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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한국 사회와 여성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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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3 ㅣ No.479

한국사회와 여성의 위치

 

 

I. '여자들 살기 좋아진 세상‘

 

얼마 전 어느 텔레비전 화면에 전쟁 직후의 폐허 더미에서 미군들의 빨래를 해주고 돈을 버는 여성들, 땔감으로 쓰려고 허물어진 가옥에서 창틀을 뜯어내려고 애쓰는 여성들의 모습이 소개되었다. 출연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60세가 훨씬 넘은 한 여성은 그 장면을 보면서, 요즘은 얼마나 여자들이 살기 좋아졌느냐, 단추만 누르면 난방이 되고, 수도꼭지만 틀면 찬물,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지지 않느냐고 감격에 겨운 어조로 말했다.

 

딱히 들어맞는 비유가 될지 모르지만, 여성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부딪히는 문제 중의 하나다 바로 이런 시각이다. 여자들 살기가 얼마나 좋아졌는데 자꾸만 욕심을 내느냐, 나라가 잘살게 될수록 여자들은 저절로 잘살게 되기 마련이니 제발 시끄럽게 굴지 말고 가만히 기다려라, 혹은 한국 여성들처럼 큰소리치며 사는 여성들도 없다, 남편이 월급을 봉투째 갖다 주다 못해 이제는 온라인으로 꼬박꼬박 아내에게 직송하는 나라가 또 어디 있느냐, 게다가 요즘 유행하는 ‘간 큰 남자 시리즈’ 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갈수록 남자들은 왜소해지고 여자들은 뻔뻔해지지 않느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물론 광복 이후 반세기를 겪어오면서 여성의 삶이 점점 나아져왔으며 나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산업화와 더불어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여성의 수도 급증하였으며, 출산 자녀의 수가 감소하는 등 가족 규모의 변화, 그리고 교육 기회의 확대로 인한 의식의 변화 등으로 자아 실현의 욕구도 점증하였다. 그러나 경제가 발달할수록 여성들의 삶이 저절로 나아지는 것은 아니며 또한 오늘날 한국 여성들의 지위가 남성들이 겁낼 만큼 단단해진 것도 아니다.

 

그 동안 꾸준히 지속되어온 여성들 스스로의 노력과 이에 따른 법 제도의 정비 등으로 남녀평등의 이념은 사회적으로 널리 확산되었으나 아직도 한국의 여성들은 곳곳에서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제한을 받고 있으며 차별을 당하고 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여성들은 성 차별적인 사회 구조와 전통적인 가치관에 구속된 채 당당한 주체로서의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우리 사회의 남성들 역시 자유롭게 해방된 삶과는 거리가 멀게 살고 있지만, 여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위를 차지하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II. 가정 안에서 여성의 자리는

 

금년 초 김영삼 대통령이 모 여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연설한 내용을 들어보면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이중 구속의 단면을 엿 볼 수 있다. 연설의 요지는 한국이 세계화 시대에 낙오하지 않으려면 여성이 사회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흔들리는 가정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본격적인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던 1960년대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가족이 위기에 처해있다는 소리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위기의 개관적 증거로서는 흔히 이혼율의 증가(결혼 일곱 쌍에 이혼 한 쌍), 독신 율의 증가, 청소년 비행의 폭증, 노인 소외 문제 등이 거론되며, 위기의 근원은 전통적인 확대 가족이 급격히 붕괴하고, 핵가족이 보편화된 현상에서 찾는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의 밑바탕에는 여성의 역할 변화를 가족 위기의 주원인으로 단정하는 성향이 깔려있다.

 

다시 말하면 여성의 사회 참여로 인한 여성 역할의 변화가 가족 문제를 일으키는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끔찍한 형태의 청소년 폭력이나 성범죄와 같은 사건이 발생할 경우, 대부분의 영향력 있는 대중 매체들은 전문가의 입을 빌려, 문제 발생의 원인을 “핵가족화와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인하여 가족이 공동화되고 있기 때문에......” 라는 식으로 단순화시키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가고 있다. 

 

핵가족화나 여성의 사회활동 참여는 필연적인 추세이다. 그러므로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에 관련된 모든 문제를 여성의 역할 변화에 돌리는 식의 이런 이중성은 여성들로 하여금 끊임없는 역할 갈등에 빠뜨리게 만든다.

 

사회 변화에 따라서 가족관계도 변하게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핵심적이라고 할 부부간의 역할도 변하게 마련인데 가장 중요한 변화의 방향은 지배와 종속의 관계에서부터 평등한 동반자 관계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무슨 일이나 남편이 일방적으로 주도하고 아내는 무조건 따르기만 하던 관계에서 부부가 서로 의논하는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엄격한 성별 역할관, 즉 아내는 집안에서 살림을 도맡아하고, 남편은 바깥에서 생계 책임자의 역할을 전담해야 한다는 역할 구분이 부인도 선택적으로 취업하고 남편도 가사에 관여하는 식으로 생각이 바뀌는 중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의식이 변하는 여성들과 이러한 변화를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남성 사이의 틈은 남성이나 여성에게 많은 갈등과 고통을 느끼게 만든다. 특히 여성들의 고통이 더 심하다.

