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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진단, 한국사회: 응답하라 2016 우리 사회의 마음은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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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3-17 ㅣ No.1298

[경향 돋보기 - 진단, 한국사회] 응답하라 2016 우리 사회의 마음은 안녕하신가요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존재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널 끝없이 괴롭게 만드는데도, 그래서 그 사람을 끝없이 미워하고 싶어지는데도, 결국 그 사람을 절대 미워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해. 사랑한다는 건 미워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결코 미워할 수 없다는 뜻인 거야.”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의 제12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편에 나온 사랑에 대한 정의다.

 

덕선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커져버린 정환. 하지만 친구 택이도 덕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둑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착해 빠지기만 한 친구 택이. 정환은 고민에 빠진다. 바둑 복기를 하다가 쓰러지듯 잠이 든 택이. 정환은 택이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자신을 발견한다. 결코 택이를 미워하지 못할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다. 택이도 마찬가지다. 덕선에게 사랑을 고백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정환이 덕선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택이도 고백을 하려고 덕선과 했던 약속을 취소한 채 침대에 절망하듯 쓰러지고 만다.

 

덕선을 향한 정환과 택이의 사랑은 다르지 않았다. 이들의 선택도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의 첫 번째 선택은 친구였다. 이성이 아닌 친구가 먼저였다. 두 사람 모두 친구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이성에 대한 사랑을 보류하는 의사결정을 한 것이다.

 

연애 상담에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친구와 사랑(하는 이성) 가운데 무엇을 선택해야 하나요?”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입니까?” 물론 정답은 없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시대에 따라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답의 내용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거의 압도적으로 이성에 대한 사랑을 선택해야 한다고 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날에는 친구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람이 더 많았다. 마치 28년 전 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정환과 택이처럼 말이다.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것은

 

응팔의 사랑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친구는 공동체를 상징한다. 뜨겁게 사랑하는 대상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함께해야 할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친구와 이성 가운데 선택해야 하는 갈등 상황에서 친구를 선택하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것은 공동체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행복이 곧 개인의 행복이라는 생각이 자신의 개인적 감정보다는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의 마음을 먼저 고려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 바로 1988년 쌍문동 골목이었다.

 

응팔의 골목에는 공동체의 정이 넘쳐난다. 그곳에서는 돈이 많든 적든, 큰 집에 살든 반지하 셋방에 살든,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간에 서로를 차별하지 않는다. 차별은커녕 함께 걱정하고 다 같이 기뻐한다. 다섯 친구(덕선, 정환, 선우, 택, 동룡)와 다섯 가족은 요즘 웬만한 친척이나 형제자매보다 가깝다.

 

이들은 한 골목의 다섯 가족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대가족과 같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공동체적 가치가 정환과 택이의 선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그들은 먼저 친구를 걱정한다.

 

그 반면, 이성에 대한 사랑은 개인을 상징한다. 자신의 감정과 욕구에 충실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이성에게로 직진할 수 있다. 친구보다 이성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걱정하면서 정작 자신이 사랑하는 덕선에게 고백하지 못하는 정환과 택이의 행동은 자기감정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의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친구보다 이성을 선택하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다면,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행복은 자기 자신의 욕구를 실현함으로써 가능한 것이지, 공동체가 개인의 행복을 대신해 줄수는 없다고 믿는 것이다.

 

응팔이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공동체에서 개인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응팔에서 그려진 1988년의 쌍문동이 현재의 우리 사회와 달라보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응팔은 우리가 새롭게 갖게 된 것과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게 해준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공동체보다는 개인의 가치가 더 소중한 것으로 간주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욕구를 보류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공간이 바로 2016년의 대한민국이다.

 

공동체와 개인은 모두 소중하다. 문제는 하나의 가치가 다른 하나를 집어삼켰을 때다. 공동체만 존재하고 개인은 보이지 않는 사회는 개인의 감정을 억압하고 자유를 속박하기 쉽다.

 

반대로 개인만 있고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은 목적이 되지 못한다. 개개인의 욕구를 실현하고자 하는 돈과 경쟁의 가치만이 높게 평가된다.

 

 

무의식중의 돈과 경쟁

 

‘돈’과 ‘경쟁’은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단어다. 상징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 우리는 거의 날마다 이 두 단어와 함께 살아간다. 돈과 경쟁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중에 노출되는 것이기도 하다.

