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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인간학 칼럼: 인간은 누구인가?

50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01-06

[인간학] 인간은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시지만, 이 땅에서 복음을 선언하실 때는 스스로를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르십니다. 왜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걸까요? ‘인간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질문이지만 여전히 정답을 알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에서도 어김없이 이 질문이 나오고 그에 대한 여러 가지 답을 보여줍니다. 금지된 열매를 따먹은 아담에게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묻습니다. “사람아, 너 어디 있느냐?” 정말 몰라서 물어보셨을까요? 죄를 지은 인간이 자신을 어떻게 감추고 있는지 묻는 질문이지요. 또한 오랜 전승을 간직한 시편에서도 하느님의 존엄함을 찬양하면서 동시에 인간에 대해 질문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시편 8편 참조)

 

사람이 무엇인지, 그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묻는 존재론적 질문이면서, 또한 우리가 스스로에게 묻는 실존적 질문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천사보다는 못하지만 인간으로서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존엄과 비참함 사이에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선과 악 사이에서 방황하는 존재이며, 밝음을 찾아 몸부림치는 올곧은 사람이지만, 또한 어김없이 자신을 둘러싼 어두움을 볼 수밖에 없는 연약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랑을 갈구하지만, 금방 이웃에 대한 섭섭함과 미움 때문에 괴로워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파스칼은 인간을 그 사이에 있는 중간자적 존재라고 부릅니다. 파스칼은 성 클레멘스 축일 전날 밤 깊은 신앙체험을 통해 철학자의 신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에 대해 고백합니다. 신앙의 역사 안에서 끊임없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향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고백입니다. “사람아, 너 어디 있느냐?”고 묻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대답해야 합니다. “네,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있는 이곳은 어디인가요?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나는 누구인가요?

 

이 질문에 앞으로 1년간 철학이 대답한 역사를 하나씩 살펴보려 합니다. 인류의 지성사는 모두 이 문제에 답을 찾으려 했던 역사라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독일 철학자 칸트도 모든 철학의 질문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라고 했습니다. 인공지능과 생명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심지어 인간 이후의 인간에 대한 철학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른바 포스트휴머니즘이라 부르는 이 사조는 엄청난 과학기술의 시대에 인간을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철학적 흐름입니다. 그러나 이 말 뒤에는 시대의 풍요로움에 빠져든 맹목이 감춰져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맹목을 넘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답을 찾아보려 합니다. 이렇게 제시하는 저의 철학적 언어를 들으시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과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이 글을 읽는 교우 여러분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그럴 때 철학자의 신이 아닌 역사 안에 현재하시는 하느님과 만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테지요.

 

[2024년 1월 7일(나해) 주님 공현 대축일 서울주보 7면, 신승환 스테파노(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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