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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별별 이야기: 이대로 살 것인가, 다르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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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0-04 ㅣ No.1053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91) 이대로 살 것인가, 다르게 살 것인가 (상)

 

 

60대 초반의 마태오 형제는 대인관계가 힘들다며 상담을 요청하였다. 사람들이 자신을 자꾸 피하는 것 같아 고통스럽다는 것이었다. 중년 시절까지만 해도 자신을 싫다고 떠나는 사람은 잡지 않겠다면서 자존심을 세우며 살아왔다. 하지만 환갑을 넘어 노년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에 이르자 삶에 대한 회한과 후회가 밀려오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마태오 형제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면서 성격을 고치라는 충고를 하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마태오 형제는 “나 자신이 이런 사람인데 뭘 고치라는 말이냐? 성격 탓하지 말고 내가 싫으면 떠나면 될 것 아니냐?”는 식으로 사람들을 밀어내곤 하였다. 그 결과 친구나 동료들은 하나둘 자신을 멀리하며 떠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이제는 남은 가족들조차 연락이 닿지 않아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태오 형제는 자신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격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사람들이 다 자신의 성격을 고치고 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도 고치려고 노력은 많이 해보았다. 하지만 안 되는 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그냥 좀 나를 인정해 주면 안 되는가? 꼭 남에게 맞춰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는 말인가?”라고 하소연했다.

 

그렇다. 스스로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랴? 우리 모두는 외모는 물론이요 내면의 모습에서 늘 부족함을 느낀다. 열등감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처음엔 누구나 마태오 형제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부족함을 극복해 보기 위해 최선으로 노력해 본다. 하지만 쉽게 열등감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점차로 좌절감에 빠져 스스로 노력을 그만두게 된다.

 

그러고 나면 마태오 형제처럼 “인생 뭐 있는가? 내 식대로 살다 죽으면 그만이지!”라는 자조 섞인 말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중년이 넘어가면서 이렇게 스스로 자신을 달랬던 마음도 이내 시들어간다. 마태오 형제는 결국 자신에 대한 더 깊은 실망과 후회를 통해 우울함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이즈음에 생겨난 특징이었다. 그러자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하느님께 기도하면서도 누군가에게 겸손하게 도움을 청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태오 형제가 노년을 준비하면서 사제에게 자신의 속 깊은 마음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생애주기와 관련이 깊다. 젊은 시절엔 하느님과 이웃의 도움 없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는, 혹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점차 자기 죽음을 예상하면서 삶을 조금씩 정리해 나가야 할 노년기에 접어들면 누구나 삶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변한다. 지금까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조심스럽게 묻기 시작한다.

 

노년기에 이르면서 마태오 형제는 자신의 성격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다시금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하소연은 과거 자신의 성격적 문제를 인식했던 때와는 전혀 다른 배경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삶의 의미와 관련된 소망이었다. 우리의 삶은 홀로 행복하고 홀로 만족하는 삶에서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서로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관계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와인을 혼자 먹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마태오 형제는 이 말의 의미를 절실히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단순한 존재의 외로움을 넘어 인생의 깊은 의미를 찾고자 하는 마태오 형제의 마음이 절절히 다가왔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0월 3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92) 이대로 살 것인가, 다르게 살 것인가 (중)

 

 

마태오 형제처럼 사람과의 관계가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성격(personality)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각자 자신만의 성격 개념을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성격을 타고난 ‘기질(temperament/disposition)’이나 ‘성품(nature)’으로 이해한다. 이런 방식으로 성격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을 고치거나 변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타고난 성품, 즉 천성이 어디 가겠냐는 것이다.

 

반면 현대 심리학이나 교육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성격이 환경이나 교육 혹은 특별한 경험을 통해 형성된 ‘성향(propensity)’이나 ‘특성(character)’에 더 가깝다고 본다. 이들에게 성격이란 기본적으로 고칠 수도 있고 변할 수도 있는 하나의 ‘습관(habit)’일 뿐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격이 고쳐지지 않는다는 말은 모두 잘못된 말이다. 성격이 고쳐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천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정확히 그리고 꾸준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격에 대한 이 두 가지 개념 중 어느 것이 더 맞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사실 우리는 이 두 개념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비율은 각기 다를 것이다. 성격의 타고난 기질과 학습된 성향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사람들은 각기 7:3 혹은 4:6처럼 나름대로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념화하고 있다.

