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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토마스 머튼, 세상 한가운데 선 우리 시대의 관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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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4-26 ㅣ No.316

[현대의 영성] 토마스 머튼, 세상 한가운데 선 우리 시대의 관상가 (1)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년)처럼 그 삶과 사상의 면면이 다양하고 복잡한 층위를 갖추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란 교회 안팎을 막론하고 쉽지 않다. 그의 사상을 일관된 틀 안으로 정리해 내기가 거의 불가능하게까지 여겨지는 것은, 흔히 얘기하듯 특유의 ‘변덕’ 때문도 아니고, 또 저 엄청난 영적 인간적 박람강기(博覽强記) 때문만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가 타인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관계 맺는 데 남다른 ‘자기 상대화’ 능력, 요즘 말로 ‘공감 능력’의 소유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실로 타인(other)의 ‘다름(otherness)’을 선입견과 경계로 대하며 교정해 주려 들거나, 가능할 때는 ‘흡수합병’, 불가능할 때는 ‘제거’ 또는 ‘분단고착’을 선택하기 일쑤인 우리네 일반적 경향을 훌쩍 넘어선 영역에서 살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한마디로, 그는 탁월한 ‘가톨릭적’ 감각을 태생적으로 갖춘 이였다. 여기서는 ‘세상과의 관계’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그가 남긴 가르침 또는 ‘증언’을 주마간산격으로나마 훑어보고자 한다.

 

 

관상과 환상

 

1963년, 그러니까 수도원 입회 25년 뒤, 그는 그의 자전적 고백록인 “칠층산”의 일본어판 서문에서 수도원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린다. “숨어있음과 연민으로 세상 모든 곳에 있기 위해 흥미의 대상으로서의 세상으로부터 은거한 곳.” 사막교부들과 친한 이라면 이 말에서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346-399년)가 남긴 금언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수도승은 모든 이로부터 떨어져 나옴으로써 모든 이와 하나가 되는 사람이다.” 머튼의 경우도, 출가 뒤 고독을 향한 고통스러울 정도로 깊은 열망의 긴 여정을 통해 이 지점에 도달했다.

 

여기서, 수도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소도시 루이스빌의 어느 한 골목 - “제4가(街)와 월넛 거리 사이” - 에서 한 체험은 결정적이었다. 그때 그는 문득, “내가 얼마나 이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는지, 내가 이들에게 속해있듯 이들 역시 참으로 내게 속해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죄스런 방관자의 억측”). 심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에게는 이것이 일종의 깨달음의 체험이요 ‘계시’의 순간이었다.

 

그때 그는, 수도원이 마치 ‘인디언 보호구역’과도 같이 세상과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 세상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거룩한 삶’이란 환상이요 꿈일 따름이었음을 확연히 본 것이다. 자기가 사실상 세상 모든 사람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일치해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도원은 더 이상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길이 아니”며, 오히려 “내가 수도원 안에 있다는 사실 자체로써 세상의 모든 투쟁과 고통 안에 있는 내 몫을 참으로 수용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나는 이 여인(수산나)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다니 13,46)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정작 수산나의 죽음에 책임을 느낀 다니엘뿐이었다. 이 여인의 무고한 죽음에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모두 세 노인과 공범일 수밖에 없다. 참된 관상은 우리 사회의 누구나가 이런 방식으로 ‘죄의 연대성’이라는 그물망에 포섭되어 있음을 꿰뚫어 보게 한다. 머튼이 수도승 전통의 근본 가치처럼 인구에 회자되던 이른바 ‘세상 혐오(contemptus mundi)’를 근본에서부터 재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수도승의 현실 관여

 

세상을 떠나기 몇 시간 전, 그는 “수도승은 본질적으로 현실세계와 그 구성체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을 뜻한다.”는 말을 남겼다. 환상의 가면을 벗기는 일이 관상적 삶의 본질에 속한다는 확신에서 우러난 말이었다. 여러 해 동안의 기도와 고독은 그를 자신의 환상과 정직하게 대면하게 했고, 그 영적 투쟁을 통해 그는 마침내 자신과 동료 인간들에게 차라리 숨기고 싶은 세상의 환상도 꿰뚫어 보게 되었다.

