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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아우구스티노를 만나다: 삼위일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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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6-03 ㅣ No.108

[아우구스티노를 만나다] “그대가 사랑을 본다면 그대는 바로 삼위일체를 뵙는다”

「삼위일체론(De Trinitate)」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참 좋아한다. 성인의 글을 자주 인용하고 일반 알현의 기회에 교부의 사상에 대한 연속강연도 하였다. 교황 문장에는 조가비가 그려져 있는데 삼위일체의 신비와 연관된 조가비다.

저 어린 천사의 전설처럼, 인간이 저 위대한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해하려는 탐구는 조가비만 한 머리로 히포 앞바다의 물을 다 퍼 담으려는 만용처럼 보이더라도, 역시 그 탐구는 “창조주요 구세주인 그분의 은총이 불붙이는”(5.1.2) 작업이라던 교부의 신념, 무릇 진리가 존재함을 발견하면 그 진리가 인간을 변모시키므로 삼위일체 신비를 탐구하는 가운데 사람에게 삼위일체의 모상이 회복되고 쇄신된다는 신념을 교황은 크게 존중하는 듯하다.


“하느님은 하나이시지만 혼자가 아니다”

무려 100권이 넘는 저서 가운데 그 신학적 사색이 가장 원숙하여 「고백록」이나 「신국론」과 더불어 「삼위일체론」은 신학을 논한 성인의 모든 신학서 가운데 단연 최고걸작으로 꼽힌다. 하느님이 계시로 인간을 만나러 오시고 인간이 자기 내면을 성찰하여 자기 안에 새겨진 하느님 모상을 뵙는 길을 분석한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또한 아우구스티노의 가장 위대한 인간학 교본이기도 하다. 번역을 생업으로 살아온 필자에게도 이 책의 번역은 평생 가장 힘든 작업이었다. 신학을 공부했으면서도 삼위일체를 두고 필자의 가슴에 와 닿는 유일한 말은 “하느님은 하나이시지만 혼자가 아니다.”는 힐라리오 성인의 말씀이었다. 우리가 알아듣든 못하든 하느님께서는 태초부터 당신을 가리켜 ‘우리’라는 말을 쓰셨다. 하느님은 ‘단수’가 아니시고, ‘개인’이 아니시기 때문이리라. 정말 하느님은 복수이시다.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삼위일체론」에서 저자는 그 거창하고 오묘한 신비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우회로를 썼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다. 따라서 모상을 연구하면 원본을 추정할 수 있으리라. 인간의 지성, 기억, 의지를 하나씩 뜯어보면 신기하게도 반드시 세 잎 클로버 같은 존재구조가 엿보인다. 하느님의 삼위일체도 그런 무엇이리라!” 이것이 본서 후반부(9-15권)의 논지다.


인간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상’

인간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 “성부만의 모상도 아니고 성자만의 모상도 아니며 성령만의 모상도 아니고 삼위일체의 모상으로 인간은 창조되었다.” 그 이유는 인간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만드시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모상으로 만드신”(7.6.12) 까닭이다. 그래서 교부는 인간의 위대함을 삼위일체 하느님이라는 “최고 존재를 받아들이고 참여할 역량(capax dei)”(14.4.6)에 둔다.

그렇기에 인간은 삼위의 모상을 자기 안에 발견하고 구현해야 하며, 인생의 충만한 기쁨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향유하는 데에 있다. 하느님의 아들이 파견받아 사람이 되신 것도 당신의 육화, 죽음, 부활의 신앙을 가짐으로써 인간들이 ‘삼위일체의 관상’에 이르게 돕는 데에 목적이 있다(1.8.16-17). 천국에서 우리가 할 유일한 일은 “끝없이 삼위일체 하나만을 이야기하는 것”(15.28.51)이란다.

우선, “인간의 영혼은 자기를 기억하고 자기를 인식하며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실에서 영혼의 삼위일체 구조를 감지하고서, “지성이 하느님을 기억하고 하느님을 인식하며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사실로 건너가면서 자기가 하느님의 모상임을 각성하기에 이른다. 지성, 지성의 자기 인식, 지성의 자기 사랑이라는 삼위(mens, notitia sui, amor sui)를 관찰하면, 그것들이 셋이면서 한 사물, 한 실체, 한 생명을 이룬다는 일체가 파악되고, 그것들이 완전할 경우는 셋이 동등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다음 단계로 교부는 인간 지성의 ‘기억’, ‘오성’, ‘의지’의 삼중구조에서 삼위일체를 파악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특히 교부가 가장 심오하게 분석하는 ‘기억’을 더듬어가면 인간은 일종의 무한자, 하느님 삼위일체에 닿는다. 개념이나 표상으로 “무엇이든 기억에 숨겨져 있다면 그것을 통틀어 어떤 하나로 간주하고, 또 저런 대상들을 상기해 내고 사유하는 지성의 시각 전반을 통틀어 다른 하나로 간주하고, 그리고 이 양자의 결속에 덧붙여 이 양자를 결합시키는 의지를 제3의 요소로 간주하면 셋으로부터 이 전체 하나가 된다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닐까?”(11.7.12)


