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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예노동을 근절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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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18 ㅣ No.1229

[경향 돋보기 - 더 이상 종이 아니라 형제입니다] 노예노동을 근절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지난해 전남 신안군에서 일어난 이른바 염전 노예 사건이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염전 노예 사건은 지난 2013년 6월 7일 서울 구로경찰서에 “섬에 팔려와 도망갈 수 없으니 구출해 달라.”는 아들 김씨(시각장애 5급)의 편지를 들고 온 어머니의 제보로 시작되었다.

시각 장애인 김 씨는 영등포역 근처에서 노숙생활을 하던 중 2012년 7월 무허가 직업소개업자 이모 씨의 꾐에 빠져 전남 신안군의 홍모 씨의 염전에 팔려간 이후, 2014년 1월 24일 경찰에 의해 구출될 때까지 1년 6개월간 단 한 푼의 월급도 받지 못한 채 노예처럼 일했다. 함께 거주했던 지적 장애인 채 씨는 2008년에 직업소개소 직원에게 식사 두 끼를 얻어먹고 영문도 모른 채 홍모 씨에게 팔려와 염전 일을 하면서 역시 월급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들은 하루 5시간의 수면도 취하지 못한 채 소금 내는 일과 홍 씨의 농사일 · 집 공사 등에 동원되었고, 홍 씨는 맘에 들지 않으면 욕설을 하며 이들을 각목이나 쇠파이프로 내리쳤고, 폭력은 갈수록 심해졌다. 김 씨와 채 씨는 이를 견디다 못해 3차례나 섬에서의 탈출을 시도했지만, 동네 사람들의 신고로 모두 실패하였다. “한 번만 더 도망가면 칼침을 놓겠다.”는 홍 씨의 협박이 이어졌다. 강제 노역이 계속됐지만 섬에 있는 면사무소도, 파출소도 이를 외면하였다.

지옥 같은 노예생활에서 이들을 해방시킨건 면사무소도 파출소도 아닌 단 한 통의 편지였다. 시각 장애인 김 씨는 부모님에게 도와달라는 편지를 써서, 홍 씨와 이웃들의 감시를 피해 이발소를 다녀오는 길에 몰래 우체통에 넣어 보냈다. 경찰이 탐문수사에 나선 끝에 이들을 구출하여, 김 씨는 1년 6개월 만에, 채 씨는 무려 5년 2개월 만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장애인들이 염전에 오게 된 경위와 노동착취 상황

노숙을 하거나 가출한 장애인 중에는 직업소개업자의 꾐에 넘어가 염전업자(또는 선박업주, 양식업자 등)에게 1명당 100만 원 내외의 소개비를 받고 넘겨지는 경우가 많다. 이 소개업자들은 장애인들에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편안한 일자리가 있다면서 접근하는데, 장애인들의 심리적 저항을 방지하려고 처음 며칠 동안에는 전략적으로 장애인들에게 숙식과 향응을 제공한다.

그러다가, 숙식과 향응에 든 비용을 장애인들에게 과다하게 청구하면서 이 돈을 당장 갚을 수 없으니 자신들이 소개하는 곳에 가서 일을 하면 된다는 일종의 합리적 제안을 하기도 한다. 염전 등으로 유입된 장애인들에게 술을 제공하거나 성매매를 하도록 하여 많은 빚을 지게 한 뒤, 이를 핑계로 월급도 주지 않고 수년 동안 일을 시킨 경우도 있었다. 불법 직업소개업자와 염전업주는 각 범죄사실에 따라, 노동력 착취를 목적으로 한 약취 · 유인, 인신매매, 근로기준법 위반, 학대, 감금 등의 죄목으로 처벌될 수 있다.


취약한 인신매매 관련 규정

위의 불법 직업소개업자의 경우, 염전업자가 공급받은 장애인 등의 노동력을 착취하게 할 목적으로 장애인 등을 유인한 것이 분명하고 그 점에 충분한 범의가 있다고 보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약취 · 유인죄 또는 인신매매죄를 적용할 수 있다.

신안 염전 노예 사건에서 관련 피의자들은 강제 노동, 노예 상태, 채무 노예 같은 유사 노예제에 두거나 그 관행을 하게 하는 것, 예속상태에 두는 등 착취의 목적을 위해, 기망하거나, 취약한 지위를 남용하는 등의 수단으로, 사람을 모집하거나, 이동하거나, 숨기거나, 인수하는 행위를 한 것이므로,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불문하고 팔레르모의정서상 인신매매에 해당한다.

