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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예루살렘의 치릴로: 성삼 교리 설정에 큰 공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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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69

[교부들의 가르침] 예루살렘의 치릴로


성삼 교리 설정에 큰 공헌

 

 

예루살렘의 치릴로(315~387, Cyrillus Hierosolymitanus)는 성인이며, 주교이며 교회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동방교회 교부이다.

 

315년경 예루살렘에서 출생한 치릴로의 청소년기에 대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분명한 것은 349년 막시모(Maximus)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의 주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체사레아의 극단적 아리안파 소속 아카치오(Accacius) 주교로부터 주교품을 받았기 때문에 이것이 화근이 되어 오랫동안 아리안파 또는 반(半)아리안파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는 후기학자들의 증언과 치릴로 자신의 저술과 생활로 해명되고 풀리게 되었다. 사실 그는 아카치오와는 그리스도론에 있어서 정반대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세 번씩이나(357년, 360년, 367~378년) 주교직에서 해임되고 유배를 당하기도 하였다. 357년에 있었던 유배는 359년 셀류키아에서 개최된 주교회의에서 철회되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그가 유배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있을 때인 362년 황제 율리아노는 예루살렘 대성전을 재건축하려고 시도하였다.

 

세번째 해임과 유배는 황제 발렌스에 의해 367년에 있었는데 378년까지 무려 11년간이나 지속되었다. 381년에 개최되었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치릴로도 참석하였다. 치릴로는 387년 3월 18일에 별세하였고, 동방교회에서는 이날을 축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그의 작품 중에는 24편의 강론으로 구성되어있는 "예비신자 교리"가 가장 유명하다. 그는 예루살렘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세운 주님의 성묘 성당 안에서 348년 이 강론들을 했었다. 한 청취자가 이 강론들을 듣고 기록으로 남기게 되어 생겨난 이 작품은 예비신자들과 새 영세자들을 위한 일종의 신앙과 생활의 지침서로 교의 및 전례적으로 중요한 문헌이었다. 첫 번째 강론은 서론 안내말씀이고, 전반부 18편의 강론은 사순절 기간동안 예비신자들을 위해 한 것이고, 후반의 5편 강론들은 부활주간에 한 것으로써 새 영세자들을 위한 것이다. 처음 다섯 번째 강론까지는 죄, 회개 그리고 믿음에 대해서, 그리고 6번째부터 18번째까지는 예루살렘교회에서 세례성사 때에 신앙을 고백하던 신경의 내용을 설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루살렘교회의 세례성사 때 바치던 신경(신앙고백문)은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의 신경과 아주 비슷하다. 치릴로는 세례 때 신자들이 고백하는 신경안에 집약된 10가지 신앙 진리를 단순하지만 빠짐없이 설명해준다. 아버지이신 하느님, 그분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 강생, 십자가, 부활, 승천, 세상의 종말, 성령, 육신의 부활, 교회 그리고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설명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마지막 5편의 짧은 강론들로서, 부활대축일에 모두 함께 거행되는 성사들에 대한 강론들이다. 19~20편은 세례성사, 21편은 견진성사, 22편은 성체성사, 23편은 신자들의 미사참례에 대한 강론들이다. 따라서 이 강론들을 일컬어 "신비교육"이라고 부른다. 이 강의를 통해 치릴로는 전례예식 하나하나에 대하여 그것이 왜 생겼고, 또 무슨 뜻이 있는 것인지를 신구약성서에 기초를 두고 설명한다. 그는 구약성서를 신약 사건의 예형으로 해석한다. 예를 들면 홍해를 건넌 사건은 세례성사의 예형이요, 만나는 성체성사의 예형이라고 말한다. 이 강의는 고대 그리스도교가 남겨 준 가장 소중한 문헌들 가운데 하나로서, 치릴로 덕분에 그 시대 예루살렘 교회 전례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자료를 얻게 되었고, 신비교육의 신학뿐 아니라 세례 교리교육에 관한 증거자료를 지니게 되었다.

 

치릴로의 작품으로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중풍병자에 관한 강론과 또한 4편의 강론단편들, 그리고 황제 콘스탄시우스에게 보낸 서간이 있는데, 이 서간 안에서 치릴로는 예루살렘 십자가의 환시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치릴로는 'HOMOOUSIOS'(성자께서 성부와 동질이심을 나타내는 용어)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피하고 사용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에 따르면 이 단어가 성서에 들어있지 않으며 사벨리아니즘 이단을 편드는 인상을 준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부와 성자의 본체적 일치 내지 동질성을 가르치는 니체아 공의회의 정신과 믿음에 따라 단호하게 아리안파의 양자설(養子說)과 모든 주장들을 배척했으며 성자를 일컬어 "참된 하느님", "하느님께로부터 나신 하느님"이라고 고백하였다(예비신자교리 11,14. 18). 그는 또한 성부와 성자와의 일치를 성령께 연결시켜 성삼교리의 설정에 큰 공헌을 하였다.

 

치릴로는 성체성사의 교리에 관해서 성체성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참된 현존과 성체성사 안에서 빵이 주님의 몸으로 실체변화(Transsubstantiatio)하는 것을 이전의 모든 교부들보다 명확하게 가르쳤다. 그리고 미사 중에 제물위에 성령을 내려오시도록 청하는 기도와 죽은 사람을 위한 기도가 들어있음을 증언한다(신비교육 5,7. 9).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교부가 성령에 대하여 가르치신 말씀을 한마디 들어보자.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 이것은 마음이 준비되어 있는 이에게만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새로운 종류의 생명수입니다. 그런데 왜 여기서 성령의 은총을 물이라고 합니까? 이는 모든 것이 물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물은 풀을 자라게 하고 생명체를 만들어 줍니다. 물은 비로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물은 언제나 같은 형태로 내려오지만 그 효과는 다양합니다. 그것은 팔마 나무에 미치는 효과가 다르고 포도나무에 미치는 효과가 달라도 모든 것에 모든 것이 됩니다. 물 그 자체는 항상 같은 것이고 변함이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는 아무 변함이 없이 내립니다. 그러나 물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물의 성질에 적응하여 각각 적합한 것으로 됩니다.

 

성령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이시고 한 본성이시며 나뉨이 없으시지만 각자에게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은총을 나누어주십니다. 마른 나무가 물을 받으면 새 싹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죄에 빠진 영혼도 회개함으로써 성령의 은총을 받으면 정의의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은 비록 본성상 하나이지만 하느님의 뜻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양한 효과를 일으킵니다.

 

성령께서는 지혜를 주시기 위해 사람의 입을 사용하시고 예언의 은혜로 다른 이의 이해력을 비추어 주시며 또 다른 이에게는 악마를 쫓는 권능을, 또 다른 이에게는 하느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은혜를 주십니다. 그분은 어떤 이에게 절제심을 강하게 해주시고, 다른 이에게는 자비심을, 또 다른 이에게는 단식하고 고행하는 것을, 또 다른 이에게는 순교의 용기를 주십니다.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라는 말씀대로 그분 자신은 변화되지 않으시지만 여러 사람들 안에서 각각 다르게 활동하십니다(예비신자 교리 제16편, 성령론 1,11~12: 성무일도 2권 915~6쪽).

 

[가톨릭신문, 2003년 7월 13일, 장인산 신부(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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