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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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윤리] 욕망과 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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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2-08 ㅣ No.1286

[복음살이] 욕망과 절제



2013년 ‘자기절제사회’(민음사)를 펴낸 미국의 칼럼니스트 대니얼 액스트는 오늘날은 ‘유혹 과잉 시대’이며 그에 반해 자제력 부족은 생존을 위협하는 강력한 요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의 주장은 이러합니다. 담배, 술, 음식, 섹스 등 전통적인 쾌락의 유혹은 물론 기술의 발달로 텔레비전, 인터넷, 자동차, 신용카드 등 새로운 유혹 거리와 그것들을 즉각적으로 충족시킬 수단들이 엄청나게 많이 생겨나는 것에 비해 이러한 유혹에 저항할 수 있는 자제력을 발휘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더구나 모든 것이 빨라진 현실은 심사숙고할 틈을 주지 않고 충동에 대해 즉각적인 만족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자제력이 약해지고 심지어 건강과 생명을 해치는 심각한 중독이나 질병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뜨끈뜨끈 맛있는 치킨에 대한 욕구와 실제 프라이드치킨 한 마리 사이의 잠정적인 거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털을 뽑고, 튀김옷을 입히고, 기름에 튀겨 내고, 뒷정리를 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사이에 치킨이 뱃살과 동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재고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표현처럼 현대인들은 이제 전화 한 통이면 거의 수고와 시간을 들이는 않는 현실에서 밤늦게 뜨끈뜨끈한 치맥을 즐기고 싶은 유혹을 거부하기 어렵게 되었고, 그 결과 늘어나는 뱃살을 나중에 감당해야 하지만 당장은 그것을 고려하는 자제력은 더욱 약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유혹의 과잉과 자제력, 곧 자기 절제의 부족이 초래한 부정적인 결과들은 우리의 ‘우아하게 살고자 하는’ 삶의 목표를 좌절시키는 것은 물론 목숨까지도 위태롭게 합니다. 미국에서는 흡연, 잘못된 식습관, 과음, 위험한 성관계 탓에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사망하는데, 이는 미국 전체 사망률의 50%에 육박하는 숫자이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미국 사망자 수 40만 명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숫자입니다.

서구와 같이 풍족한 환경에서는 “집착에 빠질 수 있는 기회가 넘쳐 나는”데 반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일종의 ‘병’이거나 환경의 영향이라고 합리화 하면서 자신의 의지와 책임을 약화시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자기 절제를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해

그러나 저자는 이제 자기절제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도록 촉구합니다. 인간은 의식적인 개입 없이 본능적으로 끌리는 1차적 욕구가 있지만, 또한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선호하는 2차적인 욕구가 있어 1차적 욕구를 억누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생명체와 달리 인간만이 지니는 ‘의지’이며, 따라서 저자는 생존과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본인의 의지로 감정, 욕망, 또는 행동을 절제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자기 절제’의 힘을 키우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이성의 힘만으로 열정을 압도할 수 없기 때문에 일종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그리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오디세우스’ 이야기를 바로 유혹을 극복하는 자기 절제의 대표적인 예로 제시합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를 점령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세이렌의 매혹적인 노래에 홀려 바다에 뛰어들지 않도록 부하들에게 자신을 돛대에 묶으라고 명령합니다. 이런 자제력을 위한 사전예방조치는 매우 효과적인데 이를테면 저칼로리를 유지해야 하는 여성이 아이들에게 간식을 준 후 자신의 손톱에 잘 마르지 않는 매니큐어를 칠하여 과자 봉지에 손을 넣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자기 절제를 키우는 방법으로 운동을 통해 근육을 키우듯이 의지를 훈련하는 ‘의지 근육 만들기’, 자신을 거울처럼 비추고 자신의 절제를 지지해 줄 수 있는 인간관계 활용하기, 자신을 유혹하는 요소를 없애고 2차적 욕구를 강화하도록 환경을 바꾸기, 좋은 습관 만들기,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동기를 부여하는 바탕이 되는 절제를 통해 추구하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이고 이상적인 비전 세우기를 조언합니다.


자기 절제는 오래된 그리스도교 덕목 중 하나

현대인에게 강조되고 있는 자기 절제는 사실 오래된 그리스도교의 덕목 중 하나입니다. 덕이란 “선을 행하고자 하는 체질화된 확고한 마음가짐”(가톨릭교회 교리서 1803항)인데, 절제는 그리스도교에서 중추적 구실을 하는 네 가지 덕, 즉 ‘사추덕(四樞德, four cardinal virtues)’이라고 부르는 지혜, 정의, 용기, 절제 중 하나입니다.

교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절제는 쾌락의 유혹을 조절하고 창조된 재물을 사용하는 데에 균형을 유지하게 해주는 윤리적 덕이다. 절제는 본능에 대한 의지의 억제력을 보장하고, 욕망들을 성실의 범위 안에 묶어둔다. 절도 있는 사람은 그의 감각적 욕망이 선을 향하게 하고, 건전한 조심성을 지킨다”(1809항). 이러한 덕은 “교육과 심사숙고한 행동과 노력하며 늘 다시 시작하는 끈기로 얻게” 되며, “하느님의 은총으로 정화되고 고양”됩니다(1810항).

십계명에서 9계명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육체의 탐욕을 금하고, 10계명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는 물질적인 탐욕과 집착을 경계하는 가르침으로 해석됩니다. 인간 안에는 항상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 사이의 긴장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결코 육적이고 감각적인 욕망으로는 결코 온전히 만족할 수 없는 영적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을 갈망하는 영적 존재인 인간은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즐거움으로는 결코 충만해 질 수 없습니다. 더구나 정도를 넘어서는 욕망은 자신을 파멸로 이끌 뿐 아니라, “마땅히 타인에게 주어야 할 것을 부당하게 탐하도록” 만들고 부정한 행위와 시기심으로 이웃에게 해를 끼치기도 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536-2540항).

따라서 절제는 오늘날 같이 욕망의 충족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각종 중독으로 인한 폐해를 경험하는 우리 시대에 절실히 요청되는 덕목입니다. 절제의 덕은 성(性)윤리에서는 ‘정결’의 덕으로 표현됩니다. 정결은 “성이 인격 안에 통합되어 있음”을 뜻하는데, 인간이 자신의 “맹목적인 본능이나 외적 강박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인격적인 내적 동기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인격적 존재로서의 품위를 드러내게 합니다.

동양사상에서 절제는 ‘예(禮)’ 혹은 ‘중용(中庸)’의 덕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자신의 욕구와 행위에 있어서 모자라거나 지나치지도 않은, 그야말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해 주신 본성에 맞게 가장 적절한 위치를 찾아가게 하는 덕목, 이 절제의 덕이야 말로 오늘날 우리가 하느님께 청해야 할 은총인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자기절제사회’의 저자가 강조한 ‘오디세우스’의 돛대는 성사와 영성생활에 충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거룩하고 초월적인 것을 추구하는 인격적 존재이기에, 세속적인 욕망이 일시적인 즐거움을 줄지는 몰라도 금방 사라지는 유한한 것이라는 한계를 깨닫고, 영성생활에서 주어지는 은총의 충만함과 영원한 기쁨을 항상 갈망하고 인식하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여, 우리의 마음은 당신을 향하도록 창조되었기에 당신 안에 쉬기까지 편할 날이 없습니다.”(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2월호, 박정우 후고 신부(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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