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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윤리] 여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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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24 ㅣ No.1190

[복음살이] 여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1)

 

 

교회 안에서 여성이 오랫동안 남자의 동등한 반려자로서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여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60년 이후였습니다. 과거 레오13세가 1891년에 발표한 <새로운 사태>에서 예외적으로 노동자로서의 여성이 언급되기도 했지만, 일반적인 교회 문헌에서 여성을 언급한 것은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직종의 노동은 원래 가사를 돌보는 데에 적합한 부녀자들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다. 여자들은 온유한 성품의 여성다움으로서 정절을 훌륭히 지키며 자녀들을 교육하고 가정의 안녕을 유지하는 데에 타고난 자질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31항). 또한 비오 11세는 1930년에 반포한 회칙 <정결한 혼인(Casti connubi)>에서 그 시대 교회가 지닌 여성관, 즉 남편은 아내와 자녀들에 비해서 우선권을 지니고 있다는 것과 아내는 남편에게 기꺼이 복종하고 순응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내의 역할이 가정에 국한되어 있으므로 가장인 남편에게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는 충분한 보수가 지급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20세기 페미니즘의 도전이 막 시작되었던 시기인 1963년 요한 23세는 회칙 <지상의 평화>에서 여성들이 사회생활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와 함께 자신들의 존엄을 날로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여성에 관한 교회의 관점이 급격히 달라졌음을 드러냅니다.

 

“둘째로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정치 생활에 대한 여성의 참여 문제이다....그들은 도구로서 취급받거나 무시당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며, 한 인간으로서 가정생활과 정치생활과 사회생활에서 대접받기를 요구하고 있다”(41항).  

 

이런 변화는 1965년 발표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에도 이어지는데 <사목헌장>은 모든 인간이 동등한 존엄을 지닌다고 천명하면서 “인간 기본권에서 모든 형태의 차별, 사회적이든 문화적이든, 또는 성별, 인종, 피부색, 사회적 신분, 언어, 종교에서 기인하는 차별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극복되고 제거되어야 한다”(29항)라며 남녀차별의 부당성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더 나아가 이 문헌은 여성이 가정 밖의 다양한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현실을 광범위하게 지적합니다.

 

“이제 여성들은 거의 모든 생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마땅히 여성들은 고유한 특성에 따라 자기 역할을 완전히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 고유의 필요한 문화생활 참여를 인정하고 증진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의무이다”(60항).

 

그런데 <사목헌장>은 동시에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과 함께 가정에서 어머니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특히 어린 자녀들은 집안에서 어머니가 보살펴야 한다. 여성의 정당한 사회 진출이 경시되지 않으면서도, 어머니의 보호는 보장되어야 한다”(52항).

 

이처럼 교회는 여성들이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가정에서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받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1960년대 교회 여성의 특성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

 

1965년 12월8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감하는 연설에서 교황 바오로 6세는 여성들에게 세상 안에서 더 많은 역할을 맡아줄 것을 당부합니다. 여성들은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자녀들에 대한 일차적인 교육자일 뿐 아니라 종교를 막론하고 세계의 여성들은 세상의 평화를 지킬 중대한 역사적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성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자신의 공동체 안에서 실현되게 하고, 인류가 타락하는 것을 막고 남성들이 생명을 존중하는 것을 가르치며, 남성들이 인류의 문명을 망치는 것을 중단시키는 사명을 요청받고 있다고 당부합니다. 교황은 여성들의 특성인 부드러움, 사랑, 이타심, 겸손, 인내 등을 통해 교회를 변화시키고 인류를 남성들의 파괴적인 방식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고 호소하였습니다.

 

이처럼 1960년대에 교회는 여성의 역할이 가정 안에서 자녀 교육과 양육의 담당이라는 전통적 견해를 벗어나서 여성들의 특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남성들의 파괴적 속성을 완화하고 생명과 인류 평화에 공헌할 것을 요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 안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여전히 제한적이었습니다. 1960년대 초부터 가톨릭교회에서 여성 사제를 허용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하였는데, 1974년 미국 수녀 장상회의 총회에서 모든 교회의 직무는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열려있으며, 여성은 교회의 의사결정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을 결의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1974년 미국의 몇몇 성공회 주교들은 11명의 성공회 여성을 사제로 서품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진보적 가톨릭 여성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여성사제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성은 사제가 될 수 없다는 선언

 

바티칸의 신앙교리성은 여성사제에 대한 논란이 점점 증폭되자 1976년 10월15일자로 여성은 사제로 서품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선언문 <여성 교역 사제직 불허 선언(Inter Insigniores)>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문헌은 우선 여성의 공적인 활동이 확산되는 변화를 인식하고,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중지할 필요를 역설하며, 교회 생활에서 여성이 해 온 중요한 공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불의와 차별을 중단시키는 것이 하느님 뜻에 부합한다는 것과, 여성 지도자들이 교회의 역사 안에서 자신들의 다양한 재능과 글, 자선 사업, 그리고 강한 신앙으로 교회를 풍요롭게 해 왔음을 지적하면서 제2차 바티칸 교회가 열어놓은 문을 통해 여성들이 더욱 온전히 교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문헌은 여성은 사제로 서품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예수님이 여성을 차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사제로 부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성 제자들이 있었음에도 열두 명의 남성만을 사도로 삼으셨고, 최후의 만찬에서도 예수님은 남성인 열두 사도에게만 사제직을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지금까지 교회 전통에서 한 번도 여성을 사제로 만든 일이 없으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의도하시고 사도들이 유지해 온 전통에 충실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남성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문헌은 예수가 남성이기에 남성만이 예수를 합당하게 외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자연적 유사성’(natural resemblance)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성이 사제직을 맡는다면 그리스도와 그의 대리자인 사제 사이에 존재해야 할 ‘자연적 유사성’이 없게 될 것이고 따라서 신자들도 여성사제에게서 그리스도의 이미지가 잘 맞지 않는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 문헌은 남성만 사제품을 받는 것이 인격적 우월성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 영예를 구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즉 초자연적 실재 안에 있는 “사제직은 일정한 소명의 대상이며 그 소명은 오로지 거저 주신 은혜이고 그것의 진위를 확인하는 것은 교회”이므로 어떤 개인적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여타 사회단체의 남녀평등과는 다른 영역이라는 것입니다(8항).

 

 

교회 안에서 여성 참여 권장하나 사제직은 반대

 

그렇다면 여성사제서품을 주장하는 이들은 과연 어떤 반론을 제기했을까요? 우선 그들은 교회 역사에는 시대 상황에 따라 수없이 전통을 깨고 새로운 것을 시도했는데 굳이 남성 사제의 전통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테면 과거에 교회가 노예를 허용하였고 이교도들을 죽이는 것을 격려했고, 유대인을 차별했지만 지금은 그런 규정들이 다 변화된 것을 보면 전통은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열두 사도의 직무가 꼭 사제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예수님이 남성만을 열두 사도로 만들었다고 해서 교회가 여성을 사제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보증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즉 남성만을 열두 사도로 뽑은 것은 당시 남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회 문화적 배경 때문이지 절대적인 규범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남성 뿐 아니라 여성 역시 인간으로서 예수와 닮은 것이며, 단지 육체적, 성적으로 닮은 것이 핵심이 아니라는 논리입니다. 성자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으로 오신 것이 중요한 것이며, 남성만을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므로 남성성만이 아닌 인성이 예수님을 대표하는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60-70년대에 여성의 역할이 가정 밖의 영역으로 확대되는 것을 권장하면서도, 가정에서 모성의 역할이 보호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고, 교회 안에서 여성들의 더욱 적극적인 참여를 권장하면서도, 여성 사제직만큼은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2월호, 박정우 후고(신부, 서울 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복음살이] 여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2)

 

 

1970년대 동안 가톨릭교회는 지난 달 소개했던 ‘여성 교역 사제직 불허 선언’을 포함하여 여성과 직접 관련된 가르침을 담은 문헌 5개를 발표합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서구사회에서 유행한 여성해방운동(feminism)과 성 혁명(sexual freedom)을 포함한 개방적 사회분위기의 이념적 물결은 여성의 사회 진출, 피임과 혼전성관계의 일반화, 낙태의 합법화, 성공회의 여성사제 허용과 같은 급격한 사회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한편 유엔은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하였는데 이는 여성의 존엄과 평등에 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여러 문헌들을 통해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따라 제기되는 윤리적 문제에 응답하면서 여성의 존엄과 평등을 강조하고 인간의 본성과 여성에게 주어진 우선적인 책임과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첫째로, 1974년 11월 18일 교황청 신앙교리성성은 ‘인공유산 반대 선언문(Declaration on Procured Abortion)’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문헌은 1973년 1월 22일 미국 대법원에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통해 낙태를 합법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에 대한 대응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선언문은 우선 교회가 역사 안에서 인간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로서 보호받고, 존중 받아야 함을 지속적으로 가르쳐 왔음을 확인하고, 생명의 의미, 하느님의 창조와 인간됨의 의미에 대해 논하면서 생명권이 사회의 다른 모든 인권의 기초임을 선언합니다.

 

이 문헌은 또한 현대 과학, 특히 유전학을 이용하여, 인간 생명은 이미 “충분히 결정된 독자적인 특성을 지닌 한 사람이 될 프로그램이, 잉태되는 첫 순간부터 수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13항), 아버지의 것도 어머니의 것도 아닌, 고유한 특성을 지닌 새로운 사람이 시작되는 수정의 순간부터 자연적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인간의 생명은 존중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낙태를 권리로 추구하는 여성해방운동 수용할 수 없어

 

이어서 문헌은 낙태를 구하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들, 즉 산모의 건강, 자녀 증가에 따른 경제적 부담, 기형아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 체면 문제 등을 언급하면서, 비록 어려운 상황들임을 인정한다 해도 그 어떤 이유에도 “타인의 생명을 처분할 권리를 객관적으로 줄 수 없다는 것을 선언할 뿐”이라고 밝힙니다(14항). 

 

또한 여성해방운동(feminism)과 관련하여 이것이 “부당한 차별로부터의 해방을 모색하는 것이라면” 긍정적이며 다루어야 할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낙태와 인간생명의 존엄성과 관련된 사항은 자연 혹은 본성(nature)에 관한 것이므로 낙태를 권리로 추구하는 여성해방운동의 주장은 수용될 수 없음을 밝히고 있습니다(15항).

