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온 프란조25: 성 베드로 사도 - 베드로의 피로 물든 바티칸 언덕 위에 교회가 세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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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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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4주년 기획 “부온 프란조(Buon pranzo)!”] 25. 성 베드로 사도(제1대 교황, 기원전 1세기~64 또는 67. 6.29)
베드로의 피로 물든 바티칸 언덕 위에 교회가 세워지다
-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초대 교황 성 베드로’.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니까 29살 무렵이었습니다. 갈릴래아 강가에서 스승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분은 ‘나를 따라오너라’(마르 1,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깊은 눈을 가진 사람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분은 이미 카파르나움에서 아픈 사람들을 낫게 해주는 기적을 행하고 계셨지요. 익히 저도 그 소문을 듣고 있었는데, 강가에서 저를 보시고는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고 하시는 겁니다.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가난한 어부로 살아가던 저는 대뜸 ‘그것은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강가의 수평선에 시선을 고정하시며 조용히, 그러나 근엄한 목소리로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리 명민한 사람이 아닌지라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뜻이 ‘하느님의 사랑을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전하라’라는 뜻임을 알아듣지 못했을뿐더러 이해도 못 했습니다. 그러시고 나서는 그분은 저를 ‘케파(Kefas, ‘반석’ ‘바위’라는 뜻의 아람어, 베드로)’라고 부르시는 것이었습니다.(요한 1,42) 분명 제 이름이 시몬(Simone)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분의 확고한 계획이셨는지 모르지만,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야 한다니요! 어쩌면 전과 다르게 제 삶이 총체적으로 바뀐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제 삶이 바뀌고 다른 제자들과 요르단 강가 근처에 그분과 함께 둘러앉아 있을 때,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결정적인 저의 믿음의 고백(마태 16,16)을 들으시고는, ‘너는 피에트로(Pietro), 반석이다. 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어찌나 명확하게 말씀하시는지, 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교회가 제자들과의 일치로 든든한 반석의 교회로 건설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아울러 그분은 제게 하느님 나라의 ‘열쇠’(Chiave)를 주셨습니다. 당신 교회의 주춧돌, 반석의 역할을 제게 맡기신 것입니다.
세 번이나 주님 배신했지만 반석의 임무 맡겨
네, 저는 예수님의 12사도 중에 한 사람, 베드로입니다. 갈릴래아 지방 벳사이다 출신으로 좀 성격이 급하고 막힌 듯 보이지만, 스승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 중에 한 사람으로, 부지런히 그분 옆에서 다른 제자들과 함께 하느님 나라가 도래했음을 외쳤습니다. 아,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그분의 수난(Passione) 시기를 떠올리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저의 인간적 나약함, 배신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던 그때만 생각하면 말입니다. 세 번씩이나 그분을 모른다고 손사래쳤던 그때, 어찌나 부끄럽고 죄스러운지 벽에 머리를 박고 가슴을 치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주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입니다. 저는 회한의 눈물 뒤에 느꼈습니다. 그분께서 진정으로 용서해주셨음을요. 진정으로 저를 사랑하고 계심을요.
그분께서는 부활 후,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제게 세 번이나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5);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6);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7)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예언적 말씀을 저는 가슴에 깊이 새겼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성령을 받은 저는 두려움도 사라졌고, 이전처럼 나약한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제게 주신 교회 리더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갔습니다. 예루살렘을 거쳐 저는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여기저기 전하는 선교 활동을 하다가 로마(Roma)까지 왔던 것입니다. 45년에도 왔었고, 다시 54년에 로마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네로 황제의 살벌한 박해(64∼67년)가 시작되었습니다. 박해 속에서도 저는 그분과의 약속을 지키며 어린 양들을 돌보는 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저는 네로 황제의 경기장에서 가까운 바티칸의 언덕(colle Vaticano) 위에서, 저의 스승처럼 십자가형에 처해집니다. 그분에게 저의 온전한 믿음의 피를 바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는 자청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64년(또는 67년) 6월 29일에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같은 날 바오로 사도도 로마 밖 오스티엔세(Ostiense)에서 참수를 당합니다. 우린, 같은 날 로마에서 순교하였기에 교회는 늘 함께 우리를 마치 쌍둥이처럼 기억합니다. 네로(Nerone) 황제는 로마시의 화재 원인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리니 저와 함께 수많은 저의 양들도 참혹한 순교를 당하였던 것입니다.
