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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영지주의: 그리스도교에 위협준 정신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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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0 ㅣ No.52

[교부들의 가르침] 영지주의


그리스도교에 위협준 정신 운동

 

 

영지주의는 2~3세기 그리스도교에 가장 위협을 준 정신적 운동이었다. 영지주의는 다양하고 개별적으로 매우 세분화된 체계에서 발생하였다. 영지주의는 바빌론의 점성술, 이란의 이원론, 이집트 또는 헬레니즘의 종교혼합주의,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언어, 철학, 신화, 밀교적 신비를 받아들였다.

 

영지라는 말은, 그리스 철학에서 학문의 연구나 비판을 통해 얻는 통찰력이나 쿰란 공동체에서 하느님 율법에 대한 참된 인식인 지식을 뜻하지 않는다. 영지주의자 테오도투스의 글을 영지의 정의 내지 영지와 관련된 질문들로 인용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였는가? 우리는 무엇이 되었는가?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던져졌는가? 우리는 어디로 급히 가며,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운가? 탄생은 무엇이며, 재생은 무엇인가?"(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테오도투스 78에서 발췌).

 

영지주의 핵심은 인간의 현존이 근간을 이룬다. 곧, 인간이 어떻게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으며, 거기에서 어떻게 해방될 수 있는지가 문제였다. 이러한 영지주의 근본체험을 객관화한 설화는 대략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다. "미지의 하느님이 그의 신적 배우자로 생각되는 소피아(지혜)와 함께 여덟 개로 이루어진 하늘에 거주한다. 하느님과 소피아는 여덟 개 하늘의 주민인 천상의 자식들을 낳았다. 소피아가 어느날 신적 남편 없이 자식을 만드는데, … 그가 데미우르구스이다. 데미우르구스는 맨 먼저 다른 여섯 하늘들의 통치자를 만들어 냈다. 하느님과 소피아를 제외하고 첫 번째 통치자인 데미우르구스를 비롯한 일곱 통치자들은 이제 물질로 세속적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였다. 그러나 인간은 벌레처럼 땅에서 기어다녔으며 일어설 수 없었다. 그때 미지의 하느님은 자신의 빛의 세계에서 인간 육체에 영혼을 보냈다. 인간은 일어서서 통치자들이 세상을 창조했음을 깨닫고, 자신의 영혼이 통치자들 위쪽에 있는 빛의 나라에 속했음을 알게 된다."

 

영지주의 여러 체계에서 발췌하여 꾸며낸 이러한 신화에서는 영지주의의 전체 신학, 우주 진화론, 인간진화론, 구원론, 종말론이 원(原) 상태에 있다. 신화적 설화들의 내용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풍부해졌고, 점점 더 세련되고 논리적으로 변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미지의 하느님은 영의 세계만 지배하고 물질의 세상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신이다. 그들은 영의 세계를 어떤 물질적 요소도 존재하지 않는 플레로마 세계(영의 세계 또는 충만함의 세계)라고 부른다. 고대 후기의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고향인 플레로마 세계에서 물질세계로 떨어져 육체와 물질의 어두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여겼다. 따라서 영지주의자는 근본적으로 이 세상에서 정처없이 떠도는 존재로서의 체험을 하게 된다. 인간은 자유롭지 못하고 노예로 살아야 하지만 이 상태가 계속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챈다. 이 때문에 인간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은총이 아니라 영지를 통해 내적으로 인식되는 구원을 갈망한다.

 

영지주의 구원론의 주요 관심사는 세상의 악, 인간이 세상에 처한 상황, 인간의 구원 가능성이었다. 영지주의 또 다른 학설체계에 따르면 구원은 물질세계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미지의 하느님에 의해 이루어진다. 태고에 인류의 타락으로 미지의 하느님과 다른 물질세계에 속하는 데미우르구스(구약의 하느님)가 세상을 창조하였다. 이 때문에 데미우르구스가 창조한 세상은 본디 악하다. 인간은 참된 본성에 따라 미지의 참된 하느님과 본질적으로 같으나 인간 안에 있는 신적 섬광은 세상에 얽매어 있는 물질적 육체로 말미암아 데미우르구스에 예속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의 동경과 목표는 물질에서 해방과 선택받은 사람들에게 유보된 영지를 통해서만 이를 수 있는 참된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구원은 신적 섬광을 지니고 있는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부 선택된 이들에게 제한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보편적 구원론과 상반된다.

 

영지주의자들은 우주론적 인류의 타락이 그들을 비천한 처지에 빠뜨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물질세계에 떨어진 자신들의 상황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영과 육에 관한 영지주의의 이원론적 근본확신은 서로 다른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곧, 모든 육식과 성행위를 금하는 극단적 금욕주의, 이와는 정반대로 육체는 전혀 쓸모 없는 것이기에 음란한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윤리적 방탕주의가 그것이다.

 

교회가 생성되는 시기에 영지주의 지도자들의 학설체계는 눈에 띄게 많은 점이 일치한다. 곧, 세상에서 타향인이라는 깨달음 및 죄로 말미암아 인간이 소외되었다는 깨달음, 구원에 대한 갈망, 예수를 하늘에서 내려오고 하느님께 돌아간 계시자로 보려는 시도 등이다. 교회와 영지주의의 논쟁은 그들이 영적으로 유사하다는 관점에서 오랫동안 피할 수 없었다. 논쟁은 처음에 서로 주고받는 국면이었으나, 그 뒤에는 격렬한 대결로 이어졌다. 이 두 국면은 이미 신약성서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영지주의 사상은 고린토 공동체에서도 감지된다. 특별한 지혜에 대한 고린토인들의 열망, 물질적 인간이 아니라 영적 인간이라는 자의식, 끝으로 영지는 교만하게 하고 사랑만이 교화한다는 사도의 경고(1고린 8,1)도 영지주의의 암시로 이해할 수 있다. 1고린 2,6~9의 논제들도 명백히 영지주의의 색채를 드러낸다. 시대가 지나면서 신약성서 학자들은 영지주의 사상에 몰두하였을 뿐 아니라 골로사이서의 플레로마-그리스도론이 보여 주듯이(골로 2,8~10), 영지주의자들의 모순에 도전하기 시작하였다. 2세기 초에 씌어진 사목서간들은 더 이상 영지주의와 신학적 논쟁을 하려 하지 않았다. 디모테오서는 다음과 같은 경고로 끝맺는다. "디모테오, 그대가 맡은 것을 잘 간수하시오. 속된 잡담과 이른바 '인식'의 그릇된 가르침을 멀리하시오"(1디모 6,20).

 

2세기 교회는 영지주의와 같은 신학적 수준에서 논쟁할 수는 없었지만 신학은 미래지향적 길로 가고 있었다. 교회는 유일한 구원원리로서의 영지를 비난하였지만 사변적 인식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합리적인 신앙을 주장하였다. 교회는 전승된 계시에 대한 신학적 발전을 통해 신앙을 다른 종교적?철학적 인식들과 관련시키면서 동시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명료하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오늘날에도 구원은 죄에서 해방이 아닌 인간 안에 내재하는 신성을 깨닫고 그 신성을 여러 방법으로 실현시키려는 뉴 에이지 운동도 현대적 영지주의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가톨릭신문, 2003년 2월 16일, 하성수 박사(한님성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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