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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한일관계: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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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8-16 ㅣ No.228

[경향 돋보기 - 가깝고도 먼 한일관계]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한 제언


‘한류(韓流)’도 독도를 지나면 ‘한류(寒流)’가 된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즈음이다.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잇따른 천황 사죄 요구 발언 이후 일본의 반응이 아주 차갑게 변하였다.

그러한 여론의 흐름을 배경으로 아베 신조를 내세운 자민당은 국수적인 주장을 앞세워 선거에서 압승하였으며, 전반적인 우경화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당연히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의 관계도 파탄적인 상태에 이르렀다. 동북아시아의 세 나라에서 모두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지만 교착상태를 타개할 돌파구를 찾기가 간단하지 않은 상황이다.


위기의 한일관계와 역사인식

지금의 일본은 제삼자가 보기에는 비정상적이고 수준 이하의 언설과 행동들이 횡행하는 상황에 있다. 올해 들어 릴레이식으로 이어졌던 아베 일본 수상,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 등 일본 정치인들의 발언은 너무 실망스럽다. 이른바 망언제조기로 불리는 이시하라 신타로 일본유신회 공동대표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정치인의 역사인식의 천박성이 이 정도인가 싶어 놀랍기까지 하다. 또 그들의 인식 속에는 한국인에 대한 전통적 멸시관이 그대로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0여 년 동안 한일 양국민의 상호인식을 고찰하고, 역사적 연원에 대한 분석을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자 계속해서 노력해 온 필자를 포함한 양국 지식인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허망하기까지 하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발언과 행태를 보면서 일본의 국력과 국가적 품격의 하락세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일본은 오랫동안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서 지위를 유지해 왔으면서도 ‘경제동물’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리더십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아시아의 이웃나라들로부터 경원시당하였으며, 존경은커녕 친구로서의 진정성도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전후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천황제라는 일본 특유의 제도가 맞물려 있다. 따라서 간단히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지니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신생 일본’은 아시아인들에 대한 속죄로부터 출발하여야 했지만 그 과정이 생략되었다.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뒤 일본은 미국에게 항복의 뜻을 표하면서도, 침략을 받았던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는 죄책감을 나타내지 않았다. 패전 직후 미국에 의한 타율적 개혁, 냉전체제로의 돌입이라는 상황이 일본의 주체적인 역사인식과 자기성찰을 불분명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실상을 말한다면 일본은 미국의 논리에 편리하게 순응하면서 아시아에 대한 책임의식에서 도망쳤다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본래 탈아론적 아시아관과 대동아공영권론 같은 사고방식에서는 아시아에 대해 사죄한다는 발상이 나올 수 없다. 심지어 한국에 대해서는 패전의식도 없었다.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에 지면서 한반도를 ‘상실’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에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책임 문제가 빠지게 된 것은 당연하기도 하다.

전후 일본의 보수파들은 꾸준히 ‘패전’과 침략전쟁 자체를 부인하여 왔다. 최근 일본 국회에서 아베 수상이 침략을 부인하는 발언을 하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특히 전후세대들에게는 식민지지배와 같은 과거사는 자신과 상관없는 문제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다. 이들에게는 ‘전전(戰前)세대’들이 지녔던 일말의 원죄의식마저 거의 사라졌다. 이는 전후 일본의 역사교육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제94주년 3·1절 기념사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다.”며 일본의 적극적인 변화와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했다. 또 “일본이 우리와 동반자가 되어 21세기를 함께 이끌어가려면 역사를 올바르게 직시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국 관계 회복의 전제조건으로 일본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내세우며, 극우적 성향을 노골화하고 있는 아베 정권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일본은 침략전쟁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함께 신세대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고, 가해자의식의 원점에서 새롭게 출발해야만 아시아와 진정한 화해가 가능할 것이다.


일본은 탈아론으로 회귀하는가?

현재 일본은 아베 정권의 우익적 노선에 따라 한국, 중국과 갈등이 심화되면서 외교적으로 고립되자, 정치권을 비롯한 지식인사회 일부에서 ‘탈아론(脫亞論)’을 회고하면서 그 노선으로 되돌아가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탈아론이란 일본 근대의 사상가인 후쿠자와 유키치가 1884년 그가 지원했던 김옥균 등 개화파의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이듬해 1월 자신이 운영하던 신문에서 제기한 논설이다.

후쿠자와는 여기서 “일본은 조선과 중국의 개명을 기다려 함께 아시아를 흥하게 할 여유가 없다. 일본은 냉정한 마음으로 아시아의 나쁜 친구를 사절하고 서양의 문명국들과 진퇴를 같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시아를 떠나 유럽에 들어간다.’는 이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은 일본 근대화의 방향과 일본인의 의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시아를 경시하면서 서양을 숭배하는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일본에는 탈아론적 인식이 여전히 남아있다. 숭배의 대상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최근 종군위안부 발언으로 국제적인 비판에 직면하였을 때 하시모토나 아베가 보인 태도는 그들의 일그러진 인식을 잘 보여준다.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과 아베 수상은 위안부 발언에 대해 해명과 함께 사과를 하였는데, 피해 당사자인 동아시아 국민이 아니라 미국에게 사과하였다. 탈아론에 입각한 아시아 멸시관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탈아론은 이처럼 일본인들의 의식에 잠재되어 있다. 일본의 역사를 돌아보면 독특한 신국의식(神國意識)속에서 폐쇄적이고 내향적인 고립주의로 나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탈아론적 인식을 가질수록 아시아에서 일본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으며, 가장 큰 피해자는 일본 자신이 될 것임을 일본인들은 알아야 한다.

