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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한국교회의 과제: 교회, 무엇하는 사람인가? 교회는 정의와 평화의 메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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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18 ㅣ No.1226

[증언, 한국교회의 과제] 교회, 무엇하는 사람인가? 교회는 정의와 평화의 메신저



회의 사람

“‘나를 따라 오너라.’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마태 4,19-20 참조).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새로운 삶을 출발했습니다. 부친께서는 ‘여주헌신(與主獻身)’이라고 협박까지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꾸 옆을 봅니다. 마음속 한구석에서 밀고 올라오는 생각들. ‘다르게 살 방법은 없나? 좀 더 편하게 사는 법을 배울걸? 남들처럼 좀 더 쉽게 살면 좀 좋아? 하필이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차라리 몰랐더라면?’ 이런 생각이 누에고치 실 뽑는 모양으로 끊이지 않고 일어납니다.

모세는 공주의 아들도 황궁도 노예도 버리고 오히려 자기 노예들의 해방을 위해 삶을 바쳤는데…. 동방에서 꿈을 찾아온 세 임금도 자기들의 모든 꿈을 다 바쳤는데…. 저는 무얼 버리고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니 처음 시작할 때는 다 버리고 산다고 결심했어요. 살다 보니 이런저런 욕심을 다시 만들고, 채우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저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교회는 저 같은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건가요? 이정표는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터인데….


교회의 눈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마르 8,24).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루카 15,20).
“베들레헴으로 가서 …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봅시다”(루카 2,15).

노동자…

이즈음 우리나라에서는 일가족의 밥줄 끊는 일을 아주 쉽게 하나 봅니다. 해고가 바로 그런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고 길거리에서 오체투지로, 높은 굴뚝 위에서 자신들의 억울하고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외치는지.

또한 많은 20-30대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대학을 졸업하지 않거나 마트나 맥줏집, 식당, 주유소 등에서 싼값에 중노동에 시달립니다. 실업자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노동자들 거의 절반이 비정규직이랍니다. 새로 입사하는 노동자들 80%가까이가 비정규직이라고 합니다. 내일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해고당해서 비참한 처지로 내몰리는 노동자와 그 식구들. 부당한 해고를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비정한 마음을 가진 사용자. 세금 정책을 비롯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가난한 이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부자들 주머니 채워주는 정치인. 이 모든 상황이 나만 비껴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나라 사람들. 저의 자화상입니다.

농민…

제가 사는 마을은 광주대교구에서 유일한 교우촌입니다. 한국가톨릭농민회 분회를 1973년에 창립하여 활동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을을 지키고 사는 50대 젊은이가 딱 한 사람입니다. 그도 어렸을 때 떠났다가 돌아온 귀향인사입니다. 농사를 짓는 젊은이가 없습니다. 농업을 물려받은 자녀들도 없습니다. 어쩌면 물려줄 생각을 안 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 농촌 대부분이 비슷합니다. 노동력을 거의 상실한 분들이 고향을 지키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농촌과 농업, 농민은 공기나 물처럼, 그것을 잃어버려야 중요성을 알아차리는 영역에 있는 모양입니다. 가톨릭농민회가 나서서 귀농운동도 하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역부족입니다. 세상에서나 교회에서나 관심 밖의 영역입니다. 안타까운 몇 사람만 속이 타서 재가 될 뿐입니다. 재앙을 시작하고 말았습니다.

먹을거리…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많이 체결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중국과도 체결했습니다. 대부분 농산물을 내주고 공산품을 팔려합니다. 우리나라보다 수십 수백 배 큰 땅에서 제초제 비료를 원 없이 뿌려가며 생산해서는 우리나라에 싸게 팝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전자조작식품(GMO)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1위 국가가 되었습니다.