 

또한 당시 유행하던 ‘성 해방(sexual freedom)’의 주장과 관련하여 “성 해방이라는 표현이, 본능적 충동을 넘어선 진정한 사랑과 이성에 의해서 점진적으로 획득되는 통제력으로 이해된다면” 쾌락을 줄이지 않고 합당하게 누리는 것에 대해 진정한 자유로서 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자녀의 출산을 지향하는 부부생활의 근본 법칙을 무시하면서 성적 쾌락을 극단적으로 추구할 ‘자유’라고 이해한다면 이것은 그리스도인답지 않을 뿐 아니라 비인간적인 태도이며, 나아가 생명을 짐스럽다는 이유로 제거하는 권리가 결코 거기에 부여될 수 없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16항).

 

이 문헌은 뒷부분에서 윤리와 법을 다루면서 낙태를 허용하는 법은 비윤리적이며 자연법에 어긋남을 지적하면서, 법은 아기를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장 불우한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서 생활조건과 사회 여건을 부단히 개혁”하고 “가정과 미혼모들을 위한 원조, 자녀수당, 사생아의 법적 지위와 입양을 위한 타당한 주선” 등을 행하도록 제시하고 있습니다(23항).

 

한국에서는 90년대에 낙태가 매년 150만 건 이루어지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고, 2005년 보건복지부 공식 조사에서 매년 34만 건이 넘는 낙태가 시행되고 있다는 보고가 있으며, 현재에도 계속 미혼모가 증가 추세에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 40년 전에 나온 이 문헌의 성찰과 지침이 현재의 한국 사회에 여전히 유용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의 기본적 권리 찾아내고 존중해야

 

두 번째는 1975년 4월 18일 교황 바오로 6세가 발표한 ‘세계 여성의 해 위원회에 보내는 담화문’입니다. 이 담화문은 프랑스어로 발표되었는데 한국에 소개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1975년은 가톨릭교회가 성년(Holy Year)을 선포한 해이기도 한데, 이 문헌은 성년의 의미와 함께 당시 페미니즘과 세계적인 사회의 여러 변화에 대한 교회의 전망을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 담화문은 사회 안에서 여성의 참여와 존엄을 증진시키는 것을 촉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여성을 둘러싼 여러 주제들과 여성의 권리를 말하는 것이 미묘한 측면이 있는데 왜냐하면 전 세계의 여성들의 구체적 현실에 대한 논의 없이 단순히 여성의 평등권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무엇보다 먼저 세상의 많은 여성들이 기본적인 인권이나 인간의 존엄성을 누리기 위한 기초적인 여건조차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모든 처지에 있는 여성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찾아내고,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교회는 ‘세계 여성의 해’가 단지 여성의 평등권을 얻는 일을 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여성들이 세계의 지속적인 발전에 있어서 온전히 통합되는 것을 확고히 추구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문헌은 또한 여성들이 교회 안에서의 생활과 사명에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교회를 믿음으로 성장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공적이고 사회적인 삶 안에서 인류의 평화를 강화하는 데 공헌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 문헌은 영적인 쇄신을 위한 해인 성년 동안 특별히 이런 주제들이 지속적으로 논의되기를 바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더불어 여성들은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교육자로서, 사회의 모든 영역의 참여자로서 더 정의롭고 더 소통할 수 있는 사회들 만드는데 활약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문헌에 따르면 교회는 여성의 감성, 이해력, 부드러움, 끈기, 관대함, 겸손과 같은 여성의 심리적 특성들이 시민 사회와 교회 공동체의 미래를 밝게 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성별 차이가 존엄성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 아냐

 

세 번째 문헌은 교황청 신앙교리성성이 1975년 12월 29일에 발표한 ‘인격(Persona Humana)’ 인데 ‘성윤리에 관한 몇 가지 질문들에 관한 선언’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 문헌은 인간됨과 성별의 의미, 피임법의 사용, 봉헌된 동정녀, 혼전성관계, 자위, 동성애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의 성은 인간 존재의 일부이며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생물학적 성별이 생물학적, 심리학적, 영적인 차원에서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며, 인간의 발전, 성장, 성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주제는 나중에 다시 다룰 예정인데 이미 관련된 주제들이 2012년 9월호와 2013년 6월호에서 다뤄진 바 있습니다.

 

네 번째 문헌은 1976년 10월 15일 발표된 ‘여성 교역 사제직 불허 선언’인데 이미 지난 2월호에서 설명되었습니다. 이 문헌은 여성들이 교회와 사회 안에서 더 많은 활동과 참여를 인정하면서도 교회는 여성을 사제직에 서품할 권리가 없다고 선언합니다.

 

마지막 문헌은 1977년 1월 30일 교황 바오로 6세가 삼종기도에서 행한 연설로 ‘구원계획 안에서 여성의 역할’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이 연설에서 교황 바오로 6세는 사제직은 오직 남성에게만 허용된다는 가르침을 재확인하면서, 여성은 구원의 신비 안에서 사제가 되는 것과는 다른 역할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고 강조합니다. 교황은 이런 규정에 대한 페미니즘의 도전을 잘 알고 있지만 이런 교회의 입장은 남녀의 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다른 역할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성별의 차이가 존엄성이나 존경을 받을 자격의 차이를 의미한 것이 아니며, 여성 역시 남성과 마찬가지로 덕과 재능을 이루고 사랑을 드러내고, 거룩하게 될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성들은 하느님의 신적 계획의 일부로서 그들에게 주어진 덕과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 연설문은 구체적으로 여성들이 지닌 덕목들이 무엇이며, 여성들이 어떻게 세상의 구원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지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소개한 1970년데 발표된 다른 여러 문헌에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970년대는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과 인류를 위한 기여를 강조하는 내용들이 교회 안팎으로 표현되었고, 가정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은 다소 약화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는 다시 여성의 모성과 아내로서의 역할이 강조되기 시작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3월호, 박정우 후고(신부, 서울 가톨릭대하교 종교사회학 교수)]

 

 

[복음살이] 여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3)

 

 

1980년대는 요한 바오로 2세가 발표한 두 개의 주요 교서들을 통해 가톨릭교회의 여성에 관한 신학이 풍요롭게 발전한 시기였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 중 첫째 교서는 1981년 11월22일 발표된 교황권고 <가정 공동체 : 현대 세계의 그리스도인 가정의 역할에 관하여 (Familiaris consortio)>입니다. 교황은 서두에서 1980년도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혼인과 가정’을 주제로 논의했던 내용의 결실이며 혼인과 가정생활의 가치를 잘 모르고 혼란 상태에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해 이 권고가 작성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문헌의 핵심은 그리스도인 가정은 교육을 통해 복음이 선포되는 첫 공동체이고 인간으로서 온전히 성장하고,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을 이루는 곳이기에 매우 중요한 장소라는 것, 따라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며, 특히 출산과 양육과 초기 교육을 담당하는 어머니는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성장과 신앙 성숙에 우선적인 책임이 주어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과 소명이 훼손되는 것을 우려한다는 것을 밝히면서 그리스도교 가정의 올바른 역할에 대해 설명합니다.

 

‘제1부 현대 가정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다루면서 교황은 “진리와 인간의 존엄성을 흐리게 하는 발상과 해결책”이 “객관적 판단의 자유와 능력”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하며 올바른 “복음적 식별”을 통해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5항).  교황은 붕괴되고 있는 기본 가치의 구체적인 예로서 부부 상호 관계에서 독립성에 대한 그릇된 개념, 부모와 자식 사이의 권위에 대한 심각한 오해, 이혼의 증가, 낙태, 불임 수술의 증가, 피임 사고방식의 출현 등을 들었습니다. 이런 현상 밑에는 자유의 개념이 하느님 계획을 실현하려는 능력으로 체험되기보다 “타인에게 해로워도, 자신의 이기적 안녕을 위한 자기주장의 능력으로 체험되는 경험이 깔려있다”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신자들은 깊은 사색과 투신을 통해 이런 가치 오염에 물들지 않고 도덕 가치의 우위성을 인식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정신과 마음의 회개를 통해서 대항하여야 한다”(9항)고 촉구합니다.

 

 

구원 역사에서 여성이 존귀한 위치 차지해

 

‘제2부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에서 교황은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당신 모습을 닮은 인간에게 “남자와 여자의 인간성 안에 사랑과 일치의 소명, 능력, 책임을 부여하셨”는데, 인간은 이 소명을 혼인이나 독신, 두 가지 방법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특히 부부가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성은  “순전히 생물학적인 것만은 아니고 인간의 가장 깊은 존재와 관련”되고, “남자와 여자가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사랑의 일부일 경우에만 인간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적 행위를 포함한 부부에게 요구되는 이 ‘전체성’은 인간의 생명을 지향하는 책임 있는 출산에 대한 요청과도 부합해야 하는데, “모든 진실을 담아 자신을 주는 행위가 가능한 ‘장소’는 자유롭고 의식적으로 선택된 부부 사랑이 계약인 혼인뿐”이라고 강조합니다. 혼인을 통해서 부부는 “하느님께서 의도하신 생명과 사랑의 친밀한 공동체”인 가정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11항).

 

이 문헌은 ‘제3부 그리스도교 가정의 역할’에서 크게 네 가지 역할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인간 공동체의 형성, 둘째는 생명에의 봉사, 셋째는 사회 발전에 참여, 마지막은 교회의 삶과 사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첫째 역할에서 교황은 가정 구성원의 사랑의 일치를 통한 진정한 인간 공동체 형성의 사명을 강조하면서 특히 여성의 동등한 존엄과 가정 안에서의 책임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교황은 22항에서 “우선 여성의 존엄성과 책임은 남성의 것과 동등하다는 점을 주목하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제하고, 이러한 동등성은 가정 안에서는 남녀가 특유한 양식으로 서로에게 그리고 자녀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것 안에서 실현된다고 말합니다. 

 

교황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이미 동등하게 인격적 존엄성을 주셨고, 역사 안에서 여성의 존엄을 계속 드러내셨는데, 특히 교회가 공경하는 모범으로서의 “동정 마리아에게서 인간 육체를 취하셨을 때, 여자의 존엄성을 가장 높이 드러내셨음”을 강조합니다. 또한 성경에서 나타나듯이 “예수님을 따르고 친절을 베풀었던 여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민감한 존경, 부활날 아침에 다른 제자들보다 먼저 한 여자에게 나타나심, 부활의 소식을 사도들에게 전하는 사명을 여자에게 주심-이 모든 징표는 여성에 대한 예수님의 특별한 존경심을 확증해” 준다는 것을 지적하고 믿음 안에서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갈라디아 3,28)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구원의 역사에서 여성이 존귀한 위치를 차지함을 지적합니다.

