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종교철학ㅣ사상

종이책 읽기: 사순절에 읽는 토빗이야기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3-23 ㅣ No.99

[김계선 수녀의 종이책 읽기] 사순절에 읽는 토빗이야기


대림절로 시작되고 연중시기로 마감하는 교회의 전례주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사순시기라는 것을 수도원에 들어와서 알았다. 수도원에서 하게 되는 대피정과 더불어 사순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1년의 영적 삶이 풍요로워질 수도 있고 메마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앞서 수도 삶을 살아간 수녀님들은 강조하셨다. 하느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이 이토록 끝 간 데 없고 당신 벗인 우리를 위해 극형을 받고 생명까지 바친 사랑이 세상에 또 어디 있으랴! 우리에게 인장처럼 각인된 그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 우리를 재촉하는 사순절이 다가오고 있다. 잘 살고 싶다.

마침 「사순절에 읽는 토빗이야기」가 우리 곁을 찾아왔다. 이 책에는 재의 수요일부터 매일 토빗기의 한 구절을 읽고 주어진 묵상주제에 따라 묵상하고 성찰과 함께 말씀으로 하루를 사는 여정을 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까지 살아가도록 제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달음에 끝까지 다 읽고 말았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서 드는 느낌은 ‘아, 이대로만 살면 이번 사순절 동안 대단한 영적 성장과 더불어 삶의 변화를 체험하겠구나.’ 하는 거였다.

저자 안드레아 슈바르츠는 사순절을 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통을 목적으로 자신을 혹사하는 기간, 유별나게 거룩해져야 하는 기간이 아니라 부활절을 체득하는 기간이고 더 활기차게 더 생동감 있게 사는 기간 그리고 삶에 끼어든 죽음의 힘을 떨쳐내는 기간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사순절에 읽는 토빗이야기」를 읽기 전에 먼저 토빗기를 읽었다. 이미 여러 차례 읽었지만 마치 그림을 보듯이 선명하고 상세한 설명은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흥미로웠다. 이 토빗기는 날마다 묵상의 단초를 제공하는 기본토대이다. 그날그날 묵상에 앞서 토빗기의 몇 구절이 제시되고 묵상에 대한 해설도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고 가슴을 헤집는 예리한 질문은 내면 깊이 침잠케 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책의 부제가 ‘천사와 함께 걷는 희망의 길’인데, 토빗의 아들 토비야가 라파엘 대천사와의 동행으로 마술처럼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도 이 사순절의 여정을 토비야와 라파엘 대천사와 희망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초대한다. 주님 앞에 서 있는(토빗기 12,12.15) 일곱 대천사 가운데 라파엘 대천사는 토비야와 사라를 위하여 하느님이 파견하셨다. 히브리말로 라파엘은 ‘하느님이 치유하신다.’라는 뜻이다.

어떤 책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영적 순례를 하도록 돕는 책들은 책을 읽는 개개인이 얼마나 치열하게 묵상하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이다. 그래서 진지한 성찰이 수반되는 책읽기가 중요하다. 길을 떠나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재의 수요일에 주어지는 인간의 현 위치에 대한 의미심장한 외침은 “사람아, 너의 삶보다 강한 힘과 능력이 있음을 기억하라. 이 사실을 바라보지 않는 너는 누구인가? 너는 어디에 있는가?” 하고 자문하는 것으로 재의 수요일을 시작하게 한다. 그렇게 시작하여 이 책의 곳곳에는 답을 하지 못하면 넘어가지 못하는 고개처럼 중요한 질문들이 열거되어 있다.

토빗이 포로로 끌려가 유배생활을 하게 된 것을 나와는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 나의 내면, 내가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도 분명 유배의 요소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모나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의 호의를 저버릴 수가 없어서 자신을 바꾸곤 하는데 이럴 때 다른 사람들 때문에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짚어내면서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는 모두 왕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대부분 유배 상황에서 죽는다. 실제로 많은 왕이 그랬던 것처럼.” 왕으로 태어난 고귀한 신분인 것을 알기나 하는지 나에게 질문하면서 전율이 느껴졌다.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곤란한 지경에 처했을 때 그 비참한 상황에서 토빗의 담담함, 객관적인 받아들임, 희망을 잃지 않음,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음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투영해 보도록 인도한다.

모든 것이 실패할 때,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모든 상황이 부정적일 때, 그럴 때도 하느님을 신뢰하는가? 나의 모든 것을 거의 잃었을 때, 그래도 하느님이 계심을 믿는가? 심지어는 참새똥 때문에 눈이 멀어 그의 아내가 모든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을 때 그가 너무 착한 사람이었고 이웃을 위해 온갖 자선을 베풀고 동족을 위해 했던 선행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절망 앞에서도 여전히 하느님은 ‘좋으신 분’이라고 바보처럼 말하는 토빗의 믿음은 한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하고 버림받은 상황에서의 예수님,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는 예수님의 신뢰와 닮아있다. 나는 무엇을 믿는가? 나는 누구를 신뢰하고 믿는가? 당신이 믿고 신뢰하는 것들, 신뢰하는 사람들의 목록에 하느님도 들어있는가?

이번 사순절에는 영적노트를 마련하자. 그래서 이 책이 제시하는 대로 살아보는 거다. 치열하게 묵상하고 치열하게 살면서 삶을 위해 다시 일어서자. 우리를 위해 다시 일어서신 분,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분을 만나러 천사와 함께 희망의 길을 떠나자.

[월간빛, 2012년 3월호,
김계선(에반젤리나 ·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


2,70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