유전자조작식품을 무방비로 먹어서 그런지 요즘엔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고생하시는 부부들을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 유전자조작식품은 적어도 동물 실험에서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괜찮은가 봅니다. 아무런 대책도 경고도 하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일은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이, 사료작물을 제외하면 45% 정도랍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 55%는 늘 유전자를 조작하여 만든 수입농산물을 먹어야 살 수 있는 처지입니다.

슬픈 일은 유전자조작식품을 수입은 하는데, 유통은 안 한다는 것입니다.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국내산 농산물로 옷을 갈아입고 우리 앞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건강한 먹을거리를 먹어야 건강할 수 있는데 이 일을 어쩌나? 걱정이 태산입니다.

저간의 사정을 볼 때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독을 음식이라고 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닐로 포장한 먹을거리는 대부분 무늬만 음식이지 독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색깔 독, 보관 독, 맛 독, 냄새 독 등등. 하지만 이 먹을거리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책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스스로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에서 제일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한국가톨릭농민회 농산물이 잘 안 팔리는 이 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우리 아이들…

우리나라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살펴봅니다. 우리 엄마는 아이에게 더 이상 젖을 먹이지 않습니다. 우리 엄마는 바빠서 더 이상 아이를 보살피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태어나서 3개월이 지나면 어린이집, 유아원, 놀이방, 유치원을 다니다가 4곳의 졸업장을 들고 초등학교에 갑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앞으로 나란히’를 제대로 배웁니다. 그 이후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앞으로 나란히’를 삶의 방법으로 알고 섬기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존엄, 평등, 평화, 행복, 정의, 자유, 인권, 노동, 상생, 생명 등 보편성을 지닌 가치를 말하지 않습니다. 상상력과 예술을 말하지 않습니다. 별을 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길을 가다가 동네 어른들을 만나면 인사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직 남보다 뒤떨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자란 우리 아이들이 어떤 세상을 꾸리며 살아갈지를 상상하면 소름이 끼칩니다. 친구가 없는 아이가 만들어가는 세상을 상상해 봅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요 몇 년 사이 우리나라에 부쩍 늘어난 시설이 요양원과 요양병원입니다. 거기 가면 병원 특유의 냄새가 없습니다. 오히려 아버지 냄새가 납니다. 많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거기 계십니다. 일주일 또는 그 이상, 언제 올지 모르는 아들딸들 기다리며…. 어쩌면 삶이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저의 어머니 아버지를 거기에서 봅니다. 거기에서 우리 젊은이들의 마음을 봅니다. 저의 내일을 거기에서 봅니다.

치유과정에 있는 사람의 눈은 사람들을 나무처럼 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눈은, 아직 멀리 있지만 아들을 단번에 알아봅니다. 아버지의 눈은 바로 교회의 눈입니다. 우리의 눈입니다. 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세히 보고 싶습니다.


교회의 마음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요한 11,35).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르 6,34).

단원고 2-3반 정예진 어머니…

천국에 있는, 보고 싶은 예진에게. 안녕 딸? 너 없는 하루가 또 시작됐구나. 엄마는 오늘도 우리 딸 방에서 아침을 먹었다. 너무나 보고 싶고 만지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냄새라도 맡을까 싶어 베개에 얼굴 묻고 울다 잠이 들었나봐.

아직도 이 방엔 네 책상, 침대, 수학여행 가기 전에 입었던 옷들 다 그대로 있는데, 다 있는데, 너만 없는 게 기가 막히는구나.

책상 위에는 여행 전 챙겨야 할 것들을 설레는 맘으로 적어놓은 메모지가 있더구나. 속옷, 반바지, 잠옷…. 모처럼 멋도 내고 싶었는지 파우치도 준비물로 적어 놓았네. 그 안에 무엇을 담았을까? 엄마가 봐도 잠이 부족할 만큼 바쁜 고딩 시절을 보내고 있었으니,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을 생각하며 얼마나 들떴을까?