 

하지만 마태오 형제는 자신의 성격을 온전히 선천적이라고 믿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대인관계에서 오는 성격적 어려움은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무의식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자신은 화가 많고 울분을 삭이기 어려운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성향 때문에 가족은 물론 지인들과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노력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그냥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자조 섞인 말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회갑을 넘어 노년으로 접어들자 과연 이런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바뀔 수 없는 성격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면, 이것은 분명 자신의 탓이 아니라 하느님 탓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감히 하느님을 탓하지는 못할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탓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과연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마태오 형제는 결국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진정한 자신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해왔지만 해결되지 않았던 자신의 성격적 문제를 다시 한 번 제대로 해결하고 싶다는 원의를 표현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칼 융(Karl Jung)이 말한 개성화(individuation)라는 용어를 떠올리게 한다. 개성화란 진정한 자신의 인격과 삶을 실현하는 것, 즉 진정한 자신(The Self)이 되는 자기실현을 말한다. 이제 마태오 형제는 진정한 자신이 되고 싶은 욕구로 자신의 성격과 삶을 타인의 삶과 연계해서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마태오 형제가 자신의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 의미와 기쁨을 얻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었다. 자신의 문제가 타고난 성격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히 깨닫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갈등은 사실 자신이 믿는 것처럼 타고난 ‘성격’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언뜻 보면 성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격이 아닌 자신의 ‘신념(belief)’ 때문이다. 신념, 즉 자기 생각은 언제든 바뀔 수 있으며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말은 누구를 위해 자신이 바뀔 필요가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내 생각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격을 바꿀 필요도 없고 그래서 억울할 일도 없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0월 10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93) 이대로 살 것인가, 다르게 살 것인가 (하)

 

 

마태오 형제는 지금까지 자신의 성격적 단점을 고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 봐도 성격의 변화에는 큰 효과가 없었다. 그러자 자신은 물론 자신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분노가 일어났다. 마태오 형제는 자신의 고유한 성격적 특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에게 변화만 요구했지, 있는 그대로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마태오 형제는 내면의 깊은 외로움과 상처와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점차로 자신의 문제가 성격(타고난 기질이라고 생각하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신념)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자 세상이 갑자기 밝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지탱해 준 가치와 신념도 그리 쉽게 변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본성을 바꾸려 했던 지난 시절의 노력보다는 훨씬 더 쉬운 과정이라는 생각이 드니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다음은 마태오 형제가 사람들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었던 신념체계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된 질문이다. 이 형제처럼 대인관계가 불편할 뿐 아니라 스스로 분노와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은 이 질문에 스스로 답변을 해 볼 필요가 있다.

 

①타인이 옳지 않은 일을 했을 때 화나 분노를 참기가 어렵습니까? ②매사에 옳고 그른 것이 분명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야 마음이 편합니까? ③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하고, 해야 할 것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식으로 매사에 엄격한 편입니까? ④예의범절을 중요시하는 등 주변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주는 편입니까? ⑤타인의 장점보다 결점이 눈에 잘 들어와 매사에 비판적입니까? ⑥자신의 생각을 양보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편입니까? ⑦한번 시작한 일은 끝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입니까? ⑧시간관념이나 돈 계산이 느슨한 사람을 싫어합니까? ⑨“당연히 ~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하면 못쓴다” 식의 말투를 잘 씁니까? ⑩부모로서(부모가 되면) 아이들을 엄하고 책임감 있게 키운다고(키우겠다고) 생각합니까?

 

마태오 형제는 이 모든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엄격한 삶의 기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신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올바른 삶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에게 비친 세상은 선(善)하기보다는 악(惡)하며,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타인보다는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간다. 세상과 사람들에게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타인을 가르치거나 충고하게 된다. 그러자 사람들은 매사에 비판적이고 부정적이라며 오히려 자신을 비난한다. 자신은 옳은 말을 할 뿐인데 사람들이 꼰대라 하고 혹은 융통성이 없다고 비판하면 솔직히 화가 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자 어느덧 가족들도 떠나가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태오 형제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 관점이 어린 시절 주입된 가치관임을 깨닫고 성경 말씀을 토대로 한 인지치료를 받게 되었다. 자신의 여러 생각들 안에 존재하는 “~하면 안 된다” “반드시 ~ 해야 한다”는 신념체계가 “그럴 수도 있다” “꼭 ~ 해야 할 필요는 없다”로 변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비판보다는 수용, 비난보다는 관용을 보이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미워했던 주변 사람들이 이해되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제야 마태오 형제는 자신에게 회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변화하는 그를 보면서 이 말씀이 떠올랐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0월 17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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