 

 

여자 가사노동의 고유 가치 모든 이가 인정해야

 

이어서 교황은 23항에서 여성과 사회의 관계에서 여성의 역할을 아내와 어머니로 한정시키고 공적 영역에서의 역할을 배제해 온 일반적 사회 문화의 전통이 있었음을 지적하면서 “남자와 여자의 동등한 존엄성과 책임이 공적 기능에 대한 여자의 진출을 충분히 정당화한다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어서 “반면에 다른 모든 공적 역할과 직업에 비해서 모성적이고 가정적인 역할의 가치가 분명히 인정을 받아야 여성의 참된 진출이 가능”하며 “사회와 문화의 인간적 진화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과 직업이 조화 있게 짜여져야” 함을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즉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지만, 가정 안에서 수행하는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직업을 가지는 것보다 열등하게 여기거나 그 가치가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황은 “가정 안의 노동보다는 가정 밖의 노동 때문에 여자를 더 인정하는 정신은 극복되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교회는 “여자의 가사 노동의 고유한 가치를 모든 이가 인정하고 존경” 하도록 계속 주장하고 교육함으로써 사회 안에서 여러 형태의 노동 간의 차별을 없애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황은 가사 노동이 유리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조건을 사회가 만들 필요가 있다고 권고합니다.

 

뿐만 아니라 현실을 보면 아내와 어머니들이 생계를 위해서 원치 않아도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황은 남녀가 동등하게 공적 영역에 나갈 권리를 지니지만 “아내와 어머니들이 실제로 집 밖의 노동에 강요되지 않고 그들이 전적으로 가정 일에 전념함으로써 그들의 가정이 품위 있게 살고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그러한 사회가 건설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교황은 또한 남녀의 다른 소명을 존중하되 교회 안에서 남녀의 동등한 권리와 존엄성을 가능한 촉진해야 하고, 이것이 모두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동등하다고 해서 여성이 여성다움을 포기하고 남성의 역할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고도 지적합니다.

 

24항에서는 여성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현상들을 지적합니다. 첫째는 인간을 인격체가 아니라 “이기심과 순수한 쾌락에 봉사하는 물건”이나 “거래 대상”만으로 보는 정신인데 이정신은 여성의 존엄성에 관한 교회의 메시지에 끊임없이 대립하며 여성을 희생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정신은 구체적으로 “남자와 여자에 대한 멸시, 노예 제도, 약자 억압, 도색 인쇄물, 특히 조직적인 매매춘 행위 등”의 결과와 여러 분야에서의 차별 대우를 만들어내고, 자녀가 없는 여자, 미혼모, 이혼녀 과부 등에게 심각한 피해를 준다는 것입니다. 교황은 이런 차별을 극복하고 모두가 “모든 인간에게서 빛나는 하느님의 모습이 충분히 존중”되도록 단호한 활동을 요청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성의 고유한 소명이 훼손되어서는 안돼

 

제4부는 ‘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 “단계, 구조, 행동인, 상황”’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데 가정을 최우선 순위로서 사목적 관심을 둘 것을 촉구하고, 혼인 준비부터 혼인식, 혼인 뒤의 사목적 배려(공동생활 적응, 자녀출산 등)에도 적극 봉사하도록 촉구합니다. 

 

일반적으로 여성주의자들을 비롯한 비평가들은 이 문헌이 비록 여성의 동등한 존엄에 대한 가르침을 분명하게 제시하기는 하지만 가정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만 무겁게 지웠다는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25항에서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남성’이라는 소제목과 함께 가정 안에서의 남성의 소명과 역할을 다루기는 하지만 여성의 역할을 길게 논한 것에 비해서는 균형이 맞지 않고 여성의 공적 영역에서의 역할보다는 모성과 가정 안에서의 역할을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황의 메시지의 초점은 남녀의 동등한 존엄과 서로 다른 소명이 있다는 것이며, 특히 여성의 고유한 소명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여성성과 가정 안에서의 일의 가치를 폄하하면 결국 가정생활과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게 된다는 지적과 여성의 어머니로서의 역할(모성)이 공적 영역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역할 보다 낮은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지적은 오늘날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가정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깊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 가정에 책임을 지고 있고 부성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여성의 모성과 가사노동을 통한 헌신이 생명을 위한 봉사와 인간의 기본적 가치를 위한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4월호, 박정우 후고(신부, 서울 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복음살이] 여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4)

 

 

1988년 8월1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마리아 해에 즈음하여 발표한 여인의 존엄과 소명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교황 교서 <여성의 존엄(Mulieris Dignitatem)>을 발표하였습니다. 저명한 미국의 여성신학자이며 베네딕토회 수녀인 조앤 치티스터는 이 문서는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공적인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인간됨, 여성됨, 그리고 여성이 받은 신적 소명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다룬 문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문헌은 마리아 해를 기념하는 문헌이므로 특히 마리아가 여성으로서, 또 여성 역할의 모범으로서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과,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심으로써 마리아가 모든 어머니들에게 모성과 여성성의 완벽한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또한 이 문헌은 마리아가 오늘날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존엄성과 소명과는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다루면서, 여성됨의 의미, 하느님께서 의도하신 세상 안에서의 여성의 소명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여성이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과 재능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협력하지 않는 한 세상은 마땅한 정의와 평등을 누리지 못할 것이고, 그리스도인 교회의 사명 역시 온전히 실현되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2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미 마리아를 예수님과 함께 구원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공동구속자”라 부른 바 있었습니다. 이 문헌은 예수님의 탄생, 삶과 죽음은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를 통해서, 그리고 마리아의 영향력 안에서 일어났고, 하느님이신 분이 한 여인에게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에서 그 여인이 인류의 구원과 하느님의 신적 계획에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합니다(3항).

 

 

마리아는 새로운 시작과 창조의 증인

 

하느님의 어머니로서의 마리아의 역할은 인류에게 여성의 존엄성이 무엇인지도 함께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마리아는 인격적 주체로서 ‘자유의지’를 갖고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당신의 자유로운 여성적인 ‘자아’를 충분히 실현”하였습니다(4항). 나자렛의 한 처녀가 은총을 가득히 입으며 하느님의 어머니의 위치에 올랐다는 것은 그녀 안에서 “여성의 특성”과 “여성적인 것”이 온전히 완성됨을 의미하며, “여성의 인격적 존엄의 정점”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또한 자신이 “주님의 종”이라는 마리아의 인식은 “야훼의 종”으로서 섬기러 오신 예수님과 일치하는 “봉사의 존엄성”을 보여주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문헌은 이처럼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주제는 “여성들의 존엄과 소명에 대한 반성의 본질적 지평”을 제시해 주며 그 결정적 척도는 “하느님과의 일치”라고 강조합니다(5항).

 

이어서 교황은 6항에서 11항에 걸쳐 ‘하느님 모상과 닮은 꼴’과 ‘하와-마리아’라는 소제목으로 나중에 ‘몸의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확산될 주제들에 대해 논합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에 따라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셨고, 따라서 당신 모습을 닮은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은 이성과 자유의지를 지니며 서로 자신을 내어주는 인격적 통교를 통해서만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고 자신을 완성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남자와 여자는 삼위일체인 신적 본성을 닮아서 둘이 하나가 되는 일체성을 표현하며, 자신을 선물로 내어주면서 서로 돕고 보완하며 완성해가는 소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황은 이것을 ‘배우자적 특성’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인간을 의롭게 창조하셨지만 인간은 자유를 남용하고 하느님과 대립하면서 ‘원죄’라고 부르는 첫 번째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죄를 통해 하느님의 선물을 배척하고 스스로 하느님 자리에서 선과 악을 결정하기를 원하게 됨으로써 하느님과의 일치, 나 자신과의 일치, 그리고 남녀 사이의 상호적 일치를 파괴시켰습니다. 죄는 이제 인간을 어느 정도 ‘하느님과 닮지 않음’의 상태로 만들어 버렸고, 남녀의 관계는 “성실하게 자신을 내어주는 역할”에서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는 관계, 서로에 대한 인격적 존중이 아니라 욕정과 쾌락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입니다(10항).

 

그런데 창세기 3장15절은 원죄와 동시에 죄악을 극복할 “첫 복음”, 즉 “여인”의 후손 중에서 구원자가 나타나 뱀의 머리에 상처를 입힐 것이라는 말씀을 전합니다. 교황은 바로 여기에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구속자와 더불어 투쟁하시는 저 ‘여인’의 사명”을 선명하게 볼 수 있으며, 마리아야 말로 새로운 시작과 창조의 증인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교황은 하느님께서 과거 구세사의 인류와의 결정적인 계약에서 남자들에게만 나타나셨던 것과 달리 수태고지에서는 처음으로 인류와의 계약의 대상으로 나자렛의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것은 바로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런 남녀차별이 없게 되었다는 것 (갈라 3,28 참조)과 구세주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원죄의 유산인 남녀 사이의 상호 대립은 근본적으로 극복”되었음을 보여주는 독창적인 표지라고 이해합니다.

 

새 하와로서의 마리아는 “하와로부터 시작되는 여성의 신비를 받아들이고 포용”하고 사람의 아들이 되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잉태함으로써 자신을 성실하게 내어놓는 풍요로운 여성성을 보여주셨습니다. 새 창조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선물로서 내어놓는 역할, 이것이 하느님께서 원래 의도하신 여성성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리아 안에서 하와는 여성의, 그리고 여성적 인간성의 참된 존엄성을 발견”합니다(11항).

 

 

여성이 지닌 소명의 두 가지 차원 ‘모성’과 ‘동정’

 

이 문헌은 이어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태도와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 안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존귀함과 동등성, 여성적인 특성과 모성애, 그리고 서로에게 성실한 선물로서 자신을 주고받아야 하는 남녀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17항부터는 여성이 지닌 소명의 두 가지 차원, 즉 모성(maternity)과 동정(virginity)이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 안에서 그 의미와 가치가 어떻게 충만하게 드러나는가를 설명합니다.  이 두 가지 차원은 서로를 배제시키지 않고 보완하며 결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동정녀인 그녀의 모성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예외적인 방식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다른 여성들도 인격체로서 여성의 소명 안에서 이 두 가지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선 모성은 ‘육적 모성’과 ‘영적 모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자는 남녀의 결합으로 새 생명을 잉태하고 나아 돌보는 것이고 후자는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인간을 돌보는 것입니다. 이 생물학적 차원의 모성은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인격적 차원과 연결되며, 새 생명에 대해 마리아가 했던 “당신의 말대로 이루어지소서”라는 말씀 안에 온전히 드러납니다(18항). 한편 영적 모성은 가정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포함하여 타인을 돕는 여성의 다양한 활동 안에서 드러나며 이것이 하느님께서 의도하신 여성의 중요한 소명이라는 것입니다.

