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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파리외방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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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2-27 ㅣ No.681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파리외방전교회 (상)


아시아 선교 위해 파견된 세 주교가 시작

 

 

- 파리외방전교회 본원 모습.

 

 

1600년대 프랑스 파리에는 사제와 평신도로 구성된 ‘성체회’라는 신심단체가 있었다. 이 단체는 성체 형태로 숨어계신 예수님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고아원, 병원, 본당 등에서 가장 어려운 이들을 위해 사목했다.

 

이후 이들의 열망은 파리와 프랑스를 넘어 당시 수도회가 중심이 된 외방 선교, 특히 아시아 지역 선교에 적극 참여하려는 의지로 이어졌다.

 

성체회 회원들은 이를 위해 1646년부터 10년간 교황청 포교성성(현 인류복음화성)에 아시아 지역으로 주교들을 파견할 것을 요청했다. 마침 최초로 베트남에서 선교하며 아시아 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한 예수회 로드 신부(Alexandre de Rhodes, 1591~1660)도 교황청에 아시아 선교지를 직접 관할할 수 있도록 ‘대목구’ 제도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결국 1658년 알레산데르 7세(1655~1667) 교황은 이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라오스에서 조선에 이르는 3개의 대목구 통킹(Tonking), 코친차이나(Co-chinchina), 남경(南京)을 설정하고, 파견할 주교로 랑베르 드 라 모트(Lambert de la Motte, 1624~1679), 이냐시오 코톨랭디(Ignace Cotolendi, 1630~1662), 프랑수아 팔뤼(Francois Pallu, 1626~1684)를 임명했다. 파리외방전교회의 시작이었다.

 

교황은 대목구에 주교들을 파견하기에 앞서 ▲ 현지인 성직자를 양성할 것 ▲ 파견되는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고 풍습을 받아들일 것 ▲ 중요한 일이 생기면 교황청에 문의할 것 등을 지시했다. 이는 파리외방전교회의 기본 정신이 되었다.

 

파리외방전교회 창립자인 세 주교는 대목구로 떠나기 전, 앞으로 선교지에 파견될 후속 선교사의 양성을 위한 신학교 설립에 뜻을 모았다. 이어 파리에 설립된 이 신학교는 1663년 당시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1643~1715)에 의해 승인됐고, 이듬해 교황청의 공인을 받았다. 이로써 파리외방전교회는 더욱 확고한 기반을 갖추게 됐다.

 

파리외방전교회는 ‘현지인 성직자 양성’이라는 주된 목표를 위해 선교지에 신학교를 설립하고자 노력했다. 결국 1807년 말레이 반도 페낭 섬에 아시아 최초의 신학교가 자리 잡았다. 이곳은 조선,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여러 나라 신학생들을 성직자로 양성하는 아시아 지역 전체의 신학교 역할을 했다.

 

이후 파리외방전교회에 위임된 선교지에 차례로 신학교가 세워졌다. 늘어나는 신학교만큼 현지인 성직자도 1850년 150명을 시작으로 점차 늘었다. 1940년에는 3800명에 달했고 20세기 후반에는 그 수가 더 증가했다.

 

늘어난 현지인 성직자에 따라 현지인에 이양된 교구도 많아졌다. 1922년 중국 두 곳의 지목구장을 필두로 시작된 현지인 교구 이양은 1990년 안동교구가 마지막이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1년 12월 25일, 이재훈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파리외방전교회 (중)


한국교회 기틀 다지는데 큰 기여

 

 

-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순교성인 10위.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파리외방전교회의 아시아 선교 열망에 조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1831년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이 조선대목구를 설정하고 초대 대목구장으로 당시 태국 시암대목구 보좌주교였던 브뤼기에르 주교를 임명했다. 그러나 브뤼기에르 주교는 입국을 준비하던 중 1835년 만주에서 병으로 선종했다.

 

그를 이어받아 모방 신부가 권한을 위임받은 부주교 자격으로 1835년 말 조선 입국에 성공했다. 그는 파리외방전교회의 첫 목표인 현지인 성직자 양성에 착수해 김대건과 최양업, 최방제 세 소년을 신학생으로 선발해 마카오 신학교에서 교육시켰다. 이를 통해 1845년 최초의 한국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배출됐다. 1837년에는 제2대 조선대목구장 엥베르 주교, 샤스탕 신부가 차례로 조선에 입국했다.

