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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달력, 그리고 가톨릭: 교황이 인생의 열흘을 훔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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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1-01 ㅣ No.185

[신년특집] 시간과 달력, 그리고 가톨릭

"시간의 진실을 찾아라? 오늘날의 달력 완성



이 순간에도 소리 없이 흐르는 시간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비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에 거부감을 드러내겠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올해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지 2012년째 되는 해이다. 인류는 언제부턴가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시점을 기준으로 시간(역사)을 구분했다. 예수 탄생 전 시간 앞에는 BC(Before Christ), 탄생 후 시간 앞에는 AD(Anno Domini, '주님의 해'라는 뜻)를 붙여 날짜를 헤아린다.

우리가 묵은 달력을 떼고 벽에 건 2012년 새 달력은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반포한 역법(曆法)에 따라 제작된 달력이다. 달력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교황이 인생의 열흘을 훔쳐갔다"

- 가톨릭교회는 16세기 그레고리오력 시행으로 이전보다 몇 발짝 더 시간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었다. 책자는 달의 주기를 측정하는 삽화가 들어간 16세기 천문학 서적. 바티칸박물관 소장. [CNS 자료사진]


1582년 10월 4일, 유럽 전역 성당에서 예사롭지 않은 종소리가 울렸다. 내일은 10월 5일이 아니라 14일이라고 정한 교황 그레고리오 13세 회칙을 선포하는 종소리였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지식인층은 "교황과 과학자들이 인생에서 열흘을 훔쳐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루터의 개혁운동 영향으로 신구교가 혼재한 지역에서는 두 종류 달력을 쓰는 촌극이 벌어졌다.

율리우스력 절기에 맞춰 농사를 지어온 농민도, 월이자를 받아온 고리대금업자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성인 축일에 맞춰 기도를 해왔는데, 날짜가 틀렸다고 고치면 그동안 우리가 바친 기도는?"하며 허망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많았다. 현재 전 세계가 사용하는 그레고리우스력 시행 초기 풍경이다.
 
교황과 천문학자들은 왜 이런 혼란을 무릅쓰고 달력에서 열흘을 지워버렸을까. 답을 찾으려면 시간을 한참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BC48년, 로마제국의 영웅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패주하는 폼페이우스를 잡으러 이집트에 갔다. 거기서 클레오파트라를 만나 한눈에 반했다. 카이사르는 그가 베푼 주연(酒宴)에서 태양을 기준으로 1년을 정한 이집트 달력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당시 로마는 그리스 태음력을 기준으로 제작된 달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절(태양력)과 맞추기 위해 날과 달을 이리저리 빼고 넣는 바람에 체계가 매우 복잡해졌다.
 
그래서 카이사르는 로마에 돌아와 태양력을 기초로 역법을 만들어 반포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생일이 들어있는 로마력의 7월 명칭을 퀸틸리스(Quintilis)에서 율리우스(Julius, 영어 July)로 슬쩍 바꿔놓았다. 이것이 16세기까지 사용된 율리우스력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중대한 결함이 발견됐다. 율리우스력은 1년 길이를 365. 25일(365일과 6시간)로 정했다. 그래서 4년마다 한 번씩 1일(6시간x4=24시간)을 더하는 윤년을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 지구가 태양을 한 번 공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24219일(365일과 5시간 49분 46초)이다. 율리우스력이 약 11분 더 길다.
 
이 티끌만한 차이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이 편차를 계속 방치하면 달력은 분명히 7월인데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사람이 영국의 로저 베이컨(1214?~1294)이다. 그는 프란치스코회(작은형제회) 수사신부였는데, 대중의 기억 속에는 과학자와 사상가로만 남아 있다.

그는 연구를 통해 태양력과 어긋나는 11분 편차를 확신했다. 이것을 계속 더해봤더니 125년마다 하루씩 늘어났다. 그는 예수 시대를 기준으로 잉여시간이 9일이나 누적된 사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교회가 부활절을 비롯해 주요 축일을 틀린 날짜에 기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이컨은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이단으로 몰릴 위험을 무릅쓰고 교황 클레멘스 4세에게 시간을 고쳐야 한다는 요지의 편지를 보냈다.
 
