해서 하느님 모상을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주저 없이 단언한다. 

 

부부애의 열매이며 표지인 인간적 출산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은 최근 출산과 관련한 새로운 기술들이 속속 발전됨으로써 새로운 문제점들을 야기시키고 있다. 특히 체외수정의 분야에서는 부부애와는 전혀 상관없이 마치 공장에서 물건이 생산되듯이 의료기술이 인간 출산에 중요한 한 몫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은 줄곧 생명의 시초에서부터 인간성을 강조한다. 즉 부모로부터 태어나는 아기나 그 부모의 인간적 품위는 당연히 존중되어야 하며, 이는 당연히 경제적 및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과학기술의 모험을 견제하고 방어해야하는 사회에 그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 요한 바오로 2세는 사회의 개혁을 위한 시급한 과제는 인간 생명의 근본적 의미와 그 기본적 가치들을 되찾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 특별히 요구되는 것은, 배우자들 상호간의 사랑은 하느님 자신의 사랑과 생명의 신비에 고유한 방법으로 참여하는 것이며, 교회는 혼인의 고상한 품위와 인간 생명의 전달이라는 중대한 책임감을 보호하고 방어할 특수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하는 일이다. 

 

{가정공동체}는 이렇게 언급한다: "교회는 인간 생명이 나약하고 고통을 당할지라도 언제나 선하신 하느님의 훌륭한 선물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세계 위에 그늘을 지게하는 염세주의와 이기주의에 대항해서 교회는 생명을 지지한다. 교회는 개개인의 생명에서 그리스도 자신인 '그렇다'와 '아멘'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세계를 괴롭히며 가해하고 있는 '아니다'에 반해서 교회는 '그렇다'라고 대답하며, 생명에 대하여 해악과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로부터 인간과 세계를 보호한다." 

 

2.2.3. 교육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출산이 생명의 선물이라면 교육은 생명을 지탱해주는 선물이다. 이미 성 토마스는 인간을 인간으로써 완전하게 형성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이 절대적이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렇게 말한다: "교육에 대한 부모의 권리와 의무는 인간 생명의 전달과 직결되는 것이므로 본질적인 것이다. 부모의 교육 권리와 의무는 부모와 자녀간의 특유한 사랑의 관계 때문에, 타인들의 교육 역할과 비교해 볼 때, 본래적이고 일차적이다. 그것은 대치되거나 양도될 수도 없는 것이므로, 타인이 완전히 위임받거나 빼앗을 수도 없다." 

 

교황의 이러한 언급은 단순히 권리의 규정을 말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자연적 질서에 관한 권위 있는 말씀으로 알아들어야 할 것이며, 더욱이 이러한 권리는 이 지상의 모든 국가가 이미 국민들의 기본적인 권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미 {세계 인권 선언문}의 정신은 각 개인의 권리들 중에서 교육에 관한 권리를 강조하고 있다. 곧 부모들에게는 그들의 주관적인 권리보다도 선행하는 것이 교육이며, 이는 자녀들을 부모 자신들과 일치시키는 연결고리로서의 객관적 권리인 것이다. 이는 부모들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서 부모들이 자녀들과, 또한 자녀들을 부모들과 일치시키는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교육에 관한 모든 의무들과 권리들은 바로 이러한 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이 관계는 또한 정의와 사랑으로 떠 받쳐진다. 

 

건전한 사회는 바로 이러한 기본적인 관계를 기초로 하여 모든 교육 제도가 발전되고 성숙된다. 오늘날 우리는 교육과 관련된 이러한 올바른 정신을 교회의 사목 안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특별히 부모들의 올바른 의식을 통해 강화시키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가정이야말로 사회 생활의 참된 요람이며, 공동체를 이루게하는 가장 기초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참된 교육을 위한 가정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가정공동체}의 문장을 옮겨본다: "개인주의와 이기심의 극심한 충돌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으로 인해서 흔들리고 갈라진 사회에 살아야 하는 어린이들은, 각 개인의 인격적 존엄성에 대한 존경심에로 이끌어 가는 참된 정의감으로 무장되어야 할 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특히 가난하고 곤궁한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염려와 공평한 봉사와 통하는, 참된 사랑의 마음으로 단단히 채워져야 한다. 가정은 사회적 삶을 위한 첫 번째이고 기본적인 학교이다. 가정은 사랑의 공동체이기에 자신의 성장을 가져오고 지도하는 법칙을 자기 봉헌에서 찾는다. 남편과 아내 상호간의 사랑을 고무하는 자기 봉헌은 형제 자매의 관계와 가정에 함께 살고 있는 여러 세대간의 관계에서 실천되어야 하는 자기 봉헌의 본보기이고 규범인 것이다. 즐거울 때나 어려울 때나, 가정내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기도한 일치와 나눔은 사회의 넓은 지평에서 어린이들이 적극적이고 책임성 있으며 결실 있게 참여하기 위한 가장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교육이다." 