 

그 결과 한국의 가족관계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외형상으로는 적어도 평등하고 상호간의 협력을 원칙으로 하는 부부 중심의 핵가족 형태를 유지하지만, 아직도 그 내부에서는 가족 구성원 상호간, 특히 부부간에 있어서는 지배, 복종 관계에 이으며, 가정 안에서 아내들은 대부분 정신적, 육체적으로 남편에게 종속되어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내가 취업을 했건 안 했건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전업 주부들은 자아 실현을 포기한 대가로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면서 그들을 통해 대리 성취감을 맛보려 하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는 점점 더 개인의 자아 성취를 강조하기 때문에 여성이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느끼는 회의와 갈등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남성들은 여성의 노력과 희생에 대해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갈등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최근까지 여성의 가사노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전업 주부들은 심각한 역할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취업 주부들은 바깥일 이외에도 가사 노동을 전담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에 허덕이게 되는데 심지어는 취업을 했다는 사실이 남성의 권위를 손상하는 행위로 해석되어 오히려 더욱 종속적인 부부관계를 맺게 되기도 한다.

 

많은 전업 주부들이 집안일 만 하는 데서 비롯되는 권태감, 무력감을 호소하는 것과는 달리 취업 주부들은 양쪽 일을 제대로 못해내고 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가정과 직장 일을 다 완벽하게 하는 이른바 ‘슈퍼 우먼’ 은 말 그대로 특출한 여성에게나 가능하지 보통 여성들에게는 현실적으로 매우 무리한 요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왕 바깥일을 하려면 ‘슈퍼우먼’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취업 주부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되풀이되는 이야기이지만 한국사회는 여성의 사회 참여를 요구하면서도 그것을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 마련에는 소홀했던 만큼, 여성들은 육아와 교육 문제에서도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 취업 주부를 위한 탁아 정책은 최근까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바깥일을 하는 여성들은 능력과 여건에 따라 개인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했다. 따라서 많은 여성들이 출산과 더불어 가정으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되었고 이러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은 ‘여성의 미덕’으로 칭송 되가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직업 의식의 결여’란 이름으로 여성들을 평가 절하하는 척도로 이용되어왔다.

 

또한 오늘날 자녀 양육의 내용에는 단순히 육체적, 정신적 성장을 돕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교교육에서도 성공해야 한다는 요구가 들어있다. 쉬운 말로 ‘자녀의 성적은 곧 어머니의 성적’으로 간주되다. 출세주의와 학력 지상주의의 풍토, 그리고 경제 성장의 과정에서 외면되어온 열악한 교육 환경이 맞물려 자칫 어머니들은 ‘치맛바람’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중년 여성들의 삶에서 가장 중대한 긴장의 요인은 바로 자녀의 교육 문제를 들러 싼 이러한 문제들이다.

 

전통적으로 가족 문제 중 가장 심각한 여성 문제로 꼽혀왔던 고부관계는 사회 변화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전 세대에서는 일방적으로 시어머니에 의한 며느리에 대한 지배였으나 오늘날에는 쌍방 또는 역방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 요즘 시어머니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며느리 시집살이’ 를 들 수 있다. 즉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수동적으로 시집살이를 하던 과거의 입장에서 오히려 시어머니에게 불리한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III. 일터에서 부딪치는 문제들

 

1960년만 해도 26.8%에 지나지 않던 여성의 취업률이 1992년에는 47.3%에 이를 정도로 바깥일을 하는 여성들의 숫자는 계속늘고 있다. 그리고 산업화 초기에는 취업여성의 절대 다수가 저연령의 미혼 여성들이었으나 1980년대 이후부터 기혼 여성들의 비율이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하여 1989년에는 기혼 여성의 수가 미혼 여성을 앞지르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 여성의 취업률은 동남 아시아 지역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우리가 선진국의 문턱에서 주춤거리게 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여성 취업률의 저조 현상도 그 중요한 원인이라고 한다.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주부의 80%, 여대생의 98%가 취업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성들은 이제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따라 자신의 삶은 선택하고 싶어하며 가정과 직장의 양립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평생 직업을 갖고 싶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대졸 여성의 취업률은 세명 중 한 명에 불과하며, 주부들이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살릴 수 있는 직장을 얻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성들은 취업하기도 어렵고 취업을 지속하기도 어렵다. 1980년대 후반 들어 여성취업에 대한 제도적 차별은 남녀 고용 평등법의 시행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이직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논리 아래 여성을 능력 본위가 아니라 용모 본위로 채용하는 관행은 끈질기게 남아있다. 이러한 고용 관행은 상업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에게 전문 기술을 배우기보다 성형 수술을 받는 쪽이 더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취업 기회의 제한과 더불어 아직도 여성들은 임금 면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다. 현재 여성들이 받는 평균 임금은 남성들의 절반밖에 되지 않으며 많은 여성들이 자기 한 몸의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있다. 최근 들어 남녀 구별 없이 단일 호봉 제를 적용하는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극소수의 대기업이나 은행 등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여성들이 많이 취업하고 있는 중소 기업이나 영세 기업에는 요원한 꿈일 뿐이다.