- 미켈란젤로 작 ‘성 베드로의 십자가 형’(Crocifissione di san Pietro), 파올리나 경당 벽화(프레스코화), 1546∼50년. 십자가에 못 박히는 베드로의 시선은 파올리나 경당의 문을 향해 있다.
자청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음 맞아
저의 피로 물든, 바티칸의 언덕 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저의 무덤 위에 대성당 바실리카(Basilica)가 베드로(Pietro)란 이름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는 교회의 반석이 되었고, 저의 선교 소명을 고스란히 교회에 유산으로 남겼습니다. 그렇게 저는 ‘로마의 주교’(Vescovo di Roma)로 불렸고, 즉시 ‘베드로 좌’(Cattedra di Pietro)의 1대 교황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20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저의 후계자 교황이 266대라니 놀랍고 감사할 뿐입니다. 나의 교회가 영욕의 세월, 환난의 세월, 그리고 기쁨의 세월을 거쳐 걸어온 이 길은, 살아계신 나의 주님, 우리의 주님께서 성령과 함께해주셨음을 확신합니다. 미켈란젤로(Michelan Buonarroti, 1474∼1564)가 그의 생애에 마지막으로 시스티나 성당 옆, 파올리나 경당(Cappella Paolina) 양옆에 그린 프레스코화가 있습니다. 왼쪽 벽에는 바오로를, 오른쪽 벽에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저를 고통에 몸부림치는 한 인간의 모습이 아닌, 누군가를 단호하게 바라보는 모습의 얼굴로 저를 그렸더군요. 자, 이렇게 생각합시다. 누군가를 꾸짖는 듯한 저의 시선은, 교황들은 물론 나의 모든 양에게 건네는 이 말로, 저의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나의 양들아, 깨어 있으라. 하느님의 나라가 바로 너희 앞에 왔다!’라고요.”
제1대 교황인 베드로 성인을 마지막으로 열 분의 교황님을 만나 보았다. 그분들을 만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고, 신앙을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도 갖게 되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그분들의 인간적 면모와 함께 놀라웠던 사실은 교황님들의 한결같은 마음은, 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과 가까이하였다는 사실이다. 2023년 대림 시기에 가난과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우리도 교황님들처럼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올해 마지막 12월은, 로마 이웃들과의 재미있고 행복했던 일상을 성탄 요리와 함께 쓸 예정이다.
레시피 : 보리 빵(Pane d’orzo, 빠네 도르조)
▲ 준비물 : 보리 밀가루 200g, 올리브유(엑스트라 버진) 50㎖, 물, 소금.
→ 보릿가루에 올리브유와 따뜻한 물 2분의 1컵 정도를 넣고 반죽한다.
→ 만약 반죽이 힘겨우면, 올리브 오일을 조금씩 넣어가며 반죽한다. 반죽이 기름지면, 더 맛이 있다.
→ 가루를 묻혀 밀대로 동그랗게 대략 20cm로 만든 다음, 오일 바른 팬에 펼쳐 놓는다.
→ 오븐 200도에서 양 가장자리가 타지 않는 상태로 굽는다.
▲ 모니카의 팁
빠네 도르조는 예수님 시대의 빵이다. 발효제를 넣지 않고, 단순하게 반죽해서 구워 먹던 빵이다. 열두 제자와 함께 나누어 먹던 2000년 전의 이 빵은 신약성경에서의 예수님을 ‘참된 빵’(요한 6,32), ‘생명의 빵’(요한 6,35;6,48), ‘하늘에서 내려온 빵’(요한 6,32;6,49-50)으로 표현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Bethlehem)에서 태어났다. 히브리어로 ‘Beth lehem’은 ‘빵의 집(casa del pane)’이라는 뜻이다. 열두 사도와 나누어 먹던 소박한 이 빵을 2000년이 지난 지금 만들어 먹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보릿가루가 없으면, 강력분으로 대신해 볼 수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11월 27일, 고영심(모니카, 디 모니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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