그런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형법에 인신매매에 대한 자세한 정의가 없고, “사람을 매매한 사람은 처벌한다.”라는 규정만 있다는 것이다. 형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피의자가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형법의 조항을 확대 해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을 매매한 사람은 처벌한다.”라는 규정 역시 문리적으로 해석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전적인 정의에 따르면 매매는 ‘무엇을 사고파는 일’이며, 부녀매매죄에 대한 법원의 해석도 크게 다르지 않다(대법원 1992. 1. 21. 선고 91도1402 : “부녀매매란 거래 일방인 매도자가 그의 완전한 사실상의 지배하에 있는 부녀를 [추업에 사용할 목적으로] 물건처럼 대가를 수수하고 상대방의 사실상의 지배하에 옮기는 것으로서 본죄의 성립여부는 매도인이 매매 당시 부녀자를 실력으로 지배하고 있었는가 여부 즉 계속된 협박이나 명시적 혹은 묵시적인 폭행의 위협 등의 험악한 분위기로 인하여 보통의 부녀자라면 법질서에 보호를 호소하기를 단념할 정도의 상태에서 그 신체에 대한 인계인수가 이루어졌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그 사람의 취약한 지위를 남용하는 등의 수단을 사용했는지 관계없이 인신매매로 본다는 조항이 형법에는 없으며, 그 사람의 취약한 지위를 남용하는 등의 수단을 사용한 경우에는 행위자가 의도한 착취에 대해 동의를 하더라도 인신매매 성립에 지장이 없다는 조항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적 지배가 없어도 되는 이동, 은닉, 인도, 인수, 모집 행위를 인신매매처벌조항에 추가하며, 피해자의 동의가 있을지라도 인신매매가 성립한다는 조항을 두어야 한다. 또한 현 인신매매 조항에 있는 인신매매의 목적 가운데 불법성이 아주 강한 것(장기 적출, 성매매 등), 불법성이 약한 것(노동 착취, 성적 착취 등), 그 자체로 불법성이 없는 것(결혼, 간음 등)을 구분하여 각각에 대해 위법한 수단을 요구할 것인지를 다르게 규정하여야 한다.

곧 불법성이 강한 목적에는 위법한 수단이 없더라도 인신매매죄가 성립할 수 있도록 하며, 불법성이 약한 목적에는 장애인이나 아동에 한정지어 위법한 수단이 불필요하다고 해야 하고, 불법성이 아예 없는 목적의 경우, 아동, 성인 모두 수단이 위법해야만 인신매매가 성립하도록 해야 한다.


장애인을 학대하는 가해자는 엄중하게 처벌해야

염전 노예 장애인 사건의 가해자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형사법적 제재들은 범죄사실에 따라 매우 다양하지만, 수사기관에 의하여 기소된 범죄들이나 법원에 의하여 판결된 범죄들은 매우 제한적이고, 수 명의 장애인 등을 염전, 선박 등에 팔아넘기거나 오랜 세월 동안 감금한 채 노예처럼 이용해 왔음에도 많은 경우에 가해자들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다수의 염전지역에서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었지만, 3년 이내 기간 동안의 최저 임금만을 입금해 주면 폭행이나 감금이 없는 경우에는 사건이 종결되고 말았다. 구속되거나 입건된 사람들은, 폭행이나 감금 등의 다른 인권침해를 행했거나 피해자의 장애가 중하여 가해자의 죄질이 특히 불량했다고 판단된 경우이다.

장애라는 약점을 이용하여 신체의 자유나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학대하는 경우 등으로 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하더라도, 처벌 규정이 없거나 형량이 매우 낮기 때문에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 사회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데도 말이다.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려면 먼저, 수사당국이 다시는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가해자들을 철저히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갖추어야 하고, 수사가 미온적으로 마무리되고 있지는 않은 지를 감시하는 상급 기관이나 시민단체의 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

또한 장애인 학대범죄에 대해 처벌규정을 신설하고,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형량을 높이거나 가중처벌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장애인 학대사건이 발생할 경우, 가해자들을 철저히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등 형사절차상 특례를 규정하는 가칭 장애인학대방지법과 같은 형사 특별법의 제정도 필요하다.


노동에 따른 임금의 지급

장애인들이 사실상 노예처럼 감금당한 채 수년 또는 수십 년간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 아무런 임금도 지급받지 못한 사건이 계속해서 터지지만, 이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장애인의 현실과 매우 동떨어져 있다.

