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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생명을 향해 우리의 문을 열어젖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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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4-21 ㅣ No.1234

[기억, 아남네시스] 생명을 향해 우리의 문을 열어젖힙시다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빕니다. 생명이신 하느님과 하느님의 모습을 경시하고 모든 남성과 여성과 어린이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기를 빕니다.(2014년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의 가르침에는 ‘생명’과 관련된 메시지들이 깊이 배어 있습니다. 이는 당신 친히 사목자로서 독재정권 아래 사회 부조리가 만연했던 아르헨티나에서 오랜 세월 신자들을 돌보며 체득한 지혜입니다. 그런 그분의 말씀에는 생명의 주인이시며 동시에 우리에게 생명을 선사하고자 강생하시고 돌아가신 주님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편교회의 최고 목자이신 프란치스코 교종의 생명에 대한 가르침은 우리가 몸담고 사는 이 사회를 올바로 진단하게 하는 시금석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생명의 주인이 아닙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무엇보다 루카 14,7-24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는 이 생명의 잔치에 초대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생명으로 초대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셨고,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 하느님께서는 생명 자체이시므로 우리를 생명으로 초대하시는 것입니다.”(「프란치스코. 한 사목자의 성찰 ? 생명」, 윤주현 역, 45-46쪽. 이하 모두 같은 책)라고 하시며, 우리는 생명이신 하느님께 초대된 사람이지 “주인이라고 착각해서도 안 되고 자리를 독점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신이 생명의 주인이 되려 했던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요즘 한창 한국사회에서 쟁점이 되었던 이른바 ‘갑질 사건’은 그런 잘못된 의식이 우리 사회에도 만연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입니다.

우유 갑질 사건, 땅콩회항 갑질 사건, 백화점 모녀 갑질 사건을 비롯해 어느 기업 임원의 컵라면 갑질 사건 등은 자신을 주인이라 여기며 힘없는 사람들을 무참히 짓밟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런 우리 사회에 교종의 메시지는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합니다.


생명의 문화를 증진하십시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창세 1,27을 통해 우리가 받은 이 생명이 하느님에게서 유래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만들어졌기에 하느님의 가족으로 그분의 품위를 간직한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숨을 불어넣으심으로써 생명을 선사해 주셨습니다(58쪽 참조).

이렇게 하느님의 모습을 간직한 우리 생명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선사받은 이 생명을 잉태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잘 돌보는 ‘생명의 문화’를 넓혀가야 합니다. 이에 대해 교종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아기에게 음식이 부족하지 않도록, 아기가 윤리적인 원칙과 가치를 잘 배울 수 있도록 동반해 줘야 하며, 더 나아가 그 아기의 일생에 함께해 주어야 합니다. 아기가 아플 땐, 그 아기의 고통과 병고에 함께해 주어야 합니다. … 그것이 바로 생명의 문화이자 생명의 메시지입니다.

또한 그 아기가 노인이 되었을 때, 사랑을 다해 그 노인을 돌보아 드려야 합니다. 노인들은 삶의 지혜를 간직한 분들입니다. … 가능한 한 그분들을 세상과 가까이 있게 해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만일 그분들을 먼 곳에 모셔야 한다면, 가능한 한 자주 찾아가야겠습니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함께하며 그분들의 눈을 감겨드리고 생명이신 하느님께 그분들을 맡겨드리십시오. 이것이 바로 생명의 문화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문화를 실천해야 합니다. 이 모든 생명의 문화를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에 새겨 넣어야 합니다”(61쪽).

그리고 만일 생명을 돌볼 줄 모른다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 전체가 죽음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고 교종께서 경고하셨습니다(100-101쪽 참조). 생명의 문화를 넓히는 일에는 자녀들의 교육에서부터 대학 진학, 청소년 실업, 이혼, 핵가족, 미혼모, 노인 문제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생명을 위협하는 수많은 문제에 대한 공동의 고민과 그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찾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회개할 줄 모르는 이 도시를 위해 우십시오

생명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종의 가르침은 구체적이며 광범위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사목적인 체험에서 직접 체득하신 것입니다. 작년에 교종께서 한국을 방문할 당시 주목받았던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월호 참사 유족들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위로입니다.

언론에서는 연일 그것이 특별한 일인 듯 보도했지만, 사실 교종께서는 오랜 사제생활과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장 시절 그렇게 살아오셨습니다. 교종께서는 2004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어느 클럽에서 화재가 발생해 70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부상당하고 194명이나 숨진 이른바 ‘크로마뇽 참사’를 겪으며 그들의 아픔에 함께 하셨습니다.

이 참사 5주기 미사에서 교종은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는 194명의 희생자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위해 울고자 여기 모였습니다. 우리는 아직 울고 있지 않은 우리의 도시를 위해 울어야 합니다. … 이 도시는 자기 자녀들이 간직한 상처를 화장으로 덮어버리고 있습니다”(66쪽).