 

동정성과 관련하여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독신 생활을 구분합니다. 이 생활은 “다가올 하느님 나라의 특별한 표징이며, 또한 한 인간이 지상에서 사는 동안 영육의 모든 힘을 종말론적 왕국을 위해서만 봉헌하도록 하는 길”을 열어줍니다. 동정녀들은 마리아처럼 순결과 청빈과 순명을 통하여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한 사람들인데, 이들은 하느님과 인간의 구원자이시고 정배이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아낌없는 선물”, “배우자적 선물”이 됨으로서 인격체로서의 여성의 가치를 실현시킵니다. “바로 이런 종류의 사랑이 한 인격체가 다른 인격체를 위하여 선물이 되는 사랑”이며, 사제와 수도자의 독신이 이렇게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항).

 

그러므로 동정은 육체적인 모성을 포기하는 것이지만 “성령에 따라” 생겨난 영적인 모성 안에서 봉헌된 삶을 사는 여성들은 가장 어려운 사람들, “병자, 불구자, 버림받은 자, 고아, 노인, 어린이, 젊은이,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 관심을 표현하며 그들 안에서 자신의 정배를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혼인 한 이들은 비록 자기를 봉헌하는 자세가 모든 이에게 열려있다 해도 대부분 자녀에 대한 부모에 사랑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에, 수도자들과 같은 “동정성 안에서의 이 자세는 정배이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감싸주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21항).

 

이 문헌은 여성의 존엄성은 이렇게 창조주께서 의도하신 여성의 소명을 온전히 이행하는 가운데 드러나며, “여성적인 것”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인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정배로서 불림 받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여성다움의 풍요로움을 간직하면서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해야 할 소명을 받고 있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5월호, 박정우 후고(신부, 서울 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복음살이] 여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5) 그리스도의 신부(新婦)인 교회

 

 

1988년 발표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서 <여성의 존엄(Mulieris Dignitatem)>은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5장에 나오는 혼인한 부부의 일치의 신비와 함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고 그 몸의 구원자이신 것과 같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도 모든 일에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말씀과 더불어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티나 주름 같은 것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게 하시며,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남편도 이렇게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자기 몸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하시는 것처럼 오히려 자기 몸을 가꾸고 보살핍니다. 우리는 그분 몸의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 이는 큰 신비입니다. 여러분도 저마다 자기 아내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아내도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에페소서 5,21-33)

 

교황은 이 말씀이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교회”에 대한 진리를 표현하고 있고, 창세기 2장의 남녀 창조의 가르침에서 볼 수 있는 혼인제도와 남편과 아내의 “인격의 합일”이라는 소명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모상인 남자와 여자는 본질적으로 서로 사랑 안에서 일치하도록 불림 받았기에 인간적인 그 사랑은 본질적으로 ‘신적(divine)’인 것입니다. 이사야서와 호세아서 같은 예언서들은 이미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보여주시는 사랑을 아내에 대한 남편의 충실한 사랑으로 비유하여 묘사한 바 있습니다(이사 54, 4-10 참조). 하느님의 사랑은 불충실한 아내의 처신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혼인 계약에 충실한 배우자의 사랑으로 묘사됩니다. 또한 복음에서도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비유하고 있고(요한 3,27-29참조), 사도 바오로는 고린토인들을 “남편 그리스도께 바치려고 정혼” 시킨 순결한 처녀로 비유하기도 합니다(고린 후 11,2).

 

 

일방적인 순종이 아니라 상호적인 순종으로 확장

 

그러나 교황은 에페소서야 말로 배우자적인 사랑으로 교회를 위해 자신을 바치신 그리스도를 가장 잘 묘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23항). 교황은 혼인 유대 안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그 특별한 사랑은 한 인격체로서의 여성을 충만하게 발전시키고 풍요롭게 만든다고 지적하면서, 그리스도께서 배우자적 사랑을 지니고 신부인 “교회를 티나 주름 같은 것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게 하”신 것처럼(27절), 남편들도 이런 태도로 아내를 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머리인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당시의 전통적인 관습도, 이제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라는 가르침으로 확장됩니다(21절). 사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는 이유는 “교회를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시기 위한 것이었고, 이렇게 생명을 바치는 사랑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합당한 응답으로 교회는 그리스도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황은 이러한 순종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서는 합당하지만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는 사도 바오로가 과거의 전통을 쇄신하는 관점으로서 제시하였듯이 이제 일방적인 순종이 아니라 상호적인 순종으로 확장하였다고 강조합니다. 교황은 혼인 안에 ‘그리스도께 대한 존경에서 나오는 배우자들의 상호 순종’이라는 요소가 내포되어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더 이상 남자와 여자 혹은 노예와 자유인의 차별도 없다는 가르침을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안에서 오랫동안 노예제도나 여성에 대한 일방적인 복종을 강요해 온 것이 잘못임을 지적합니다.

 

이어서 교황은 에페소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상징적인 차원은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배우자적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를 사랑하시고 동시에 교회 안에서 인간 개개인을 사랑하십니다. 그것이 “구원 사업을 통해서 표현된 하느님의 사랑이며, 이 사랑의 배우자적 특성이 인류와 세상의 역사 안에서 정점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역사 안에서 개입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주는 신랑으로서 머무심으로써 가장 완전하고 철저한 하느님의 선물이 되어 주셨고, 모든 인류는 교회를 통하여 세상의 구세주 그리스도의 신부로 초대됩니다.

 

교황은 남성들 역시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신부’의 개념 안에 포함되는데, “모든 인간 남녀는 구세주 그리스도의 사랑의 선물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인격을 온전히 바침으로써 이 선물에 응답한다는 점에서 ‘신부’가 된다”고 지적합니다.   

 

한편 그리스도께서 ‘신랑’이시라는 표현은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요한1 4, 19참조) 하느님 사랑의 진리를 드러내는데, 그리스도 역시 이러한 하느님과 본성으로 하나이신 분으로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요한13,1)하신 분,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진짜 인간, 한 남자가 되신 분으로서 신랑이 되셨다고 교황은 말합니다.

 

따라서 “남성적 상징은 이스라엘과 교회와 모든 인류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복음 안에서도 “여성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태도를 전해” 줌으로써, 예수님께서 “한 남자로서, 이스라엘의 한 아들로서 ‘아브라함의 딸들’(루카 13,16 참조)의 존엄성, ‘처음’부터 남성들과 동등한 바탕 위에서 여성들에게 부여된 존엄성을 드러내”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성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태도는 에페소서에서 바오로가 ‘신랑’의 개념으로 표현한 바의 모범”이 되고, 자신을 바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인간적 사랑 특히 남성들의 사랑의 모범이요 전형”이라는 것입니다.(25항)

 

 

십자가의 피는 신랑으로서 배우자적 사랑의 결정체

 

교황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이러한 배우자적 사랑을 바탕으로 성체성사의 신비를 새롭게 설명합니다. 십자가상에서 당신의 피를 쏟으시고 자신을 내어 놓으시는 행위 안에서 신랑으로서의 배우자적 사랑은 결정적으로 드러납니다.

 

“성체성사는 당신 몸인 교회를 창립하신 그리스도의 구원적 행위를 성사적인 방법으로 새롭게 표현하고 실현”하는데, 즉 그리스도께서는 신랑으로서 신부인 교회와 결합되심으로써, 에페소서에 나타난 대로 창조 때 섭리된 남녀 사이의 영구적 일치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의 신비로 들어오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교황은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성체성사를 명백하게 “사도들의 사제적 봉사에 연결시키셨”고, 이 성사에서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관계, 즉 “교회에 대한 신랑 그리스도의 구원적 행위를 표현”하는 성사이기 때문에, 성체성사 안에서 사제가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수행하는 직분이 남자에 의해서 이루어질 때 명백하고 혼란 없이 드러난다”고 강조하며, 여성의 사제직을 반대하는 바오로 6세의 교서(Inter Insigniores)의 가르침을 재확인하였습니다. (26항)

 

교황은 교회 안에 몸담고 있는 모든 남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왕직, 예언직, 사제직에 참여할 소명이 있는데, 특히 하느님 아버지께 인류를 봉헌하는 그리스도의 제사에 동참하고, 하느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와 일치할 소명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참여는 에페소서에 나타난 “신랑과 신부의 결합”의 신비도 포함되는데, 곧 교회가 “구세주이신 신랑이 주시는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의 선물에 자신을 ‘신실하게 내어줌’으로써 응답”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는 이런 교회의 소명의 모범이 되시는 분이 바로 나자렛의 마리아임을 강조해왔습니다. 마리아는 성덕이 높으실 뿐 아니라 에페소서의 묘사대로 “티나 주름 같은 것 없이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신 분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사를 보면 남성들과 함께 수많은 여성들이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응답을 보여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야 말로 “여성적 이상(理想)의 육화(肉化)된 이상”으로서 여성의 소명과 존엄을 충실히 드러내고 교회를 풍요롭게 해 주신 증거자들입니다.

 

우리 남녀 그리스도인들도 모두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 성인들의 모범을 통해 배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6월호, 박정우 후고(신부, 서울 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복음살이] 여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6)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가정 교서>

 

 

1994년 2월 2일 유엔이 선포한 ‘세계 가정의 해’(1994)를 기념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1년 발표한 교황 권고 <가정 공동체>에 이어 다시 인간 실존의 원초적인 터전인 가정의 의미와 역할, 그리고 사랑, 혼인, 인격적 일치, 책임 있는 성, 자녀양육 등 가정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의 소중한 가치를 제시하는 문헌인 <가정 교서(Gratissimam Sane)>를 발표하였습니다.    

 

서문에서 교황은 ‘인간은 교회의 길’이라는 앞선 자신의 글을 상기시키면서 교회의 사명과 봉사의 길은 ‘인간’을 위해 교회가 가야할 첫째가는 길은 바로 ‘가정’이라고 강조합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자신 인생의 구체적인 소명을 실현하기 위해 출발하는 곳은 바로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온전히 인간임을 드러내 보여주시기 위해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하는 방식을 선택하셨기에 “교회는 가정에 대한 봉사를 자신의 근본 의무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2항). 무엇보다 교황은 갈수록 가정이 파괴되고 있고, 도덕규범에 벗어나는 ‘비정상적’인 상황들을 ‘정상적’ 혹은 매력적인 상황으로 제시하려고 하는 당시의 세태에 대해 경고하면서 가정 기도의 중요성과 진실한 사랑의 위대함을 강조합니다.  

