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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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치프리아누스: 빼어난 학식 · 열정으로 교회에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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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0 ㅣ No.60

[교부들의 가르침] 치프리아누스


빼어난 학식 · 열정으로 교회에 봉사

 

 

회심과 순교

 

치프리아누스(?~258년)는 북아프리카의 비그리스도인 집안에서 태어나 훌륭한 세속 교육을 받았다. 젊은 나이에 당대 최고의 수사학 교수가 되어 명성을 떨치다가, 마흔 살 즈음에 카르타고의 사제 체칠리아누스의 영향으로 성서를 읽게 되면서 마침내 그리스도교에 귀의하게 되었다(246년). 세례를 받으면서 모든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을 뿐 아니라, 세속 직업마저도 기꺼이 그만 두었다. 그리스도인이 된 지 3년도 채 지나지 않아, 치프리아누스는 북아프리카의 수도 카르타고의 주교가 되었다(249년).

 

혜성처럼 나타나 신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주교로 우뚝 선 치프리아누스는 박해 가운데서도 빼어난 학식과 열정으로 교회를 섬겼고,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257~258년) 때 몸소 순교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게 되었다.

 

 

교회 바깥에는 구원이 없다?

 

"교회 바깥에는 구원이 없다"(Salus extra ecclesiam non est). 치프리아누스가 내뱉은 이 말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학 논쟁과 오해를 불러 일으켜 왔다. 이 명제가 탄생하게 된 사연은 이러하다. 255년경, 마뉴스라는 사람이 치프리아누스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열교나 이단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이 나중에 가톨릭 교회에 되돌아올 경우 다시 세례를 베풀어야 하는지를 묻는 편지였다. 치프리아누스는 이렇게 답했다. 이단자들이 가톨릭 교회 '바깥'에서 받았다고 주장하는 세례는 세례가 아니라 목욕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톨릭 교회 '바깥'에서는 성령께서 활동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이단자들은 가톨릭 교회를 떠나면서 이미 성령을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성령께서 활동하시지 않는 가톨릭 교회 '바깥'에서는 세례가 유효하게 베풀어질 수 없다. 교회 '바깥'에는 성령도 없고, 유효한 세례도 없고, 세례의 은총도 없고, 세례의 열매인 구원도 없다. 곧 "교회 바깥에는 구원이 없다"("편지" 73, 21). 그러므로, 교회 '바깥'(이단과 열교)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은 가톨릭 교회 '안'에서 반드시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

 

 

성령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사실, 치프리아누스의 이 주장은 '구원에 관한 가르침'(구원론)이라기 보다는, 그릇된 성령론에 바탕을 둔 '세례에 관한 가르침'(성사론)의 결론이다. 그런데, 치프리아누스의 이 주장이 마치 구원에 관한 우리 교회의 공식 입장인 듯이 오래도록 되풀이되어 왔다. 만일, "교회 바깥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치프리아누스의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교회 바깥에는 성령이 없다"라는 그분의 주장도 함께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불고 싶은 대로 부시는 분"이다. 성령을 가톨릭 교회 울타리나 창백한 교의 속에만 가두어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당시 로마의 주교는 스테파누스 1세였다. 로마 교회는 '전통'만을 내세우면서, 이단자들이 가톨릭 교회에 돌아올 경우 다시 세례를 베풀 것이 아니라, 안수만 하여 교회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카르타고의 주교 치프리아누스와 로마의 주교 스테파누스는 이 논쟁으로 말미암아 서로 파문할 지경까지 이르렀으나, 때마침 로마제국을 휩쓴 박해로 말미암아 스테파누스(257년)와 치프리아누스(258년)는 차례로 순교하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미처 마무리되지 않았던 이 논쟁은 휴화산처럼 부글거리다가, 그로부터 50여 년 후에 도나투스 열교로 다시금 폭발하여 오래도록 교회에 크나큰 상처를 남겼다. 도나투스주의자들은 교회와 성사에 관한 치프리아누스의 그릇된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여, "죄인들이 베푼 세례는 무효하다"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결국, 치프리아누스 스스로는 원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도나투스 열교에게 신학 이론을 제공하여 교회 분열을 도와준 꼴이 되었다.

 

 

성사, 하느님의 것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단자들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다면, 그 세례는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성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베드로가 세례를 베풀어도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것이고, 유다가 세례를 베풀어도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것이다." 이 가르침은 오늘날까지 우리 교회의 공식 입장이다.

 

 

사랑이 교회 안에 머물게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교회 바깥에 있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있고, 교회 안에 있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교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참으로 교회 안에 있고 누가 참으로 교회 바깥에 있는지, 누가 참으로 밀이고 누가 참으로 가라지인지, 누가 참으로 양이고 누가 참으로 염소인지는 오로지 하느님만이 아신다. 교회는 모름지기, 이중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세례를 통하여 '지상교회'(보이는 교회)에는 소속되지만,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누구나 '천상교회'(보이지 않는 교회)에도 속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세례가 아니라, 사랑만이 참으로 우리를 교회 '안'에 있게 한다.

 

치프리아누스에 따르면, 가톨릭 세례를 받기만 하면 누구나 자동적으로 교회 '안'에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따르면, 교회의 '안'과 '바깥'을 구별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며, 우리가 사랑할 때 참으로 교회 '안'에 머물게 된다. 이렇게 위대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치프리아누스의 한계와 오류를 훌쩍 뛰어넘었지만, 아직도 우리 교회에서는 치프리아누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릴 때가 많다.

 

※ 우리말 번역 : 치프리아누스, "가톨릭 교회 일치 · 주님의 기도 · 도나투스에게", 이형우 역주, 분도출판사 1987.

 

[가톨릭신문, 2003년 4월 20일, 최원오 신부(부산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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