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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구역반장 월례연수: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파리 협정과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요소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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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9-02 ㅣ No.1882

[구역반장 월례연수]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파리 협정’과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요소 비교

 

 

세상의 대응 노력

 

우리 신앙인은 신비적인 삶을 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기후위기-생태위기는 영성적 문제임과 동시에 물질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세상의 대응이 어떠한지를 알고 함께 할 때 현재 문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파리협정’을 중심으로 세상의 대응 노력을 간단하게 짚어보겠습니다.

 

1.1. ‘파리협정’까지의 역사

 

현재 기후위기를 다루는 가장 중요한 기구로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1988년 창설)와 ‘UNFCCC’(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협약-1994년 창설)가 있습니다. 특히 UNFCCC는 국제사회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기본적인 틀과 논의의 장, 기본 목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UNFCCC는 매년 말에 나라마다 돌아가면서 가입국들이 다 같이 모여 ‘COP’(당사국 총회)라는 회의를 합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기후 변화 협약에 따라 맺은 ‘교토의정서’도 COP3(제3차 당사국 총회)의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교토의정서는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의정서의 최종적인 실패로 인해 한시가 급한 기후위기 대응에서 무려 10년이 넘는 아까운 시간을 놓쳤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파리협정’이 나왔습니다.

 

1.2. 파리협정(Paris Agreement)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COP21에서 정해진 회의 기간을 연장하면서까지 갑론을박한 끝에 ‘파리협정’을 체결했습니다. 파리협정은 지난 체제인 ‘교토의정서’를 반면교사 삼기도 했습니다. 현재 파리협정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전 지구적으로 작동 중인 유일한 체제입니다. 따라서 이 협정의 이해와 준수가 우리나라는 물론, 인류 문명, 그리고 신앙인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1.2.1.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 CBDR)

 

교토의정서는 산업선진국만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지키도록 규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산업선진국은 여러 이유를 대며 자신들만 감축의무를 지는 것에 반대하며 의정서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가 입장에서는 지금의 기후위기는 먼저 산업화를 한창 하면서 온실가스를 멋대로 뿜어낸 산업선진국의 탓이 훨씬 크기 때문에 자신들은 배출의무를 질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 그런 가운데 상황은 계속 악화하여 2015년에 이르러서야 이런 식으로 갈라져서 서로에게 탓만 돌려서는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그래서 모든 국가가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을 지기로 했습니다. 즉 모든 국가는 공통적으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 책임의 경중에는 역사적으로나 현 상황으로 봤을 때 차이가 있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따라서 산업선진국이 좀 더 큰 책임을 지되, 비산업선진국들도 책임을 지고 기후위기 대응에 모두가 함께해야 한다는 의식을 공유하고,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1.2.2. 책임감 있는 자발적 참여

 

교토의정서가 실패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량을 중앙 기구에서 배정 및 하달했던 데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파리협정에서는 국가별 감축의무량을 배정 및 하달하지 않고, 각 국가가 감축 목표량을 자발적으로 정해서 제출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덕분에 각 국가가 협정을 반대할 명분이 대거 사라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가 참여하여 협정은 바로 다음 해에 발효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여전히 각 국가는 감축에 따른 피해를 덜 보고 싶기 때문에 목표량을 충분하지 않게 제출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과정상의 의무를 지우고 있습니다. 먼저 국가마다 감축 목표(NDC)를 5년마다 갱신해야 하는데, 이전 목표보다는 무조건 더 큰 목표를 제시해야 합니다(진전원칙). 또한 개별 국가가 자신들이 낸 목표대로 이행준수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을 5년마다 전 지구적으로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이처럼 과정상의 의무를 부여하여 책임감 있는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1.2.3.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SD)

 

파리협정의 주요 원칙으로 ‘지속가능한 발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원칙은 파리협정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1980년대에 이미 등장하였습니다. 인류문명은 산업화 이후 계속해서 발전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전 지구적으로 성장의 한계가 올 수밖에 없음이, 그 후로는 급속도로 퇴보할 수 있다는 것이 1970년대 초반에 이미 과학적으로 예견됐습니다. 따라서 도래할 위기를 극복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하면 인류문명이 퇴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여 나온 개념이 ‘지속가능한 발전’입니다. 그런데 지속가능한 발전이 단순히 더 많은 부를 창출하고, 더 많은 건물, 더 많은 공산품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구의 제한된 재생가능한 자원을 재생의 한계 내에서 이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재생가능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기술도 물론 필요하지만, 지구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엄밀한 생태의식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함께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회칙 「찬미받으소서」와의 비교