지적 장애 2급의 장애인들이 1988년 3월부터 2006년 7월까지 경북 상주 소재 양계장에서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고 노동력을 착취당한 사안에서 법원(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2007가합1541)은 “원고들의 이 사건 소는 2007년 11월에 제기되었음은 기록상 명백하므로, 2004년 11월 이전에 발생한 최저임금채권은 모두 시효로 소멸되었다고 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등, 대부분의 법원에서 노예 장애인의 임금청구사건에 기계적으로 임금 소멸시효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지적 장애인들은 근로계약 개념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고, 임금을 청구할 수 있음을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지적 장애인을 위해서는 임금 소멸시효를 연장하거나 소멸시효 항변을 부정하는 특례가 필요하다.


장애인 권리옹호제도가 빨리 도입되어야

이른바 도가니 사건(광주 인화학원 사건)을 비롯해 원주 사랑의 집 사건,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 등 시대착오적인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인권국가라고 자부해 온 대한민국에 인권의 사각지대가 있으며, 모든 인권을 동등하게 누려야 할 장애인의 인권보호가 허술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장애인들 스스로 인권옹호나 권리구제를 하기 어렵다는 현실과 맞물려 있다. 따라서 장애인 인권침해 방지 및 권리옹호를 위한 시스템, 인권침해 피해 구제절차와 지원 서비스 등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러한 장애인권리옹호기관을 시 · 도 또는 시 · 군 · 구 단위에 설치하여 ① 장애인 인권침해 신고 접수, 현장조사 및 응급보호 ② 장애인 인권침해 의심사례에 대한 현장조사 ③ 피해 장애인과 그 가족 및 장애인 인권침해 행위자에 대한 상담 · 치료 · 교육 ④ 피해 장애인 가정의 사후관리 ⑤ 장애인 인권침해 방지교육 등의 업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한편, 장기간 인권침해가 지속되고 있었음에도, 관련 공무원이나 관련 기관에서 이를 묵인한 것도 문제가 되므로, 장애인 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 장애인 복지 상담원, 사회복지시설의 장과 그 종사자 등 장애인 관련 종사자들에게 장애인 학대신고 의무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번 염전 노예 사건을 겪으면서, 학대 피해자를 위한 긴급보호나 사회복귀를 위한 상담, 자립 지원 등을 할 수 있는 쉼터의 설치가 절실히 요청되었다. 최소 시 · 도 단위로 1개소씩은 인권침해를 당한 장애인을 일시적으로 보호하고 정상적으로 가정 또는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쉼터가 설치되어야 한다.

도서지역이나 농촌지역에서 장애인 착취 · 학대는 왜 고질적으로 반복되고 있는가? 노예 장애인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정부와 경찰은 주먹구구식 수사와 일제 점검과 같은 사후약방문식 대응으로 그치고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않았다. 경찰 · 검찰의 수사는 세밀하지 못했고, 법원은 이에 대해 무죄 또는 솜방망이 처벌로 면죄부를 주었다.

오갈 데 없는 불쌍한 사람을 거둬서 먹여주고 재워주며 보살펴주는 선한 사람들이라는 기본인식이 강하고,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할 수도 있고, ‘오죽했으면 때렸을까?’라는 생각에, 그러한 상황에서의 폭행은 훈계 또는 교육 차원으로 행한 것이어서 큰 죄가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래서 이들이 차고에서 스티로폼을 깔고 자더라도, 머리를 삭발하고 도망가지 못하게 몸에 문신을 새기고 밖에서 문을 잠그더라도, 냄새가 진동하는 목장 옆의 가건물에서 생활하더라도, 새벽부터 밤까지 월급 한 푼 받지 못한 채 일을 해도 이들을 ‘보호’하는 가운데 벌어진 불가피한 일일 뿐이다.

5년, 10년을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노예처럼 일했어도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은, 임금청구시효가 지나지 않은 3년 치 농촌 일용직 근로자 봉급에서 장애인이라고 일률적으로 노동상실률 50%를 감한 금액뿐이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수많은 장애인이 인신매매, 폭력, 감금, 학대, 노동력 착취 등의 인권침해를 당하더라도 인권의 사각지대에 버려진 채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노예 장애인 사건들은 장애인의 취약성을 노골적으로 이용한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큰 사건이다. 이들은 장애인들을 인신매매를 통해 사와서 ‘노예’로 부리고 폭행, 감금, 학대하면서 오갈 데 없는 장애인을 보호하는 선한 사람으로 행세해 온 양의 탈을 쓴 늑대에 불과하다. 노예로 부린 장애인을 가족은커녕 한 인간으로라도 생각했다면 이렇게 대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노예처럼 학대당하고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매우 많다. 제2, 제3의 염전 노예 사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첫걸음은, 장애인을 같은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착취할 그 어떤 이유도 있을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존엄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 염형국 변호사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활동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3월호, 염형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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