 

현지 신학교 설립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1855년 제천에 배론 신학교를 시작으로 1885년에는 원주 부엉골 신학교를 세웠다. 이는 1887년 서울 용산 신학교로 자리 잡았다.

 

파리외방전교회의 활동은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조선 내 천주교 포교의 자유를 얻은 뒤 확대됐다. 파리외방전교회는 1890년 조선 내 22명의 회원이 활동했으나 이후 10년 만에 41명으로 회원이 크게 늘었다.

 

1911년에는 제8대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가 교황청에 분할을 요청해 승인받아, 조선대목구를 서울대목구로 이름을 바꾸고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을 떼어 대구대목구를 신설했다. 신자 수 7만6000여 명, 선교사 48명, 현지인 성직자 21명으로 교세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초대 대구대목구장에는 드망즈 주교가 임명됐다. 1920년에는 함경도와 서북부 평안도 지역 사목을 위해 이 지역을 서울대목구에서 분리해 원산대목구를 새로 설립하고 베네딕도회에 위임했다.

 

이러한 대목구 및 지목구 제도는 일제 해방 후인 1962년 한국교회에 교계제도가 설정되며 그대로 이어졌다. 이렇듯 파리외방전교회는 한국교회가 설립된 이래 그 기틀을 다지는데 기여했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한국에 많은 성당을 건립하고 사목하는데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 1890년 주교좌명동대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 1906년 하우현성당을 건립한 샤플랭 신부, 1900년 안성성당을 세운 하느님의 종 앙투완 공베르(Gombert Antoine, 1875~1950) 신부 등 많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한국에 성당을 세우고 현지 사목에 힘썼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1월 2일, 이재훈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파리외방전교회 (하)


‘주는 교회’ 되도록 선교지 성장 이끌어

 

 

- 2014년 ‘성요한의집’ 설립 15주년 기념 미사 모습. 성요한의집은 파리외방전교회가 무의탁 청소년을 위해 운영하는 시설이다.

 

 

파리외방전교회는 창립 이후부터 계속 아시아 지역 ‘복음화’와 ‘선교’에 초점을 맞추고 활동을 이어왔다. 한국에서 교계 제도가 자리 잡고, 한국교회가 해외선교를 향하기까지 성장하는데 함께했다.

 

파리외방전교회 회원들은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복음화를 위한 현지 문화 존중과 적응에 노력했다. 조선에서 성 엥베르와 성 베르뇌 주교가 각각 ‘범세형’, ‘장경일’ 등 현지 이름을 지은 것도 그 일환이다. 또 회원들은 선교지에서 순교로 신앙을 증거했다. 전체 회원 중 순교자가 170명에 이를 정도다. 한국교회 103위 순교성인 중에도 성 엥베르 주교,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신부 등 회원 10명이 포함돼 있다. 또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한국에서 활동하던 13명 중 셀레스텡 코요스 신부(한국이름 구인덕, 1993년 선종)를 제외한 12명이 공산군에 체포돼 순교하는 시련도 겪었다.

 

파리외방전교회의 노력은 선교 지역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하느님의 종 앙투완 공베르 신부(Antoine Gombert, 1875~1950)는 안성에서 지역민의 자립을 위해 교육기관인 안법학교(현 안법고등학교)를 세우고, 성당 주변 토지 50만평을 매입해 지역민들에게 포도농사법을 전수했다. 오늘날 안성 포도의 시초다. 에밀 타케 신부(Emile Joseph Taquet, 한국명 엄택기, 1873~1952)는 제주에서 홍로본당을 중심으로 사목하며 1911년 제주도민들의 자립을 위해 온주 밀감을 들여와 현 제주 감귤사업의 토대를 마련했다.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지부장 임강명 신부(Emmanuel Kermoal))에서는 현재 두봉 주교와 허보록 신부(Philippe Blot), 하대건 신부(Bėrard Christophe) 등 10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 중 허보록 신부는 청소년들을 위한 그룹홈인 군포 성 요한의 집을, 하대건 신부는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불어공동체와 이주사목위원회 및 북한 결핵 퇴치를 위한 의료사업을 펼치는 유진벨재단 결핵사업 담당 사제로 활동하고 있다.

 

파리외방전교회는 이 외에도 총 150여 명의 회원(2021년 기준)들이 일본,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지역과 마다가스카르, 모리셔스제도를 비롯한 태평양 지역에서 활동 중이다.

 

파리외방전교회는 앞으로도 성령께서 이끄는 대로 모든 선교지가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할 계획이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1월 9일,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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