 

2.3. 가정과 사회의 관계 

 

지금까지 우리는 가정에 관한 몇 가지 기초적 내용에 관해 살펴보았다. 이제 가정과 사회 사이에 내적으로 흐르고 있는 상호 관계들을 살펴보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정과 사회를 연결하고 있는 내적 관계에서 보여지는 고유하고도 특수한 본성에 관해 분석을 시도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의 가르침에는 국가에 대한 가정의 우위성에 대한 언급이 꾸준하고도 명백하게 보여지고 있는데, 이는 곧 사회나 국가를 위해 개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위한 사회나 국가이어야 한다는 기본 원리와 같은 의미이다. 

 

우리는 이러한 원리에서부터 가정과 국가 사이의 관계에 고유하게 적용되는 보조성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가정공동체}는 이 점에 대해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가정과 사회는 개개인과 모든 인간의 선익을 옹호하고 육성하는 데에 있어서 보완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 좀더 구체적으로 국가는, 가정이 고유의 원천적 권리를 가지는 사회임을 인정해야 하며, 그래서 사회는 가정과의 관계에 있어서 보조성의 원리를 준수할 중대한 의무를 지닌다. 이 원리가 요청하기 때문에, 국가는 가정이 단독으로나 다른 가정들과 연합해서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을 가정에게서 빼앗을 수는 없다. 대신에 국가는 가정의 책임 있는 창의를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장려해야 한다. 공권력은 가정의 선익이 시민 공동체의 불가결하고 본질적인 가치라는 확신을 가지고서, 가정이 자신의 모든 책임을 인간적 양식으로 완수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보조 - 경제적, 사회적, 교육적, 정치적, 문화적 보조 -를 가질 수 있도록 온갖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가정-사회가 갖는 관계에 있어서 또 다른 본질적인 측면은 관계 자체의 상호성이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 중에서 몇 가지 발전적인 측면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첫 번째 발전적 측면은 국가 정책의 대상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가정에서부터 항상 가정 그 자체로서 능동적인 지위를 떠맡고 있는 가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보여진다. 곧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면 가정은 국가의 가정에 대한 정책에 있어서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이미 명백하게 언급되고 있으며, {가정공동체}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실천적인 측면에서 설명을 해주고 있다: "가정의 사회적 역할은 정치적 개입에서도 표현될 수 있다. 가정들은 국가의 법률과 제도가 가정의 권리와 의무를 침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를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옹호하는지 감시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데에 있어서 첫째여야 한다. 이 방면에서 가정들은 '가정정치'라는 것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더욱 의식하고, 사회 개혁에 있어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정은 무관심하게 관망하기만 해온 죄악의 첫째 희생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주의적 윤리를 탈피하라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호소가 가정을 위해서도 역시 적합한 것이다." 

 

두 번째 발전적 측면은 가정의 사회-정치적 임무를 위한 정당한 기초가 마련되기 위한 환경과 연관된다. 이 환경은 무엇보다도 사회와 국가에 대한 가정의 의무들에서부터 자연법에 이르기까지 윤리적 근거의 일치와 통합을 요구한다. 곧 이는 최소한 그리스도교 신자 가정과 부부를 도와주는 혼인성사의 은혜에 그 기원을 두는 신학적 근거들과 결코 유리되어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며, 소위 말하는 정치적 가치까지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가정공동체}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사목적 견지에서 매우 훌륭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모든 가정이 가지는 사회적 역할은 혼인성사에 기반을 두고 있는 그리스도인 가정에도 새롭고 본래적 권리로써 부여된다. 혼인성사는 남편과 아내의 사랑이 지니는 인간적 현실과 그것에 따르는 함축적 의미를 고려하면서, 평신도인 그리스도인 부부와 부모에게 자신들의 소명대로 살아갈 힘과 투신을 부여하고, 동시에 현세적 업무에 종사하며 그 업무를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함으로써 하느님의 나라를 추구할 힘과 투신도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 부부가 혼인성사로 말미암아 참여하게 되는 봉사 사명에는 사회적, 정치적 역할도 포함되는 것이고, 그들은 무시할 수 없는 명령과 아울러 지지와 자극을 제공하는 은혜도 받는다." 

