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영엽 신부의 나눔: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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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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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신부의 ‘나눔’]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
제가 성품성사 후 감격스러운 첫 미사를 신당동성당에서 봉헌하고 마당에서 신자들과 인사를 할 때였습니다. 허리가 굽은 한 할머니께서 주름진 손으로 제 손을 부여잡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허 신부님! 제가 다른 선물은 못 드리지만 죽을 때까지 매일 묵주기도 할 때마다 신부님을 위해 기도할게요.” 저는 그분의 눈을 보며 그만 눈시울이 붉어져 “고맙습니다”라고만 연신 대답했습니다. 사제생활을 되돌아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이렇게나마 사제로 살아가는 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절실히 듭니다.
어릴 때 “기도를 하면 항상 응답이 있다”라고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가르쳐주었어요. 어릴 적엔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도 바로 이루어지지 않아 ‘기도에 응답이 꼭 있다고? 정말 그런가?’ 하면서 막연히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린 시절에는 공부는 안 하고 만화 가게에 종일 있다가 저녁에 ‘이번 시험에서 꼭 1등 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던 적도 많아요. 심지어 ‘이번 주일학교에서 제가 짝사랑하는 ○○○를 꼭 만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던 적도 있어요. 하지만 4~5년을 주일학교에서 만나도 그 애 앞에서 입도 벙긋 못했네요.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그지없는 기도였어요.
기르던 강아지가 죽자 형님 신부님은 당시 6학년 때인데도 눈물을 질질 짜면서 학교에 갔고, 저는 눈을 감고 기도했어요. ‘저 독구가 (왜 당시 동네에서 개 이름은 대개 독구(Dog), 메리(Mary), 쫑(John)으로 많이 지었는지 모르겠어요. 나름 영어식으로 멋지게 짓는다고 했겠네요) 천당에 가게 해주세요!’ 옆에서 보고 있던 삼촌이 “무슨 기도를 했니?”라고 물었어요. 나는 “독구가 천당에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삼촌은 머리를 갸우뚱거리더니 “영엽아 사람은 죽으면 천당, 연옥, 지옥으로 가지만 동물은 그런 거 없어”라고 말했어요. “그럼 동물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글쎄! 그것까지는 모르겠는데…” 삼촌은 무책임하게 동심을 마구 파괴(?)하고는 답변이 막히자 휑하니 방을 나갔어요. 그때 나는 무척 황당하고 ‘그럼 동물들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하면서 며칠 동안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나는 독구가 좋은 곳으로 가서 새로 태어나기를 기도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삼촌이 나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기도를 계속하면 하느님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화되는 것”
삼촌은 평소에 여자와 데이트할 때 나를 잘 데리고 다니셨어요. 어린 내 생각에도 삼촌은 삼촌대로 데이트하러 간다는 것을 식구들에게 위장(?)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삼촌은 맛있는 것을 사주면서 집에 가서는 친구 아무개를 만났다고 거짓말하도록 입단속을 했어요, 나는 곧이곧대로 이야기했다가는 다시는 극장이나 다방 같은 곳엔 못 갈 테니 부모님께도 삼촌이 시킨 대로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면 잘 넘어갔죠.
삼촌은 다방이나 공원에서 여성과 데이트할 때 나에게 먹을 것을 사주고는 둘이서 열심히 이야기하곤 했어요. 나는 먹는 것에만 집중하고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척하고 둘의 대화는 관심이 없는 척, 모르는 척했어요. 그런데 사실 내 귀는 두 사람을 향해 곤두서있고, 모르는 척했지만 나는 나대로 어른들의 말을 대부분 이해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도 삼촌의 말은 80~90%가 속된 말로 뻥(?)이었어요. 삼촌은 만나는 여성이 자주(?) 바뀌었어요. 여자들은 알고 속아주는 건지, 모르고 속는 건지 대화를 계속하고 만남을 거듭했어요. 삼촌의 이런 성향으로 봐서 죽은 독구에 대한 이야기도 뻥으로 간주하고 싶었던 것이죠.
기도는 대화라는 특성으로 보면 모든 기도는 응답을 지니고 있다고 봐요. 대화할 때도 탁구처럼 계속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침묵이나 무응답, 전혀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분명히 기도는 항상 응답이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특히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읽고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니 하느님과 대화를 하는 기도 중에도 하느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잘 알아차리려 노력해야겠지요. 상대는 눈곱만큼도 마음이 없는데 나 좋다고 직진만 하고 엉뚱하게 힘만 쓰다 보면 결과는 뻔한 것이지요. 어떤 영성가는 “기도를 계속하게 되면 하느님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화되는 것”이라 했는데 의미심장한 말이라고 생각해요.
기도 대상과 기도지향을 기록하는 수첩 사용하면 도움 돼
사도 바오로는 자신들을 도와준 신자들에게 “기도 중에 여러분을 기억하며 여러분 때문에 끊임없이 감사를 드립니다”(에페 1,16)라고 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기억하는 것이고, 기억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멀리서도 기억하는 것은 내 마음속에 살아있고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있지만 기억할 수 없고 기억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것이죠. 사람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잊힌다는 것이죠. 그러나 세월과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모든 것은 사라지고 잊히는 것이 당연지사(當然之事)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에게 큰 희망의 말씀을 하십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 49,15)
낳아주고 기르신 어머니가 자식을 잊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런 어머니조차 자식을 잊을지 몰라도 하느님은 우리를 잊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계속 곱씹어 봐도 가슴 벅찬 약속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하신 기도 방법을 따라 하면 어떨까요. 교황님은 기도할 때 자주 메모지에 기도나 묵상 내용을 써넣거나 기도할 사람의 이름과 기도지향을 빼곡히 써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신학교 때 짧은 묵상 내용이나 느낌 등을 그때그때 적어놓았다가 나중에 기도할 때 보면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사진은 신학과 4학년 때 썼던 수첩의 일부입니다. 어느 때는 좋은 기도내용이나 느낌이 떠올랐는데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기도 하니 생각이 날 때 써놓으면 나중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우리 레지오 단원들도 날짜마다 기도할 대상과 기도지향과 내용을 기록하는 작은 기도 노트나 수첩을 따로 가지고 사용하시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9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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