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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감시사회에서 살아가기: 감시사회와 인권, 그리고 교회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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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6-17 ㅣ No.1323

[경향 돋보기 - 감시사회에서 살아가기] 감시사회와 인권, 그리고 교회의 역할

 

 

감시란 감시하는 자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으면서 감시당하는 자의 일거수일투족에 관한 정보가 수집되고 분석된다는 점에 본질이 있다. 특정 개인에 대해 수집된 수많은 정보를 재구성하면 개인의 행적이나 인맥, 사상, 취향 등을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감시는 상대방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으로 등장한다.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이 문제된 적이 있다. 이렇듯, 지난날 감시는 주로 정치적 반대세력에 속하는 특정인의 동향을 ‘누군가가’ ‘근거리에서 ’사찰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감시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집적되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쉬운 예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라온 정보를 분석하면 특정인의 취향이나 행적을 파악하는 것이 쉽다. 누구나 감시의 대상이 되고 수집되는 정보도 개인의 생활 전반을 망라한다. 인터넷과 누리소통망(SNS) 등 정보통신망의 비약적 발전을 토대로 감시 권력은 사회 전방위에서 작동하는 총체적인 것으로 변모하고 있다.

 

 

촘촘해지는 국가의 초정밀 감시망

 

1998년에 나온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EnemyofState)’는 국가권력의 감시체제가 어떻게 시민에 대한 통제 권력으로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미국국가안보국(NSA)이 국회의원을 죽이는 모습이 담긴 영상 테이프를 우연히 가지게 된 변호사 로버트 딘(윌 스미스)은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런데 그 추적 과정에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지나치는 시시티브이(CCTV)가 감시에 활용되고 모든 전화통화가 실시간 도청되는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우리나라의 CCTV의 보급대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5년 9월 기준으로 전국 지자체가 설치한 CCTV는 26만 4476대로, 인구 195명 당 CCTV 한 대꼴이다. 여기에 공공기관이나 민간용 CCTV와 차량용 블랙박스까지 더하면 감시 카메라 천국이라 할 것이다.

 

이른바 ‘지능형 CCTV’는 원격제어 PTZ(Pan Tilt Zoom) 기능이 내장된 최첨단 카메라를 통해 카메라에 입력된 영상을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특정인의 움직임을 자동으로 추적할 수 있다. 현재 기술은 특정인의 얼굴 이미지를 가지고 CCTV 영상정보를 검색하여 추적하는 것도 가능한 수준까지 발전하고 있다.

 

정부는 각 지자체별로 CCTV 통합 관제 센터를 두어 이런 기능의 CCTV들을 네트워크로 통합하였다. 이제 촘촘하게 깔린 CCTV망을 이용하여 경찰이 특정 개인의 이동경로를 추적하는 일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경찰이 운영하는 ‘자동차량 정보검색(AVNI)’ 시스템도 있다. 도로 곳곳에 설치된 차량정보 수집장치에서 수집한 차량 이동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한 시스템이다. 차량번호를 입력하면 그 차량의 이동경로를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고 실시간 위치 파악도 가능하다.

 

게다가 정부는 시민의 개인정보를 집적한 수많은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하고 있다. 주민등록 제도에 따라 국가는 모든 국민의 이름과 생년월일, 가족, 주소 등의 개인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건강보험공단은 시민의 의료정보를, ‘교육행정 정보 시스템(NEIS)’은 학생교육에 관한 모든 정보를 고스란히 축적해 놓는다.

 

전산화된 데이터베이스의 위력은 대단하다. 현행 개인정보 보호법상 경찰 · 검찰과 국정원은 ‘수사상 또는 국가안보상 필요하다.’면 다른 국가기관이 보유한 수많은 개인정보를 손쉽게 수집하여 활용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다음(DAUM)과 네이버(NAVER) 등의 포털 사이트나 민간의 정보통신사업자로부터 개인의 휴대전화 번호와 아이디 등의 정보도 손쉽게 가져올 수 있다. 영장도 필요없다. 마음만 먹으면 시민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를 수집하여 감시에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 셈이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감시망이다.

 

 

공포정치, 빅브라더 국가권력을 지향하다

 

지난 2월 23일 정의화 국회의장은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약칭 ‘테러방지법’)에 대한 직권상정을 하면서 ‘국가 비상사태’라고 했다. 프랑스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과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계기로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라는 강수를 던진 데 이어 ‘안보위기의 프레임’을 본격적으로 가동하였다. 인권 침해와 국정원의 권한 남용에 대한 우려와 비판에도 3월 3일 테러방지법은 국회를 통과했다.

 

테러방지법의 ‘테러 위험인물’이라는 모호한 개념 덕분에 국정원은 사실상 누구든지 테러 위험인물로 지정할 수 있고, 그 인물에 대해서는 금융거래 정보, 통신내역 정보는 물론이고, 개인의 노조활동, 정당활동, 사생활에 관한 민감한 정보 그리고 위치정보까지 모두 수집할 권한을 갖는다. 무소불위의 감시 권력이다.

 

CCTV의 급속한 확대가 흉악범죄 예방을 명분으로 하였듯이, 박근혜 정부는 국정원의 감시 권력의 확장을 위해 테러방지라는 정치적 명분을 활용하였다. 치안이나 안보에 대한 불안감을 정치적으로 악용한 ‘공포정치’이다.

