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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52: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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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6-04 ㅣ No.806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52)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 ④


자비로우신 하느님 향한 신뢰 · 의탁의 길 제시

 

 

- 소화 데레사는 얀센주의의 엄격한 하느님 대신 자비의 하느님을 전했다. 그림은 렘브란트 작 ‘돌아온 탕자’.

 

 

일상에서 시작되는 영성

 

소화 데레사 성녀의 영성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분의 영성이 어떤 신비 체험이나 어려운 신학적인 해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소화 데레사 자서전을 읽으면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아마도 이럴 것입니다. ‘참 쉽고 평이하며 일상적인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소화 데레사의 「자서전」을 읽지만, 어떤 특별한 기적이나 거창한 학문적인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아서 처음에는 좀 실망하고 지루해 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분의 가르침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영성’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진 어떤 초자연적인 신비 체험이나 신비 현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성’은 구체적인 삶입니다. 그것은 신비스럽고 추상적인 그 무엇인가를 두루뭉술한 어휘에 담아서 표현하는 게 아닙니다. 영성은 실질적인 것이며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부터 출발한 삶의 이야기이자 역사인 것입니다. 

 

그분의 「자서전」을 통해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그분의 영성은 어린 시절부터 생의 마지막까지 한 여인이 어떻게 가족을 통해 예수님을 알고 사랑했으며 어떻게 일상을 통해 그분과의 관계를 성숙시켜 갔는가 그리고 그것을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해서 표현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성녀는 자신이 몸담고 살았던 가정에서 어떻게 부모님, 자매들과 사랑을 나눴으며 이를 통해 어떻게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했는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한 후로는 공동체에서 함께 사는 장상, 동료, 선후배 수녀들과의 구체적인 삶 안에서 어떻게 그들을 주님 안에서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렇게 진실로 사랑하기 위해 어떻게 희생의 삶을 살았는가 하는 점들에 대해 전해 주고 있습니다. 영성은 구체적인 삶이자 일상이라는 것을 성녀는 웅변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얀센주의의 엄격한 하느님

 

또한, 소화 데레사의 영성을 떠받치는 밑그림처럼 드러나고 있는 요소가 있습니다. 성녀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도록 초대한다는 점입니다. 

 

교회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17세기 이후 교회를 지배했던 이단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특히 프랑스 교회를 지배했던 이단으로서 네덜란드 출신의 얀센이라는 주교이자 신학자에 의해 시작된 이후, 그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문제가 됐던 사조를 말합니다. 

 

이 사조는 프랑스로 흘러 들어간 이후 많은 주교님과 사제들에 의해 받아들여져 큰 세력을 얻었습니다. 더욱이 이 사조는 잘못된 교리를 제재하려 했던 교황청에 맞서 소위 프랑스 교회를 로마 교회로부터 분리하려는 ‘갈리아주의’와 합세하는 가운데 17세기의 프랑스 교회를 두 동강 냈던 엄청난 사건의 당사자였습니다. 결국, 이 이단은 여러 세대에 걸쳐 교회 교도권으로부터 단죄를 받으며 공식적으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이 오랜 논란의 여정 동안 얀센주의는 이미 프랑스 교회의 저변에 확대되어 많은 영성가와 사제, 신자들의 구체적 삶 속으로 파고들어 19세기 말까지 신자들의 실제 신앙 생활에 흔적처럼 남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 얀센주의가 표방하는 기본적인 방향은, 인간 본성이 원죄로 인해 완전히 부패해서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절대적인 하느님의 은총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하느님은 엄격한 심판관으로서 인간의 아주 작은 행실 하나하나까지 윤리적인 관점에서 엄격하게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되기 위해서는 그런 까다롭기 그지없는 심판관 눈에 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 불에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소화 데레사의 자비로운 하느님

 

하느님을 정의의 심판관으로만 보게 하는 이런 얀센주의의 경향은 프랑스 교회 안에 널리 퍼져, 소화 데레사가 살던 19세기 말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하느님이 자비이며 사랑이시라고 하는 측면은 많이 잊혀 가던 상황이 시대적인 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프랑스 교회에는 영혼 구원을 우선적인 목적으로 하는 고행의 영성이 주류를 이루었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공경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예수 성심을 공경하는 신심도 사실은 그 동기가 죄를 기워 갚는다는 속죄의 측면이 강했습니다. 이런 고행적인 특징은 당시 수도 생활에서도 상당히 강조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화 데레사가 살았던 리지외 가르멜 수녀원에서도 편태나 고행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 기른 쐐기풀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소화 데레사가 제시한 작은 길인 ‘영적 어린이의 길’은 신앙생활을 엄격한 윤리 생활로 축소시켜버린 얀센주의, 그 이단이 강요했던 엄격한 심판관이라고 하는 부정적인 하느님의 이미지를 극복하게 해주었습니다. 그 대신 ‘자비로우신 하느님’이라고 하는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향한 신뢰와 의탁의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영적 어린이의 영성은 하느님과의 사랑의 일치를 통해 나아갈 수 있는 성성의 길을 모든 사람에게 열어주었습니다. ‘영적 어린이의 영성’으로 불리는 이 작은 길은, 예수께서 성령을 받아 기쁨에 넘쳐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나라의 신비를 지혜롭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는 자비로우신 성부의 뜻에 합당한 길이라고 하겠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6월 5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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