 

우리 사회는 남녀의 임금 차별에 대하여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왜냐하면 남성들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임금을 많이 받아야 하지만 여성들은 자기 한 몸을 위해 쓰거나, 기혼 여성의 경우라 할지라도 기껏 반찬 값 내지 용돈이나 벌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관념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혼이나 사별 등의 원인으로 여성이 가장 노릇을 하는 가구가 점점 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임금 차별은 하루속히 사라져야 한다. 

 

직종에 있어서도 여성은 불리하다.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이른바 전문직이나 행정직에 진출하는 여성은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여성들이 판매직, 사무직, 생산직, 서비스직에 몰려있다. 

 

마지막으로 임시직이나 시간제 취업이 늘어나는 문제로서 이는 최근 기혼 여성들의 취업률 증가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성들이 집안일 을 전담하면서 별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보니, 자연적으로 임시직과 시간제 일을 선호하게 되고 일부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미래 지향적인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전문직 이외에는 대개 불안정하며 임금도 낮은 종류의 일들이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생계유지의 책임을 떠맡지 않아도 되는 중산층 고학력 여성들의 취업률이 매우 낮게 나타난다.  사회적으로 사장되고 있는 고학력 여성 인력의 문제는 당사자들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기업체에서는 왜 여성들을 채용하기를 꺼리는가. 그 이유로는 여성들의 직업 의식이 투철하지 못하다는 점, 그리고 현행법상 여성 보호 규정이 너무 엄격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 거론된다.

 

여성의 직업 의식이 낮다는 이유에 대해서 현재로서는 수긍할 수밖에 없다. 여성들을 쓰려고 해도 기본적인 자세와 능력을 갖춘 경우가 드물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서툴고, 또 직장에 나와서도 가정 일에 신경을 쓰는가 하면, 이제 쓸 만 하다 싶으면 가정 일을 핑계로 쉽게 사표를 던진다는 이야기들이 조금도 과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업의식의 결여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만 돌리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하는 처사이다. 즉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여성의 자리는 가정이며, 직업을 갖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차적인 역할이어야 한다는 뿌리깊은 관념과 더불어 산업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육아 문제나 노인문제 같은 것을 제도적으로 해결해 주려는 노력 없이 이를 모두 각가정에서 알아서 책임져야 한다고 밀어놓은 정책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여성 채용시 재정적 부담이 더 크다는 인식도 여성의 모성 역할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한 우리 사회 전반의 분위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Ⅳ. 여성을 괴롭히는 성문화

 

요즈음 들어 성희롱이나 성폭력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드디어 1994년 4월 1일부터는 ‘성 폭력범죄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성문화가 지나치게 남성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들이 일상적인 삶을 사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이다. 

 

간혹 예외적인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성 윤리는 남성과 여성에 대해서 이중 규범을 적용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똑같은 행위에 대해 남성에게는 허용하는 반면 여성에게는 금지한다.

 

가장 단적인 예로서 순결에 대한 관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남성의 외도는 결혼 전과 후를 막론하고 관대하게 받아들여지지만 여성의 경우 순결은 목숨보다 중요한 의무로 강조되어 왔다. 심지어는 강제에 의한 순결 상실조차 여성의 잘못으로 규정되어, 이런 순결 관을 역이용한 자들에 의하여 몇 년 전에는 법률 용어에도 없는 ‘가정파괴범’이라는 범죄가 양산되기도 하였다. 이중 규범은 성욕의 표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남성의 성욕 표현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대부분 문제가 있다는 시각으로 본다. 따라서 겉으로는 성이 개방된 듯한 분위기이지만 보통 여성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여성다운 여성이라면 성에 관한 한 내숭을 떨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 규범은 결국 여성의 상품화와 성폭력의 만연 현상을 초래한다. 여성의 직접적인 상품화라고 할 매매음에 대해서 이른바 ‘윤락행위 등 방지법’은 공식적으로 그것을 불법화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매매음은 광범위하게 확산되어있다. 이 법은 그 적용에 있어 매매음자 모두를 처벌하도록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고 여성들만이 처벌대상이된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중 매체를 통한 간접적인 상품화 현상이다. 어떤 이들은 여성의 아름다운 몸매를 보여주는 것은 인간의 미적 감정의 표출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을 대상화시키면서 상품을 사도록 부추기는 행위는 인간성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성폭력의 증가 현상 역시 남성 위주의 성문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남성의 성욕 표현에 관대한 분위기, 그리고 성범죄에 관한 한 여성 쪽을 비난하는 관행, 범죄의 고발에서 재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개재되어 있는 편견 등이 성 폭력에 대해서 여성들이 과감하게 맞서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1993년 국내 최초의 성희롱 죄에 대한 법률 소송 사건이 된 ‘서울대 교수에 의한 조교 성희롱 사건’ 은 이러한 성문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계기를 마련했다. 성희롱은 남녀가 함께 일하는 직장에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일이며 성적인 농담이나 가벼운 신체적 접촉 같은 것은 오히려 직장생활의 활력소가 된다는 통념이 지배적이었다.