 

<가정 교서>에서 가르치는 여성과 관련한 내용을 살펴보면 남녀의 인격적 일치와 여성의 역할에 대한 전통적 주장이 다시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81년 발표했던 <가정 공동체> 23항 이하에서 요한 바오로 2세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지만, 가정 안에서 수행하는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직업을 가지는 것보다 열등하게 여기거나 그 가치가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즉 여성의 가사 노동의 고유한 가치와 모성이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3년이 지나서 발표한 <가정 교서>에서도 교황은 남녀가 이루는 인격적 친교와 부모 됨은 하느님께 기원을 두고 있음을 강조하며, 모성의 역할, 자녀 출생의 영성적 의미, 그리고 자녀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우선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존재이기에 남녀 인간이 이루는 사랑의 공동체인 가정의 원초적 전형은 삼위일체 하느님일 수밖에 없음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닮은 존재이되 ‘남성’과 ‘여성’이라는 원초적 이원성을 지닌 인간은 상호 보완과 상호 완성을 지향하며 ‘우리’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즉 인간 사회는 남녀의 친교와 보완성이라는 특성으로 인간 공동선을 이루도록 하느님께서 섭리하셨다는 것입니다.(6항)  

 

 

혼인계약은 부모가 되는 것 내포되어 있어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이루는 최초의 기본 공동체인 가정은 남녀가 자기 자신을 서로에게 주고 서로 받아들이는 혼인의 친교를 바탕으로 세워집니다. “혼인은 사랑으로 맺는 인격의 계약입니다.” 창세기에 언급된 대로 깰 수 없는 혼인계약은 태초에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것이며 이 계약은 부모가 되는 것, 즉 부성과 모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혼인한 부부들은 하느님께 마음을 향하며 부성과 모성이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힘을 거기서 이끌어내어야 합니다. 또한 사랑과 생명을 지속하게 해주는 부부의 ‘친교’는 가정 ‘공동체’를 생겨나게 하는데, 특히 “어머니가 자신의 태중에 아기를 지니고 다니다가 태어나게 하는, 어머니와 아기 사이의 ‘친교’에 비할 수 있는 또 다른 친교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친교는 부부 친교를 더 풍요롭게 하고 심화시켜 줍니다.(7항) 

 

교황은 인간의 부성과 모성 역시 이미 하느님께 기원을 두고 있으며, 부부의 결합은 자신 안에 폐쇄되어 있지 않고 새로운 인격체를 향해 열려있어야 하기에 부부는 자녀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함을 강조합니다.  하느님을 닮은 생명을 이 세상에 전달하는 부부는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협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황은 하느님께서는 “질병이나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처음부터 인간 하나 하나의 존재를 바라셨고, 모든 피조물 중에서 인간만이 “그 자체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사목헌장의 말씀을 상기시키면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인간은 “새로운 인간 존재는 하나의 인격체로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인간성을 완전히 표현”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는 것입니다. 교황은 “부부들도 분명히 창조주께서 인간을 바라시는 것과 똑같이 ‘그 자체를 위하여’ 새로운 인간을 바라야”하며 함을 강조하며 세상이 아기를 선물로 받아들이지 않고 밀어내려는 사회현상에 안타까워합니다.(9항) 

 

교황은 8-14항에서 부부의 일치와 친교, 혼인의 본질과 사명에 있어서 출산의 중요성과 책임 있는 부성과 모성을 설명합니다. 부부는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사랑과 신의와 존경을 바탕으로 그들의 결합이 영원히 지속되는 공동선을 이루며, 이로써 두 사람 각자는 물론 그들의 자녀들에게도 선익을 이룹니다. 또한 자녀를 받아들이고 자녀들을 그리스도인으로 키울 각오가 되어있냐는 혼인식의 물음에 대한 답변에서 한 약속은 부모로서 “본질상 육체적인 책임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책임”까지 의미합니다. “이러한 책임을 통하여 하느님 안에 그 영원한 시작이 있고 또 반드시 하느님께로 되돌아가도록 이끄는 인간의 출생 계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10항)

 

또한 교황은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지 않으면 자신을 완전히 발견할 수 없다”는 사목헌장 24항을 다시 상기시키면서 부부간의 ‘자기증여’의 의미를 설명하고, 새로운 생명의 탄생 역시 아기가 부모에게 자기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선물’이며 창조주의 첫 번째 선물이라고 말합니다.(11항)

 

 

자녀 양육은 어떤 전문 노동보다 위대해

 

교황은 16항에서 가정 안에서 부모의 자녀 양육의 책임을 다루면서 “자녀 양육은 하나의 진정한 사도직”이며 교육자와 피교육자 모두를 “모든 사람을 부르신 저 궁극의 목적인 진리와 사랑에 참여하도록 만들어 주는 상호 소통의 살아있는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아기의 어머니는 태중의 아기와 특별한 유대를 형성하며, 임신기간 동안 아기의 신체 뿐 아니라 아기의 인격전체를 간접적으로 형성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합니다. 아버지는 임신의 전 기간 동안 뒷받침을 해 주는 역할을 하면서 “자기 아내의 모성이 하나의 선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아내의 모성에 남편과 아버지로서 기꺼이 참여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부부의 상호적 사랑은 이제 태어나는 아기에게 전달되고 아기 역시 그가 세상에 가져오는 새롭고 참신한 인간성을 부모에게 주게 됩니다.

 

교황은 가정과 사회의 관계를 다루는 17항에서 가정이 사회생활에 근본이 되는 제도이기에 사회적 주체로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그 본연의 성질상 부부의 선익과 자녀의 출산 및 교육을 지향하는 평생 공동 운명체”를 혼인의 정의로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동성 혼인을 인정하라는 일부 요구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하는 입장으로 보입니다. 교황은 혼인과 가정의 본질에 관한 문제에서는 결코 방임이 있을 수 없음을 강력하게 천명합니다.

 

이어서 교황은 여성의 가사 노동이 얼마나 중요하고 힘든 것인지 지적하면서 가사노동이 인정받고 높은 평가를 받아야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기르고 돌보며 특별히 어려서부터 이루어지는 자녀 교육에 헌신하고 있는 여인의 ‘수고’는 그 어떠한 전문 노동과도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위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노동 권리에 못지않게 명확히 언급되고 확인되어야 합니다. 모성은 거기에 따르는 온갖 고된 노동 때문에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 생명의 그 중대한 시기에 가족을 부양하고자 하는 다른 종류의 노동에 주어지는 재정적 혜택과 적어도 동등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모성을 인정하여야 합니다.”(17항).  

 

전체적으로 <가정 교서>는 가정과 혼인에 관한 전통적인 교회 가르침에 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인격주의적 접근 방식을 잘 드러내면서, 공리주의와 현대의 파괴적인 문화에 대응하여 인격의 친교와 사랑의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가정 공동체를 건설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실제로 사랑의 문화에 의존하고 있으며...동시에 가정은 사랑의 문화의 중심이며 핵심입니다”(13항). 2014년 10월에 개최되는 주교시노드 특별회의의 주제가 ‘가정’인 것을 보면 여전히 가정 문제는 너무도 중요하면서도 반복되는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교황은 사랑의 문화를 위협하는 것은 이기적인 개인주의라고 지적합니다. 사람은 ‘책임 없는 자유’를 통해서가 아니라 아낌없이 자신을 선물로 내어주게 될 때 기쁨을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부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은 그러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지녔으며 이런 힘은 용서와 화해의 신적인 은총에 달려있다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여성에게 선물로 주어진 모성은 가정 안에서 사랑의 문화를 실현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모성을 존중하며 각자 배우자 혹은 부모, 자녀에 대한 사랑의 소명을 다하고 있는 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7월호, 박정우 후고(신부, 서울 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복음살이] 여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7)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교서 “남성에게만 유보된 사제 서품”

 

 

1976년 10월15일 교황 바오로 6세가 여성은 사제로 서품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선언문 <여성 교역 사제직 불허 선언(Inter Insigniores)>이 발표된 후에도 여성사제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미국 여성들은 성공회의 여성사제 서품이 이루어진 1975년부터 조직적으로 가톨릭교회도 여성 사제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어왔고, 1976년 1월에는 “여성서품회의(The Women's Ordination Conference=WOC)” 라는 공식 기구의 발족하여 정기적으로 전국 회의를 개최하여 가톨릭교회 내에 여성 사제 서품과 가톨릭교회의 구조적인 변화를 촉구해왔습니다.

 

1979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전국적으로 여성 사제 서품을 요구하는 진보 성향의 남녀 신자들이 팔에 푸른색 띠를 두르고 교회 안의 성차별에 대해 항의하였고, 교황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에는 WOC 회원 여성들이 ‘여성에서 서품을 주라’는 구호 외치며 시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수녀 장상 대표였던 테레사 케인 수녀는 교황과 수도자들의 만남 자리에서 행한 연설 중에 여성들이 교회 안의 모든 사도직 영역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는 청원을 하였고, 이 날 푸른색 띠를 두른 30명의 수녀들이 함께 서서 동참하는 사진은 다음 날 신문의 머리기사를 장식하기도 하였습니다.

 

1980년대의 미국의 여성들은 전례와 성경 안에 여성차별적인 용어를 수정하도록 교회 당국에 촉구하기도 했고, 몇몇 여성 대표들은 미국 주교회의에서 반포하려고 했던 ‘여성을 위한 교서’를 위한 준비 작업에 참여하여 여성주의적 시각이 반영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문서는 10여 년 동안 지속된 논의와 거듭된 개정 작업에도 불구하고 1992년에 행해진 주교회의의 최종 투표에서 끝내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여성 사제 허용을 주장해오던 미국의 진보적 성향의 여성들은 1995년 11월 ‘여성서품회의’ 창립 20주년을 기념하여 워싱턴에서 열린 전국 회의에서 단순히 여성이 가톨릭교회의 서품을 받는다는 것은 ‘가부장적 제도 안에 굴종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면서, 여성 사제 허용 문제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억압을 가져오는 모든 요소를 개선하고 참된 사제 직분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에 초점을 맞출 것을 결의하기도 했습니다.