아빠도 몸은 힘들어도 너랑 의찬이 생각하며 열심히 살았고 참 행복했는데…. 엄마 목에 힘줄 수 있게 꼭 성공한다고, 참 열심히 살았던 듬직한 내 딸. 이제 다 싫구나! 해 뜨면 밝아서 슬프고, 밤이면 학원에서 올 시간인데 볼 수 없는 네가 보고 싶어 미칠 것 같고, 아침이면 아침밥 먹어줄 딸이 없어 슬프다.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도 이렇게 엄마를 슬프게 하고 먼저 갈 아이가 아닌데, 왜 이별할 시간도 주지 않고 데려가셨는지…. 도대체 왜 그랬는지…. 엄마는 무섭다. 너 없는 세상 어떻게 버텨야 할지….

예진아, 내 딸 예진아, 우리 딸 좋은 곳에 있는 거 맞지? 그곳에선 그렇게 하고 싶다던 연기도 해보고, 춤도 실컷 추며 행복해야 해. 보고 싶다. 간절히…. 사랑한다. 내 딸.

2014년 6월 23일
네가 미치도록 그리운 엄마가

어려운 세상의 상황에서 교회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곧 교회의 마음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장소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만나고 머무르고 쉬고 기도하셨다”(루카 5,16 참조).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있었다”(요한 19,25).

평생을 고요와 침묵 가운데서 사는 수도자가 있습니다. 평생을 저잣거리에서 이웃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밥을 나누어주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주며 예수님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도 하루에 한 번은 고요하게 외딴곳으로 가서 머물러 있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외롭고 고통 받는 사람들, 삶의 자리에서 쫓겨나는 사람들 그 옆에 자리를 펴고 앉을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한국에 오셔서 고관대작들과 단 한 번도 밥을 같이 먹지 않으셨습니다. 교종께서는 그렇게 당신의 말씀을 몸으로 드러내셨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교종을 통해 잘 보았습니다.


교회의 일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태 14,16).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주셨다”(루카 4,40).
“너희가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25,40).
“강정 상황입니다. 최용범 부회장님, 부장원 동지, 순교복자회 이동철 신부님, 성가소비녀회 로셀리나 수녀님등 12명 경찰에 폭력연행, 이 현장에 지역 사목자 강우일 주교님이 오셨습니다”(2015. 1. 31. 20:17, 서영섭 신부).
“빼앗긴 들에는 봄이 안 오니, 들을 찾기 위해 독립운동했는데, 종미가 종북이라고 창살에 가두네요”(통합진보당 구속자 가족).

40년도 넘게 시골에 살면서 매월 광주교도소를 방문하신 로사님이나, 그가 누구든 밥손님 그냥 보낸 적이 없으신 모친을 생각합니다. 아무런 대가도 보답도 없이 평생을 장애인들 옆에서 친구로 살아주시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수도자들과 또 그분들과 함께 있어주는 분들.

함께 오체투지를 하는 사제가 있습니다. 함께 단식하며 미사를 봉헌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삶터에서 쫓겨나는 사람들 옆에 있으며, 그분들 이야기를 전해주는 동료 사제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슬퍼하며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일이 교회의 일입니다. 그 정성이 사탄에 얽매인 수많은 영혼을 자유롭게 하였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우리가 교회입니다. 성령을 거스르지 아니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업고가야 할 우리가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합니다.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얼마 전 동료 사제가, “내가 가난하게 사는 것은 알겠는데 교회는 어떻게 가난하게 살지?”했던 질문이 제 가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른바 자본주의라는 제도에서 사는 우리에게 하느님은 돈입니다. 그런데 세월호 가족들이 새로운 삶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의 목숨 값으로 안전한 나라를 만들자고 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나라를….

그분들의 아이들은 이미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하는 이 말은 저를 재촉합니다. 다르게 살도록. 재물 그 너머에 새로운 삶이 있음을 일깨웁니다. 세월호는 이미 우리의 일입니다.

* 이영선 골룸바노 - 광주대교구 신부. 노안본당 주임이며,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3월호, 이영선 골룸바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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