당시 교회는 니케아공의회(325년)가 규정한 대로 춘분이 지나고 보름달이 뜬 후 첫 번째 주일을 예수부활대축일로 지냈다. 문제는 날짜 산정 기준인 춘분을 3월 21일로 고정시켜 놓은 점이다. 베이컨은 "1267년 기준으로 진짜 춘분은 9일이나 차이가 나는 3월 12일"이라고 편지에서 주장했다. 하지만 시간의 진실을 밝히려는 그의 노력은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 버렸다. 교황 클레멘스 4세가 이듬해 선종했기 때문이다. 후임 교황은 그의 주장과 저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베이컨이 태양력 편차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아니다. 이미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역년(曆年)이 실제 역년과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1년 길이를 365일과 5시간 55분이라고 주장했다. 스위스 노트케르 신부와 프랑스 헤르만 신부도 9~11세기에 교회에서 승인한 달력이 천체(天體)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황청을 설득할 과학적 증거를 제시할 수 없었던 데다, 교리를 어지럽히는 이단이라는 오해를 받을까봐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못했다.
 
- 21세기 과학기술은 1년 길이(지구 공전)를 365.242199일까지 측정한다. 그러나 지구는 약간 기울어져 있어 이마저도 시간의 진실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달 이미지를 배경으로 브리핑을 하는 바티칸천문대 천문학자 데이비드 브라운(예수회) 신부.
 

시간의 진실에 바짝 다가선 그레고리오력

베이컨의 경우 태양력 계산뿐 아니라 무지개 원리를 밝혀내고, 인간 눈(目) 해부도를 만드는 등 과학적 탐구열이 매우 높았다. 진보적 과학이론을 수시로 내놓는 탓에 수도원에 감금되거나 집필 금지 명령을 받기까지 했지만 말이다.
 
교황청이 태양력 편차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16세기 들어서다.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위원회를 설립해 이 문제를 연구하도록 지시했다. 위원회는 1년을 365.2425일로 하고, 윤년을 더 과학적으로 조정하면 천체 주기와의 편차가 3000년에 하루 정도밖에 나지 않는 달력을 만들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에 기초해 1582년 반포한 것이 현재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용하는 그레고리오력이다.
 
이 역법이 유럽에서 하루 아침에 채택된 것은 아니다. 당시는 루터의 종교개혁(1517년) 불길이 전역으로 번져가고 있던 시기다. 가톨릭과 개신교, 친교황 제후와 반교황 제후로 갈려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개신교로 돌아선 독일 중북부 지역에서는 "교황의 일방적 결정"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그래서 한동안 가톨릭과 다른 날을 주일로 지냈다. 독일 개신교는 1700년에 가서야 그레고리오력을 받아들였다. 국교회(성공회)를 채택한 영국은 1752년, 동방정교회 국가 러시아는 1918년에 수용했다. 우리나라는 1895년부터 그레고리오력을 사용하고 있다.


재미있는 시간과 달력 이야기
 

- 시간을 BC와 AD로 구분한 사람은?

5세기 '난쟁이 디오니시오'라는 수사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서기 1년 3월 25일을 구세주 강생 원년으로 정했다. 성탄일 12월 25일에서 성모 마리아의 잉태기간 아홉 달을 빼니까 3월 25일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3월 25일이 주님탄생예고대축일이 됐다.
 
- 주일을 왜 '태양의 날(Sunday)'이라고 하는가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313년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후 7일간의 주(週) 개념을 도입했다. 그 전까지 고대 로마인들은 태양신을 열렬히 숭배하면서 12월 25일(율리우스력의 동지)을 '무적의 태양 탄일'로 경축했다. 그래서 성스러운 주일을 'Sunday'라고 부른 것이다. 4세기에 정착된 성탄일 날짜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교 교부들은 3세기 초에 그리스도에게 '정의의 태양'이라는 호칭을 부여했다.

- 8월(August) 이름 유래는

달 명칭은 대부분 고대로마 신들 이름에서 따왔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이어 아우구스투스(Augu stus)도 달에 자기 이름을 넣고 싶어하기에 원로원이 로마력 6번째 달 섹스틸리스(Sextilis)를 황제 이름으로 바꿨다. 그리스도인을 무자비하게 박해한 네로 황제도 살해 위기를 모면한 것을 기념해 4월을 네로니우스(Neronius)로 고쳤으나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다.
 
[평화신문, 2012년 1월 1일,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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