 

 

3. 국가 

 

현대 사회의 모든 구조를 동요시키면서 세상 깊숙이 침투하고 있는 사회화 현상의 흐름 속에서 사회에서 드러나고 있는 몇몇 혁신적 계획들은 결국 사회질서, 가정, 국가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기본 구조들을 근본적으로 뒤바꾸기에는 불가능하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전통적 사회 안에서 국가적 연대는 새로운 힘의 원천이 되고 있으며, 제 3세계의 신생국가들은 또한 스스로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열정적인 노력과 함께 발전에 대한 엄청난 열망을 가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국가에 대한 요한 바오로 2세의 사고는 이러한 현실의 파노라마 안에서 전개되고 있는데, 주로 자신의 폴란드에서의 사목 경험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이 폴란드인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으며, 폴란드 국민의 경험을 언급하는 데 있어서 결코 주저함이 없다. 요한 바오로 2세의 풍부한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국가에 대해 다만 문화 공동체로서의 국가, 인간의 역사로서의 국가라는 두 가지 주제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3.1. 문화 공동체로서의 국가 

 

요한 바오로 2세는 국가를 문화 공동체로서 정의한다. 그리고 교황은 또 문화를 "인간이 영원하신 지혜와 맺는 계약"의 기초로 정의한다. 

이 계약은 내적으로 모든 문화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문화에 대한 이러한 정의로써 국가에 대해 심도 깊은 분석의 장(場)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면 국가는 어떤 물리적 현상이나 권력의 의지 등에 따라 국가가 움직이는 국수적 형태의 국가주의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화 공동체로 정의된다. 문화공동체로서의 국가 이해는 개인적 혹은 집단적 의지가 지배하는 절대주의를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게 하며, 국가의 일원으로서의 국민적 삶 안에서 의지-실천의 관계를 잘 조화시켜준다. 또한 이러한 국가 이해는 자연 질서와 존재 양식 안에서 각 개인의 의지를 잘 조화시키도록 도와준다.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의지-실천은 공동체의 역사적 발전 안에서 공동체의 생존을 그 기초로 하고 있으며, 이 생존은 그 공동체의 문화와 영성적 표현을 통해서 이해되는 것이다. 

 

국가-문화 개념은 문화를 위한 국가, 국가를 위한 국가라는 차원을 벗어난다. 이 개념은 세계 안의 국가, 사회 현실 안에서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개념인 것이다. 문화는 인간, 온전한 인간에 대한 진리에 본질적인 뿌리를 두면서, 인간적 삶 안에서 구체적인 현실의 인간들과 함께 협력하며, 결국 한 국가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에 의해 태어난 현실 인간의 인간적 통교의 중요한 수단이자 열매가 된다. 구체적인 현실의 인간이란 한 나라에서 출생한 한 구체적 인간이다. 자신의 부모를 모르고 있는 입양된 자식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태어난 나라는 알며, 국적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뿌리는 모든 국가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는 인류의 법으로서 문화에 기초를 두는 법인 것이다. 

 

국가 안에서의 문화는 보통으로는 한 민족의 삶의 터전인 일정 지역에서 구체적인 언어를 통해서 뿌리 내리게 된다. 국가의 존폐는 바로 이러한 뿌리가 얼마나 강한가에 따라서 좌우될 수 있는 것이다. 국가를 잃고 수천 년을 떠돌아다니던 유대 민족은 이스라엘이라는 땅으로써 자신들의 연결고리를 찾게 되었고, 자신들의 역사 안에서 해산과 압제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역사적 전통과 조상들의 땅에 적어도 내적으로는 굳게 결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3.2. 인간의 역사로서의 국가

 

자신의 개인적 및 사목적 경험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는 요한 바오로 2세는 자기 자신의 조국 폴란드의 역사를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문화의 경우에서처럼 국가는 또한 역사 위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국가들이 자신들의 문화로서의 영원한 지혜이신 계약 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듯이, 국가의 기원은 결국 문화의 기원과 상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국가는 새로운 계약에로 불렸으며, 이 새로운 계약은 각각의 국가에게는 문화적 전통의 모든 가치가 살아 움직이게 하는 새로운 탄생인 것이다. 

 

국가는 문화이기 때문에 결국 국가는 본질적으로 전통이다. 즉 세대를 거쳐 전해 내려오는 언어와 생활 양식의 전달이며, 역사의 도전을 거슬러 이룩해낸 기본적 가치들의 보호인 것이다. 새로운 계약은 옛 문화 안에서 생겨난 모든 가치들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자리를 갖게되며, 이 새로운 계약은 국가를 이루게 하는 그 어떤 것도 파괴하지 않을뿐더러, 전통적으로 어머니로서의 시선을 가지고 옛 것과의 충분한 조화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나갈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있어서 문화란 곧 전통이다. 영원하신 지혜가 전통들을 통해 문화 안에서 활동하면서 폭넓은 교류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교황에 의하면 이 지혜는 어떠한 국가적 전통이나 인간 문화로부터도 유래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나온다. 그러기에 복음은 어떤 문화들과도 결코 뒤섞이지 않으면서 모든 문화 속에 침투하게 된다. 폴란드의 크라코바에서 행하신 교황의 강론 말씀 중 이와 관련된 몇 문장을 읽어보도록 하자: "인간의 양심과 선택에 대한 모든 역사적 진행은 협소하게는 그 국가의 살아있는 전통과 밀접히 관련됩니다. 이 전통 안에서 모든 세대들이 믿음과 희망, 사랑으로부터 생겨난 관습과 그리스도교 문화, 복음의 증언,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활기 있게 외치고 있습니다. 인간은 내적 자유로써 의식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여기 우리 모두에게 전통은 한계가 아니고, 오히려 보물이며 영적 풍요로움입니다. 전통은 각각의 선택, 각각의 고상한 행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 방식으로써 정의되는 하나의 위대한 공동선입니다." 

