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사목신학ㅣ사회사목

[농민사목] 축복받은 사람,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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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2-08 ㅣ No.1247

[알아볼까요] 축복받은 사람, 활동가입니다

 

 

하느님 창조질서 보존과 생명의 먹거리 나눔

 

1994년 6월29일, 주교회의를 통해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국 천주교 교우들의 고향 사랑과 생명존중의 뜻을 하나로 모아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를 창립합니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창립선언문의 시작 글입니다. 농민의 문제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 직결됨을 인식하고, 농촌의 교회와 도시의 교회가 “일용할 양식”을 중심에 놓고 참된 나눔과 형제적 연대를 구체화하여 지속 가능한 삶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살고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는 믿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하느님 창조질서 보존과 생명의 먹거리 나눔이며, 이것이 믿는 이들의 삶의 자세임을 자각시키며, 우리 교회의 신앙 안에서 시작되어 2020년 창립 26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2005년, 소속 본당에서 제게 주어진 역할을 통해 우리농과 만났습니다. 우리농 일을 시작하고 3개월 즈음 되었을 때, 저는 처음으로 교구본부의 정월 대보름행사에 함께했는데 그날 처음 뵈었던 농민 회장님의 인사말 한마디가 제 삶의 의미와 방향을 이렇게 바꾸어 놓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농민의 인사말에서, “생명농사와 땅 살리기”라는 말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왔습니다. ‘생명’, 그리고 ‘농사’ 이미 알고 있는 말이었으나 ‘생명농사’라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씀이 우리가 미사를 드릴 때에 성체성사를 통해 생명을 나누듯이, 농민의 말씀 안에 그 생명이 담겨있음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저는 활동가들이 본당 나눔터에서 나누는 일들을 그저 장사하는 모습으로만 바라보았고, 교회 안에서 장사하는 것이 못마땅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날의 생생한 기억이 나를 당신의 도구로 쓰고자 하신 하느님의 부르심이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또한 생명을 나누는 이 일은 ‘살림’을 하고 있는 우리 주부, 엄마, 자매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당 우리농 나눔터에서 생명농산물을 나누는 ‘활동가’

 

본당의 우리농 나눔터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을 우리농 생활공동체 활동가라고 부릅니다. 줄여서 활동가라고 합니다. 우리농 나눔터는 전국 10개 교구, 213개 본당에 있으며, 전국에서 2천여 명의 활동가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농 활동가들은 본당의 나눔터에 들어서면 먼저 ‘농민을 위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각 교구의 가톨릭 농민회원들이 생명농사를 지으면, 우리농 활동가들은 각 교구본부의 실무자들과 함께 생명 농산물을 나눕니다. 우리농 활동가들은 농민들의 노고와 땅의 의미를 되새기고 신앙 안에서 서로의 선한 지향들을 기도와 함께 나누고자 다짐합니다.

 

늘 땅을 지키며 그곳에 계시는 농민들과 달리, 본당 안에서 일 년 또는 2년의 임기로 바뀌는 활동가 대표와 활동가들은 지속적인 활동에 어려움이 많아 늘 안타깝습니다. 지속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본당 안에서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함께 하려는 이들을 찾기가 참 어렵습니다. 마치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앗처럼, 현실적인 어려움과 세상의 불편한 부분을 알게 되는 것에 부담이 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싹튼 활동가들은 교구본부의 지속적인 교육과 돌봄으로 우리농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게 되면서 생명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더욱 적극적으로 생명농산물을 나누고 우리 교회가 시작한 우리농 운동을 알리는 노력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활동가들은 본당 안팎에서 △ 가농(가톨릭농민회)회원들이 규정에 맞게 농사지은 생명농산물 나눔과 홍보 △ 농촌의 분회와 도시의 공동체의 자매결연, 도농교류, 일손돕기 △ 토종종자 농산물과 유기농 농산물의 우선직거래 나눔 △ 유기 순환 농사를 위해 시작된 가농소 입식 운동과 소 나눔 △ 생활재 만들어 쓰기와 나눔(천연 화장품, 샴푸, 이엠 발효액 등) △ 즐거운 불편 실천 운동(일회용품 사용 않기, 텀블러 가지고 다니기, 비닐봉투 사용 않기, 장바구니 가지고 다니기, 아나바다 장터, 외식 줄이기, 못난이 먹을거리 감사하기,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 텃밭 가꾸기를 통해서 생명의 신비와 조금이나마 농민들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기 △ GMO 농산물 반대 운동 △ 그 밖의 연대활동 등을 합니다.

 

시중에 많은 유기농 매장이 생겨났지만, 타 생협의 매장과 우리농 생활공동체가 다른 점은, 하느님의 생태사도직이라는 사명 아래 기도하며 환경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활동들을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농 활동가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격려해주시길

 

활동가들은 밥상을 보며,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농사지은 먹거리인지를 알고 먹습니다. 먹거리를 보면 이 먹거리를 생산한 농민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농민들 또한 당신들이 농사지은 농산물을 나누는 활동가들이 있음을 기억하며 농사를 짓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내 가족의 건강한 밥상에서 그치지 않고 서로를 떠올리며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관계의 소중함과 땅을 소중히 여기는 농민들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해 가을, 안동교구의 쌍호분회를 1박2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낮에는 활동가들이 기금을 모아 입식한 ‘가농 소’가 있는 축사를 둘러보고 축사에서 나오는 부산물에 파쇄 된 버드나무 가지를 섞어 유기농 퇴비 만드는 것도 보고, 양파 모종도 심어보고, 저녁에는 공소에 모여 집에서 제사를 지냈다며 가져오신 ‘무전, 배차전(배추전)’도 먹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늦도록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우리는 함께 해야 힘이 나는 사람들임을, 우리가 서로 한결 가까워짐을 느꼈습니다.

 

다음날 새벽, 어제 심다 만 양파를 마저 심어야 한다며 잠이 덜 깬 일행을 트럭에 태우고 양파 밭으로 가던 시골의 새벽 공기, 새참으로 내오신 부침개와 막걸리의 맛은 처음으로 우리에게 농민의 농사일의 고됨을 조금이나마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해 양파 수확철에는 우리에게 올 양파를 가슴 설레며 기다렸던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나눔터에 오시는 소비자들의 양배추의 푸른 겉껍질이 왜 하나도 없냐고, 껍질을 너무 많이 벗긴 것 아니냐는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양배추 농사를 짓는 농민을 찾아가 일손을 돕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양배추 밭에 들어서는 순간 모두들 알게 되었습니다. 유기농사의 어려움과 땅을 살리고자 애쓰는 농민의 노고를, 약을 치지 않으면 벌레와의 전쟁을 치룰 수밖에 없고 그래서 겉잎이 모두 벗겨졌음을 알고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눔터로 돌아온 활동가들은 이제 자신 있게 말합니다. 우리 가톨릭 농민들이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농사를 짓는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알리며 오늘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선조들에게 베푸신 놀라운 축복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농민들이 축복의 땅을 지키며 가꾸고 일구어 얻은 생명의 먹거리를 본당의 나눔터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며 감사하는 우리농 활동가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진심어린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12월호, 이성남 글라라(우리농 생활공동체 활동가 전국대표, 부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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