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 (수)
(백)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기도 배움터: 하느님은 다 알고 계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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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7-30 ㅣ No.823

[기도 배움터] 하느님은 다 알고 계시잖아요!

 

 

제가 신학생 때는 영성조 미사라는 것이 있었는데, 저희 조는 미사 강론 시간에 몇 명씩 정해서 묵상 발표를 하기로 했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준비를 하기 위해서 성당에 앉아 묵상을 했습니다. 그 때 복음이 루카 복음 11장 9절부터 13절의 말씀이었던 것 같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이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고등학교 때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부모님의 반대가 너무도 답답해서 일기를 썼었지요.

 

‘하느님, 저는 신부님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반대가 심합니다. 제가 신부님의 되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여기에 네모 칸을 쳐 놓을 테니 이 네모 칸 안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어 주십시오. 부모님께 이걸 보여드려서 제가 사제가 되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십시오.’

 

저는 정말로 네모 칸을 그려놓고 그 안에 연필을 끼워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일주일의 시간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네모 칸 안에 동그라미는 그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바쁘신가보다’하고 생각하고 하느님께 일주일의 시간을 더 드렸습니다. 하지만 동그라미는 끝내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그 때의 일을 생각하니 갑자기 화가 나더라구요. 그래서 예수님께 따져 물었지요. “예수님,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라고 하시더니, 제가 그렇게 간절히 청했는데 왜 네모 칸 안에 동그라미를 그려주시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따져 묻고 있는데, 갑자기 그걸 깨닫게 되더라구요. “나는 지금 신학교 성당에 앉아 있지…” 하느님께서는 네모 칸 안에 동그라미를 그려주시지는 않았지만, 제가 사제직에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저를 신학교에 들어올 수 있게 해 주신 거지요.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청한 그대로의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청한 것 보다 더 좋은 방식으로 우리의 청을 이루어주시는 분이시지요.

 

그런데 청원기도를 해도 좋을까요? 매번 무얼 달라고만 하고 필요할 때만 기도하는 것 같아서 하느님께 죄송해하는 분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어려움을 홀로 다 해결하고 나서야 와서 그간의 일을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사목자의 마음은 참 아프지요. 하느님은 더 아프시겠지요. 정말 청원기도는 기복적인 신앙을 나타내는 것일까요? 하느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아버지로, 아빠로 가르쳐 주셨고, 예수님도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모범으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도 청원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느님께 청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원래 자녀는 아버지께 모든 것을 받아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아버지 하느님께 필요한 것을 꼭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너무도 잘 아실 텐데 그걸 꼭 말씀드려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하느님께서 알아서 주실 텐데 필요한 것을 먼저 말씀드리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요? 직접 말씀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필요한 것을 직접 청하십시오. 하느님 아버지께서 모르시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하느님께 청한다는 것은 하느님께 나를 솔직하게 열어 보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시는 대로 받겠습니다’하는 자세가 더 겸손한 자세, 믿음직스런 자세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느님과의 관계를 깊이 해 나가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께 우리의 사소한 청까지 말씀드림으로써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와의 만남을 생각해 본다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나를 돋보이게 할 만한 것을 주로 말하지요. 시간이 좀 더 흐르면 나의 결점도 솔직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가서 아주 친밀해지면 별거 아닌 아주 사소한 것을 가지고도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를 더 세세하게 알아가는 것이지요. 기도가 하느님과의 더 깊은 관계에로 나아가는 것이라면 하느님께 나의 바람을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것은 아주 당연합니다.

 

청하는데 있어서 무엇을 청해도 좋지만 계속해서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설령 그것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도 계속해서 청하다보면 아주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내 편에서 필요한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중심으로 청하게 되는데, 계속해서 믿음을 가지고 청하다 보면 나의 마음이 점차로 바뀌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을 청하게 되지요. 그러니까 무엇을 청할 때 마음에서는 그걸 원하지 않는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걸 청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내 솔직한 마음과는 다른 것을 억지로 말씀드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청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실 때 하느님 아버지께 말씀드렸던 것을 생각하는 게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수난에 앞서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느님 아버지께 당신의 솔직한 마음을, 원의를 드러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셨으니 우리도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우리의 솔직한 바람을 드러내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실 때 당신의 바람만 말씀드리고 끝내시지는 않았습니다. 이어서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라고 하시지요. 당신의 뜻을 드러내면서도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한 신뢰로 당신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솔직한 바람을 말씀드리고, 이와 더불어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한 신뢰로 우리 자신을 맡겨 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께 필요한 것을 솔직히 말씀드리세요. 하느님이 우리의 바람을 모르시기 때문이 아니라, 기도가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라면 우리의 솔직한 바람을 표현하는 것이 우리를 하느님과의 보다 깊은 관계에로 안내하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의 겟세마니에서의 기도를 본받아 청원기도를 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① ‘이 잔을 거두어 주세요’ : 솔직한 내 마음의 표현 + ②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세요’ : 아버지께 대한 신뢰의 표현.

 

* 최규화(요한 세례자) 신부는 2000년 사제 수품 후, 2009년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교의 신학)를 취득 하였다. 현재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외침, 2016년 7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최규화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교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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