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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웰다잉이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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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10-06 ㅣ No.1893

[알아볼까요] ‘웰다잉’이란 무엇일까요?

 

 

행복한 죽음을 도와드립니다

 

저는 ‘웰다잉 플래너’라는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웰다잉은 한국말로 풀어보면 ‘잘 죽는 것’, 플래너는 ‘계획을 세워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웰다잉 플래너’라는 직업은 사람들이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떠나면 염을 해주거나, 장례식을 치러주는 사람은 들어봤지만, 잘 죽는 것을 도와준다는 사람은 많은 이들에게 생소합니다. 그렇게 저는 웰다잉 플래너라는 다소 특이한 직업으로 전국을 다니며 사람들과 함께 잘 죽는 법, 그리고 잘 사는 법을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사람은 살아온 모습 그대로 죽음을 맞이한다

 

올해 43살의 젊은 나이. 사람들은 저에게 젊은 사람이 왜 벌써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갖느냐 묻습니다. 제가 죽음을 공부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죽음이란 무엇이고, 나는 왜 죽는 것을 두려워하며, 사람들은 왜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할까?’

 

답을 찾기 위해 대학교에서 죽음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책과 이론으로만 배웠던 죽음은 피부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고민 끝에 호스피스 병원을 찾아가 자원봉사에 참여하며 임종을 앞둔 분들이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는지 곁에서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호스피스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어느 날, 교회 권사님 한 분께서 입원하셨습니다. 간암 투병 중이셨고 더 이상 치료가 어렵게 되자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시고 본인의 뜻으로 입원하셨습니다. 말기암 투병 중에는 많은 분들이 통증을 호소하며 힘들어하십니다. 하지만 권사님은 통증이 있으실 때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셨고, 혹은 성경책을 읽으시거나 묵상을 하셨습니다. 하루는 제가 부축하여 뒤뜰로 산책을 모시고 나갔습니다. 환한 눈빛으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시더니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달이면 제가 저 하늘에 무지개 다리를 건널 수 있을까요?” 동화책을 읽듯 환한 표정으로 자신의 죽음에 대해 담담히 말씀하시던 모습이 참 뭉클했습니다.

 

이후 권사님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셨고, 결국 하느님 품 안에 안기셨습니다. 돌아가실 때도 무지개 다리를 말씀하시던 그날의 표정으로 미소 지으시며 편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곁에서 어머님의 임종을 지키시던 아드님께 위로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머님께서 편안하게 하느님 품 안에 안기신 것 같습니다” 그러자 돌아온 아드님의 한마디에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사실 때도 그렇게 사셨어요, 우는 사람 있으면 눈물 닦아주시고, 힘든 사람 있으면 안아주시고, 없는 사람 있으면 나눠주시고, 저희 어머니는 사실 때도 그렇게 사셨어요.” ‘우리 엄마는 좋은 사람이었다, 착한 일 많이 했다’던 그 평범한 한 마디를 통해 그동안 찾아다녔던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한꺼번에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살아온 모습 그대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호스피스 병원에서 나눔과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아오셨던 분들은 편안하게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반면 욕심과 상처와 미움의 삶을 살아오셨던 분들은 괴로움으로 돌아가시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죽음의 모습을 통해 삶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죽음을 통해 삶을 보게 되었습니다.

 

 

죽을 때의 마음가짐이 다음 생의 첫 마음이다

 

평생 농사만 짓던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집안에 송아지 태어날 것을 걱정하다 돌아가셨습니다. 고스톱 치는 것을 즐겨하시던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친구들을 불러 “죽을 땐 죽더라도 고스톱이나 한번 치고 죽자” 말씀하시며 즐겁게 고스톱을 치시고 다음 날 돌아가셨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삶의 낙이셨던 할아버지는 위암 말기에도 하루 종일 TV에 나오는 먹는 방송을 보셨습니다. “나도 빨리 나아서 회에다 소주 한잔해야 하는데… 저기 저 식당 진짜 맛있는데, 저 집 소고기 괜찮은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유품을 정리하던 아들은 어머니의 김치 냉장고를 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김치통에는 김치가 가득했고, 자식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당신이 돌아가시고 난 뒤 자식들이 김치를 못 먹을까 봐 아픈 동안에도 김치를 담가놓으시고 그렇게 엄마의 모습으로 살다가 엄마의 모습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노인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열심히 했던 소년이 스무 살 나이에 백혈병으로 숨을 거뒀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친구들에게 남긴 유언장에는 “나는 죽더라도 봉사하려는 내 꿈을 대신 이루어다오. 나는 하늘의 빛이 되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어 다시 만나자”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친구들은 그의 바람을 이어받아 친구의 이름으로 자원봉사단체를 만들어 선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불교의 한 경전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이번 생의 마음가짐이 다음 생의 첫 마음이다.’ 죽는 순간 선한 마음으로 죽으면 좋은 곳으로 스스로 찾아가고, 악한 마음으로 죽으면 스스로 악한 곳으로 찾아간다고 합니다. 개신교, 천주교도 유사합니다. 죽음의 순간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면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임종 직전 세례를 베풀기도 합니다. 이처럼 전 세계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임종할 때의 마음가짐을 중요시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어떤 마음일까요? 임종의 순간 신앙 안에서 감사와 행복의 마음으로 눈을 감을까요, 아니면 후회와 자책, 미련의 마음으로 눈을 감을까요. 우리 몸에서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부위는 ‘귀’라고 합니다. 임종의 순간 마지막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을까요? “엄마 사랑해요, 아빠 애쓰셨어요. 고생 많으셨어요. 저희 걱정하지 마시고 빛의 품에 안기셔요. 하느님 나라로 가셔요.” 그러나 부모님의 임종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자녀들도 있었습니다. “엄마! 오빠한테는 땅을 저만큼이나 떼주고 왜 나한테는 이것밖에 안 남겨줘요. 내가 엄마를 모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너무 섭섭해요!”

 

장례지도사는 염을 할 때 고인의 삶이 보인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유품을 정리해드리는 유품정리인은 유품을 정리하며 고인의 성격과 삶이 보인다고 합니다. 간병인은 어르신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성질대로 살다가 성질대로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호스피스 병원에 계셨던 수녀님 한 분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가끔 호스피스 병원에 들어오시는 어떤 분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삶은 개떡같이 살다가 여기 와서 잘 죽을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건 불가능하다. 삶과 죽음은 붙어 있어서. 그래서 삶을 잘 살아야 죽음도 잘 산다.”

 

잘 죽기 위해서 우리는 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온 모습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죽음을 찾아다니며 물었더니 삶이라고 답했습니다. 죽음을 말하지 않는 삶은 거짓이고, 삶을 말하지 않는 죽음은 거짓이라고 했습니다. 최근 웰다잉에 대한 담론과 관심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좋은 의료, 좋은 제도, 좋은 서비스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웰다잉의 출발은 지금 여기 오늘의 ‘삶’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것이 좋은 죽음, 웰다잉의 기본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10월호, 강원남 베드로(행복한 죽음 웰다잉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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