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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43: 성녀 소화 데레사의 생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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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3-21 ㅣ No.780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43) 성녀 소화 데레사의 생애 ③


병고 · 신앙의 유혹 겪으며 ‘좋으신 하느님’께 의탁

 

 

- 가르멜 수녀원 시절의 성녀 소화 데레사.

 

 

네 자매의 가르멜 생활

 

성녀 소화 데레사는 1888년 4월 9일, 만 열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리지외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해서 1897년에 세상을 뜨기 전까지 약 10년간 수도 생활에 정진했습니다. 소화 데레사의 수도 생활에서 좀 특이한 점을 꼽는다면, 성녀가 입회한 리지외 가르멜 수녀원에는 이미 소화 데레사의 큰 언니인 마리아와 둘째 언니인 폴리나가 입회해서 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소화 데레사가 입회한 지 몇 년 후에는 마지막 남은 바로 위의 언니인 셀리나도 입회했습니다. 그래서 리지외 수녀원에는 네 자매가 함께 사는 독특한 상황이 벌어지게 됐습니다. 

 

피를 나눈 친자매들이 같은 수녀원에서 함께 살면 좋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게 되면 더 어렵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면 언니나 동생이 다른 수녀들과 마음 상하는 일을 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사실 그렇게 고생하는 친자매를 보면서도 도와줄 수 없는 게 수도 공동체 생활의 현실입니다. 오히려 인간적인 정에 더 끌리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고 옷깃을 여미며 마음을 다스리는 가운데 순수한 사랑으로 모든 공동체 회원들을 공평하게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소화 데레사는 수녀원에 입회한 후 예전에 비해 오히려 더 언니 수녀들로부터 차갑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동생이 수녀원에 들어와서 제대로 살려면 어린아이나 할 법한 미숙한 습관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언니들이 소화 데레사에게 좀 차갑고 모질게 대했기 때문입니다.

 

 

성성(聖性)을 향한 지름길을 찾다

 

어쨌든 소화 데레사는 1888년 15살의 나이에 수녀원에 입회해서 그 이듬해인 1889년 수련을 받고 1890년 9월 8일에 수도서원을 발했습니다. 성녀는 참 영민하고 독창적인 여인이었습니다. 성성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 어떤 길이 지름길인지 끊임없이 찾고 발견했던 혜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0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수도 생활이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빨리 성덕에 진보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성녀는 입회할 당시 가져온 수첩에 적어 놓은 여러 성경 구절들을 틈틈이 묵상하면서 많은 빛을 받았다고 합니다. 19세기 말이면 2차 바티칸 공의회 훨씬 이전 시대라 보통 사람들이 성경을 쉽게 접하기가 좀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성녀는 이런저런 기회에 틈틈이 메모해 둔 주옥같은 성경 구절을 모아둔 수첩을 자주 꺼내보며 묵상하면서 영적인 빛을 받곤 했습니다. 서원한 지 3년 후인 1893년부터 임종하기 전까지 성녀는 부수련장 소임을 맡아 공동체를 위해 봉사했습니다. 성녀는 이 소임을 통해 수련장 수녀님을 도와 수련 수녀들의 교육을 맡아 동반했으며 이 과정에서 특히 자신의 독창적 영성을 담고 있는 ‘작은 길’을 발견하고 이를 몸소 실천하며 가르쳤습니다.

 

 

병고와 신앙의 어두운 밤을 거치다

 

그리고 1895년 6월 9일 성녀는 “자비로운 하느님 사랑에 자신을 제물로 봉헌하는 기도문”을 작성하고 그 사랑에 자신을 봉헌하게 됩니다. 또한 그로부터 닷새 후에는 ‘사랑의 상처’라는 신비적인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듬해인 1896년 사순절에 성녀는 첫 번째로 각혈을 하게 됩니다. 당시 성녀가 걸린 병은 폐결핵이었습니다. 지금이야 결핵하면 거의 퇴치된 데다, 걸린다 하더라도 치료 가능한 병으로 분류되지만, 19세기 말에 결핵은 불치병에 속했습니다. 그해 사순절부터 각혈을 하면서 성녀는 자신에게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직감적으로 알게 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런 육체적 고통에 더해 성녀를 괴롭힌 것은 신앙을 거스르는 유혹이었습니다. 당시 성녀는 지독한 병고 속에서 과연 하느님이 계시는가, 천국은 있는가 하는 신앙의 근본 진리들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가졌다고 합니다. 

 

이 신앙의 어두운 밤은 죽기 전까지 계속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녀는 이 모든 유혹과 병고를 신뢰와 사랑 안에서 받아들이는 가운데 자신이 발견하고 수련 수녀들에게 가르쳐왔던 ‘작은 길’을 끝까지 걸어갔습니다.

 

 

성녀이자 교회 박사 그리고 선교의 수호 성인

 

생의 마지막 시기에 이르러 성녀는 특히 예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사도적인 열성, 그리고 ‘좋으신 하느님’께 대한 자녀적인 의탁에 있어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도 천상에서 장미 꽃송이를 뿌리면서 영혼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강한 원의를 품게 됩니다. 이렇듯 성녀는 병마와 싸우다 1897년 9월 30일, 24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성녀가 임종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그간 원장 수녀의 명으로 소화 데레사가 병중에 자신의 생애에 관해 썼던 글들이 가르멜 수녀들을 비롯해 많은 신자들 사이에 읽히는 가운데 큰 감명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갈수록 소화 데레사의 글은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빛을 전해 주었습니다. 결국 소화 데레사는 죽은 지 채 30년도 되지 않아 1923년 4월 29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고 그로부터 2년 후인 1925년 5월 17일 시성되었습니다. 

 

또한 그로부터 2년 후인 1927년 12월 14일에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함께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됐고, 선종한 지 100주년이 되던 1997년 10월 19일에는 마침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교회 박사로 선포되었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3월 20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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