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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53: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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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6-11 ㅣ No.808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53)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 ⑤


레사, 겸손한 영혼 지닌 ‘영적 어린이’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은 흔히 ‘작은 길’ 또는 ‘영적 어린이의 길’로 표현됩니다. 단순하고 쉬우면서도 복음의 핵심에 맥이 닿아 있는 이 가르침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이번 호부터는 이 점에 대해 함께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이 길에 있어서 우리가 구분해야 할 것은, 심리적으로 미성숙한 어린이와 영적인 어린이는 다르다는 점입니다.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어린이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본능적인 충동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러나 영적 어린이는 이런 상태와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느님 안에서 그 누구보다 큰 사람이 바로 영적 어린이라고 하겠습니다. 

 

마태오 복음 18장 1-5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하늘나라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 또한 마태오 복음 11장 26절에서도 예수님은 이 영적 어린이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공동번역 성서). 소화 데레사는 이런 예수님의 말씀들을 그 누구보다 잘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 안에 숨어 있는 ‘영적 어린이’가 되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겸손의 길인 영적 어린이의 길

 

영적 어린이의 길은 무엇보다도 먼저 ‘겸손의 길’입니다. 소화 데레사는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을 깊이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인간의 생명까지도 아무것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 없음을 그는 잘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완덕의 산을 오르는 가르멜 등반 길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공로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한 행위, 애덕 실천, 희생, 공로를 쌓고 하는 이 모든 것을 행하는 주체는 인간이지만 그 이면에 이 모든 일을 가능케 해주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요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은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습니다. 하느님 앞에 선 인간, 그 모습을 잘 아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겸손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때 인간은 모든 일에 있어서 하느님의 주도권을 인정할 줄 아는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겸손은 하느님의 빛 안에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올바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본래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거나 무슨 대단한 존재인데 그걸 놔두고 저 아래로 내려왔다는 것이 겸손이 아닙니다. 겸손은 하느님 앞에서 가난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본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 내 재능, 근본적으로 내 생명은 내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생명의 근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내게 생명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의 모든 것 그리고 근본적으로 내 삶 자체를 내 것이라고 우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나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고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그래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여러 가지 덕에 대해 설명하면서, 덕 중에 가장 큰 덕은 ‘애덕’이지만, 순서상 다른 모든 덕을 낳게 하는 그래서 덕 중에 가장 먼저 시작하는 덕은 ‘겸손’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모든 덕을 낳아주는 겸손의 덕

 

무엇보다도 ‘겸손’은 모든 덕을 담고 있는 ‘보물 상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을 경외할 줄 알고, 자신이 부족한 줄 알기 때문에 늘 지혜를 찾아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는 하느님과 사람을 사랑하려는 진실한 사랑이 깃듭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진심으로 신뢰할 줄 알게 됩니다. 또한, 우리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이 아니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줄 알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 모든 사람 또한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애착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영혼 구원과 세상의 구원을 위해 선용할 줄 압니다.

 

그런데 겸손이라고 하면 우리가 굉장히 높은 존재이거나 많은 것을 가진 부유한 존재인데 그것을 없는 척, 또는 낮은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 있습니다. 그 진리란, 우리는 우리 생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 하느님으로부터 잠시 이승에서 맡겨진 선물이 우리의 생명이라는 것, 우리를 내신 창조주 하느님이 아니시면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는, 온전히 그분께 의존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그래서 ‘겸손’은 하느님이 우리의 창조주시고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이라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의존적 관계성’을 받아들이고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의 빛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올바른 자아인식의 은총도 받게 됩니다. 

 

소화 데레사는 하느님의 빛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보았습니다. 하느님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라는 것을, 그러나 엄마요 아빠인 그 하느님 품에 안길 때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이뤄주실 것임을 성녀는 깊이 확신했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6월 12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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