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3일 (목)
(백)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강론자료

2020-11-15.....연중 제33주일 가해(세계 가난한 이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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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0-11-14 ㅣ No.2365

                                                     연중 제33주일 (가해)

잠언 31,10-13.19-20.30-31         1테살로니카 5,1-6        마태 25,14-30

2020. 11. 18. 가난한 이의 날

                         2016년 자비의 희년을 끝내며, 프란체스코교황이 33주일을 가난한 이의 날로 선포함

주제 : 내가 생각할 가난은 무엇인가?

오늘은 프란체스코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전례에서 우리가 가난에 관한 말을 하는 것은 우리가 쉽게 안다고 생각할 세상의 가난을 찬양하자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가난에 관한 올바른 태도는 무엇이겠습니까?

 

신앙인으로서 가난에 관한 말을 들으면, 나더러 가난하게 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겠거니 생각하면서도, 그런 말을 듣는 일을 부담스럽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삶에서는 가난을 극복하고 피해야 할 일로 해석하는데 비교하여, 신앙에서는 가난이라는 낱말을 부정적인 요소가 담긴 표현으로 보지 않고,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는 것도 알아듣기가 어려운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표현하는 말이 내가 듣고 싶은 의미와 다르더라도 '가난'이라는 상황을 내가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그 구별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의미는 내가 하는 행동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가난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흔히 듣는 가난이라는 말을 아무리 좋게 생각하더라도, 세상의 가난은 피하거나 이겨야 하는 대상이라고 말한다면, 그 이유는 가난이 삶에 좋은 결과를 만든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복음은 가난에 직접 관련된 내용은 아닌 이야기입니다. 복음의 배경은 여행을 떠나는 집주인이 자기가 판단한 종들의 능력에 따라 3명의 종에게 각각 다른 금액의 재산을 나누어준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종의 처지에서는 자기에게 온 큰 금액인 탈렌트는 주인이 공짜로 주고 마음대로 쓰게 한 돈은 아니었을 것이므로, 현실에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다섯탈렌트-30억원이나 두탈렌트-12억원이나 한탈렌트-6억원이라는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 돈을 받은 종들은 자기에게 재산을 맡긴 주인의 의도를 파악해서 합당하게 행동해야 하는 일이 정상적인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가난한 이의 날이라는 의미를 신앙의 정신으로 함께 해석하면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능력을 하느님의 바람에 맞추어 제대로 드러내는 일이 신앙에서 말하는 가난일 수도 있고, 내가 가진 능력과 재능은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내 맘대로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은 아니었을 것이므로, 그 의도를 바르게 읽은 사람으로 잘사는 것이 참된 가난을 아는 사람이고 신앙인이 드러내야 하는 가난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한 탈렌트를 받은 세 번째의 종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았던 2명의 종은 각자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능력을 충실하게 드러내어, 주인이 자신을 믿어준 것만큼의 돈을 더 번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 안타깝게 보인 사람은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의 행동입니다. 주인이 그 세번째 종의 능력이나 삶의 태도를 다르게 본 이유도 있었겠지만, 한 탈렌트를 주인에게서 받은 그 종은 자기가 받은 돈을 땅에 묻어두어도 자기에게 돈을 맡긴 주인의 뜻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고 여긴 사람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여러 가지 일에서 다른 사람의 의도를 내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내 능력을 인정해준 다른 사람의 뜻을 정확하게 알아서 행동한 것이라면 다행일 수 있지만, 나를 바라보는 사람의 의도를 모른다고 해도 내가 드러낼 수 있는 만큼은 최대한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다른 사람의 의도를 확인하고 그 의도에 맞추어 사는 일은 어렵다고 생각해서 내가 하는 행동은 나를 대하는 다른 사람의 뜻과 일치한다고 우겨도 괜찮은 일인지는 질문해야 합니다. 이 질문에 관한 대답에 따라서 우리가 하는 행동은 달라집니다.

 

사람은 현실에 삶에서 자기가 드러낸 능력과 노력한 대로 대가를 되돌려받습니다. 나에 대한 평가도 지나고 내가 한 행동을 다 셈한 다음에, 내 바람대로 나를 인정하지 않은 상대방이었기에 내가 내 마음대로 산 것이라고 탓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잠언서의 말씀에서 들은 것처럼, 아내든지 남편이든지 자기 위치에서 충실하게 사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 일이 어렵다고 생각해서 내 마음대로 살아도 좋은 일은 아닙니다. 내 행동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라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삶의 결과는 어떤 모양이고 어떤 평가를 얻기를 바라는 사람이겠습니까?

 

테살로니카 사람들에게 보낸 바오로 사도의 편지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실 때를 대비하여 빛의 자녀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둠의 자녀보다 빛의 자녀로 사는 일은 충실하게 산다는 것이고, 늘 준비하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내 주변을 바라보면서 내가 판단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느 쪽을 따라 살아야 하겠습니까? 내가 하는 행동이 나에게 좋은 결과로 다가오도록 살아야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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