 

 

남성에게만 사제직 유보하는 것은 결코 여성을 차별하는 것 아냐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한 해 전인 1994년 5월22일 강력한 어조로 여성 사제를 반대하는 전통적인 주장을 재확인하는 교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사제 서품>, 혹은 <남성에게만 유보된 사제 서품>이라는 이름의 이 교서는 총 4개의 항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길이는 상당히 짧지만 1976년 교서와 <여성의 존엄>에서 밝힌 것보다 훨씬 강한 어조로 여성 사제 서품은 불가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항에서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우선 가톨릭교회의 역사를 통틀어서 교회가 여성을 서품한 적이 전혀 없다는 전통을 재확인합니다. 동방교회의 전통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교황은 바오로 6세가 1976년 여성 사제를 허용하는 성공회와 관련하여 밝힌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상기시킵니다. “교회는 매우 근본적인 이유로 여성을 사제직에 올리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합니다. 오직 남성들 가운데서만 사도들을 선택했던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 기록의 예; 그리스도를 본받아 오직 남성만을 선택해 온 교회의 지속적인 실천; 여성을 사제직에서 배제하는 것이 교회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에 부합하는 것임을 당대의 교회의 권위들이 끊임없이 유지해온 것.”  

 

이어서 2항에서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1976년 문헌의 정신에 따라서 자신도 교회는 “여성이 사제로 서품되는 것을 허용할 권한이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음을 강조합니다. 앞서 밝힌 근본적인 이유에 더하여 교황은 정당한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과, 예수님의 행위가 단지 그 시대가 요구하는 고유한 사회학적 혹은 문화적 동기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논증합니다. 1976년 문헌에서도 예수님은 사회적 관습을 거슬러서 여성들을 존중했으며, 이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사제직에 남성만을 선택하셨다는 것은 여성을 배제하는 것이 당시의 사회문화적 상황을 따른 것이 아니라 “완전한 자유와 권위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특히 교황은 <여성의 존엄>에서 언급한 것을 다시 강조하면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과 직무에 관한 두 가지 결론을 내립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여성들을 대하신 모습은 여성의 존엄을 보여주는 것이며, 둘째, 예수님이 남성들만 사도로 선택하신 것은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되도록 여성들이 자극을 주는 것을 포함하여 남성과는 다른 역할을 맡기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성들에게만 사제직을 유보하는 것이 결코 여성을 차별하거나 폄하하는 것이 아니며 남성보다 존엄성이 떨어지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교황은 3항에서 특히 성모님께서 사도직이나 직무사제직에로 불리지 않으셨음을 상기시키면서 여성 사제 불허는 차별이 아니라 “오히려 우주의 주인이신 주님의 지혜에 속하는 계획에 대한 충실한 순종”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여성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사명의 위대성을 철저히 인식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실제로 성서와 교회의 역사 안에서 많은 위대한 여성들이 “가정과 사회에서뿐 아니라 하느님과 복음 사업에 전적으로 헌신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 살아왔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자녀 양육을 위해 헌신하면서 “교회의 신앙과 전통을 전수시켰던 가정의 주부들”을 포함한 위대한 여성들을 칭송해 왔으며, 교계 구조는 ‘신자들의 성덕’을 위한 것이며 우리가 바라야 할 것은 ‘사랑’이라는 것과 하느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어떤 ‘직무자’가 아니라 ‘성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그런데 사실 현대의 많은 여성운동가들은 남녀에게 주어진 ‘서로 다른 역할’은 ‘가치의 정도가 다름’을 암시하는 것이며, 가톨릭교회에서 성체성사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성찬을 거행할 수 없는 여성들은 가치, 존엄성, 거룩함에서 있어서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인식될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여성주의자들은 ‘다르지만 동등하다’는 개념이 진정으로 의미 있기 위해서는 남녀 모두 같은 역할, 소명, 기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4항에서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교회는 남성만이 사제가 될 수 있다는 규정에 대한 논란이 계속 있어 왔음을 지적하면서, 이에 대해 자신은 “교회의 신적 제정 자체에 속하는 이 일과 관련된 모든 의심이 불식되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교회는 여성에게 사제 서품을 할 어떠한 권한도 없으며, 교회의 모든 신자들은 이러한 판단을 철저히 따라야 한다”고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교회의 무류권과 비슷한 성격의 단호함을 보여주고 있는 이 문헌은 앞으로 여성 사제와 관련된 교회의 입장이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사제직 허용하지 않지만 교회 안에서 맡겨진 여성의 역할 커

 

이 문헌이 반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994년 7월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일반 알현에서 성 베드로 성당 밖 광장에 모여 있는 군중들에게 <여성은 유능한 신앙의 증인이다>라는 제목의 강연을 하면서, 하느님께서 여성에게 주신 소명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마리아는 여성들과 그 역할에 대해 하느님께서 의도하신 바를 보여주시는 가장 훌륭한 예시라는 것, 그리고 예수님께서 여성들을 존엄과 존경으로 대하신 것이 바로 세상의 여성들에 대한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성들을 자신의 직무에 동반하셨고, 제자로서 뒤를 따르게 하셨습니다. 여성들은 예수님의 빈 무덤과 부활하신 육신을 목격한 첫 증인이며 그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할 사명이 맡겨지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여성을 대하신 태도는 당대 사회의 관습과 법과 이해를 뛰어넘는 것이었고, 예수님은 그 시대의 여성에 대한 부당한 방식과 남녀의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없애고자 하심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교황은 결론적으로 여성은 교회의 역사 안에서 신앙의 훌륭한 증거자로 살아왔고, 이것이 사회와 가정의 개선을 위해 요청받는 사명 중 하나라고 끝을 맺습니다. 교회의 첫 여성들이 사도들을 도우며 복음을 전해왔듯이 오늘날 여성들도 ‘예수의 협력자, 신앙 깊은 개인, 예수님의 권능과 신비에 대한 증거자’의 역할을 맡아 교회를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남성이었다는 전통과 상징의 중요성을 고수하기에 교회는 여성의 사제직을 허용하지는 않지만 하느님께서 의도하신 여성들의 동등한 존엄성과 교회 안에서 그들에게 맡겨진 역할이 결코 작지 않음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8월호, 박정우 후고(신부, 서울 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복음살이] 여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8)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회칙 <생명의 복음>과 여성

 

 

요한바오로 2세는 1995년 3월 25일 ‘인간 생명의 가치와 불가침성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회칙 <생명의 복음>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문헌에서 교황은 현대에서 인간 생명을 위협하는 피임, 낙태, 안락사, 태아진단, 인공 생식 등을 ‘죽음의 문화’라고 규정하며 그러한 현상의 근본적인 이유를 규명하고,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자고 호소합니다. 교황은 이 문헌에서 모든 이들이 생명수호와 생명의 문화를 건설할 책임이 있지만 어머니로서 임신, 출산, 양육을 우선적으로 맡게 되는 여성들은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다시 강조합니다.

 

교황은 회칙의 뒷부분인 86-99항에서 여성의 위치, 지위, 역할 등을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교황은 우선 현대 사회가 모성의 가치를 폄하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어머니들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의 가치를 세상에 가장 훌륭하게 드러내 주는 모델이라고 강조합니다. 그 가치들은 ‘충실성, 정결, 희생, 불굴의 사랑, 신앙의 증거’ 등인데 대중매체들은 이를 현대에 별로 쓸모없는 것처럼 묘사한다는 것입니다. 교황은 이런 모성과 그 가치에 대해 감사를 전하며 하느님께서 보상해 주실 것이라고 축복합니다(86).

 

또한 교황은 “인간 생명에 대한 지지와 증진”은 전통적인 교회의 ‘사랑의 봉사’를 통해 드러나야 하며, 오늘날 죽음의 문화의 압박 속에서 더욱 절박하다고 호소합니다. 모든 생명은 누구든지 시초부터 어느 단계이든 신성하며 특히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가르침에 따라 새로운 생명을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계획을 세워 지원하도록 촉구합니다. “이러한 계획들은 아기 아버지의 도움이 없는 상태에서도 아기를 세상에 낳아 기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머니들을 특히 긴밀하게 도와주는 것”과 더 나아가 “소외되거나 고통 받는 생명, 특히 마지막 단계에 놓인 생명”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도 포함합니다(87).

 

 

가정의 구성원은 한 사람의 인격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져야

 

교황은 92항부터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 혼인으로 성립된 공동체인 가정의 본질에서 나오는” 생명을 위한 가정의 책임과 소명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 책임은 하느님의 “사랑을 보호하고, 드러내며, 전달하여야 하는 그 사명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한데, 부모들은 하느님 사랑의 계획의 협력자로서, “이타적이고, 수용적이며, 선물이 되는 사랑”을 보여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황은 이처럼 “가정 안에서 모든 구성원은, 그가 한 사람의 인격체라는 그 이유 때문에 받아들여지고 존경받고 존중”되어야 하고, 특히 곤경에 놓인 가족의 경우 더욱 열성적이고 주의 깊게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어서 교황은 혼인한 부부는 바로 출산과 양육을 통해서 이러한 사명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게 된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부모들은 “구체적인 행동과 상징들을 통하여, 자녀들을 진정한 자기 증여로 실현되는 참다운 자유로 이끌어가며, 자녀들 안에 타인에 대한 존중, 정의감, 진심 어린 개방, 대화, 헌신적인 봉사, 연대, 그 밖의 모든 다른 가치를 심어 줍니다. 이러한 가치들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선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게 해 줍니다.” 아울러 그리스도교 신자 부모들은 자녀들의 신앙을 키워주고, 자녀들의 소명을 돕고, 타인의 고통에 민감할 줄 알도록 교육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교황은 특히 97항에서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기 위해서 젊은이들에 대한 인격적인 사랑과 생명 보호를 바탕으로 하는 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젊은이들이 성과 사랑과 삶 전체를 그 참된 의미와 밀접한 상호 연관성 안에서 받아들이고 체험하도록 돕지 않는다면, 인간 생명에 대한 참된 문화를 건설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인격 전체를 풍요롭게 해주는 성은 ‘인간을 사랑의 선물로 만드는 데에서 그 가장 심오한 의미가 나타납니다.’ 성을 하찮은 것으로 만드는 일은 새 생명을 경시하게 만드는 주된 요소들 중에 포함됩니다. 참된 사랑만이 생명을 보호할 힘이 있습니다. 특히 청년들과 장년들에게 성과 사랑에 관한 진정한 교육을 제공하여야 할 의무를 회피할 수 없습니다. 그 교육 안에는 정결의 훈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정결의 덕은 인격의 성숙을 도와주며, 육체적인 ‘혼인’의 의미를 존중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이어서 교황은 생명을 위한 봉사에 있어서 혼인한 부부의 책임 있는 출산에 대한 교육 활동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즉 부부는 새 생명에 대하여 열려있는 자세를 취해야 하며 출산 조절이 필요한 경우에라도 도덕률에 따라 “본능과 열정의 충동을 통제하고 그들의 인격 안에 새겨진 생물학적인 법칙을 존중할 의무를” 지키기 위해, 인공적인 방법이 아니라 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라고 권고합니다.

