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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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서간: 그리스도교 호교 작품의 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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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48

[교부들의 가르침]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서간


그리스도교 호교 작품의 전형

 

 

2세기에 와서 그리스도교는 교회공동체가 커지면서 새로운 문화권, 이질적인 세상과의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제국이 강요하는 다신교 신앙과 황제숭배를 배척하였기 때문에 로마제국으로부터는 박해를 받고, 이교도들로부터는 미움을 사게 되었다.

 

또한 민중들로부터는 저질적인 신흥종교란 소리를 듣기도 하였고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로 모함을 당하였다. 그리고 유식한 학자들로부터는 체계적인 반박과 비방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2세기 교회 저술가들은 이들에 대해 교회를 방어하고 옹호하는 글을 썼는데, 이런 글들을 호교론이라고 부른다.

 

2세기 후반기에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저자에 의해서 집필된 것으로 간주되는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서간’으로 불려지는 이 작품은 초대교회의 호교론에 속한다. 서간문의 형태로 보이는 이 작품 안에서 저자는 귀족가문의 출신인 비신자 디오그네투스가 던진 세 가지 종류의 질문에 대답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첫 번째 질문은 하느님은 누구이시며 그리스도신자들이 하느님을 흠숭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왜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의 종교를 배척하는가? 그리고 두 번째는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찬양하는 형제적 사랑 내지 이웃사랑은 과연 어떤 것인가? 세 번째로는 그리스도께서 왜 이토록 늦게야 세상에 오셨는가? 라는 질문이었다(1장).

 

첫째 질문에 대해 저자는 먼저 유다교와 이교도들의 경신행위의 비판으로 시작한다(2~3장). 이교인의 신들은 인간의 물질적 작품이기 때문에 그들을 공경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유다인들은 한 분이신 참된 하느님을 공경하지만, 그들은 하느님께 여러 가지 제물을 바치며 불합리한 율법규정을 지나칠 정도로 엄격히 지키면서 잘못 공경한다.

 

그 다음에 저자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고유한 생활 내지 행동방식을 묘사한다. 그들을 세상의 영혼과 같은 존재라고 부르면서 그들이 세상 안에 살면서도 세상을 초월하는, 그리고 육신 안에 살면서도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지 않는, 초자연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점에 대해서 말한다(5~6장). "모든 객지가 그들에게는 고향이요, 모든 고향이 그들에게는 객지이다". 이어서 그리스도교는 하느님께서 세우신 것임을 강조하고, 성부께서 말씀(성자)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당신을 우리에게 알리시고 또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보내셨다는 가르침과 하느님의 본질을 계시하는 말씀(7~8장, 9장)이 계속된다.

 

구세주께서 늦게 오신 이유에 대해서는, 하느님과 성자의 구원계획은 처음부터 예정되었으며, 아들을 보내어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불의를 인정하고 스스로 구원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을 때에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하느님께서는 인류에게 구원을 얻는 데 있어서 인간에게는 능력이 없음을 보이시고, 따라서 인간은 오로지 구세주를 통한 구원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고 답한다(9장). 10장에서는 디오그네투스에게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받아들이라는 간곡한 권유를 담고 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그를 인도하시어 참된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게 만드실 것이라고 격려한다.

 

여기서 디오그네투스 서간에 나오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영혼’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도록 하자: "한 마디로 영혼이 육신에 존재하듯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모든 도시에 흩어져 살고 있듯이 영혼도 육신의 모든 부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듯이 영혼도 육신 안에 있으면서 육신에 속하지 않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혼은 보이는 육신 안에 갇혀 있으며, 그리스도인이 세상 안에 살고 있음을 볼 수는 있으나 그들이 하느님께 바치는 예배는 보이지 않습니다. 육신이 자기를 해롭게 하지 않는 영혼을 미워하고 싸움을 거는 것은 영혼이 육신의 쾌락 추구를 반대하기 때문인 것처럼, 세상이 아무런 해를 주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미워하게 됨은 그 쾌락을 추구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자기를 미워하는 육신과 그 지체를 사랑함은 그리스도인이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영혼은 육신 안에 갇혀 있지만 육신을 살려 주며, 그리스도인도 세상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세상에 생명을 주고 있습니다. 불사불멸의 영혼이 죽을 운명의 천막 안에 살고 있듯이 그리스도인 역시 하늘나라의 불멸의 운명을 기다리면서 썩어 없어질 세상 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극기를 할 때 진보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은 박해를 당할 때 날로 계속해서 증가합니다. 하느님이 그들에게 주신 지위는 그렇게 고상한 것이기에 그것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서간 6, 1~10 : 서공석 옮김, ’신학전망’ 20(1973), 79).

 

위의 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서간은 여러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교 호교작품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저자의 탁월한 묘사와 선명하고 아름다운 수사학적인 문체와 대답의 조화로운 전개로 말미암아 이 서간은 그리스도 호교론 중에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가톨릭신문, 2003년 1월 5일, 장인산 신부(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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