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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톨릭 영성 산책44: 영적 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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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3-21 ㅣ No.781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44) 영적 식별


신비체험,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은?

 

 

신앙의 길에는 모순과도 같은 오묘한 역설(逆說)이 있습니다. 즉 믿어야 알 수 있다고 말하지만, 반대로 알아야 믿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종교라면 일단 믿고 보는 고대를 지나 중세에는 철학 연구와 함께 이성으로 합리를 추구하는 분위기로 바뀌면서 신앙에 위기가 닥치기도 했습니다. 마치 반대되는 개념 같은 신앙과 이성 사이의 긴장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신앙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신앙과 과학을 마치 반대 모순 개념으로 여기면서 신앙에 위기감을 불어넣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지성의 발전을 통해 차분한 판단으로 신앙의 위기를 극복했고, 또 앞으로도 극복해 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 안에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습니다. 믿겠다는 마음가짐은 가지고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식별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통상적인 신앙의 여정이 아니라 특별한 체험과 관련된 경우에는 식별의 문제가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예수님 부활과 성모님 발현뿐 아니라 그동안 살펴봤던 그리스도인의 신비체험 등은 필연적으로 영적 식별이 요청되는 사안입니다.

 

예수님 부활과 관련해 토마스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25). 이에 반해 예수님께서는 한 수 더 앞서 응수하십니다.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루카 24,39.41). 즉,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부활을 믿게 하려고 살과 뼈를 보여주시는 것뿐 아니라, 음식을 먹는 모습까지 보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친절한 증언으로 사도들은 손쉽게 식별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현대에 성모님 발현의 경우는 식별 문제가 더 복잡하고 어려워집니다. 그동안 가톨릭 교회가 공인한 경우도 있고, 아직도 심사 중인 경우도 있으며, 진정성이 없다고 거부한 경우도 허다합니다. 교황청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단을 꾸려서 교회 가르침에 부합하는 기준을 적용하며 신중하게 식별하고자 노력합니다. 성인품에 올릴 성인을 심사하는 경우에도 유사한 과정이 진행됩니다. 중요한 식별 기준 중에 하나는 바로 기적 심사입니다. 그래도 이 경우는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워도 외적으로 드러나는 기적을 심사하는 것이기에 상대적으로 쉬운 식별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어려운 식별 문제는 신비체험입니다. 신비체험은 내적으로 일어나는 개인적 경험이어서 정교한 영적 식별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인이 경험한 신비체험이 옳은지, 또한 신비체험을 했다고 주장하는 타인의 경험이 옳은지를 식별하는 기준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첫 번째 영적 식별의 기준은 교회 가르침과 교도권에 순명하는 자세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신비스러운 체험이라면, 하느님께서는 어떤 유형의 체험이라도 그것이 교회와 신앙에 유익한 방향으로 활용되기 바라실 것입니다. 교회와 신앙에 유익하려면 교회와 일치를 이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순명 정신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거짓 신비체험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영적 식별의 기준은 개인의 애덕이 증가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하나 되는 신비체험을 했다는 것은 인간 영혼이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과 접촉을 통해 하느님 사랑에 물들어 자연스럽게 애덕이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비체험을 한 시점을 전후로 애덕이 증가하지 않았다면 역시 거짓 신비체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공명심에 사로잡힌다면 올바른 영적 식별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비스러운 체험을 올바로 식별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깨끗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평화신문, 2016년 3월 20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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