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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위대한 신앙의 신비, 기도17-22: 기도의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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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0-02 ㅣ No.841

[위대한 신앙의 신비, 기도] (17) 기도의 전통(「가톨릭 교회 교리서」 2650~2696항)


기도 원천에 이르는 네 갈래 길

 

 

이번 호부터는 교리서 제4편의 제2장 기도의 전통을 살펴봅니다. 교리서는 기도라는 내적 충동이 자연 발생적으로 분출해서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기도하면 기도하고 싶은 마음(원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서 기도를 알려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거죠. 이런 측면에서 그리스도교 기도 전통의 관점에서 기도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기도의 원천 ①

 

그리스도 신자들의 삶의 중심이자 원천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샘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가 샘이신 당신에게서 생명의 물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다. 말하자면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의 샘에 이르는 수로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기도의 전통에서 기도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수로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고 교리서는 밝힙니다. 하느님 말씀과 교회의 전례, 향주덕(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덕), 그리고 ‘오늘’이라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이 가운데 두 가지만 우선 살펴봅니다.

 

 

하느님 말씀(2653~2654항)

 

교회는 “모든 신자 특히 수도자들이 성경을 자주 읽음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을 얻도록 강력하고 각별하게 권고합니다.” 이와 함께 “성경을 읽을 때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가 이뤄지도록 기도가 따라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하느님께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는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계시헌장 25항; 교리서 2653항). 

 

예수님께서는 기도와 관련해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7). 

 

교회 영성의 교부들은 이 말씀을 풀이하면서 기도 중에 하느님 말씀으로 들어 높여진 마음가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읽으면서 찾으십시오. 그러면 묵상을 통해서 발견할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두드리십시오. 그러면 관상을 통해서 열릴 것입니다”(2654항). 

 

앞으로 살펴볼 기회가 있겠지만 여기서 묵상과 관상의 차이를 간단히 알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위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묵상은 기도하는 사람의 의지가 발동합니다. 그러나 관상은 나의 의지가 발동하기보다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전례(2655항)

 

하느님께 바치는 교회의 공적 예배인 전례는 “성령 안에서 성부께 드리는 그리스도의 기도에 참여하는 것”(1073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기도는 전례에서 시작되고 전례로 완성된다”고 가르칩니다. 교회의 성사 전례를 통해 구원의 신비를 선포하고 구현하고 전달하는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명은 신자들의 기도하는 마음 안에 계속됩니다. 

 

신자들은 전례가 거행되는 동안만이 아니라 전례가 끝난 후에도 기도를 통해서 전례를 내면화합니다. 전례는 교회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성무일도, 곧 시간전례까지도 비록 골방에서 바친다 하더라도 그 기도는 언제나 교회의 기도이며, 이 기도를 통해 신자들은 거룩하신 성삼위와 일치를 이룹니다. [평화신문, 2016년 10월 2일, 이창훈 기자]

 

 

[위대한 신앙의 신비, 기도] (18) 기도의 전통 (「가톨릭 교회 교리서」 2650~2696항)

 

믿음 · 희망 · 사랑을 바탕으로 오늘 기도하라

 

 

기도의 원천 ②

 

향주덕(2656~2658항)

 

주님을 향하는 덕이라는 뜻의 향주덕은 또한 대신덕(對神德)이라고도 합니다. 믿음(신덕), 희망(망덕), 사랑(애덕) 이 셋을 향주덕이라고 부르지요.

 

믿음을 갖는다는 것,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인생을 보람있게 살려면 가족도 있고 돈도 있고 명예도 있고 봉사도 하고 한편으로는 믿음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을 내 삶의 기반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날아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이런 믿음의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손오공처럼 필요할 때만 부처님을 찾고 그렇지 않을 때는 부처님 손바닥에서 달아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께 전폭적으로 귀의함으로써,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분께 맡겨드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리서는 이렇게 제시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좁은 문을 통하여…기도 안으로 들어간다.…우리가 찾고 소망하는 것은 주님의 얼굴이며, 우리가 귀담아듣고 간직하고자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이다”(2656항).

 

희망의 덕은 그리스도의 약속을 신뢰하는 가운데 성령의 은총의 도움으로 참된 행복을 주는 하늘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게 하는 덕입니다(교리서 1817항 참조).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희망을 갖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구약성경 시편은 이를 놀랍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바라고 바랐더니 나에게 몸을 굽히시고 내 외치는 소리를 들으셨네”(시편 40,2).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희망과 사랑의 관계를 잘 설명합니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5). 특별히 전례 생활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이 사랑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받은 우리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하느님께서 베푸신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은 기도의 원천”입니다. 또 사랑에서 우러나는 기도를 하는 이는 “기도의 정상”에 도달합니다(2658항).