 

“수도승 생활과 그 서원으로써 나는 모든 수용소에 대해, 공중 폭격에 대해, 모든 (불의한) 정치 소송에 대해, 사형 집행의 살인에 대해, 인종차별적 불의에 대해, 허울 좋은 평화의 언어를 일삼으나 실상은 오직 전 지구적 파멸만을 가져올 따름인 경제적 독재와 사회-경제적 장치 전체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한다. 나는 수도승으로서의 내 침묵을 정치인들과 선동가들의 거짓말에 대한 저항으로 삼는다.”와 같은 발언이나, “내가 (핵전쟁 등에 대해) 말한다고 하여 복음보다 정치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복음의 약속은 이전 어느 때보다 더 깊은 정치적 함의를 함축하고 있다.”고 한 발언들이 이런 입장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그것은 “수도승으로서 하기가 몹시 힘든 말이었지만, 수도승이 되기 위해, 그리고 수도승으로 살기 위해 정작 필요한 말들이었다”(헨리 나웬).

 

 

“더 세상 안으로, 덜 세속적으로”

 

근자의 한국 사회에서처럼, 그가 살던 1960년대의 미국에서도 ‘교리’보다 더 큰 권위로 사람들의 의식(또는 무의식)을 검열하는 아주 힘센 상투어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교회는 세속 정치의 영역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얼핏 정교분리의 원칙을 존중하는 균형잡힌 말로 들리지만, 이는 비복음적인 성속이원론에 토대를 둔 것으로서 “정의와 세상의 변모는 복음화의 본질적 구성요소”(베네딕토 16세, “주님의 말씀”, 100항)라고 보는 한결같은 교회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다.

 

정작 멀리해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는 흐름, 또는 정신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세상적’이어서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충분히 ‘세상적’이지 못해서 문제다. 교회공동체는 얼마든지 잘못된 의미로 ‘비세상적’일 수 있고, 그럴 때 실상은 세상 여느 속물들과 다를 바 하나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기 쉽다.

 

까를로 까레또의 표현 하나가 이해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성당에 잘 다니고, 하늘과 땅 사이에 똑같이 거리를 두고는, ‘여기 아래’는 아래대로 즐기면서 ‘저기 저 위’는 또 위대로 확보해 놓은 그런 사람들, 양심의 모든 문제를 그렇게 해결한 이들, 이들은 그리스도와 복음을 따라 살면 미쳤다고 한다”(“프란치스꼬, 저는”).

 

머튼은, 거두절미하고 신앙이란 모름지기 ‘정치’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분법이야말로 사실상 (나쁜 의미로) 가장 ‘정치적’이란 사실을 꿰뚫어 보았다. 이 이분법의 영역은, 복음이 관심하는 ‘정의’와 ‘세상의 변모’를 신앙의 영역 바깥으로 축출하고, 교회와 정치세력 간의 은밀한 거래와 야합이 싹트게 하는 비옥한 토양이 된다.

 

사실 이것은 관상과 활동의 이분법처럼, 정확히 편리한 그만큼 비복음적이다. 왜냐하면, 신앙(관상) 쪽에서 보자면 현실관여(활동)가 요구하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경청 · 연민 · 선택 · 연대의 의무를 면제해 주고 편안한 양심을 보장해 주며, 현실관여(활동) 쪽에서 보자면 신앙 · 기도 · 관상이라는 필수불가결한 토대를 필요 없거나 부수적이거나 심지어 “낭만에 초 쳐 먹는 소리” 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현장’에 곧바로 뛰어들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잘 요약해 주는 “더 세상 안으로, 덜 세상적으로(Plus in hoc mundo, minus de hoc mundo)라는 구호는, 머튼이 세상과 수도원(교회)과의 관계를 두고 말하고자 한 바 역시 잘 요약해 주고 있다. 세상 안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는 것,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처럼 전적으로 세상을 위해 존재하며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는”(히브 2,17 참조) 일과, 점점 더 세상적인 정신에서 정화되고 자유로워지는 것, 다시 말해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요한 17,14 참조)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 쪽이 없으면 다른 한 쪽도 애초에 불가능한 그런 관계이다.