 

 

여성의 본성에 적합한 방식으로 사랑 실천해야

 

99항에서 교황은 직접적으로 “새로운 여권주의(new feminism)”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생명문화 건설을 위한 여성의 자리와 책임을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남성 우월’의 표본들을 모방하려는 유혹을 거부하는 ‘새로운 여권주의’(new feminism)를 촉진하는 일은 여성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 새로운 여권주의는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재능을 인정하고 긍정하며 모든 차별과 폭력과 착취를 극복하려는 것입니다.”

 

즉 여성들은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여성의 본성에 적합한 방식으로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고유하게 주어진 재능과 선물을 사용하여 세상에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성들이 사랑에 대해 배우게 되는 중요한 한 방법은 자녀를 갖게 됨으로써 그리고 자녀들이 태중에 있을 때부터 이미 자녀들과 형성되는 특별한 연결을 통해서라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자기 안에 다른 인간 존재를 받아들여 보호하며, 자기 안에서 그 존재가 자라나게 해주고, 그 존재에게 공간을 제공하며, 한 사람의 타인인 그 존재를 존중합니다. 인간관계는 다른 사람을 수용하고자 열려 있어야만 진정한 인간관계라는 사실을 먼저 여성들이 배우며, 그 다음에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 다른 사람은, 유용성, 힘, 지력, 아름다움 또는 건강 등과 같은 다른 이유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가 인격적 존재라는 사실에서 나오는 존엄성 때문에 인정받고 사랑받는 사람입니다. 교회와 인류는 바로 이러한 근본적인 공헌을 여성들에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문화의 진정한 변모를 위하여 필수 불가결한 전제가 됩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인간이라는 이유로 수용될 수 있는 생명의 문화는 이러한 여성들의 본성에서 배우게 되며, 이것이 여성들이 세상에 공헌하는 중요한 소명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새로운 여권주의”라는 표현 이면에는 현대의 일부 페미니즘 운동들이 어머니로서의 여성들의 특별한 본성과 선물을 경시하기 때문에 “문화의 진정한 변모”에 공헌할 수 없다는 교회의 이해가 전제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문화를 위한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여성이 가부장제와 같은 남성의 지배적이고 억압적인 방식으로 어떤 것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만의 참되고 고유한 능력을 활용하여 새로운 돌봄과 수용의 문화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모든 이를 위해 ‘생명’을 받아들이신 분

 

이러한 맥락에서 99항의 끝부분에 교황은 특별히 낙태한 경험이 있는 여성들을 용서와 화해의 길로 초대합니다. 낙태는 여성의 본성을 거스르고 생명의 문화를 위한 가장 근본적인 여성의 소명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교황은 여성들이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상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이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분명한 잘못이지만 희망을 잃지 말라면서 화해와 치유의 길로 안내합니다.

 

즉, 정직하게 그 문제를 직면하고, 겸손과 신뢰로 자신을 참회에 맡기면서 화해의 성사 안에서 하느님이 주시는 용서와 평화를 청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기에게 용서를 청하고 자신의 고통의 체험을 바탕으로 다른 생명을 위한 설득력 있는 옹호자로서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결론에서 교황은 성모 마리아는 모든 이를 위해 ‘생명’을 받아들이신 분이시며 생명의 어머니이시자 생명을 향해 다시 태어난 모든 이들의 어머니이시라고 선언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마리아의 모성애를 묵상하며 그 모성애를 표현하도록 부름 받았는데, 교회가 자신 안에 구세주 예수님을 모시고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 사람들을 하느님의 새 생명 안에 새롭게 태어나게 함으로써 세상에 예수님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그 부르심에 따르는 것입니다.

 

교황은 이 사명은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들이고 낳으신 마리아의 모성애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므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묵시21,1)에 대한 확신 속에서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지”이신 마리아를 바라보며 나아가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9월호, 박정우 후고(신부, 서울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복음살이] 여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9)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여성들에게 보내는 교서(1995)>

 

 

1947년 ‘유엔여성지위위원회’가 창설된 이후 국제사회는 여성정책을 독립적인 의제로 다루기 시작하였고, 이후 각종 국제협약에서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한 조항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유엔은 1974년 총회에서 1975년을 ‘세계여성의 해’로 선포하고, 여성차별을 없애기 위한 국제적 행동계획을 수립할 것을 촉구하였고, 이에 따라 1975년 6월19일 멕시코시티에서 133개국 회원국에서 온 2000여 명의 대표자가 참석한 가운데 ‘평등, 발전, 평화’를 주제로 제1차 세계여성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에서 ‘세계행동계획’이란 문서를 채택하였는데 여기서 각 정부는 10년 동안 국가 발전과 평화유지에 여성이 완전히 참여하고, 여성의 지위 증진을 위한 구체적 행동을 실천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이후 198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2차 대회, 1985년 케냐의 나이로비에서의 3차 대회, 1995년 중국 북경에서의 4차 대회를 거치면서 여성들의 지위 향상과 평등의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다루어져 왔습니다.  

 

한편 1974년부터 시작된 인구와 개발 문제를 다루는 세계인구회의가 거듭되면서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에 경제 원조와 함께 ‘가족계획(산아제한)’을 강조하였는데, 국제적으로 여성의 성적 권리와 재생산(출산) 권리 등을 내세우는 서구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이 활발해졌고, 점차 유엔 국제회의에서 서구 페미니스트들과 전통적 가족 가치를 지니고 있는 국가들과의 대립이 드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1994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인구개발회의는 낙태와 동성애를 권리로 인정하려는 서구 페미니스트들과, 이에 대항하여 전통적인 가정과 생명의 가치를 지키려는 나라들, 즉 바티칸을 비롯한 가톨릭국가들과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들이 벌이는 ‘문화전쟁’의 격전장이 되어버렸습니다. 따라서 1995년 9월 북경에서 열리는 제4차 여성대회에서는 양자 간에 다시 한 번 치열한 싸움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되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1995년 6월29일 전 세계 여성들을 대상으로 <여성에게 보내는 교서(Letter to Women)>라는 문서를 발표하여 유엔 북경여성대회에 관한 교황 자신의 연대와 감사를 표명하고, 여성의 존엄과 권리를 지지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여성들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제시하였습니다. 동시에 교황은 북경여성대회에 바티칸 대표단을 파견하여 낙태와 동성애 등을 여성의 기본권이라고 주장하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주장에 맞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여성의 기본적인 인권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과 강력한 연대를 형성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 여성 존중해야

 

<여성에게 보내는 교서>에서 교황은 먼저 다양한 분야의 여성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어머니인 여성들’에게는 “기쁨과 산고를 겪으며 인간의 생명을” 자신 안에 품으며 한 아기의 성장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해 준 것에 대해서, ‘아내인 여성들’에게는 “특유의 감수성과 직관력, 관대함과 성실성으로” 가정에서 사회 전역에 이르기까지 풍요롭게 해줌에 대해 감사를 전합니다. 각 분야에서 일하는 ‘근로 여성들’에 대해서는 “이성과 감정을 조화시키는 문화의 성장과” 언제나 ‘신비’를 찾는 삶의 태도와, 더욱 인간다운 세상을 위한 공헌 등에 대해 감사를 표합니다. ‘축성된 여성들에게’는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 “하느님 사랑의 은총에 대한 순종과 충실성”으로 자신을 개방하고 전 인류가 하느님과 맺는 깊은 친교를 도와주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단지 ‘여성’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모든 여성들에게 감사를 표하는데, “여성의 통찰력은 세계 인식을 풍요롭게 하고, 더욱더 정직하고 진정한 인간관계를 도와” 주기 때문입니다.(2항)

 

이어서 교황은 과거 여성의 존엄이 훼손되었던 역사와 이에 대해 교회의 구성원도 잘못이 있었음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교회가 복음에 따라 새롭게 변화되기를 기원하는데, 그것은 곧 복음서의 ‘예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사회문화적 관습을 초월하여 여성들을 존중하는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또한 인류 역사에서 많은 여성들이 동등한 기회를 누리지 못했으며, 특히 문화와 예술에 있어서 여성들의 업적이 잊히는 것과 여성들의 기술이나 전문성이 인정받지 못한 점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합니다.(3항)

 

교황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 모성이 중요하지만 모성의 헌신이 평가절하 당하는 것, 아내나 어머니가 되기를 선택한 이들이 받는 차별 등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앞으로 여성들이 미래의 심각한 문제를 풀어가는 주역이 되며, 삶의 질과 생명의 문제 등 많은 영역에서 여성들은 진가를 발휘하고 ‘사랑의 문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를 구성하도록 촉구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4항)

 

또한 교황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폭력, 매춘과 향락산업 문화 등을 비판하고 그로 인한 낙태를 선택하는 것은 중죄이지만, 여성의 탓 이전에 먼저 “남성의 죄이며, 사회 전반의 환경이 그 공범자”라고 강조합니다.(5항) 교황은 여성들의 존엄을 되찾기 위해서 국가와 국제기구를 포함하여 모두가 나서야 하며, 특히 용기 있게 여성의 존엄성 수호에 앞장섰던 여성운동의 선구자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는 여성운동이 때로는 오류도 있었지만 여성 해방의 여정에서 긍정적인 길을 걸어왔다고 평가하며 그 여정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단순한 차별 철폐를 넘어서 하느님의 계명을 인식하고 따르게 하는 ‘인간의 이성’의 능력을 이용한 보다 효과적이고 지성적인 여성 해방운동을 통해 여성 존중의 진보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6항) 

 

교황은 창세기의 말씀을 인용하여 남녀의 ‘상호 보완성’의 설명하며 남녀는 서로 돕는 존재로서 창조되었기에 인간 존재는 “오로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원성을 통해서만 온전한 ‘인간’이 실현”된다는 교리를 상기시키십니다. 또한 남녀 인간은 이 땅을 돌볼 동등한 책임을 부여 받았으며, 남편과 아내로서 서로를 풍요롭게 하며 ‘둘의 합일’을 통한 출산과 가정생활, 그리고 역사의 창조라는 과업을 받았음을 지적합니다. 특히 “사회와 국가의 다양한 분야, 그리고 전 인류의 발전은 여성의 헌신에 실로 많은 빚을 지고 있”다며 여성들을 칭송합니다.(7-8항)

