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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교황, 교황주일 유래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폐막한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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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6-30 ㅣ No.194

[교황주일] 교황 · 교황주일 유래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폐막한 교황 살펴보기

교황, 가톨릭 교회 수장이자 영적 지도자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 사제 중의 사제, 최고 성직자, 그리스도의 대리자, 하느님 종들 중의 종. 모두 교황을 일컫는 칭호다.

교황은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이끄는 수장이면서 교회 울타리를 넘어 세계인의 영적 스승이기도 한 매우 특별한 존재다.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무신론이 확산되고 있다지만, 여전히 교황 한마디에 세상이 들썩거리고 행동 하나하나에 이목이 집중된다. 그만큼 가톨릭교회 최고 어른이자 세계 영적 지도자인 교황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1일 교황주일을 맞아 교황과 교황주일 유래에 대해 알아본다. 또 올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50주년을 맞아 공의회를 개막한 교황 요한 23세와 이를 마무리 지은 바오로 6세 교황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아버지란 뜻의 교황

교황은 영어로 Pope(포프), 라틴어로 Papa(파파)다. 파파는 아버지라는 뜻의 라틴어 PaPas(파파스)에서 유래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포프는 어린 아이들이 아버지를 부르는 애칭이기도 했다.

초창기에는 사제도 포프라고 불렀지만 3세기 초부터 대주교, 총대주교 같은 고위 성직자를 일컫는 말로 쓰였다. 그러다 8세기 이후 '로마의 주교'에게만 이 호칭을 썼고, 교황 그레고리오 7세(재위 1073~1985) 때부터 교황만이 포프 또는 파파로 불리게 됐다.

「교황청 연감」(Annuario Pontificio)에 따르면 교황은 로마 교구장,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 서방교회 최고사제, 이탈리아 수석 대주교, 바티칸 시국 원수다. 또 세계 주교단 단장으로 세계 가톨릭교회를 이끄는 최고 사목자다.


초대 교황은 누구인가

교황이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라고 불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초대 교황은 베드로 사도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면서 12사도를 뽑아 그들에게 교회를 지도할 권한을 주고 세상에 파견했다. 이때 예수는 시몬을 '베드로'라 부르며 사도단의 으뜸으로 세웠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베드로는 로마로 건너가 교회를 설립했고, 이후 로마 주교는 베드로의 권위와 책임을 계승하며 교황 지위를 이어갔다.


교황주일과 베드로 헌금

한국교회는 1930년경부터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 29일)과 가장 가까운 주일을 교황주일로 지내고 있다. 베드로 사도가 교회 초석을 놓은 초대 교황이었기에 이 축일과 가장 가까운 날에 교황주일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대리해 하느님 백성에게 봉사하는 교황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와 교황에 대한 일치를 다짐하기 위해 특별히 정한 날이다.
 
이날 교황을 위한 특별 헌금을 봉헌하는데, 이는 베드로 헌금(Peter's Pence)으로 불린다. 교황과 일치하고 있다는 뜻으로 교황 사목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세계 각국 교회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즈음에 베드로 헌금을 걷어 교황에게 보낸다. 교황은 이 헌금으로 가난하고 박해받는 교회를 지원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막한 복자 교황 요한 23세(재위 1958~1963)

안셀로 주세페 론칼리 추기경은 77살이 되던 해에 교황에 선출, 제261대 교황 요한 23세가 됐다. 그동안 주로 부유하고 명망 있는 가문 출신의 추기경들이 교황으로 선출됐기에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인 그가 교황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또 세상 사람들은 그가 교황직을 수행하기에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며 교황 자리만 지키며 조용히 임기를 끝낼 '과도기 교황'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는 공개석상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수많은 교황 업무를 완벽히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였다. 또 소련의 핵전쟁 도발을 막으며 냉전으로 꽁꽁 얼어붙은 서방 세계에 평화의 온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교황 재위 이듬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소집을 공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교회의 쇄신과 현대화(아조르나멘토, Aggiornamen to)를 주장하며 4년의 준비기간을 거친 뒤 1962년 교회의 대변혁, 대지진이라 평가받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을 열었다.
 
그는 공의회 개막연설에서 교회가 세상을 위해, 세상을 향해 나아가며 갈라진 형제들과 일치할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그는 공의회 결실을 보지 못하고 1963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새천년기를 앞둔 교회가 세상과 인류를 향해 열려 있는 교회가 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좋은 교황(papa buono)이라는 애칭을 지닌 교황은 2000년 시복됐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폐막한 교황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

교황 바오로 6세는 전임 교황 뜻을 이어받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재개해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는 사제수품 후 교황청 외교관학교를 졸업하고 교황청 주요 장관들 비서로 발탁돼 교황청 업무를 두루 익혔다. 또 밀라노대교구장을 지내면서 사목경험을 쌓았다. 때문에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이끌기에 적합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특히 그는 공의회를 진행하면서 자신이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올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는 4개 헌장, 9개 교령, 3개 선언을 발표하는 것으로 공의회를 폐막하면서 전례개혁을 이끌고 교회 위상과 사목방향을 재정립했다. 그는 공의회로 교회가 분열하거나 대립하는 일이 없도록 특별히 유의하면서 공의회 결정사항을 착실히 시행했다.
 
공의회를 통해 개혁적 모습을 보여준 교황은 일각에선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1968년 회칙 「인간생명」을 반포하며 인공피임을 비판하고 인위적으로 출산을 조절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했다. 이와 함께 사제독신제를 옹호하며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가톨릭교회가 지켜야 할 전통에 명확한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현대사회와 교회 전통의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한 교황으로 평가받고 있다.

[평화신문, 2012년 7월 1일, 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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