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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묻지마 범죄와 분노: 묻지마 범죄의 발생 현황과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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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7-29 ㅣ No.1252

[경향 돋보기 - ‘묻지마 범죄’와 분노] ‘묻지마 범죄’의 발생 현황과 특징



지마 범죄의 발생 현황

최근 별다른 원인 없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폭행과 살인 등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 사건들이 등장하여 온 국민을 불안하게 했다. 특히 지난 2012년 8월 22일 서울 여의도에서 전 직장 동료와 지나가던 행인을 흉기로 공격한 ‘여의도 칼부림 사건’이 보도된 뒤 이와 유사한 범죄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였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묻지마 범죄의 시초로 보이는 사건은 1982년 발생한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 사건’이다. 그는 경남 의령의 한 시골 마을로 전출된 뒤 여자 친구와의 교제를 반대하는 그녀의 부모를 포함해 마을 주민 90여명에게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해 62명이 사망하고 3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밖에도 1991년 시력이 나쁘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난 뒤 사회에 복수한다며 차량으로 여의도 광장을 질주하여 2명의 사망자와 21명의 부상자를 낸 ‘여의도 차량질주 사건’이 있다. 2008년 생활고에 시달리다 고시원에 불을 지른 뒤 피해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찔러 13명(6명 사망)의 피해자를 낸 ‘논현동 고시원 살인사건’ 등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묻지마 범죄 사건에 속한다.

이들 사건의 공통적인 특징은 치정이나 원한관계 등 특정인을 상대로 보복형(vindictive) 범죄를 저지르는 전통적인 사건과 달리 특정인에 대한 불만으로 촉발되기는 하지만 이에 제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곧, 평소 가지고 있던 사회나 현실에 대한 불만과 혐오 등으로 확대되어 과잉 분노 상태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폭력범죄 사건과 묻지마 범죄가 차별화되는 것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극심한 분노의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묻지마 범죄 사건은 일반 국민에게 누구도 범죄 피해의 예외가 될 수는 없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묻지마 범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됨에 따라 대검찰청에서는 최근 묻지마 범죄의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하였다. 통계에 따르면, 2012년에 발생한 묻지마 범죄 건수는 55건이었으며, 2013년에는 54건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109건 가운데 정신질환의 원인으로 나타난 묻지마 범죄는 45건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묻지마 범죄의 개념과 유형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범죄의 동기가 뚜렷하지 않고 불특정인에게 폭력이 가해지는 경우에 사용된다. 곧, 묻지마 범죄는 개념상 세 가지 요건을 포함한다. 첫째, 범죄의 동기를 알기 어렵거나 뚜렷하지 않다는 것, 둘째 범죄의 대상이 대립관계가 아닌 비면식의 피해자라는 점, 셋째 그를 향한 폭력 행사이다.

묻지마 범죄를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형사정책연구원에서는 2012년에 발생한 묻지마 범죄 사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먼저 묻지마 범죄자는 범죄의 주된 동기와 가해자의 특성에 따라 두 가지, 곧 ‘불만과 분노형’, ‘정신장애형’으로 나눈다.

불만과 분노형에 해당하는 사례로는 자기 처지에 대한 불만으로 범죄를 저질렀거나, 특정한 사람에 대한 불만을 모르는 이에게 표출하거나, 전반적인 사회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는 경우이다. 정신장애형은 정신장애, 음주, 약물 복용과 본드 흡입 등으로 이성적인 상태가 아닌 환상, 망상, 환각 등의 상태에서 폭행을 저지른 경우로 나타난다.


묻지마 범죄자의 유형별 사례

▶ 서울 반포초등학교 흉기난동 사건 :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전반적인 사회에 대한 불만

2012년 8월 아침 가해자가 눈을 떠보니 아버지는 술을 마신 뒤 자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투고 어질러진 집을 정리한 뒤 일하러 나가고, 누나는 등록금 문제로 힘든 소리를 했다.