 


교회와 말의 문제

 

머튼이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산업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처에 목도하게 되는 언어의 타락 현상이었다. 교회와 정치 영역의 이분법에 관한 상투어에 대해서는 이미 말했거니와, 예컨대 “매스컴이 매일같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정신적 상투어들을 합리화하기보다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서서 우리의 그리스도교적 관점을 다시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윤리관은) 안타깝게도 간혹 그리스도교 교리처럼 표현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교리가 아니라 풍요로운 사회의 세속 윤리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이가 돈 버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경제법칙 원리에 따라 공동선은 자동적으로 달성될 것이라는 잘못된 가정에 입각한 윤리인 것이다.”(“머튼의 평화론”)는 말 역시 정확히 지금 우리 사회에도 무섭도록 들어맞는 지적이 아닌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가격’이 ‘가치’를 대체하며 ‘돈’의 전횡 아래 인권이나 환경이 걷잡을 수 없이 허물어져 가는 상황 앞에서 침묵이 선택되거나 ‘구매’될 위험은 상존한다. 그럴 때, 그 교회는 또 하나의 ‘침묵의 교회’일 수밖에 없다. 더 무서운 것은, 그럴 때 이런 현실이 복음을 ‘검열’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말씀이 세상의 말들을 검열하게끔(영적 식별의 노력) 해드리지 않을 때, 세상의 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검열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믿는 이의 정신을 말씀이 아니라 이 말들이 지배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교회가 “세상을 변혁”시키기는커녕 “세상의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한국의 교회를 변혁시켜 가고 있다.”는 29년 전(!) 김수환 추기경의 무섭도록 정직한 진단(“사목” 1982년 5월호) 역시, 머튼의 예언적 음성과 함께 지금 한국 교회의 어깨를 내리치는 죽비소리처럼 느껴진다.

 

죽이는 일이 ‘살리는’ 일이 되고(‘4대강 살리기’), 막개발의 광풍이 ‘녹색’이란 말로 포장되어도 얼마든지 통할 만큼, 오늘 이땅의 언어도 이미 오염되어 버렸다. 결국 “말을 지배하는 자가 생각을 지배”(조지 오웰)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폴 발레리)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생각하지 않으면 세상의 말들이 이끄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머튼은 정치인들의 희생제물이 되어버린 말의 총체적 오염과 타락이 일으키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교회 쇄신은 말의 쇄신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그가 고독의 침묵을 깨고 발언할 용기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였던 것이다.

 

* 이연학 요나 -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 수사.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지도신부. [경향잡지, 2011년 2월호, 이연학 요나]

 

 

[현대의 영성] 토마스 머튼, 세상 한가운데 선 우리 시대의 관상가 (2)

 

 

지난 호에서 교회와 세상의 관계라는 주제에 대한 머튼의 생각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오랜 세월 ‘죄 없는 방관자’로 지내던 그가 마침내 스스로를 ‘죄스러운 방관자’(“죄스러운 방관자의 억측”은 그가 만년에 출판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로 알아듣게 되고, 그리하여 인종차별 문제나 핵전쟁 등 당대의 가장 첨예한 현안들에 대해 활발히 발언하는 ‘예언자’요 ‘증언자’의 모습으로 ‘변신’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교 수도승으로 걷던 내적 여정에서 일탈한 결과가 아니라 정확히 그 연장선상에서 마지막까지 충실했던 결과라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번 달에는 범위를 더 좁혀서, 주로 그의 ‘평화론’에 초점을 맞추어 그 내용과 맥락, 오늘 우리를 위한 의미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머튼의 ‘평화론’과 교회의 가르침

 

만년의 머튼이 나름대로 수도승으로서 활발히 투신했던 평화운동에서, 그 근거는 어떤 사회학적이거나 정치적인 신념이 아니라 (성경을 포함하여 교회 전통 전반을 일컫는 말인) ‘원천(fontes)’이었음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만에 하나 그리스도인들이 공적 영역에서의 종교적 지도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이러한 책무를 망각한다면 신-인(God-man)에 대항하는 반역죄를 저지르는 셈이 될 것이다.”라는 말은 요즘 한국 교회의 상황 같으면 미심쩍은 ‘정치적 발언’으로 몰려 지탄의 대상이 되기가 십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머튼이 비오 12세 교황의 1955년 성탄 담화문 중 한 대목을 인용한 것으로서, 그는 이를 근거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표양에서 내면의 기쁨만 찾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기도와 보속을 통해서뿐 아니라 정치적 결단과 사회적 책무에서도 그리스도를 완전히 따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이 필요하다.

 

현세와, 현세 문제와는 완전히 담을 쌓고 인간 사회에 대해서는 관심을 저버린 채 하느님과 관계된 일에만 온전히 자신을 바치겠다고 하는 사이비 관상 영성은 오늘날 분명 필요치 않다”(“머튼의 평화론”, 239쪽).