교종의 이 말씀은 마치 세월호 참사를 목도하고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득실만을 따지는 가운데 유족들의 아픔을 외면한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을 향해 던지는 예언자의 날카로운 말씀과 같습니다. 교종은 크로마뇽 화재 참사를 기억하며 이 도시가 어머니의 마음을 갖도록, 그래서 사람을 죽이는 대신 생명을 낳아 잘 보듬고 키우도록, 그럼으로써 이 도시가 생명에 대한 약속을 지킬수 있도록 눈물을 흘릴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만일 교종께서 한국에서 우리와 함께 세월호 참사를 겪으셨다면, 분명 이 사회를 향해서도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실 것입니다.


생명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프란치스코 교종의 생명에 대한 가르침에는 늘 약방의 감초처럼 두 분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한 분은 생명이신 예수님이고, 다른 한 분은 생명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입니다. 성모님은 생명 자체이신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으셨으며 기르신 당사자이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 아드님의 수난과 십자가 길에 동반하시고 죽음의 순간과 부활에도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성모님께 막 탄생한 교회를 맡기심으로써 교회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성모님은 ‘생명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분의 동반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더욱더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교회의 삶 속에서 여전히 우리를 동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86쪽).

이런 성모님을 바라보며 우리는 과연 또 다른 어머니가 되어 우리에게 맡겨진 생명을 잘 동반하고 있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교종께서는 자신에게 맡겨진 아이들보다 애완동물을 돌보는 데 더 마음을 쓰는 사람들을 질타하셨습니다(88쪽).

교종의 고향인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남미에는 여전히 아동 학대와 납치, 어린이 노동, 여성 납치와 강제 매춘, 마약 문제가 만연해 있습니다. 그런 부조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기득권을 지키려는 권력자들과 그 밑에서 공생하는 사람들을 잇는 뇌물이라는 연결고리가 있고, 그런 악의 우산 아래서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종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비롯해 그들을 방치하고 조장하는 사회 전체에 회개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최근 칠곡과 울산의 계모가 의붓딸을 학대하고 살해한 사건, 심심찮게 드러나는 어린이집에서의 어린이 학대 사건, 그리고 기득권을 지키려고 상당수의 고용인을 비정규직으로 내몰아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대기업과 대학, 그리고 무조건적인 개발만 앞세우며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을 짓밟는 기득권층 사람들을 보면 교종의 질타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절감합니다. 교종께서는 그런 기득권층을 향해,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되지 말고 생명을 돌보고 살리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셨습니다(246-264쪽 참조).

그러므로 성모님께서 생명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정성껏 생명을 돌보셨듯이, 우리 사회 또한 회개하는 가운데 또 다른 어머니로 거듭나 다함께 생명을 돌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자신의 기득권을 놓고 먼저 나누고 다가가고 배려하는 문화를 배양해야 합니다.


생명이신 주님을 향한 개방성과 충실성

프란치스코 교종의 생명에 대한 가르침은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 안에서 정점에 이릅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그러므로 참된 생명으로 나아가려면 우리는 주님을 향해 우리 존재의 문을 열어젖혀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웃, 아니 인류 전체를 향한 개방성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교종께서는 강조하셨습니다. “마음의 문, 정신의 문, 우리 교회의 문을 비롯해 모든 문을 그분을 향해 열어젖히십시오. 문을 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과제이자 사제의 과제입니다”(184쪽).

교종께서는 생명이신 주님을 향해 개방하되 충실성과 함께 가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마음의 문을 여는 반면, 사랑을 위협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문을 닫아거는 것, 그것이 바로 충실성입니다. 개방성은 이 충실성과 함께 가야 합니다”(188쪽).

그리고 이 선상에서 교종은 주님께 마음의 문을 열어드리는 것은 다름 아닌 주님께서 사랑하는 모든 사람, 곧 가난한 이들, 작은 이들, 길을 잃어버린 이들, 죄인 같은 사람들에게도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을 포함하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반면, ‘우상들’에게는 문을 닫아거는 충실함을 견지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손쉬운 아첨, 세속적인 영광, 탐욕, 권세, 부, 악담을 비롯해 이런 것들을 강제하려면 우리 마음에 또는 우리 공동체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에게는 문을 닫아걸어야 합니다”(188쪽).


생명의 잔치인 성찬례

마지막으로, 교종께서는 생명의 잔치인 성찬례에 대해 자주 강조하셨습니다. “성찬례는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사랑을 배우는 학교”(218쪽)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회에서 고통 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초대하고 그들과 연대하도록 이끄십니다.

우리는 거대한 빌딩 숲의 그늘에 가린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노숙자,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 등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해선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의 날, 그런 사람들에게 해준 것을 보고 천국으로 갈 사람과 지옥으로 갈 사람을 가르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교종께서는 “그분이 우리를 위해 일하셨듯이, 그렇게 여러분의 형제들을 위해 봉사하십시오.”(237쪽) 하고 권고하십니다. 생명을 돌보는 일은 곧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모습입니다. 부디 프란치스코 교종의 말씀을 통해 드러난 주님의 뜻이 여러 모로 병들고 허약한 한국사회를 새롭게 하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 정인숙 젬마 - 평신도 신학자.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영성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에서 10년 동안 신학을 가르쳤으며, 현재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영성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역서로 「순례 영성」, 「성서 안에서의 영적 체험」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5년 4월호, 정인숙 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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