 

 

여성에게 주어진 섬김의 역할은 강요 아니야

 

교황은 이어서 ‘여성들의 타고난 역량’에 대한 성찰을 전개합니다.  우선 여성들은 “인간관계와 정신의 가치를 다루는 사회 도덕적 차원”에서 뛰어난데, 일상적 관계인 가정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교육 분야와 보건 분야에서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놓고 봉사함으로써 “정서적, 문화적, 영적 모성애”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9항) 이런 ‘여성의 타고난 역량’은 성모 마리아의 ‘사랑의 섬김’ 안에서도 드러납니다. 사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줌으로써 자신을 발견할 소명을 지니고 있습니다.(10항) 여성에게 주어진 자유와 사랑의 이름으로 행하는 섬김의 역할은 강요의 결과가 아니며, 또한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도 아닙니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성화적(iconic)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비록 교회 안에서 직무 사제직은 남성에게만 맡겨졌을 지라도, 그것이 여성의 역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며, 이 역할의 다양성은 마땅히 하느님께서 “자유로이 선택하신 ‘표징’의 경륜이라는 특별한 기준에 따라 이해하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여성 수도자들의 경우 일종의 ‘예언자적’ 본성이 나타나는데,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신자들의 ‘어머니’가 되기 위하여 고결한 ‘동정녀’의 마음으로 축성된 공동체라는 교회의 정수를 적절히 표현한 강력한 상징이며, 의미심장한 ‘성화적 특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교황은 교회 2천 년 역사 안에서 참으로 위대한 여성들의 타고난 역량을 체험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들을 목격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또한 역사상 위대하고 유명한 여성들 뿐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이웃을 섬기는 가운데 여성 특유의 천부적 재능을 드러내는 ‘평범한 여성들’”의 역량도 강조합니다. 그들은 날마다 이웃에게 자신을 내어주며 “사람을 가슴으로 알아보기 때문”에 여성들은 인간을 더 잘 이해하고 그들에게 다가가 돕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태초부터 여성에게 부여하셨던 아름다움이라고 말합니다.

 

이 문서는 북경여성대회의 성공을 기원하며, 교회 공동체도 그 해(1995)를 “여성이라는 ‘이 위대한 보물’을 선물로 주신 데 대하여 충심으로 감사하는 해”로 삼자고 초대하며 마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10월호, 박정우 후고(신부, 서울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복음살이] 여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10) 2000년대에 발표된 여성에 관한 교회 문헌

 

 

2000년 11월9일 교황청 가정평의회는 <가정, 혼인, 그리고 사실혼에 관하여>라는 문헌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문헌의 특징은 페미니즘에서 주장하는 ‘성(sex)과 젠더(gender)’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8항).

 

교회는 성에 대한 개념들은 본성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페미니즘 이론이 인간성을 훼손하고 가정을 위협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론들은 현대 사회에서 동성애 행위, 다양한 형태의 동거, 여성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관념의 변화 등을 수용하는 작금의 경향들을 정당화 시키는데 이용되어왔다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는 남녀의 성별과 성적 역할에 대하여 생물학적이고 자연적인 기원을 부정하고, 문화적이고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젠더’라는 용어는 현대 사회에 큰 손실을 가져왔다고 비판합니다. 자신의 ‘젠더’를 자기 자신(self)과 분리하게 만듦으로써, 이 사상은 동성애를 정당화하고 더 많은 종류의 성별을 만들어내고 남성과 여성이라는 자신의 기원으로부터 남성성(masculinity)과 여성성(femininity)을 분리하는 것을 정당화 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에 반대하는 교회는 자신의 생물학적 성과 남녀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일부라고 주장합니다. “통합된 개성이 영혼과 육신의 일치, 인간의 내적 진실의 충만함을 인식함으로서 이루어질 때” 성(젠더)은 “심리적, 생물학적 본성을 지닌 성 정체성과 조화를 이루고 상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8항). 즉 한 여성은 자신의 영혼, 몸, 그리고 개성 등 모든 것 안에서 여성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남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은 본래 남성적이고 여성적인 존재로서 서로 생물학적 측면만이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도 서로 다르면서 보완적인 존재입니다. 물론 생물학적인 면에서 남성과 여성은 새로운 세대를 생겨나게 하기 위해서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 지지하고 돕는다는 점에서 상호보완적입니다(6항).

 

 

혼인 안에서 남성과 여성은 근원적인 변화 일어나

 

이 문헌은 또한 남녀의 상호 협력은 ‘혼인’ 안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강조합니다. 혼인은 동거와 동성애 같은 결합과는 다른 중요성과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도로서의 혼인은 유일하고 공적으로 인정받는 두 사람의 결합으로 인식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사회가 미래 인간 세대에 대해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혼인을 통해 이루는 가정들이 장려되고 보호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런 가정들이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을 포함하여 사회에 많은 선익을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은 도덕체계, 비폭력 정신, 그리고 책임감 있고 성실한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한 협력의 정신을 습득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가정은 사회의 공동선과 복지를 향해 작동한다는 것입니다(17항).

 

그러나 이 문헌은 만일 동거와 동성애가 혼인처럼 사회를 위한 공헌을 전혀 하지 못함에도 혼인과 똑같은 결합으로 인정받는다면, 혼인의 가치는 훼손되며, 진실과 정의를 거스르는 일이 된다고 강조합니다. 이성애 커플의 동거에는 혼인과 자녀 양육에서 요구되는 서로에 대한 헌신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동성애 커플에는 양성의 상호보완성이 결여되어 있고, 자녀를 낳을 수 없으며, 성행위 안에서 자연법을 거스르는 죄를 짓게 됩니다. 더구나 동성애 커플은 혼인으로 이루어지는 가정이라고 할 수 없기에, 그들에게는 자녀 입양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23항).

 

또한 문헌은 남녀의 성이 본래 사회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사고는 여성들에게도 피해를 주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런 생각에 따르면 여성도 집 밖에 나가서 일을 해야 하며, 결국 일과 가정을 모두 충실히 할 수 있는 직업만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29항).

 

이러한 젠더 개념은 결국 남녀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동등하다는 인식도 불가능하게 되고, 여성성과 남성성의 구분과 남성과 여성의 상호보완성이라는 개념도 별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이 문헌은 끝으로 혼인 안에서 남성과 여성은 근원적인 변화가 일어나며, 남편과 아내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상대방의 삶에 결합하는 헌신 안에서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런 근원적인 신원의 변화는 각자의 미래 전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혼인과 가정은 이런 변화를 진지하게 수용하지만, 동거와 동성애 결합에서는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서로 다른 목적으로 창조

 

또 다른 중요한 문헌은 2004년 5월31일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 발표한 “교회와 세계 안에서 남녀의 협력”입니다. 여기서는 여성의 역할, 지위, 사회 안에서의 위치에 관한 문제를 다루면서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방법에 초점을 맞춥니다.

 

우선 이 문헌은 논란이 되고 있는 현대의 두 가지 경향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성별 차이를 무시하는 경향이고 둘째는 여성의 억압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서 여성이 남성과 대립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헌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여성해방을 위해 ‘생물학적 결정론(biological determinism)’을 부정하려고 함으로써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생물학적 결정론’이란 여성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생물학)이 여성의 역할 즉 모성을 결정짓는다는 사상입니다.

 

여성이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생물학적 본성에서 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런 사상이 근원적으로 가정, 혼인, 성의 중요성의 기초를 흔들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현대 사회에 “남녀의 차이에 대한 정확한 인식 안에서 적극적인 남녀의 협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합니다(4항).

 

이 문헌은 남녀가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동등한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다시 설명하면서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서로 다른 목적으로 창조하셨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창세기에서 여성이 남성의 ‘협력자’로 의도된 것은 여성은 타인을 위한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린토 전서에서도 같은 사상이 나타나는데 여성이 봉사를 위한 유일한 존재는 아니지만 봉사를 통해서 자신의 운명을 더 충만하게 채워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원래 관계적 존재이므로, 남성들도 이런 관계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여성에게 봉사하고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6항).

 

이 문헌은 가톨릭에서의 젠더 혹은 성의 개념이 육체적, 생물학적 개념만이 아니라 심리학적이고 영적인 개념이라고 말합니다. 즉 성은 순전히 무의미한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개성, 존재 양식, 자기표현, 타인과의 소통, 감정, 인간의 사랑을 표현하고 살아가는 하나의 근본적인 요소”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성의 차원은 신학적인 차원을 지닙니다. 처음부터 영혼과 육신을 지닌 인간이라는 피조물은 자신을 넘어서는 누군가와의 관계 안에서 그 특징이 지어지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창조주로부터 그 영혼조차도 성별이 지어진 존재이며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8항).

 

 

무엇보다 중요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은 육체적, 영적 의미의 ‘모성’

 

이 문헌은 여성성은 “타인 때문에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근원적인 인간의 능력”이며 그 결과 출산, 이른 나이에 성숙함, 책임지는 것, 생존 능력, 생명의 신성함을 기억함,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문제에 집중하고 해결함 등을 보여준다고 묘사합니다(13항). 성서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여성들은 신랑의 사랑에 대해 사랑으로 응답하는 신부의 모습을 모든 크리스천에게 증거하고 고유한 모범을 보여주도록” 부름 받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마리아에게서 “들음, 환영함, 겸손, 충실함, 찬양과 기다림”의 모범을 보게 되는데, 남성들은 여성들로부터 이러한 덕목들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16항).

 

이 문헌은 무엇보다 중요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은 육체적, 영적 의미의 ‘모성’이며, 가장 우선적인 책임과 소명은 가정이라고 기존의 교회 가르침을 확인합니다. 더불어 이러한 여성성과 여성의 역할이 결코 수동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사랑에서 나온 봉사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여성의 이런 역할은 세상과 교류하고 세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 형태라고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헌은 결론에서 남녀는 서로 다르지만 보완하며 협력함으로써 세상은 더 나은 곳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관계 안에서 서로의 도움, 격려, 사랑과 같은 것에 의지해야 하는 존재이며, 혼인 생활은 평화, 행복, 충만한 사랑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변화되어야 하며, 그 관계 안에서 자기만족, 권력 추구, 폭력 등을 없애고(17항), 특히 여성에 대한 오랜 억압, 무시, 불평등의 역사를 극복하기 위해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14항).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11월호, 박정우 후고(신부, 서울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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