 

요컨대 “신앙과 정치를 더는 별개의 영역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한결같은 확신은 교회의 사회교리에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머튼이 살던 시대의 미국 교회 상황이 전반적으로 보아 그의 이런 확신에 공감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가르침이 아닌 정글의 법칙의 가르침을 담은 견해와 결정에 너무 쉽게 굴복해 버리”며 “아무 저항도 없이 위에서 내려온 지침에 고분고분 따르고 양심의 가책을 거의 느끼지 않는”(“머튼의 평화론”, 240쪽) 상황이 당대 미국 교회의 상황이었다.

 

그 이유의 일단을 우리는 다음과 같은 토로에서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솔직히 말해 우리 사제들과 신학자들은 우리가 속한 종교집단이 사회 속에서 획득한 특권을 보호하고 스스로의 지위를 보존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면서 일반인들이야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머튼의 평화론”, 67쪽).

 

핵전쟁의 가능성으로 글자 그대로 ‘전운(戰運)’이 감돌던 상황도 그렇거니와, 이 상황에서 보이는 교회의 처신이라는 관점에서도, “포스트 그리스도교 시대의 평화”(한국말로는 조효제 교수의 깔끔한 번역으로 “머튼의 평화론”이란 제목을 달고 출간되었다.)에 담긴 머튼의 경고는 오늘 한국 교회에 참으로 “내일 신문의 헤드라인보다 더 시의적절”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당대 엄률시토회 총장의 속 좁은 검열로 말미암아 출판되진 못했지만 다행히 직속 아빠스의 유권해석으로 등사본으로 교회 안팎에 널리 돌려 읽혔던 이 책의 내용은 1963년 4월에 나온 요한 23세 교황의 회칙 “지상의 평화”와 여러 면에서 상통한다.

 

이 회칙에서 교황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 생존권임을 강조하면서 군비경쟁과 같은 생명 위협에 반대되는 주장을 열정적으로 펼쳤다. 전쟁은 더 이상 ‘침해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 아니라고 천명하면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아가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지 말라고 하면서, 생명을 보호하고 도덕성을 옹호하기 위해 개인의 책임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오늘날 평균적인 한국 천주교인의 상식에는 아마도 충격이 될 법한 이런 입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그대로 계승되어, “세속 권력이 하느님의 의지에 반하는 입법을 하거나 그런 행위를 한다면, 어떤 법률이나 공식 승인도 시민의 양심에 구속력을 가질 수 없다. 하느님은 인간보다 더 많은 경배를 받으실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사목헌장, 11항)는, 더 ‘급진적인’ 천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사목헌장’에 담긴 전쟁에 대한 확고부동한 단죄(90항)와, 비폭력 - 평화노선이야말로 복음의 최종 귀결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78항) 등은 특히 머튼이 “머튼의 평화론”에서 주창한 바와 온전한 화음을 이루고 있다.

 

[‘사목헌장’은 나아가 ‘자연법의 보편적 원리’를 거스르는 세속권력의 명령은 죄악이며, “맹목적인 복종도 그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들을 사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런 범죄를 명령하는 자들에게 공공연히 저항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저 사람들의 정신은 최상의 찬사를 받아야 한다.”(79항)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나 “비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까지 비폭력과 사랑에 관한 복음의 윤리를 ‘감상적’이라고 비하하곤 한다.”(“머튼의 평화론”, 180쪽)는 머튼의 탄식은 지금 이 시점 한반도의 현실과도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는 것인지 실로 모골이 송연할 정도이다.

 

 

비폭력 영성

 

복음과 교회 전통에 더 부합하는 노선은 결국 대화와 타협의 노선, 상생과 비폭력의 평화노선일 수밖에 없음이 자명하다. 따라서 이를 특정 정치세력의 정치적 브랜드라고만 알아듣거나, 어느 한 정치적 노선에 편드는 것으로 몰아가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정치적’인 모략일 것이다.

 

“우리는 비폭력적이고 이성적인 조치가 무기보다 더 강력하다는 메시지가 ‘기쁜 소식’의 핵심이라고 믿는다. 초대교회가 (이) 정신적 무기만으로 로마제국 전체를 정복하지 않았던가? …

 

우리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비폭력적인 수단 - 사회와 인간에게 진정으로 영속적인 도덕적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 - 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또 말한다”(“머튼의 평화론”, 182쪽).

