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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칼럼: 리슨 - 한 마리 양이라도 잃어버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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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3-08 ㅣ No.1283

[영화칼럼] 영화 ‘리슨’ - 2012년 감독 아나 로사


한 마리 양이라도 잃어버린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도 합니다. 선의를 내세운 원칙에만 집착해 열린 마음과 섬세한 눈을 가지지 못할 때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최재희(1914∼1984)도 “사람을 위해서 제도가 있는 것이지, 제도 자체에 절대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아흔아홉 명을 구원하고, 겨우 한 사람만 놓치거나 잃어버릴 정도라면 모두 좋은 제도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에게는 그 제도가 잔인함과 절망의 대상일 뿐입니다. 우리는 영국의 실업급여제도가 한 늙은 노동자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짓밟아 버리는 것을 <나, 다니엘 블레이크>(켄 로치 감독)에서 봤습니다.(2021년 1월 24일 자 영화칼럼)

 

<리슨>의 벨라(루시아 모니즈 분)에게는 가정폭력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고, 아이를 더 좋은 가정에서 자라도록 해준다는 영국의 강제입양제도가 그렇습니다. 해당 제도는 남편 니콜라오와 열한 살 된 아들 디에구, 여섯 살 된 딸 루, 12개월 된 아기 제시와 함께 사는 그녀의 가족을 무자비하게 강제해체시킵니다. 그것도 어처구니없는 오해와 편견과 무시로.

 

발단은 청각장애를 가진 루의 고장 난 보청기입니다. 끼니조차 마련하기 힘든 가난한 포르투갈 이민자에게는 그것을 고치거나 새것으로 교체할 어떤 방법도 없습니다. 복지국은 그 사실을 숨긴 것과 아이의 등에서 발견된 멍을 아동학대로 보고 긴급보호명령을 발동해 세 아이를 강제로 데려갑니다. 니콜라오와 벨라와 아이들이 “난 좋은 엄마, 우린 좋은 가족이다.” “아이들에게 손 한번 댄 적 없다.” “우린 엄마가 돌본다.” “부모님과 집에 있고 싶다.”고 절규하고, 애원하고, 반항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잠깐의 면회시간에도 복지국 직원들은 규정을 고집하면서 영어로만 말하기를 강요하고, 보고 싶었다는 말도 못 하게 하고, 벨라와 루의 유일한 소통수단인 수어(手語)를 하는 것도 막습니다.

 

하루아침에 자식을 빼앗기고 멀쩡할 엄마가 있을까요. 그런데도 그들은 벨라의 분노와 불안, 절망과 슬픔을 우울증으로 규정하고 그런 엄마는 위험하다며 아이들과의 면회까지 막아버립니다. 강제입양은 아동보호라는 제도의 정당성을 앞세워 양육수당까지 주면서 디에구와 제시를 다시는 친부모 품으로 돌아올 수 없는 입양을 보냅니다. 그나마 루만 가까스로 부모 품으로 돌아옵니다. 정부가 청각 장애아를 입양할 가정을 찾지 못한데다, 등에 있던 멍이 자색반병의 출혈 자국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법정에서 벨라는 “루에게는 저희보다 나은 부모는 없다.”고 자신합니다. 루에게는 엄마가 최고의 ‘리스너(Listener)’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하다고 사랑까지 가난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아이는 파는 물건이 아닙니다.”라는 벨라의 말이 아픕니다.

 

중요한 것은 제도가 아닙니다. 편견과 오만함을 버리고 ‘한 마리 잃어버린 작은 양’도 찾아서 함께 하려는 진실하고 따뜻한 마음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벨라 가족의 비극은 언제, 어디서든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4)라고 하셨습니다.

 

[2022년 3월 6일 사순 제1주일 서울주보 4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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