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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 성사, 사랑의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받아 입음

31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2-08-03

[알아볼까요] 성사, 사랑의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받아 입음

 

 

일상을 살아가며 우리는 사랑이란 낱말 때문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사랑이 머무는 것에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사랑의 빈자리 때문에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사랑 때문에 감히 짊어지지 못할 것 같은 버거운 일상도 기꺼이 짊어지며 사랑으로 충만하고 싶은 목적이 있기에 오늘의 삶에 용기를 내기도 합니다. 물론 잘못된 사랑의 이해로 폭력과 억압을 보기도 하고 그 속에서 자기 성숙이 아닌 불행한 결과를 맞닥뜨리기도 합니다.

 

달리 말하면, 사랑이란 낱말을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간에 한 사람의 삶에서 사랑을 분리한다면 그 삶은 설명할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사랑에 의해 생명을 시작하고, 사랑에 의해 길러지며, 사랑을 향해 나아가고, 사랑의 충만을 위해 삶의 달음질을 지속합니다. 그렇기에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존재를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인간에게 사랑이 계시되지 않을 때, 인간이 사랑을 만나지 못할 때, 사랑을 체험하고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할 때, 사랑에 깊이 참여하지 못할 때, 인간은 자기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남게 되며 그의 생은 무의미하다.”(‘인간의 구원자’, 10항)

 

우리는 매일 사랑을 드러내고 마주합니다. 사랑은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우리 모두의 시작이고 여정이며 목적지입니다.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구성하며 그 삶을 자라게 하고 충만케 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성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공동체의 분열된 문제를 지적하며 한 성령을 받아 마신 그리스도인들 모두는 그리스도의 한 몸의 지체들임을 강조하면서 이 한 몸을 이루는 근본을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어질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라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 중의 으뜸은 사랑이며 사랑은 결코 변두리 것일 수 없고 사라지는 것도 아닌 영원하고 근본적인 것이라 전합니다.

 

그렇기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모든 선물을 하나로 이루어주는 것은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럽게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 1-3)

 

 

예수님이 드러내신 사랑의 최정점은 바로 십자가

 

여기서 우리는 사랑이 세상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원한 신비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물건처럼 고정되고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시는 미래의 새로움을 향해 우리를 나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종말에 이루어주실 사랑의 완성과 충만함에 대한 희망으로 지금 여기서 새롭게 나갈 수 있게 합니다. 이는 일상에서 우리가 발견하고 마주하는 사랑을 넘어서서 영원한 사랑의 완성이라는 신비를 바라보게 합니다. 있다가 시들고 사그라지는 사랑이 아닌, 어느 때가 되면 멈추고 끝나버릴 사랑이 아닌 늘 생기있고 싱그런 그러면서도 완성될 영원한 사랑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의 신비를 사랑 자체이시며 하느님의 살아 있는 진리이신 예수님에게서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입니다.(요한 13,1 참조) 사랑의 성령 안에서 새로 태어나야 함을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시며 예수님께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사랑 자체이시며 그 사랑 자체인 당신 자신이 세상과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해 오셨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 16-17)

 

여기서 구원은 사랑 자체이시며 그렇기에 사랑의 진리인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 안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은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님이며 그 예수님을 보고 만지고 먹고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구원된 이들, 곧 사랑이신 하느님과 사랑의 관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드러내신 사랑의 최정점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이는 예수님 친히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대로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하신 그 말씀을 십자가 위에서 이루셨습니다. 우리 사랑의 원천이며 영원한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로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자신을 내어주신 그 사랑 안에서 온전히 드러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 충만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자주 맞이합니다.

 

죽음의 고통을 넘어서며 하느님이 주신 사랑의 선물인 자녀를 출산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자녀들이 하느님 사랑 안에 살아가기를 청하는 간절한 부모의 기도 안에서, 기아와 내전으로 인한 죽음의 상황 속에 머무는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선교사들의 모습에서,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을 위해 온전히 자신을 봉헌하며 제단 앞에 엎드린 사제들의 모습에서, 세상의 불의와 고통에 몸부림치며 묵주기도를 봉헌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에서, 사랑 자체이신 그리스도만을 온전히 받들며 살기로 서원하는 수도자들의 모습에서, 오늘도 가족을 위해 새로이 맞이하는 하루를 하느님께 봉헌하며 묵묵히 열심히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하느님이 맡기신 터전을 가꾸는 농부들의 바쁜 손놀림에서, 나와 나에게 맡기신 이들을 하느님 사랑 안에 맡겨 드리며 레지오 단원이 바치는 정성 어린 까떼나 소리에서 우린 사랑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성사는 하느님 사랑의 생명 전체가 우리를 만나러 오는 것

 

이러한 하느님 사랑의 신비와 진리를 드러내는 삶은 혼자만의 힘이나 또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그리고 우리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완전히 드러내는 것은 바로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사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구원과 사랑의 일곱 성사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사랑 자체로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드러냄과 동시에 이 사랑과 하나가 됩니다.

 

성찬례는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하느님 사랑의 정점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통해 그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 사랑을 만나며, 세례성사는 파스카를 이루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임으로써 사랑의 원천인 삼위일체 하느님과 사랑으로 결합됨을, 견진성사는 성령께서 베푸시는 은총을 통해 이 사랑을 세상 안에서 구체화하고 현실화시키는 충만한 사랑의 준비를, 고해성사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화해하여 하나를 이루는 그 사랑이, 병자성사는 고통과 죽음 속에서도 현존하시며 영원한 사랑으로 동행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혼인성사는 교회와 사랑의 일치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성품성사는 세상을 구원으로 이끄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성사를 통해 이루도록 사제를 축성하는 그 하느님의 사랑이 충만하게 드러납니다.

 

성사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 사랑을 우리가 얻어 누림으로써 하느님은 구체적인 방식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시고,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 입은 우리는 우리 삶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거저 베푸시는 사랑을 세상에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곧 성사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 사랑과 결합됨으로써 일상의 우리 삶 전체가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랑의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분의 사랑을 받아 입지 않고 사랑하며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사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 사랑에 젖어 들지 않은 채 내 삶이 사랑 안에서 시작하여 사랑의 완성을 향한 신앙인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사는 하느님 사랑의 생명 전체가 우리를 만나러 오는 것이며 우리는 그 생명을 얻어 누립니다. 친구인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사랑으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사랑 자체이신 그리스도는 오늘도 같은 양식을 우리에게 내어주십니다. 이 사랑의 양식을 먹고 받아들일 때, 우리도 사랑의 진리이신 그리스도로서 더욱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8월호, 기정만 에제키엘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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