 

실로 평화운동과 관련하여 머튼이 얻었던 가장 큰 깨달음과 확신이 비폭력의 영성이었다.

 

비폭력 영성의 핵심은 “가장 포악한 행동은 전적으로 어떤 악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간디의 비폭력”)는 말에 잘 담겨있다고 본다. 비폭력 영성에서 참으로 관건은 악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다.

 

만일 악을, 돌이킬 수 없고 바로 눈에 보이며 윤곽이 뚜렷한 종양과 같은 것으로 본다면, 길은 오직 하나, 잘라내는 것뿐이다. 이때는 폭력이 필연적이다.

 

그러나 악을, 돌이킬 수 있고 용서를 통해 선으로 바뀔 수 있는 것으로 본다면, 바로 이때 비폭력이 가능하다. 복음서에서 악을 대하는 관점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던가?

 

“억압하는 자를 벌하고 파괴하는 것은 새로운 폭력과 억압의 주기를 시작하는 것일 따름이다. 단 하나의 진정한 해방은, 폭력적 과정의 전제적이고 기계적 행동양식으로부터 억압자와 피억압자를 동시에 해방시키는 것이다. … 영적 자유의 최고 형태는 간디가 믿었듯이 피억압자와 억압자를 함께 해방할 수 있는 마음의 힘에서 찾을 수 있다”(“간디의 비폭력”).

 

그러므로 참된 평화를 위한 비폭력 운동의 원동력은 기도, 그 ‘영성’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이때 기도는 어떤 결과 - 예컨대 정의의 실현과 가난한 이의 해방 -를 이루기 위한 방편이나 전략이 결코 아니다.

 

“기도는 오히려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 죽었다.’는 사실 때문에, 핵재앙이나 환경 재앙이 몰고 올 세상의 절멸마저 우리를 마지막까지 파괴할 수는 없다는 그런 진리를 우리 것으로 삼을 수 있게 해준다”(헨리 나웬, “평화의 영성”).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우리의 생명은 이미 죽음을 넘어서 있는 생명, 어떤 죽음도 결코 마지막까지 죽일 수 없는 그런 생명이다. 그리스도인은 ‘죽을 이유’가 분명하기에 ‘살 이유’도 분명하고, 그의 ‘살 이유’는 동시에 ‘죽을 이유’도 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생명이 더 이상 죽음으로 위협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금 바로 내놓아도 괜찮은 어떤 것으로 체험된다.

 

바로 이럴 때 우리는 참으로 살아있음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이 생명의 자리야 말로 참된 평화의 자리로서 비폭력 영성의 원천이다. 이 자리야말로 참된 그리스도교 정의 - 평화 - 환경 운동의 유일한 자리이다.

 

이런 맥락에서, 복음적 견지에서 현실 문제에 관여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헨리 나웬의 고언(苦言)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화운동(교회의 현실참여)에 대해 유보해 온 강력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그들이 추구하는 평화를,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안에서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주로 보는 것은 저항의 긴박성을 설득하고 확산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두렵고 화난 모습이다. 안타까운 일은, 평화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평화보다는 저항하려는 대상인 악의 모습을 더 많이 드러낸다는 사실이다”(“평화의 영성”).

 

머튼이 평화운동가들의 ‘구루’가 되기를 극구 마다한 것은 사실 이런 상황과도 관련이 있었다.

 

수도승 기도와 고독의 한복판에서 솟아난 머튼의 복음적 문명비판과 예언적 통찰의 핵심은, 모든 사회문제는 사실상 우리 자신에 대한 어떤 계시라는 것이다.

 

당대의 이른바 ‘흑인문제’가 사실은 ‘백인문제’란 사실을 꿰뚫어본 그이므로, 이미 그 시대에 ‘환경문제’가 사실은 ‘인간문제’란 사실을 꿰뚫어보았단 점도 따지고 보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미흡한 글을 마치며, 4대강 문제를 앞에 두고 그의 울림 깊은 경구 한마디를 다함께 곱씹어보고 싶다.

 

“종말이 가까울수록 자연환경을 위한 자리가 없어진다. 끊임없이 개발되며 북적거리는 도시들이 지구에서 자연의 영역을 지워버린다. 종말이 가까울수록 고요의 자리, 고독의 자리, 정직한 성찰과 사색의 자리가 없어진다. 그러다가 마침내 종말이 오면, 사람의 자리가 없어진다.” [경향잡지, 2011년 3월호, 이연학 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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