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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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교부들의 신앙: 대 그레고리오 - 역사의 파고 앞에서 키를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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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2-02 ㅣ No.605

[교부들의 신앙 – 대 그레고리오 3] 역사의 파고 앞에서 키를 잡고

 

 

2020년 한해도 저물어 갑니다. 코로나19 감염증 때문에 귀한 시간을 황망하게 지내 버린 것 같은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언제나 끝날 것인가 하는 걱정도 함께 들지요. 혹자들이 주장하듯 이러한 상황이 새로운 일상이 되는 것일까? 어떤 이들은 이보다 더 심각한 기후 위기가 코로나 이후 인류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일까? 불안은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도는 것 같습니다.

 

 

풍랑에도 격려를 멈추지 않은 키잡이

 

지난 호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대 그레고리오는 어려운 시기에 교종직을 수행한 교부입니다. 그는 사목의 직무란 본질적으로 영혼을 다스리는 일이며 무지한 자들이 사목 직무를 맡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두려워할 일이라고 토로했습니다(「사목 규칙」, 1,1).

 

‘다스리다’라는 라틴말(gubernare)의 의미는 ‘키를 잡다’에서 발전했다고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대 그레고리오는 혼란 속의 세상에서 온 힘을 다해 키를 잡고 사람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켰던 목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596년에 그는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노를 우두머리로 삼아 수도승 40명을 영국에 파견합니다. 오스티아 항을 떠나 갈리아에 도착한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브리타니아 선교라는 막중한 임무를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았던가 봅니다. 그래서 이를 면해 달라고 대표격인 아우구스티노를 로마로 보냅니다. 그러나 대 그레고리오는 오히려 아우구스티노를 아빠스로 임명하면서 그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일을 시작해 놓고 그만두느니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들이여,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여러분이 착수한 일을 완수해야 합니다. 여행길의 고생에도, 반대하는 목소리에도 놀라지 마십시오.

 

오히려 큰일들에는 영원한 상급의 영광이 마련되어 있음을 확신하고, 하느님께서 주신 영감으로 여러분이 시작한 것을 지체 없이 온갖 열정을 다해 계속해 나가십시오. 아빠스로서 여러분에게 돌아간 아우구스티노에게 겸손하게 순종하십시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당신 은총으로 여러분을 보호하시고, 여러분이 애쓴 결실을 내가 영원한 나라에서 볼 수 있도록 허락하시기를 빕니다.

 

여러분과 노고를 함께하고 싶은 나의 원의를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는 않았지만, 보상의 기쁨에는 함께할 것입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아들들이여,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온갖 악에서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서간집」, 6,51).

 

 

언제나 다시금 하느님께 영광을

 

선교사들은 큰 성공을 거둡니다. 597년에는 켄트 왕국의 에델베르트 왕도 세례를 받았으며 그해 성탄절에는 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요. 598년 대 그레고리오는 이를 두고 기쁨에 찬 편지를 써 보냅니다.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하느님께서 하늘에서만 다스리시지 않도록, 땅에 떨어진 밀알 하나가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을 통하여 살아나고, 그분의 약함으로 강해지며, 그분의 고통으로 고통에서 구원됩니다.

 

그분의 사랑으로 우리는 모르던 형제들을 찾아 브리타니아로 나섰고, 그분의 선물로 모르는 채 찾던 이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형제여, 전능하신 하느님의 은총과 그대의 노고를 통해 앵글족의 나라가 오류의 어둠을 쫓아 버리고 믿음의 빛으로 환히 빛나게 된 사실을 두고, 믿는 모든 이의 가슴에 밀려드는 기쁨을 뉘라서 다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영적으로 새로워진 이 나라는 병든 두려움으로 순종하던 우상들을 밟아버리고 진실한 마음으로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 엎드립니다.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그분의 힘찬 역사를 통하여 세상이 회심함을 보여 주시려고, 하느님께서는 글을 모르는 이들을 세상에 보낼 당신의 설교자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지금도 그렇게 일하십니다. 약한 피조물을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함이 앵글족의 나라에 가하다고 여기시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형제여, 이 천상의 선물을 크나큰 기쁨과 함께 크나큰 두려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그대를 통하여 당신께서 선택하신 이 백성 안에서 위대한 기적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하느님께서 주신 이 선물을 두려운 마음으로 기뻐하고, 기뻐하면서 두려워해야 합니다. 앵글족의 영혼이 외적인 기적을 통하여 내적인 은총으로 인도되었으니 기뻐해야 하고, 이루어진 표지들 속에서 나약한 마음이 교만으로 스스로를 들어 올리지 않도록, 외적인 영광은 높여지면서 내적으로는 허영에 굴러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두려워해야 합니다”(「서간집」, 11,36).

 

 

새 시대로의 전환을 이끈 목자

 

대 그레고리오의 재위 기간은 랑고바르드족(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를 처음 침탈해 들어오던 시기와 겹칩니다. 대 그레고리오는 이민족들의 침탈로 조각나고 기울어져 가던 로마 문명과 그리스도교를 하나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민족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어젖혔습니다. 그가 착좌한 첫해에 이탈리아의 주교들에게 쓴 편지는 이 점을 확연하게 보여 줍니다.

 

“가공할 랑고바르드 왕 아우타리트가 랑고바르드족 아이들이 가톨릭 신앙으로 세례받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죄로 말미암아 … 하느님께서 그를 잘라 내신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곳에나 비통한 죽음이 임박했으므로 아리우스 이단에서 세례를 받은 아이들을 가톨릭 신앙 안에서 세례받도록 해야 한다고, 이로써 미구(未久)에 닥칠 전능하신 주님의 분노를 달래야 한다고 여러분 지역의 모든 랑고바르드족에게 경고하십시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이에게 경고하십시오.

 

모든 설득의 수단을 다해 그들을 붙드십시오. 바른 신앙을 전하십시오. 영원한 생명을 선포하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이 주님의 엄격한 심판정에 들어설 때 여러분 노력의 결과에 따라 목자로서 쌓은 공로로 얻은 이들을 보여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서간집」, 1,17).

 

그는 로마 문명이 저물어 가던 시기에 목자의 직무를 맡아 시대의 고통과 어려움이 다만 역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낳기 위한 진통과 같음을 역설하면서 이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대 그레고리오 교종은 첫 번째 위대한 선교사 교황이라 불립니다. 게르만족의 개종으로써, 로마제국의 쇠락과 더불어 고대가 마무리되고 중세가 열렸습니다.

 

포스트 코로나를 운위(云謂)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공식적으로 전례를 삼가고 모임을 금하는 시간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란 무엇인지, 신앙을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역사가 가져오는 이 새로움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대 그레고리오의 삶과 활동 앞에서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는 까닭입니다.

 

* 황인수 이냐시오 – 성바오로수도회 수사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와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 아우구스티노 교부학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성바오로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경향잡지, 2020년 12월호, 황인수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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