 

돈과 관련된 수많은 사건과 정보가 나날이 쏟아지고, 경쟁은 우리가 속한 거의 모든 조직에서 우리를 강제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의식적으로나 무의적으로 돈과 경쟁적 가치관을 구성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돈과 경쟁은 나쁜 것이 아니다. 돈은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주고, 우리는 경쟁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다. 문제는 돈과 경쟁의 가치가 다른 가치들을 모두 무력화시켰을 때다. 돈과 경쟁이 무의식적으로 활성화되었을 때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은 달라진다.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의 캐슬린 보스(Kathleen Vohs) 등의 학자들이 2006년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돈에 대한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활성화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사회적 관계를 맺거나 그 관계를 지속하려는 욕구가 줄어든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혼자 놀고 혼자 일하는 것에 대한 선호는 증가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더 많은 물리적 거리를 두려고 한다. 또한 자신이 어려울 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지도 않는다.

 

따라서 돈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활성화되는 사회에서 인간관계는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사람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부담스러워하고, 혼자 생활하는 것을 선호하며, 인간관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관계를 지켜나가고자 노력하기보다는 관계의 단절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그런 사회가 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경쟁도 마찬가지다. 다만 경쟁은 더욱더 적극적으로 인간관계를 망가뜨릴 뿐이다. 케이(Kay)와 로스(Ross)가 2003년에 학술지 「실험사회심리학 저널(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경쟁에 대한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활성화되면 사람들은 상대를 믿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나를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경쟁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서로 불신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불신은 사람들의 관계를 단절시킬 뿐만 아니라 적대적인 상호작용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적대감은 쉽게 상대방에 대한 공격행동으로 이어진다.

 

 

따뜻한 관계에서 행복이

 

행복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공통적으로 보고하는 것은 행복은 관계에서 온다는 점이다. 사람들과의 따뜻한 관계가 행복을 만드는 핵심요소인 것이다. 하지만 돈은 고립을 유도하고, 경쟁은 불신을 일으킨다.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초조해하고, 돈이 많은 사람이 쓸쓸한 이유다. 따라서 돈과 경쟁이라는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의 미래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돈과 경쟁이 공동체와 사람의 가치를 지워버린 사회는 절대로 1988년의 쌍문동 골목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행복하려면 건강하고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만일 돈과 경쟁을 추구하는 것이 행복해지고자 하는 선택이었다면, 우리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가 무엇이 되어야 할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어떤 생각을 주로 하면서 사는지에 따라 우리는 악마가 될수도 있고, 천사가 될수도 있다. 나의 생각과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나의 앞날을 결정하는 것이다.

 

한 사회의 내일도 마찬가지다. 구성원들이 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에 따라 고립된 개인들이 서로를 불신하면서 사는 사회가 될수도 있고, 신뢰 속에서 행복하고 다양한 인간관계가 지속되는 사회가 될수도 있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우리 사회의 앞날을 결정하는 것이다.

 

 

가슴 따듯했던 시절의 추억

 

공동체의 가치가 발붙이지 못하는 곳에서 사람은 경쟁의 대상일 뿐이다.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가 아닌 것이다. 공동체가 살아있는 1988년의 쌍문동 골목에서 사람은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경쟁과 돈의 가치가 지배하는 2016년의 한국사회에서 사람은 ‘쉽게 포기하고, 쉽게 미워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이런 세상은 차가울 수밖에 없다.

 

‘응팔 신드롬’이라고 불릴 정도로 2016년의 사람들은 1988년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사는 다섯 친구와 가족의 이야기에 열광했다. 그 이유는 응팔이 돈과 경쟁이 공동체와 사람의 가치를 집어삼키지 못했던 시절의 추억을 되살렸기 때문이다. 응팔 속 대한민국은 따뜻했다. 우리는 공동체의 따뜻함을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에 열광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공동체의 따뜻함에 이렇게 열광한다는 것은 우리의 현실이 너무 차갑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동체의 따뜻함에 목마르다고 외치는 우리의 마음에 이제는 2016년의 한국사회가 응답해야 할 차례다.

 

* 전우영 - 연세대학교 심리학 박사. 충남대학교 심리학 교수로 지내고 있다. 주요 일간지에 사회적 쟁점을 심리학으로 풀어보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 「심리학의 힘 P: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11가지 비밀」,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6년 3월호, 전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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