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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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영성심리: 영성이 뭔지 잘 몰라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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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3-27 ㅣ No.1927

[영성심리] ‘영성’이 뭔지 잘 몰라도 괜찮습니다

 

 

다시 영성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영성’을 ‘하느님과 함께 있는 삶’이라 말씀드렸고, 느끼고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하는 일상의 심리 차원과 연결하여 영성을 경험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아직도 영성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분이 계실 것 같습니다. 사실, ‘영성’이 뭔지 잘 몰라도 괜찮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영성이라는 말마디 자체의 뜻은 단순하거니와, 더 중요한 것은 영성이 뭔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영성을 사는 것이니까요.

 

예전 어느 방송국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에서 ‘서양인은 명사로 세상을 보고, 동양인은 동사로 세상을 본다.’는 내용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이를 영성에 대입하면, ‘영성’(명사)이라는 개념을 먼저 이해한 후에야 영적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과 ‘영적으로 사는’(동사) 것을 통해 영성이 뭔지 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 사이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꼭 동양의 사고방식이어서가 아니어도, 이 중에서 두 번째가 더 성서적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접근 방식입니다. 그리스도교 삶과 신학에서 영성(spiritualitas)이라는 개념(명사)이 먼저 생기고 그다음에 이를 살기 위해 영적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먼저 영적인 삶에 대한 가르침과 권고(동사)가 있었고 나중에서야 영성이라는 개념이 쓰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영성’이 뭔지 잘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저 영적인 방식으로 살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게 영성입니다.

 

그래서 맨 처음에, 영성은 삶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영성은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살아가는 삶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성 개념 자체도 홀로 쓰이기보다 ‘영성 생활’, ‘영적 삶’ 등의 표현처럼 우리의 삶과 늘 연결되어 쓰입니다. 영성을 학문으로 다루는 영성 신학에서도 일상의 구체적인 체험을 중요한 요소로 연구합니다.

 

그럼, 영성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사는 것이 영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답을 우리는 바오로 사도에게서 얻을 수 있습니다. 사도께서는 영적 인간과 육적 인간, 영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과 육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서간 곳곳에서 가르치고 계십니다.(로마 8,2-16; 갈라 5,16-26 외 참조) 바오로 사도의 신학은 다른 기회를 통해 배우기로 하고, 여기서는 영성을 사는 모습의 몇 가지 구체적인 부분을 차차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영성은 개념이 아니라 삶입니다. 그러니, ‘영성’이 뭔지 잘 몰라도 괜찮습니다.

 

“영혼을 풍족하게 하고 또 만족시키는 것은 풍부한 지식이 아니라, 사물의 내용을 깊이 깨닫고 맛보는 것이기 때문이다.”(료올라의 성 이냐시오, 『영신수련』 2항)

 

[2023년 3월 26일(가해) 사순 제5주일 서울주보 7면, 민범식 안토니오 신부(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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