 

 

오늘(2659~2660항)

 

우리는 특별한 순간에 기도를 배웁니다. 예를 들면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리고 주님의 파스카 신비(성찬례)에 참여할 때에 기도를 드리며 기도를 배우지요. 하지만 매일매일의 사건 속에서, 바로 ‘오늘’이 순간에도 언제나 기도를 샘솟게 하는 주님의 성령을 받습니다. 교리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시간은 아버지의 손안에 있다. 우리는 지금 아버지를 만난다. 어제도 아니요, 내일도 아닌, 바로 오늘 만나는 것이다”(2659항). 이럴 때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시편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시편 95,7ㄷ-85ㄱ). 

 

날마다, 순간마다 일어나는 일들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비밀 가운데 하나”라고 교리서는 설명합니다.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도록 기도하는 것도 좋고 마땅한 일이지만, “일상의 사소한 상황들에 기도가 배어들게 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2660항).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오늘’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삶의 매 순간이 기도가 되도록 하라고 일깨웁니다. [평화신문, 2016년 10월 9일, 이창훈 기자]

 

 

[위대한 신앙의 신비, 기도] (19) 기도의 전통 (「가톨릭 교회 교리서」 2650~2696항)

 

기도의 길 끝에는 하느님이

 

 

기도의 길 ① (2663~2672항)

 

교회는 살아 있는 기도 전통 안에서,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기도의 언어를 신자들에게 제시합니다. 기도의 언어란 기도를 표현하는 것으로, 말과 음악과 동작과 성화같은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기도의 표현 곧 기도의 길들이 사도들의 신앙 전통에 충실한지를 판단하는 것은 “교도권의 권한”이며, 이 기도의 길들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사목자들과 교리교사들의 일”입니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이 기도의 길들이 “언제나 예수그리스도와 관련돼 있다”는 것입니다(2663항).

 

 

성부께 드리는 기도 

 

우리의 기도는 궁극적으로 성부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는 것입니다. 이 기도의 표현 곧 기도의 길들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 길들은 사실은 하나일 뿐입니다. 교리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교 기도의 길은 오로지 그리스도뿐이다. 우리의 기도는 그것이 공동체적이든 개인적이든 소리를 내어 하는 것이든 마음속으로 하는 것이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가 되어야만 성부께 다다르게 된다. 예수님의 거룩한 인성은 성령께서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는 길이다”(2264항).

 

 

예수님께 드리는 기도(2665~2669항)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 기도하는 법을 배웁니다.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면서 다양한 호칭으로 예수님을 부르며 기도를 바칩니다. 예를 들면, 하느님의 아들, 하느님의 말씀, 주님, 구세주, 하느님의 어린양, 임금님, 사랑하는 아들, 동정녀의 아들, 착한 목자 등등으로 말이지요.

 

이 모든 호칭을 집약하는 이름이 ‘예수’입니다. 예수란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마태 1,21 참조). 교리서는 “예수라는 이름은 모든 것, 곧 하느님과 인간, 창조와 구원의 경륜 전부를 내포한다”고 밝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부르면서 기도한다는 것은 또한 예수님께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는 동방과 서방 교회의 기도 전통 안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중 가장 흔한 기도는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희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하고 바치는 기도입니다. 

 

교리서는 또 “예수님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는 것은 늘 기도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길”(2668항)이라고 설명합니다. 사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는 어느 때라도 가능한 기도입니다.

 

 

오소서 성령님(2670~2672항)

 

그러나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기도를 드린다고 하지만 사실은 성령께서 미리 은총을 베푸시어 우리를 기도의 길로 이끄시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우리에게 “날마다, 특별히 모든 중요한 활동을 시작하고 마칠 때에 성령께 간청하라”(2670항)고 권고합니다.

 

어떻게 성령께 간청해야 할까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위로자이신 성령을 보내 주시기를 성부께 간청”(2671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청하면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한 14,16 참조). 

 

하지만 “오소서, 성령님, 믿는 이들의 마음을 충만하게 하시고, 그들 안에 사랑의 불을 놓으소서!” 하고 성령께 직접 간구하는 기도 역시 교회의 오랜 전통 안에 있는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성령과 일치할 때 교회의 기도가 됩니다. [평화신문, 2016년 10월 16일, 이창훈 기자]

 

 

[위대한 신앙의 신비, 기도] (20) 기도의 전통 (「가톨릭 교회 교리서」 2650~2696항)


길잡이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

 

 

기도의 길 ② (2673~2682항)


천주의 성모님과 일치하여

 

마리아는 성령께 협력하심으로써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실 뿐 아니라 또한 우리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는 길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비춰 주십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길잡이이십니다. 길이신 예수님께 이르는 이정표이십니다.