지금의 한국과 중국은 당시와 다르며, 더 이상 일본의 ‘나쁜 친구(惡友)’ 처지가 아니다. 일본의 위상도 그때와는 다르다. 현재 일본에서 탈아론적 사고방식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동향이 있다면 실로 시대착오적인 인식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출범한 박근혜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일본의 아베 수상을 만나지 않고 있다. 보편적 도덕기준과 글로벌 스탠더드에 훨씬 못 미치는 일본은 현재 국제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정하고 반성해야 상대방의 이해를 얻는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갈등은 뿌리 깊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일과성 현상이 아니다. 갈등의 바닥에는 상호인식의 간극이 있고, 역사인식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차가 있다. 그러나 양국은 그야말로 숙명적 관계이며, 공동이익을 위해 협력해야 할 일이 많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지고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하며, 현재의 상황에 냉정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세계화시대의 21세기에 한일 양국은 평등한 선린관계를 유지하면서 우호적인 상호이해를 회복해야 하는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이와 같은 새로운 구조의 형성을 위해서는 한일 양국민의 새로운 인식과 자세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결자해지라는 관점에서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깨끗한 청산과 확고한 입장을 표명하여야 한다. 이것은 21세기를 향한 일본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도, 일본인의 인간으로서의 해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일본의 경제적인 규모에 걸맞은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을 위해서도 필요하며, 아시아인들끼리의 성숙한 만남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사죄할수록 관계가 더 나빠지고, 잘못을 인정하면 호국영령을 모독하게 된다는 발상은 너무나 소아적인 인식이다. 엄연히 존재하였던 사실을 인정하지 않음에서 오는 멍에를 언제까지 지고 갈 것인가? 명확한 인정과 반성 위에 상대방의 이해를 얻어내는 것이 훨씬 떳떳하고 성숙한 태도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1945년의 해방은 식민지 국민뿐만 아니라 일본 민중들에게도 전쟁과 군국주의라는 폭력적 지배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일본의 야스쿠니신사에는 전쟁에 참여한 영령은 물론 전범까지 포함하여 모셔져 있지만, 전쟁에 반대하다 순국한 인물은 제외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관점을 이어간다면 1945년의 패전은 언제까지나 패배일 뿐이다.


‘애매한 일본인’, 진정한 국제화 정신을 갖춰라

아시아인들과 진정한 우호를 나누려면 일본은 진정한 국제화의 정신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국제화가 제창되고 있지만 아직 충분히 내면화되지는 못한 것 같다. 오히려 최근 국수주의가 강조되는 역행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진정한 국제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독특한 신국사상(神國思想)과 배타적 선민의식의 틀을 깨트려야 할 것이다. 보편적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세계관과 이념을 가지고 국제사회에 나서야 한다.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않으면 결코 국제인, 국제국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신도(神道)라는 민족종교에서 벗어나 보편사상으로 환골탈태할 수는 없을까? 일본의 지식인과 사상계에 간절히 바라는 화두이다.

이 점과 관련해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 씨가 주장한 ‘주체(主體)와 공생(共生)’이라는 이야기는 많은 시사를 준다. 그는 주체의식과 책임의식이 부족한 일본인에 대해 ‘애매한 일본인’이라고 비판하면서, 우선 개인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자아실현의 확대과정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공생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나아가, 개인의 주체성을 회복해야만 공생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실로 엄중하면서도 개방된 사고방식이다. 개체와 전체, 특수성과 보편성의 동태적 조화이며, 민족과 문화의 다원성과 상대성을 인정하면서도 보편성의 추구와 수렴을 놓치지 않는 균형 잡힌 자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하여

동북아시아 국가 간의 역사문제에서 한국은 일본과의 갈등만이 아니라 중국과의 마찰 또한 상당히 심각하다. 유럽의 경우, 역사상 수많은 전쟁을 치르고도 현재 하나의 공동체로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동북아시아에서는 이러한 성숙한 관계가 왜 형성되지 못할까? 동북아시아에서 성숙한 세계인으로서의 만남은 불가능한가?

새로운 국면을 창출하려면 누군가가 앞장서서 치고 나가야 한다. 동북아시아에서는 한국이 그 역할을 가장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반도는 동북아시아가 평화의 시기일 때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허브로서의 기능을 하면서 번영을 누렸다. 반면에, 전쟁의 시기에는 항상 대륙과 해양 세력이 충돌하는 전장으로서 가장 큰 피해를 보았다.

따라서 한반도는 어느 누구보다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필요로 하며, 그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또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충돌을 조정하며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패권주의라는 오해를 받지 않고 중도적 입장에서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동북아시아의 동질성과 공통의 비전을 제시하여 양국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 갈등 문제에 관해서는 일본, 중국을 대상으로 한 양국 관계적 인식에서 벗어나 세계문명사에 기반을 둔 보편적인 관점과 동아시아 지역사를 조망하는 이론을 확보해야 한다. 그 기반 위에서 소통의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더욱 근본적인 해결책은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보다 더 세계화되고, 한국인이 성숙한 세계시민이 되는 것이다.

2,500년 전 공자는 군자가 지녀야 할 태도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을 제시하였다. 군자란 천명을 알고 따르는 사람인데 요즈음 말로 하면 ‘세계인’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듯하다. 한일관계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신시대의 평화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길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동북아시아 세 나라의 국민 모두가 진정한 국제화를 실천하는 바탕 위에서 ‘성숙한 세계인’으로 만나는 것이다.

* 하우봉 - 전북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한일관계사학회장을 지냈다. 저서로 「조선시대 한국인의 일본 인식」, 「한국과 일본-상호인식의 역사와 미래」, 「조선후기 실학자의 일본관 연구」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3년 8월호, 하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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