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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41: 제언 (1) 수신(修身) - 퇴계 이황의 유언

11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10-09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41) 제언 (1) 수신(修身) ① 퇴계 이황의 유언


설거지와 운전 등 소소한 일상에서 주님 계명 실천하자

 

 

우리 삶의 모든 것과 소소한 일상도 모두 주님이 주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만나는 모든 일상을 정성으로 한다면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다. 본당 음악회에서 노래하는 서울대교구 반포4동본당 성가대 단원들. 가톨릭평화신문 DB.

 

 

성당에 다니는 모든 자매님은 꽃입니다. 하느님의 충실한 종으로 살며, 성당 모든 궂은일을 마다치 않는 자매님들을 볼 때마다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성당마다 꽃이 만발하고 있으니, 하느님이 어찌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가는 성당마다 꽃밭입니다. 저는 꽃이 좋습니다. 그런데 꽃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꽃이 있습니다. 매화(梅花) 입니다. 살을 칼로 베는 추위를 버틴 후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를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고통을 이겨내고 생명을 터뜨리는 그 여린 몸짓이 안쓰럽고, 대견합니다.

 

저처럼 매화에 푹 빠진 분이 계셨습니다. 위대한 선비,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의 매화 사랑은 남달랐습니다. 병에 걸린 자신의 모습을 매화에 보이고 싶어 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또 평소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해결 방법을 매화에 물었다고 합니다. 매화에서 참 선비의 삶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한시를 남겼을 것입니다. “뼈를 깎는 추위를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들, 어찌 매화가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수 있었으리오(不是一番 寒徹骨 爭得梅花 撲鼻香).”

 

이러한 매화 사랑은 성현의 유언에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죽을 때 많은 말을 남깁니다. “어머니 잘 모시고, 형제간 화목하게 지내라” “재산의 분배는….” 하지만 퇴계는 달랐습니다. 삶을 마감하던 그 날,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 그리고 누운 자리를 정돈하게 하고는 부축받고 일어나 앉아서 편안히 운명하셨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소소한 일상

 

그렇습니다. 진리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소소한 일상이 진리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를 어떤 거창함에서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느님이 주신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느님께서 지금 우리 집에 와서 설거지하실 수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대신 자동차 운전을 하실 수 있습니까? 하느님은 우리를 통해 설거지하십니다. 우리를 통해 운전하십니다. 우리를 통해 매화나무를 살리십니다. 그렇게 하느님은 우리의 일상을 통해 당신의 초월을 드러내십니다.

 

삶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주어진 일상의 시간이 귀중하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일상이라고 생각하면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없습니다. 일분일초가 인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이고 기적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만나는 모든 일상을 정성으로 대한다면 풍요를 체험할 것입니다. 가지려고 할 필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베푸십니다. 우리는 넘쳐나게 받습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우리의 컵은 저절로 넘쳐 흘러서, 그 안에 든 것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난해하고 힘들고 어려운 것을 주문하시지 않습니다. 딱 하나만 지키면 됩니다.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계명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요한 15,10)

 

그러고 나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셔서 훗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복음적 삶에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자신의 복음화는 성령께 의탁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완벽한 장치를 해 놓고,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십니다.

 

 

나 자신의 복음화

 

평신도 사도직의 첫걸음은 ‘수신(修身)’, ‘나 자신의 복음화’입니다. 그 이후에 이 땅의 복음화도 가능하고, 하느님 나라도 가능합니다. 요즘 성당에는 목소리 큰 평신도가 간혹 있습니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하느님의 계명을 조용히 성취해 나가는 그런 평신도가 아쉬운 오늘날입니다.

 

명동 새천년복음화사도직협회 사무실에 키우는 화초가 있습니다. 화초에 물을 주어야겠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0월 6일,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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