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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61: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의 생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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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8-14 ㅣ No.830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61)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의 생애 ①


심오한 영성 지닌 소화 데레사의 영적 자매

 

 

가르멜의 성인 중에는 보석처럼 빛나지만 아직 한국 교회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중에 성녀 소화 데레사와 동시대 사람이자 그분만큼이나 깊은 영성을 간직하고 있는 프랑스의 가르멜 수녀님이 한 분 계십니다. ‘복녀 삼위일체의 엘리사벳’이 바로 그분이십니다. 이분의 속명(俗名)은 ‘엘리사벳 카테즈’(Elisabet Catez)고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해서 받은 현의(玄義), 즉 앞으로 수도생활을 이러저러한 지향을 갖고 하겠다 하는 이름은 ‘삼위일체’입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성녀 소화 데레사가 워낙 오래전부터 많이 알려진 데 반해, 사실 복녀 엘리사벳은 그간 소화 데레사의 그늘에 가려져 그 진면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럽 교회에서는, 예컨대 20세기의 대학자 가운데 한 분으로 존경받는 폰 발타사르 같은 경우 복녀 엘리사벳을 소화 데레사에 비견되는 영적 자매라고 부르며 일찍부터 그분의 영성이 지닌 심오함을 주목해 왔습니다.

 

 

단명했지만 깊었던 영성

 

지난 2006년에는 복녀 엘리사벳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서 그분의 영성을 기리는 다채로운 행사가 세계적으로 거행됐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지난 올해 교황청에서는 돌아오는 10월 16일에 이분을 시성하기로 공포했습니다. 이제야 그분의 진가(眞價)가 드러나나 봅니다. 그래서 이번 호부터는 20회에 걸쳐 복녀 엘리사벳의 생애와 영성에 대해 함께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분 역시 소화 데레사처럼 단명(短命)했습니다. 소화 데레사는 24살에 세상을 떠났고 복녀 엘리사벳은 26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스갯소리일는지 몰라도 가르멜 수도회에서는 30세가 되기 전에 죽어야 성인이 된다는 낭설(浪說)이 전해져 옵니다. 

 

방금 소개한 두 성인 말고도 20세기 초반 칠레 출신의 안데스의 성녀 데레사라는 가르멜 수녀님은 심지어 수련을 받던 20살에 임종한 후 성녀가 됐고, 16세기 이탈리아의 피렌체 가르멜의 레디의 성녀 데레사 말르가리타는 23살에 임종한 후 성녀가 됐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살아온 햇수가 반드시 영적인 성숙 여부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진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거룩함의 표양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길게 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밀도 깊은 사랑의 순도(純度)로 자신에게 허락된 삶을 불사르며 치열하게 사는 것이 성성(聖性)에 이르는 관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버지 여의고 디종으로 

 

복녀의 생애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 세속에서의 삶(1880~1900년), 2) 디종 가르멜 수녀원에서의 삶(1901~1906년 3월), 3) 수녀원 병실에서의 삶(1906년 3~11월). 우선 세속에서의 엘리사벳의 삶에 대해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복녀는 1880년 8월 18일 프랑스의 부르쥐 지역의 아보르(Avor)라는 도시에 있는 군영 막사에서 태어났습니다. 복녀의 아버지는 당시 프랑스 군대의 장교로 복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족 역시 그와 함께해야 했고 복녀의 어머니는 엘리사벳을 군영 막사에서 해산했습니다. 복녀의 친자매로 ‘마르가리타’라는 여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복녀는 7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랐습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더 이상 군영 막사에서 살 수 없었던 엘리사벳 가족은 결국 디종(Dijon)으로 이사해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았습니다. 

 

엘리사벳의 생애에 있어 주 무대가 되는 디종은 오늘날 프랑스의 중동부지방에 자리 잡은 중간 규모의 도시에 속하지만, 중세 당시에는 부르고뉴 공국의 수도로서 번영을 구가하던 제법 품격 있는 도시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이곳에는 여전히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고풍스런 건물들이 도시 전체를 꽉 채우고 있습니다.

 

 

풍부한 음악적 감수성

 

디종으로 이사 온 엘리사벳은 7살이 되던 그해에 첫 고해성사를 했는데, 훗날 증언에 따르면 그때부터 신앙심 깊은 아이로 점차 변해 갔다고 합니다. 이듬해인 1888년, 엘리사벳은 본당 신부님께 수녀가 되고 싶다는 원의를 처음으로 얘기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감수성이 예민했던 엘리사벳은 특히 예술가로서의 기질이 남달랐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런 엘리사벳을 ‘피아니스트’로 키우기 위해 아낌없이 지원했습니다. 1888년부터 엘리사벳은 디종에 있는 콘세르바토르에 등록해 열심히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로부터 5년 후인 13살 때에는 콘세르바토르에서 주최하는 피아노 콩쿠르에서 두 번이나 대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당시 디종 시에서 발간된 신문에는 쇼팽의 곡들을 연주한 소녀 엘리사벳을 극찬하는 평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이미 그는 어린 시절에 상당한 피아노 연주 수준에 올라 있었습니다. 엘리사벳은 특히 쇼팽의 피아노곡들을 상당히 좋아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독특한 음악적 감수성은 훗날 그가 수도생활에 입문해서 자신의 영성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됐습니다. 복녀의 영성 세계는 예술적 감성과 상당히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으며, 특히 시를 통해 집약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8월 14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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