 

이러한 전통은 인간의 일상적인 삶을 점령하고 있다. 사랑 안에서 믿음과 희망은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키고 인간의 삶 안에서 최상의 덕의 위치를 차지하는데, 국가들이 역사를 통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행위들은 역경의 시기를 항상 승리로 이끈 덕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민족들의 삶 안에서 이러한 믿음과 희망의 결핍은 통치 지역, 언어 그리고 정치적 주권이라는 국가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크게 약화시킨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그러한 결핍에 대한 경험은 결국 국민들의 종교적 생활의 범위로 확대되어 나타나게 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바로 이 점에 대해 염려하면서 무신론적 인본주의의 바탕을 형성하고 있는 핵심적인 요소에 대해 주목한다. 교황의 사회적 가르침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는 기본적인 인간 관계는 결코 초월적인 관계를 간과해서는 안되며, 그러한 관계가 결국 모든 인간 관계를 지탱해 준다는 점이 강조된다. 이 관계는 가정의 질서를 올바로 형성하며,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문화 공동체 및 노동 공동체들을 지탱해 주는 것처럼 국가를 지탱해 준다. 이처럼 이 기본적인 관계는 국가의 존재를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는 것이며, 결국 이 관계는 각자의 가정 안에서, 국가의 한 국민으로서 국가의 건설을 위해 애쓰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묶는 관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상은 바로 종교 안에서 매우 탁월한 사회적 유대를 끌어낸다. 곧 종교가 모든 기본적 관계들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이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받아들인 그리스도교는 사실상 그들 역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듯이 유럽 외의 다른 국가들에게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모든 국가들의 구성원들은 바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을 취함으로써 모든 개별 인간과 일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역사에서 그리스도를 빼 놓을 수는 없습니다. 인간 역사에서 그리스도를 제외시키는 것은 인간을 반대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인간을 통해서 국가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옳다면, 그리스도를 제외시키면서 국가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이러한 말씀은 특별히 하느님과의 계약을 파괴하면서까지 인간을 경시하고 위협하는 모든 국가들에 대해 근본적인 반성을 하도록 촉구한다. 가장 큰 범죄는 국가의 이름으로, 또한 인간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범죄이다. 그렇지만 요한 바오로 2세는 고유한 의미로서의 인간의 이름으로, 계약에 충실하기를 촉구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회적 구조 안에서 인간을 살펴보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인간을 다른 사람들과의 책임감 있는 관계 안에서의 한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교황은 또한 인간을 관계를 갖는 한 존재로서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사랑과 통교의 존재로 파악한다. 인간은 그 본성상 자신의 모든 활동에 앞서서 자신의 마음과 육체 안에 새겨진 이러한 관계로서 특징지어지는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사회의 기초가 있다. 모든 사회적 관계들은 이렇듯이 "함께 하는 존재"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곧 함께 한다는 것은 가정 안에서, 국가 안에서 드러나고 뿌리를 갖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들 안에서 현대의 인간은 자기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으며, 또 뒤돌아보아야 한다. 자기 스스로가 타인과의 연대의 끈을 어떻게 맺고 있으며, 동시에 가정, 국가, 국민이라는 사회적 현실의 구조가 전통을 살아 움직이게 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의 바탕에는 개개인이 자신들을 발전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사회에 대한 자율적인 책임감, 의무감이 요구되며, 그럼으로써 제 3천년기의 인간을 위한 새로운 사회, 새로운 시민 정신이 다시금 살아 움직이게 될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의 다음 말씀으로써 제 3장의 끝을 맺고자 한다: "모든 세대의 사람들, 이 세상의 모든 남녀노소할 것 없이 그리스도께서 밟으신 발자취를 따라 걷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공적으로 그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한 그리스도교 신자들뿐만 아니라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 잠시 교회를 떠나 있는 사람들, 교회를 반대하는 사람들까지도 함께 그리스도의 길을 가야합니다." 

 

[가톨릭 신학과 사상, 제15호(1996년 3월,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이동익(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 윤리신학) / 이동익 신부님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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