 

마리아께서 성령께 탁월하게 협력하신 사실을 토대로 교회는 천주의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 기도는 크게 두 가지로 드러납니다. 하나는 주님께서 성모님께 그리고 성모님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해주신 “큰일”(인류 구원)에 대해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마니피캇(Manificat)’이라는 찬양이 그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어머니이시며 그래서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자녀들의 애원과 찬미를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의 이 두 가지 큰 움직임을 아주 잘 드러내는 기도가 바로 성모송입니다. 성모송을 살펴봅시다.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 성모송은 우리 말로 번역했을 때 “은총이 가득하신…”으로 시작하지만, 원래 시작은 “기뻐하소서, 마리아님”(Ave Maria)입니다. 이 말은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입니다. 하느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친히 인사를 건네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시선으로 우리 또한 마리아께 다시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성모송을 바치는 것입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 마리아께서 은총이 가득하신 것은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안에 주님이 친히 와 계시는 것입니다. 마리아께서는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집이십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함께 계셔서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께서는 자신 안에 머무르러 오시는 분, 자신이 세상에 낳아 줄 그분 곧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십니다.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 이 인사는 사촌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 한 말입니다(루카 1,42 참조). 엘리사벳은 이렇게 인사한 후에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하고 거듭 인사합니다.

 

마리아는 믿음을 통해서 믿은 이들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또 세상 모든 민족은 마리아 덕분에, 하느님의 복 자체이신 분(예수 그리스도)을 받아 모십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 마리아께서는 당신 아들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기에, 우리는 천주의 성모이시며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우리의 모든 근심과 청원을 맡길 수 있습니다. 마리아께서는 천사의 전갈에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하고 응답하셨듯이,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하십니다. 우리는 마리아와 함께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하고 우리를 하느님 뜻에 맡기게 됩니다.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 우리는 마리아께 지금 우리를 위해, 죄인인 우리를 위해 빌어 주시도록 청합니다. 또 죽을 때에도 빌어 주시도록 청합니다. 시간은 지금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 시간의 끝은 죽음이지요. 따라서 이 기도는 언제나 죄인을 위해 빌어주시도록 청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교리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마리아께 기도하는 것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당신 아들을 보내신 성부의 계획에 마리아와 함께 동의하는 것이다”(2679항). [평화신문, 2016년 10월 23일, 이창훈 기자]

 

 

[위대한 신앙의 신비, 기도] (21) 기도의 전통 (「가톨릭 교회 교리서」 2650~2696항)

 

성인들께 의탁하며 성당에서 기도

 

 

기도의 길잡이 ① (2683~2696항)

 

교리서는 기도의 길잡이로 수많은 증인과 기도 봉사자들을 듭니다. 이와 함께 기도에 적합한 장소들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차례로 살펴봅니다.

 

수많은 증인들(2683~2684항)

 

우리보다 앞서 하늘나라에 들어간 증인들, 특히 교회가 ‘성인’으로 인정한 이들은 △ 모범적인 삶 △ 남긴 글 △ 그리고 기도를 통해 오늘도 살아 있는 기도의 전통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고, 찬양하며, 지상에 남아 있는 이들을 끊임없이 돌보아 줍니다. 그들의 전구는 하느님 계획을 이루기 위한 그들의 봉사 중 가장 고귀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온 세상을 위해 전구해 주시도록 그들에게 기도할 수 있고 또 해야 합니다. 

 

교회 역사가 흐르는 동안,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서 다양한 영성이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갖가지 영성은 기도의 살아 있는 전통에 참여하는 것”으로서, 신자들에게는 “필수적인 안내자”(2684항)입니다.

 

기도의 봉사자들(2685~2690항)

 

그리스도인 가정은 기도를 가르치는 첫째 장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가정 교회’입니다. 가정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은 ‘교회로서’ 끊임없이 기도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날마다 바치는 기도는 교회의 생생한 기억을 특히 어린이들에게 처음으로 증언해 줍니다. 

 

서품된 봉사자인 성직자들도 기도의 봉사자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가 된 신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을 기도가 솟아나는 샘, 곧 하느님 말씀과 전례와 하느님을 향한 삶으로 인도하기 위해 서품됐기 때문입니다. 

 

수도자들, 곧 봉헌생활을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수도자가 그들의 전 생애를 기도하는 데에 바쳤습니다. 또 많은 은수자와 남녀 수도자가 하느님을 찬양하고 백성을 위해 전구하는 데에 일생을 보냈습니다. 사실, 봉헌생활의 힘은 기도에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봉헌생활을 유지하거나 확산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교회 안에서 관상 생활과 영성 생활이 솟아나는 원천 중 하나”(2687항)입니다. 