사랑만이 삼위일체를 수긍한다

열다섯 권으로 엮인 이 책의 처음 네 책(1-4권)에서 성경연구를 개진하여 신구약에 실린 삼위의 ‘발현’을 성자와 성령의 ‘파견’이라는 각도에서 상세히 연구한 끝에 성자의 출생과 성령의 발출이라는 신학개념을 정립해 낸다. 영원에서도 성자를 ‘보냄 받은 분’이라고 일컫는 까닭은 말씀이 성부의 입 밖으로 발설되었다는 사실이고, 말씀이 장차 때가 되면 살이 될 분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4.20.27).

성령이 우리에게 선사된 것은 삼위일체에서 그분이 성부와 성자 사이의 ‘선물’이자 ‘사랑’이기 때문이요, 당신이 ‘거룩한 영’이기 때문에 우리를 ‘의화’한다. 이 의화는 하느님 모상, 곧 삼위일체 모상이 “기형으로부터 벗어나 재형성됨”으로 정의된다(15.8.14).

그다음(제5-7권)은 세 위격의 구분에 초점이 간다. “성부가 하느님이고 성자가 하느님이고 성령이 하느님이라면 왜 세 하느님이 아니고 유일한 하느님이신가?”라며 제기되어 온 양식설(樣式說)과 삼신론(三神論)을 둘 다 극복해야 하는 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을 이용할 경우, 하느님께는 ‘실체’만 있고 ‘우유(偶有)’는 없다. 그런데 하느님께는 실체의 범주에 들지 않지만 또한 우유라 할 수 없는 범주가 하나 있으니 ‘관계’가 그것이다.

교부의 말에 “성자는 항상 태어나며, 따로 아들로서 존재하기를 시작한 일이 결코 없다.”는 말로 보아 삼위 간의 이 관계는 상존하는 관계, 또는 ‘실제적 관계’에 해당한다. 또 ‘아버지’라고 언표하는 것과 ‘아들’이라고 언표하는 것은 두 분에게 동시적이고 불변하므로 신적 위격들은 동등하게 영원하다(5.5.6). 아우구스티노 이후, ‘관계’ 개념 없이는 삼위일체를 설명할 수 없게 되었고 서구 신학은 그가 착상한 개념과 용어와 논지를 그대로 구사한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신비를 궁구하는 우리에게 “사랑을 본다면 삼위일체를 뵙는다(vides trinitatem, si caritatem vides).”(8.8.12) 는 말이 격려가 된다. 교부는 이 책에서 인간이 체험하는 온갖 사랑에서 ‘사랑하는 이’, ‘사랑받는 이’, 그리고 ‘사랑’이라는 삼위일체를 보여준다(8.10.14). 모든 사랑에는 반드시 세 주체가 있다. 영원으로부터 당신 품에 아들 곧 말씀을 품고 계시기 때문에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말씀은 무한한 사랑, 곧 성령으로 하느님을 사랑하신다.

저 젊었던 시절 최후만찬에서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어본 일 있는 요한 사도가 아흔 가까운 나이에 일평생 체험한 하느님을 정의하여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했다. 사랑이시라면 누군가를 사랑하셔야 한다. 그래서 하느님은 삼위일체이실 만하다. 사랑은 서로 다른 주체들 사이에 하나 됨을 조성해 낸다.

인격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남녀로 다르지만 사랑이 깃들면 남녀의 생각과 의지와 취미가 하나 된다. 우리 원조를 창조하시면서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27)고 하느님이 의논하신 데도 까닭이 없지 않다. 교부가 “사랑이신 하느님을 포옹하고 사랑으로 하느님을 포옹하라!”(8.8.12)고 외치는 것도 냉정한 사변이나 신앙만으로는 결코 이해 못하는 것이 삼위일체의 신비이기 때문이다.

* 성염 요한 보스코 - 1986년 교황청 살레시오대학에서 라틴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주교황청 한국대사(2003~2007년)를 역임했다. 「하느님을 만난 사람들」 등의 저서와 「아시아인의 심성과 신학」 등 많은 역서, 「신국론」 「자유의지론」 등의 아우구스티노 주해서를 냈으며, 수십 편의 학술 논문을 발표했다.

[경향잡지, 2012년 5월호, 성염 요한 보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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