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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65: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의 생애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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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9-13 ㅣ No.837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65)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의 생애 ⑤


영적 메마름과 질투에 시달려

 

 

- 복녀 엘리사벳이 6년간 생활한 디종 가르멜 수녀원 옛 건물.

 

 

21살에 디종 가르멜에 입회

 

1901년 8월 2일, 엘리사벳은 21살의 나이로 디종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했습니다. 당시 복녀의 어머니는 맏딸의 그런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어 한동안 절망스러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복녀 역시 마음이 매우 아팠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을 확신하면서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가르멜 성소를 꽃피우기 위해 수녀원에 입회했습니다. 입회를 반대하던 어머니를 대신해서 엘리사벳의 입회를 위해 꼼꼼하게 준비해 준 사람은 디종 가르멜의 당시 원장인 예수의 마리아 수녀였습니다. 마리아 수녀는 엘리사벳의 영적 여정에 중요한 계기가 된 발레 신부와의 만남을 주선해 준 당사자이기도 했습니다.

 

 

청원기와 수련기

 

엘리사벳은 수녀원에 입회해서 약 4개월간의 청원기를 지내며 이미 내적 생활에서 진보를 하게 되는데, 두 번째 엄마처럼 따르던 수르동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복녀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전 지상에서 제 천국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천국은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은 제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깨우치던 날 제 안에선 모든 것이 환히 비쳤습니다.” 당시 엘리사벳은 자기 영혼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실제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영성 생활에 진보했습니다. 

 

자기 영혼 안에 천국이 있고 그 천국은 다름 아닌 하느님이 거하신다는 데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엘리사벳은 자신의 가르멜 성소에 더욱 더 확신을 갖고 살게 됩니다. 1901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 축일에 엘리사벳은 수련기를 시작하면서 수도복을 받는 착복식을 하고 정식 수도명(修道名)으로 ‘삼위일체의 엘리사벳’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자신이 목숨을 다해 추구해야 할 화두로 수도명에 각인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 엘리사벳은 약 1년간의 수련기를 통해 가르멜 영성을 깊이 있게 배우면서 자신의 하느님 체험이 무엇인지 가르멜 성인들의 가르침을 통해 성찰하고 다듬어 가게 됩니다. 그리고 1903년 1월 엘리사벳은 수도 서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엘리사벳은 한동안 일종의 영적인 메마름의 시기를 거치게 됩니다. 영성적으로 소위 ‘어두운 밤’으로 표현되는 정화의 시기를 말하는데, 사랑이 많고 예술가적인 감수성을 지녔던 엘리사벳에게 이 시기는 아주 혹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심증도 있었고 그 전에 확신하던 하느님의 현존으로부터 오던 내적인 빛도 사라져 버린 듯했다고 합니다.

 

 

다양한 시련을 거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본격적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되면서 여러 수녀님으로부터 야단도 맞고, 또 몇몇 수녀님이 능력이 많고 젊고 예뻤던 엘리사벳 수녀를 시기 질투하는 바람에 적지 않게 힘들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수녀님을 질투하던 안느 마리라는 수녀님은 훗날 엘리사벳을 복자품에 올리기 위해 했던 시복 소송에서 엘리사벳이 복녀가 되는 것을 반대하면서 불리한 증언을 했다고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질투는 인간의 보편적 심성 가운데 하나인가 봅니다. 

 

더욱이 디종교구장으로 엘리사벳 가족과 친분이 있으신 노르데 주교님이 당시 반교회적인 정치인들과 친분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디종교구 내에서는 주교님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들이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던 주교님 소문을 들으며 엘리사벳은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엘리사벳의 영적 지도자들

 

수도 생활 초창기에 겪었던 이런 일련의 시련을 엘리사벳이 잘 넘어서게 된 데에는 디종 가르멜의 원장인 예수의 제르멘 수녀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제르멘 원장 수녀님은 어려움에 처한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동반하면서 하느님 은총에 응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가르멜 수녀로서 올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여러 면에서 가르침을 준 분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수도 공동체의 원장이었지만 엘리사벳에게는 원장 이상으로 스승이자 영적인 어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녀는 적지 않은 편지를 통해 제르멘 수녀님과 영적인 교감을 나눴으며, 훗날 생의 말년에 임종하기 전에는 자신이 이승에서 걸어왔던 ‘영광의 찬미’로서 자신의 소명을 이 수녀님께 맡긴다고까지 말하며 깊은 신뢰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 분 말고도 엘리사벳은 수련기 동안 자신을 이끌어 줄 또 다른 중요한 영적 지도 신부님을 만나게 됩니다. 에드몽 베르느 신부님이라고 하는 예수회원으로, 당시 디종 가르멜 수녀원의 영적 지도 신부님으로 공동체에 큰 도움을 주던 분이었습니다. 에드몽 신부님은 혹독한 내적 시련 중에 있던 엘리사벳의 상태를 식별하고 그 시련을 넘어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으며 서원을 할 때까지 엘리사벳에게 큰 힘이 돼 주었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9월 11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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