 

성희롱이 반복되다 보면 여성들은 처음에 느끼던 가벼운 수치감에서 점점 심한 정신적. 육체적 증상을 앓게 되고 나중에는 일할 의욕을 잃고 결국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앞으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날 것은 확실한데 이러한 성문화가 지속된다면 결과적으로 여성들의 일할 권리를 방해받는 셈이다. 성희롱 문제가 개인적인 차원을 더나 사회적인 문제로 제기된 까닭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V. 여성의 힘이 요구되는 시대

 

가정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여성들이 겪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여성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법의 제정과 개정을 목표로 꾸준히 노력해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성과는 남녀고용평등법의 제정(1987년)과 가족법의 개정(1989년)이다. 남녀고용평등법은 고용 시의 성 차별적인 요소들을 제한하도록 명시하여 고용에서의 남녀 평등 원칙을 세워놓았다. 그리고 세차례에 걸친 가족법의 개정은 남녀의 불평등한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부부간의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 두 가지 법령이 축이 되어 영유아 보육법이나 성폭력 관련법이 제정되는 등 여성을 위한 정책이 추진되었다.

 

서서히 여성을 둘러싼 환경이 점점 좋아지고 있음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만약 광복 이후부터 정책 결정 과정에 여성이 참여했다면 이러한 개선의 속도는 훨씬 빨랐을 것이다. 예를 들어 탁아 정책과 노인 정책은 산업화와 더불어 동시에 진행되어 지금쯤은 상당히 진척되었을 것이다. 정신대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문제를 피부로 느낄 수 없었던 남성들이 정책 결정을 독점하게 놓아두었던 것은 여성들의 정치 무관심 때문이다. 

 

광복 이후 50년 동안 가장 변하지 않고 낙후된 상태로 있는 것이 여성의 정치 진출 분야이다. 현재 국회의원 가운데 여성 의원은 지역구 한 면과 비례 대표 네 명을 합쳐 겨우 다섯 명으로 전체의 1.6%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여성들의 평균 학력은 중학교 졸업으로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의석 점유율은 세계 178개 나라 가운데 113위로 최하위 권에 속한다. 지난 6월의 지방 자치 선거를 통해 지방 의회에 지출한 여성의 수도 전체의 2.2%를 차지하는 1백 28명(비례 대표 42명)에 불과하다.

 

여성들의 정치 참여율이 이렇게 낮은 것은 우리의 정치 풍토가 여성을 배제하는 쪽으로 이루어져있다는 점과 여성들의 소극성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세계화와 지방화 시대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정치는 이제 구호가 아니라 삶이다.

 

여성의 지위 상승, 나아가 자기 실현이라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가 부딪히고 있는 위기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여성들이 자기 속에 숨어있는 잠재력을 발휘할 때가 되었다. 사실 그 동안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진 수많은 사회 병리적 현상들은 한마디로 오로지 경제 성장을 위해서하면 그 밖의 모든 것은 버려도 좋다는 성장 제일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으로의 시대는 양이 아니라 질이 중요시되는 사회이니 만큼 이제 우리는 자신이 버렸던 것들을 되찾아서 되살리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생명에 대한 존중이다.

 

물론 생명 존중의 원리를 되살리는 일을 여성만이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여성들이 사회의 중심부로부터 소외되어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해왔던 일들이 바로 생명 되살리기와 같은 성질의 일임에는 틀림없다. 여성들이 해왔던 살림이 바로 그런 일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여성의 힘을 필요로 하고 있다. 여성들이 과연 얼마나 능동적으로 사회 변화에 대처하느냐에 따라 여성 자신의 미래, 그리고 우리 사회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사목, 1995년 8월호, 박혜란(이화여자대학교 강사, 여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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