 

기후위기-생태위기 대응 면에서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중요 요소로 크게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1. 공동체성

 

먼저 ‘공동체성’입니다. 우리 인간과 다른 피조물은 분리된 존재가 아닙니다. 한 분이신 창조주 하느님을 통해 연결되어 있고, 주님과 함께 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은 연결돼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발전을 하더라도 같은 인간은 물론, 동료 피조물, 생태계 여건을 고려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하며 어떻게 함께 어울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2.1.1. 지속가능한 발전 관련

 

그런 면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은 신앙 차원에서도 원론적으로 동의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지속가능성’이 적합하지 않은 경우에도 미사여구로 남발되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예를 들어, 생태계에 여전히 큰 부담을 주고 있는 기업이 그에 비하면 훨씬 작은 일회성 캠페인을 펼치면서 마치 자신들이 지속가능한 발전에 일조하며 생태계를 위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러한 행태를 두고 ‘그린워싱’(Green Washing)이라고 합니다. 신앙 관점에서 그린워싱처럼 거짓으로 꾸민 지속가능성은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위선, 거짓의 일종이기 때문에 분명히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2.1.2.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 & 책임감 있는 자발적 참여 관련

 

생태위기는 우리 인류공동체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어느 한 국가만, 한 민족만 잘 살겠다고 대응 전선에서 빠져서는 안 됩니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함께 뜻을 나누고 일치하며 연대하고 힘을 모으는 것은 신앙적인 면에서도 참으로 좋은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서로의 여건을 이해하고, 상황이 가능한 쪽에서는 더 큰 노력을 하여 어려운 공동체 몫을 대신 해주고, 때로는 직접 도와주는 것도 당연히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개발 도상국과 저개발국가에 지원하기로 한 선진국들의 기금은 약속에 비해 턱없이 모자랍니다. 또한 각 국가가 제출한 감축목표량도 과학적으로 필요한 정도에 비하면 아직 많이 모자랍니다. 뜻을 같이하며 힘을 모으기 위한 장을 마련하기는 했지만, 거기에 참여할 당사자들이 아직 진심으로 임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런 면에서 전 세계가, 또 우리 스스로가 진정 이웃과 동료 피조물을 나와 한 공동체로 생각하고 있는지 강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2.2. 통합생태론

 

‘통합생태론’은 우리가 사회와 삶의 여러 부문, 여러 상황에서 생태적인 부분까지 반드시 포함한 통합적인 의식과 양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회칙에서는 직접 그 부문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환경 · 경제 · 사회 · 문화 · 일상생활 부문입니다. 지금까지 인류문명이 이뤄온 부문들 전반에 걸쳐서 생태적으로도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면에서 기후위기-생태위기를 기술과학으로만, 돈으로만 막거나 무마하려는 일부 유혹과 시도들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러한 시도와 자세들은 여전히 생태계, 동료 피조물들을 나와 분리시키고 조작적으로 바라보게 만들며, 지금 내가 누리는 편익을 놓지 않으려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편협함과 이기적인 마음 가운데 주님의 복음, 신앙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따라서 신앙인들은 나만이 아닌, 온 인류, 생태계가 통합적으로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온전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또 기후위기-생태위기를 막기 위한 노력면에서도 기술적 · 경제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부문에 걸친 문제라는 것을 직시하며, 기꺼이 절제하며 살고, 함께 대화를 나누고 뜻을 모아 노력해야 합니다.

 

 

결론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유일한 체제이자 전 세계 대응 노력의 구심점인 ‘파리협정’은 원칙적으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비롯한 우리 신앙 관점에서 어긋나지 않습니다. 다만, 파리협정의 실제 이행에서는 적지 않은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들은 파리협정의 목표가 이뤄지는 데 기도는 물론, 힘과 뜻을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정부와 기업, 사회, 개인 차원에서까지도 파리협정 이행준수를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하도록 응원하고 감시하고 비판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역시 기후위기-생태위기 대응에 진심을 다하도록 해야 합니다.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mKMCZJQx2HU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2년 9월호, 오형훈 미카엘 신부(구파발성당 보좌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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