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그리스도인과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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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4-04 ㅣ No.1303

[4·13 총선 기획] 그리스도인과 선거 (상)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하느님나라… 연대할 때 희망 있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간절히 바라는 하느님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이미 이 땅에 뿌려진 하느님나라의 씨앗을 지금 우리가 선 자리에서 체험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누구도 오롯하게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꿈이나 이상향이라고 들어 넘겨야 할까.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나라는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느끼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감수성이 다를 뿐이다. 누구는 하루하루 커가는 남다른 기쁨 속에 살아가고, 어떤 이는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하느님의 부재 속에 좌절한다.

 

무수한 사이비와 이단 등이 판치는 현실에서 하느님나라는 갈수록 체감하기 힘들어진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하느님나라는 부침을 거듭한다. 인간이 만든 제도라는 거울에 왜곡돼 비춰지기 일쑤다. 현실에서 공동체가 나아갈 길을 좌우하는 정치 영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제20대 국회의원을 뽑는 4·13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느님, 그리고 하느님나라에 대한 고백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하느님나라의 씨앗도 덩달아 자라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선 자리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목소리,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는 어떠해야 하는지 돌아보는 장을 마련한다.

 

 

#2016. 대한민국. 오늘 보고서 헬조선(hell 朝鮮)

 

누구나 부푼 꿈과 기대로 바라마지 않았던 21세기를 10여 년 경과한 오늘, 한국 사회를 이처럼 적확하게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국민적 유행어가 된 ‘헬조선’ 신드롬에 대해 어떤 이는 ‘노력하지 않는 이들의 과장된 엄살’이라 한다. 또 다른 쪽에서는 ‘삶의 위기에 처한 이들의 절절한 구조 요청’이라고도 한다. 옳고 그름은 논외로 하더라도 ‘헬조선’이라 불리는 현실이 이미 우리 사회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인간 간의 유대는 점차 생각하기 어렵게 되고, 그래서 각자가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절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로지 힘 있는 이들만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모습이다. 숨 막혀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은 현실은 젊은이들의 73%가 ‘탈(脫)조선’(‘대학내일20대연구소’ 심층인터뷰 결과), 한국을 떠나고 싶도록 만드는 게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삶의 만족도 117위. 이라크나 남수단과 같은 나라보다 더 낮은 수준 때문에 ‘헬조선’을 외치며 ‘탈조선’만을 꿈꾸는 현실. 2014년도 현재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 수는 2만 명이었지만 한국국적을 포기한 사람이 5만 명을 넘어선 것도 이 같은 우리의 어두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탈조선’의 일환으로 호주나 캐나다 등지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 정부에서조차 ‘일자리 창출’ ‘실업 해소’라는 명분으로 그런 탈출을 부추긴다. 그러나 그런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잡대’라는 말이 이러한 현실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말 그대로 ‘지방의 잡스러운 대학’을 줄인 단어. 이미 관용어가 되다시피 한 이 말에는 대학 서열화가 낳은 비아냥과 패배주의, 차별 등 우리 사회의 모순이 겹겹이 배어 있다. 

 

‘지잡대’는 요즘 유행하는 ‘수저 계급론’으로 보면 ‘흙수저’에 해당한다. ‘헬조선’에서도 맨 밑바닥인 셈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헬조선의 젊은이들 중에서도 지방에서 태어나 지방에서 대학을 나온 이들이 겪게 되는 몇 겹의 절망이 ‘지잡대’를 만들어낸 배경이다. 

 

문제는 현재의 격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에 있다.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고 한국을 탈출하는 것이 꿈을 위한 도전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탈출이기에 더 가슴 아프다. 

 

누구나 탈출을 꿈꾸는 세상. 하지만 각자가 꿈꾸는 그런 탈출이 가능할까. 역으로 굳이 그런 탈출을 꿈꾸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가능한 것일까. 그나마 기회가 있을 때 탈출을 감행하는 것이 먼저인가, 탈출을 고민할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 먼저인가.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대한민국 오늘 보고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길을 재촉하고 있는가. 세상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 드러나는 주님의 뜻은 무엇일까. 

 

스승 예수의 죽음 앞에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마태 26,74)라며 제 갈 길을 찾던 제자들이 될 것인가, 부활의 기쁨에 넘쳐 목숨까지 내놓고 주님을 선포할 것인가.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목소리,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요한 1,23)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 앞서 하느님나라를 살아가는 이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주신 하느님나라는 혼자 만들 수 있거나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곳이 결코 아니다. 주님의 길을 곧게 내기 위해 요한 세례자를 먼저 보내시고, 수많은 이들을 당신 제자로 부르신 일 등에서 하느님의 뜻이 드러난다. 성부께서 함께하시고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분”(요한 1,33)이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처럼, 하느님 사랑의 완전성은 ‘삼위일체’에서 드러난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1)하고 하신 기도는 ‘일치’가 그리스도로부터 부름을 받은 이들의 소명임을 확인시켜준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언처럼 남긴 ‘일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연대’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오늘날 ‘헬조선’의 현실은 ‘나’의 문제를 나 혼자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있거나 해결해야 한다고 여기게끔 하고 있다. 그러니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하느님을 만날 수 없는 지옥(헬) 상태가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사람이 원래 더불어 살아가게 지어진 존재임을 망각하게 만들고 ‘각자도생(各自圖生)’을 부추기는 게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나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든데….”라는 목소리만 넘쳐나는 지옥도가 펼쳐지는 가운데 가난한 이웃은 생각에 끼어들 여지도 없고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다. 하느님을 찾을 수 없으니 이웃과는 더 멀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런 현실에서 ‘헬조선’을 탈출하기 위한 씨앗을 찾기란 불가능한 일일까. “진리로 거룩하게”(요한 17,17) 된 그리스도인이 바로 하느님나라의 씨앗이라는 깨달음에서 주님의 나라를 향한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박동호 신부(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는 “하느님나라를 향한 그리스도인 간의 연대에 희망이 있다. 연대의 고리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헬조선’을 탈출하기 위해 딛고 설 사다리는 강고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연대의 폭을 넓혀나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참여와 소통이 전제돼야 한다”면서 “4·13 총선이 하느님나라를 향한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지병근(마태오·48) 교수는 “복음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늘 강력한 도전을 안겨준다. 그 도전이란 하느님나라는 바로 우리 삶의 현장이며, 구원이란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주님의 뜻을 실현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지 교수는 또 “세상일을 하느님나라와 무관하다고 여길 때 세속적인 프리즘에 하느님의 뜻이 왜곡될 수 있다”면서 “이번 선거를 세상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잘 비춰보고 주님의 길을 넓힐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적극적인 선거 참여를 요청했다.

 

이스라엘에 광야는 이집트를 떠나 하느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으로 가는 도정이다. 자기중심적인 세속의 나라를 떠나 하느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하느님나라로 가는 길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요한 1,23)는 세속의 나라를 넘어서라는 외침이자, 하느님나라가 오고 있음을 알리는 소리다. 주님의 뜻을 따르라는 촉구다. [가톨릭신문, 2016년 4월 3일, 서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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