가해자는 유서를 쓴 다음, 그동안 생각했던 계획을 실행하고자 야전삽과 장난감 권총을 숨긴 채 국회의사당으로 가려고 지하철을 탔다. 그러나 국회의사당은 경비가 삼엄하고 소지품 검사도 할 것 같아 상류층 자제들이 많이 다니는 서울 신반포 지역의 한 초등학교로 목적지를 바꾸게 된다.

오전 11시 50분쯤, 공사 중이던 후문을 통해 초등학교 안으로 잠입한 가해자는 교실에 들어가 학급회의를 진행하던 11세 아이의 얼굴을 야전삽으로 때리고, 교사(여, 40세)를 포함해 총 9명의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했다.

18세 남성인 이 가해자는 어려운 가정형편과 가정폭력, 학업문제 등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왔다. 중학교 때 우울증 증상으로 자살을 시도해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적이 있으며, 이후 두 차례 자살까지 시도하였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학교에서는 학우들에게 무시당해 외톨이로 지냈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자신이 이처럼 비참하게 사는 이유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상류층의 잘못이라고 여기고, 그들을 죽이거나 다치게 한 뒤 자신도 죽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살인을 통해 사회적으로 부각되면 사회가 자신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둘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 서울 종로2가 여성 상습폭행 사건 : 만성적 분노 · 불만에 따른 상습폭행

2012년 3월 가해자는 서울 종로2가 건널목에서 손수레를 끌고가던 중 마침 그곳을 지나는 여성(42세)이 자신을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 대뜸 욕을 한 뒤, 가지고 있던 못이 박힌 대걸레 자루로 그 여자의 뒷머리를 내리쳐 상해를 가했다. 연이어 그곳을 지나던 여성(23세)이 자신을 가로막는다고 느껴 같은 방법으로 얼굴을 내리쳤다. 가해자는 피해자 두 명 가운데 한 명에 대한 상해만 인정하였고, 이런 행동을 한 이유를 “사람 냄새를 맡고 똥개처럼 따라오는 여자”였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가해자는 48세 남성으로 직업이 없으며, 5세 때 아버지가 사망한 뒤 어머니는 가해자와 가해자의 누나를 남겨두고 재가하였다. 초등학교 중퇴로 군대는 면제되었고, 누나와는 연락되지 않는 상태에서 대로의 지하상가에서 노숙생활을 하는 가운데 평소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었다. 가해자는 돈이 없어 자신과 살 여자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여자들이 다 싫다고 말했다.

▶ ○○동 길거리 살인미수 사건 : 환청으로 말미암은 폭행

사건 무렵, 가해자는 하느님에게서 “모든 사람이 항일운동을 하는데 너도 해야 한다. 일본 놈들에게 협조하는 나쁜 앞잡이들을 죽여야 한다.”는 환청을 듣는다. 이에 환청이 지목하는 자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집 근처 슈퍼에서 과도를 산다. 마침 18세 남성이 지나갔는데 “저놈이 일본에 여자들을 밀수출하고, 너희 식구를 비방한다. 항일을 위해 칼로 찔러 죽여라.”라는 환청이 들리자, 그를 따라가 골목길에서 살해하려고 시도한다.

39세 남성인 이 가해자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데, 어릴 적에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자주 폭력을 행사했다. 가해자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읽기와 쓰기를 못했는데, 날마다 술을 마시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의처증에 지친 어머니는 자신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는 남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웃는다며 창문을 모두 막는 등 기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20세에 조현병 진단을 받고 입원치료와 약물치료를 받았으나, 부작용으로 두통이 심해 약 복용을 자의적으로 중단한다. 약을 먹지 않으면 타인이나 자신에게 해를 입혀야 하는 내용의 환청이 심해져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하였지만, 입원비와 약값을 충당하기 어려워 지속적인 치료를 받지 못한다.

치료와 약 부작용 경험, 약 복용 중단, 증세 악화를 반복하며 가해자의 사고는 만성적으로 와해되며, 환청과 망상은 더 심각하게 고착된다. 명령 환청에 따라 손목을 긋는 방법으로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였으며, 다른 사람을 폭행한 전력도 두 번이나 있다.