 

그러나 CCTV의 확대로 범죄 예방효과가 나타났다는 증거는 전혀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9·11테러 뒤에 애국법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의 감시체제를 강화하였던 미국은 테러 예방에 실패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권 침해라는 비판에 시달리다 최근 그 법규정 대부분을 폐지하였다.

 

 

‘디스토피아’

 

감시의 전면적 확장은 국가권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거대한 자료 분석과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발전에 힘입어 기업의 감시 권력이 나날이 확장되는 측면에도 주목해야 한다.

 

‘A 백화점은 고객들의 구매습관 분석과 유행을 예측하고 고객들에게 특가판매와 할인 쿠폰을 제공하려고 포인트 적립카드 데이터를 분석하였다. 백화점에서 사용한 분석 프로그램은 여성 고객이 임신했을 가능성과 임신 몇 개월인지를 높은 확률로 예측할 수 있다.

 

A 백화점은 이 정보를 맞춤형 판매전략을 위해 사용하였고,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어느 날 한 소녀는 집 우편함으로 다량의 임신 관련 제품의 광고물을 받았으며, 결국 부모에게 임신 사실이 발각되었다.’

 

포인트 적립금이 소비자의 이익이 되는 이면에 이런 ‘까발림’의 그림자가 있다. 이 사례처럼, 오늘날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디지털 정보로 축적되고, 그렇게 집적된 정보는 기업의 거대한 자료 분석을 통해 개인의 취향이나 유행을 알 수 있도록 재구성된다.

 

데이터마이닝(수집한 방대한 자료에 대한 통계 분석) 기법에 따른 거대한 자료 분석은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질병 등 민감 정보와 숨은 욕망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감시사회의 위험성

 

누군가 나를 미행하는 것을 알면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이상하게도 감시가 도처에 일상화되면 될수록 사람들의 감각은 무디어지는 듯하다. 촘촘한, 그리고 앞으로 더욱 강력해질 감시사회가 우리의 인권에 대하여 가져올 위험성은 무엇일까?

 

첫째, 국가는 점점 정밀하게 구축되는 감시망을 동원하여 집회나 파업 등 사회적 저항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손쉽게 추적하고 감시할 수 있다. 이는 국가의 감시망이 정치적 · 사회적 비판과 저항을 억압하는데 아주 효과적인 도구로 작동함을 뜻한다.

 

둘째, 더 나아가서 일상화된 감시망은 감시의 두려움을 확산하여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은연중에 자기검열을 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렇게 행동하면, 이런 글을 쓰면, 나도 감시받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스스로의 행동을 국가권력의 요구에 순응하게끔 조절하게 된다. 민주주의적 역동성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잠식될 것이다.

 

셋째, 더욱 심각한 위험성은 거대하게 구축된 감시망이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분류하고 재단하며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감시 권력의 근본적인 속성은 ‘분류를 통한 통제’에 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에서 예지자의 역할을 이제 거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감시망이 담당하는 것이다. 엄청난 양의 자료를 매개로 구축되는 감시망은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이런 성향이다. 위험하다.’라는 확률공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위험한 인물이나 집단’에 대한 사회적 표준이 구축되고 그런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배제하고자 하는 ‘권력적 욕망’과 결합한다. 이는 다시금 모든 사람의 자유로운 행동의 가능성을 제약하는 효과를 낳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체제를 통해 감시망은 사회 전반적으로 분류와 복종, 강제의 권력 작동을 일상화할 위험이 있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 전반에 대한 총체적 말살의 위험이 배태된다. 인권의 원초적 기초인 자율성이 부정당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는 매일같이 감시를 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거대한 감시망을 통째로 거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존엄성과 인권을 전반적으로 위협하는 지경에 있는 감시사회의 모습은 교회가 지향하는 자율적인 평화 공동체 이념과는 정반대의 길임이 분명하다.

 

교회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지나친 관련 법 개정에 대한 부당함을 말해야 한다. 바로 국가기관과 기업들의 개인정보 수집과 이용을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모든 이에게 알려야 한다. 국가기관이 보유한 모든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손쉽게 제공하도록 허용한 현재의 법 규정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인정보의 제삼자 제공은 독립적인 사법부의 영장이나 허가를 받게  하고 그 요건도 더욱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다.

 

철도파업 당시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조합원 가족의 의료정보까지 다 뒤져서 가져간 일이 있었고 이에 대한 헌법소원이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국가의 개인정보 수집과 이용을 통제하고자 하는 법 제도의 정비가 매우 시급하다.

 

다음으로, 국가와 거대 기업이 주도하는 거대한 정보 분석과 그것을 활용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사람의 성향을 예단하여 통제하지 못하도록 제어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과학기술의 사용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의 과제이기도 하다.

 

자율적 판단에 따라 살인까지 가능하게 한 인공지능 로봇의 출현 가능성에 대하여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와 미국 하버드 로스쿨 국제인권 클리닉 연구팀이 지난 4월 11일 심각한 우려와 경고를 하고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감시당하는 자가 따로 있지 않고 총체적 감시가 점점 더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사회로 향해 가는 것이 현실이라면, 감시 기술의 사용을 통제하는데 대해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예지자는 결국 인간이 지닌 자율성과 무한의 가능성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 이호중 사도 요한 - 서울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6년 6월호, 이호중 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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