 

교리교육도 기도의 봉사자입니다. 교리교육의 목표는 △ 개인 기도 중에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 전례 기도 중에 하느님 말씀을 현재 상황에 연결시켜 그 말씀을 항상 내면화하여 열매를 맺도록 하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 생활을 위해서는 기도문을 암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의미를 음미하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기도 모임 또는 기도 학교들도 기도의 봉사자입니다. 성령께서는 어떤 신자들에게는 지혜와 믿음과 식별의 은총 곧 영적 지도의 은총을 주십니다. 기도라는 공동선을 위해서지요. 이들 역시 기도의 봉사자들입니다.

 

기도에 적합한 장소(2691항)

 

하느님의 집인 성당은 본당 공동체가 바치는 전례 기도에 적합한 곳입니다. 본당은 또한 성체 안에 실제로 현존해 계시는 그리스도를 흠숭하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개인 기도를 드리기 위한 장소로는 성경과 성화들이 비치돼 있는 ‘기도의 골방’이 적합한 기도 장소입니다. 가정에 이러한 작은 공간이 있으면 개인 기도만이 아니라 가족의 공동 기도를 촉진시켜 줍니다. 

 

수도원과 순례지(성지)들도 기도에 적합한 장소입니다. 순례는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여정을 상기시켜 주며, 순례지(성지)는 기도를 체험하는 특별한 곳입니다. [평화신문, 2016년 10월 30일, 이창훈 기자]

 

 

[위대한 신앙의 신비, 기도] (22) 기도의 전통 (「가톨릭 교회 교리서」 2650~2696항)

 

의식적으로 시간 정해 기도 바쳐라

 

 

기도 생활이란(2697~2699항)

 

신앙생활은 한 마디로 사랑의 이중 계명을 실천하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이중 계명이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을 말하지요. 이 사랑의 이중 계명을 실천하는 데에 기본이 바로 기도 생활입니다. 

 

교리서는 기도를 “새 마음의 생명”이라고 부르면서 그리스도 신자들은 “순간순간 기도에서 생기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2697항).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330~390) 성인은 “숨을 쉬는 것보다 더 자주 하느님을 생각해야 한다”고까지 말하면서 그리스도 신자 생활에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 말은 호흡하는 것처럼 언제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리서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러나 일정 시간에 의식적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어느 때에나’ 기도할 수 없다”(2697항). 말하자면 기도는 호흡을 통해 육신이 생기를 얻는 것처럼 영혼에 생기를 주는 것이지만, 호흡하지 않으면 금방 숨이 차오르고 고통을 느끼는 것과 달리 기도는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고통을 금방 느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기도를 하지 않으면 영혼은 차츰 생기를 잃고 우리는 영적으로 병이 들게 됩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의식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마치 호흡하는 것처럼 습관이 될 때 비로소 언제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의식적으로 기도하려면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기도를 바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전통적으로 지속적인 기도를 함양시켜 주는 주기적인 기도를 신자들에게 권해 왔습니다. 날마다 바치는 기도로는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식사 전후의 기도, 시간전례인 성무일도가 대표적입니다. 삼종기도 역시 날마다 일정한 때에 바치는 기도이지요. 그리고 주일에는 성찬례를 중심으로 무엇보다 기도로써 거룩하게 지냅니다. 

 

교회는 또 인류 구원 역사의 핵심이자 절정인 강생(예수님 탄생)과 파스카(수난과 부활)를 중심으로 구원 역사 전체를 1년 주기 안에 기념하고 있는데, 이를 전례주년이라고 하지요. 이 전례주년 역시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의 기도 생활에 근본이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림시기에는 종말에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하느님이 사람이 되심을 기념하는 성탄을 기다리며 그에 맞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 생활에 기본이 되고 도움이 되는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기도할 뿐 아니라 평소에도 기회가 되는 대로 기도를 생활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모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의 구원 신비를 묵상하며 바치는 묵주기도와 화살처럼 짧은 순간에 지향을 담아 기도한다고 해서 ‘화살기도’라고 부르는 기도들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바칠 수 있는 대표적인 기도들입니다. 

 

그리스도 신자 생활에서 이렇게 중요한 기도 생활을 교회는 전통적으로 세 가지 방식으로 표현해 왔습니다. 소리 기도, 묵상 기도, 그리고 관상 기도입니다. 이 세 가지 기도 형태의 공통점은 마음을 가다듬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또 하느님의 현존 앞에 머물고자 하는 노력에 따라, 이 세 가지 기도의 형태는 기도 생활을 깊이 있게 해준다”(2699항)고 교리서는 설명합니다. 

 

세 가지 기도 형태를 차례로 살펴본 후 이어서 기도의 싸움에 대해 알아봅니다. [평화신문, 2016년 11월 6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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