묻지마 범죄자의 일반적인 특성

2013년 형사정책연구원의 연구를 통해 나타난 묻지마 범죄 가해자의 인구 사회학적 특징을 보면, 평균 연령은 약 39세로 30대와 40대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그리고 가해자의 성별은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남성이었다.

묻지마 범죄 가해자의 주거지역으로는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고, 주거와 거주 형태도 취약하여 고정된 주거가 없는 사람이 20% 정도였으며, 절반은 동거인 없이 혼자 살고 있었다.

경제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로 직업 유무를 살펴보면, 범행 당시 직업이 없는 경우가 전체의 75%를 차지하였다. 직업이 있더라도 대부분 비정규직이나 일용직 종사자들이었다. 소득이 전혀 없는 가해자가 73%로 대다수였으며, 소득이 있는 경우도 모두 월평균 100만 원에서 200만 원 미만이었다.

학력 수준은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 졸업 순으로 나타났으며, 가해자 가운데 75%가 미혼이었다.

전체의 75%가 범죄 경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과가 있는 가해자들 가운데 92%는 폭력과 상해 때문에 유죄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가해자들의 폭력범죄에 대한 재범률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또 일부 가해자는 지난날에도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경력이 있었다.

묻지마 범죄를 이해하려면 범행 특성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데, 살인과 상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절반 이상의 가해자가 범행 당시 음주와 약물, 본드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범행 동기로는 환각이나 망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례가 26.5%로 가장 많았으며, 재미나 자기과시, 이유 없음이 25%, 분풀이와 스트레스 해소가 23.5%였으며, 사회 불만과 상대방의 의도를 잘못 해석한 것도 각각 8.8%를 차지하였다.

범행 당시 분노의 감정을 느낀 가해자가 대다수를 차지하였으며, 이 밖에 초조, 불안, 우울감 등의 정서가 동반된 것으로 나타났다.

묻지마 범죄자의 어린 시절은 사회화 과정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부모와의 경험이 안정적이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형사정책연구원의 연구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자료상 부모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부모가 둘 다 있는 경우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어머니만 있는 경우는 약 18.8%, 부모 모두 없는 경우는 약 16.7%였고, 아버지만 있는 경우도 약 4%를 차지하였다. 또한 부모와의 관계가 양호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는 가해자가 절반을 차지하였다.

앞서 대검찰청의 자료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묻지마 범죄자의 상당수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형사정책연구원의 연구에서도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경험이 있는 가해자가 58.3%로,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경험이 없는 가해자 33.3%를 훨씬 웃돌았다.

묻지마 범죄자의 일상생활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혼자서 밖을 돌아다니며 하루를 보내거나 술이나 마약에 탐닉하는 경우, 하루 대부분을 집안에서 머물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 친구들과 어울려 돌아다니는 경우, 게임이나 도박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학교나 직장생활 등을 통해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고 응답한 가해자는 극소수에 불과해 적절한 사회활동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묻지마 범죄자의 상당수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또 일부는 전과가 있기 때문에 병원이나 교도소 등의 기관에서 초기에 적절히 개입했다면 이들의 범죄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묻지마 범죄자는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고, 범죄 동기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동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대다수가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사회화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이들을 양지로 불러내 적절한 사회적 접촉을 통해 비상식적인 사고 체계를 현실적 규범으로 검증해 줄 기회가 부여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복지시설, 병원 등의 의료시설, 교도소나 보호관찰소 등의 형사사법기관은 범죄적 성향이 심화되기 전에 지속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이들의 심성을 개선하고 사회에서 올바르게 생활할 수 있는 사회적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 윤정숙 -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인간발달과 심리학 석사학위, 브랜다이스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부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범죄자의 특성과 처우 방안에 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대표적으로는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방안 연구’(2013)가 있다.

[경향잡지, 2015년 7월호, 윤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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